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208)화 (208/227)

208화 북진기 (8)

적이 일으키는 폭발은 언제나 ‘개씨발’이고, 내가 일으키는 폭발은 언제나 ‘예술’이다.

도로 한복판에 심어 둔 IED(급조 폭발물) 무더기를 원격 폭파한 순간, 제작자의 예상을 훨씬 추월한 불기둥이 치솟았다. 동시에 사방팔방으로 폭압과 열기, 그리고 파편이 흩뿌려지며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었다.

역시 테러리스트의 전매특허 IED답게 위력 하나는 확실했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대전차 무기가 마땅치 않을 때는 그냥 폭발물 덩어리를 한가득 준비해서 싹 날려 버리는 것도 하나의 전술이라고 알라후 아크바르 이슬람 전사님께서도 말씀하지 않으셨나.

내가 당한 것도 아닌데 적 차량이 폭압에 뒤집어져 날아가는 걸 보기만 해도 괜히 엉덩이가 화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저 새끼들도 장갑차가 있네.’

비교적 병력 규모가 작은 선봉대끼리 붙을 때는 보지 못했지만, 놈들은 나름 1.5선급 부대라는 걸 자랑이라도 하는 건지 떡하니 장갑차를 끌고 왔다.

딱 봐도 강릉 인근 군부대에 박혀 있던 구식 장갑차를 긴빠이해 온 것이 분명했지만 아무튼 장갑차는 장갑차였다.

꽤 먼 거리에서도 확실히 느낄 만큼 후끈한 열기와 폭압이 터져 나왔는데, 전술 차량을 뒤따르던 장갑차는 살짝 들썩이기만 할 뿐,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오히려 적당한 구식 장갑차일수록 뛰어난 성능의 무기나 별도의 시스템을 탑재하지 않기 때문에, 튼튼한 무한궤도와 소총탄 정도는 가볍게 튕겨 내는 두꺼운 장갑이 몇 안 되는 장점이자 특징이다.

그런 만큼 기동력과 기습 대응 능력은 형편없어서 동네북처럼 여기저기서 얻어맞지만, 적어도 알보병들이 기습을 걸어올 때는 유의미한 방호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단순한 알보병이 아니라서 문제지.

“가라, 가희몬! 너로 정했다!”

“후욱!”

진가희는 가희가희! 하고 외치는 대신 짧은 호흡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폭발적인 각력으로 아수라장이 된 야간 도로를 향해 튀어 나갔다.

전술 차량들의 헤드라이트는 대부분 폭압과 파편에 의해 박살 나 버렸고, 멀쩡한 것들이 남아 있다고 해도 온 사방이 컴컴한 야간 도로를 전부 밝혀 줄 수는 없었다.

갑작스러운 폭발 탓에 일시적으로 청각에 큰 손상을 입은 적들은 또 어떤가. 제아무리 강인한 각성자라고 해도 인간의 몸뚱어리가 가지는 본질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가 매복이라고 열심히 외치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총을 들고 차량에서 뛰쳐나와 사주경계를 했지만, 사주경계를 한다고 해서 적을 압도적인 스피드로 움직이는 근접 전투 특화형 각성자를 막을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쾅! 쾅! 쾅!

반대편 매복지에서 진가희보다 조금 더 먼저 달려 나간 최묵호가 샷건을 미친 듯이 쏴 갈겼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적들은 그나마 안전했을 차량에서 튀어나오자마자 모두 똑같은 곤죽으로 전락했다. 이제는 분간할 수도 없고, 가치를 매길 수도 없는 단순한 살덩어리로.

폭발 때문에 귀에서 삐이이이- 하는 이명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을 적들에게, 희미하게 들려오는 총성과 비명은 다른 의미로 공포였다.

자신들이 부주의하게 야간 도로를 이용하다가 폭발물 함정에 걸린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지만, 설마 이 병력을 상대로 전면전을 걸어오는 미친놈들이 있을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뭐야! 무슨 일이야! 보고를 해, 이 새끼들아!”

“매, 매복입니다! 정체불명의 적들이 침투해서 난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럼 막아! 사람이 몇 명인데 그까짓 매복 하나 대응을 못 한다는 게 말이 돼?!”

“야간인 데다 약하지만 눈도 내리고 있어서 명확한 시계 확보가 안 됩니다!”

“그럼 팀 단위로 뭉쳐서 대응을 해, 병신 새끼야! 너 이 새끼, 전투 훈련에서 뭐 배웠어?!”

국군과 경찰을 상대로 꾸준히 테러를 자행해 왔던 헬조선 단원들은 곧 빠르게 자신의 팀원들과 뭉쳤다.

설령 같은 팀이 아니라고 해도 아군이기만 하면 일단 삼삼오오 뭉쳐서 기습을 걸어온 적에게 대응하고자 했다.

이건 내가 보기에도 썩 괜찮은 대응책이었다. 섣불리 흩어져서 자유 전투를 벌였다간 아군 오사가 심심찮게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각개격파를 당하며 피해가 더 커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여기에는 자기 몸을 보호해 줄 참호나 벙커가 없어요, 선생님들.’

전술 차량이나 장갑차 뒤에 숨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많은 인원들이 모두 숨을 수 있을 리도 만무하고, 애초에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나와 한동석의 눈에는 훤히 다 보인다.

“진가희, 최묵호 잠깐 빠져.”

기습적으로 적의 대열에 침투해서 그 짧은 시간에 수십 명을 도륙한 두 사람에게 귓속말을 속삭인 다음, 나는 한동석과 함께 타이밍을 맞춰서 저격을 가했다.

아아, 이 서늘하고 묵직한 감각. 건마스터 이승권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나는 평범한 소총병이었기 때문에 저격총은 한 번도 다뤄 본 적 없지만, 퇴역병 직업 특성으로 모든 군용 무기 및 장비에 대한 50% 보정 효과를 받는다. 거기에 사격(A) 스킬의 보정까지 받는 내가 ‘총’을 제대로 못 다루는 건 말이 안 된다.

투캉!

비트 속에서 엎드린 채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견착하고 방아쇠를 당기자 강력한 반동이 팔과 어깨를 타고 흘러 들어왔다.

성인 남성 팔뚝보다 굵은 대구경 소음기를 착용한 덕분에 총성이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물 저격총답게 위력 하나는 확실했다.

어설프게 차량 측면에 엄폐한 채 삼삼오오 뭉쳐서 사주경계를 하고 있던 적들을 12.7mm 탄환은 너무나도 쉽게 관통해 버린 것이다.

수백 미터를 가로질러 순식간에 적의 흉부에 도달한 탄환은 방탄복과 함께 몸을 통째로 뚫어 버렸다. 한 명이 아니라 두 명분의 몸을.

위력이 너무 강해서 성인 남성의 몸뚱이와 방탄복으로도 다 막지 못해 관통한 탄환이 차체를 맞고 튕겨 나갈 정도였으니, 상점창에서 구입한 아이템만으로 저만한 위력의 탄환을 막아 낸 내가 새삼 대견스럽다.

너무나도 강한 운동 에너지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간 두 사람이 허수아비처럼 픽픽 쓰러지고, 졸지에 주변에 서 있다가 뜨끈한 내장과 피를 뒤집어쓴 또 다른 적들은 패닉에 빠졌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잔혹하게 죽이거나 노예 취급을 하던 쓰레기들이, 막상 코앞에 닥쳐온 진득한 죽음의 향을 들이쉬자 정신이 나가 버린 거다.

그런데 전쟁에서 적보다 더 위험한 건 뭐다?

바로 패닉에 빠진 아군이다.

“으, 으아아아아아아!”

“잠깐… 그만둬, 미친 새끼야!”

“총구 돌려!”

“누가 저 새끼들 잡… 카하아악!”

타타타타! 타타타타타타타!

각성자도 예외는 없다.

애초에 각성자는 시스템의 수혜를 받아 일반인보다 더 강해졌을 뿐이지, 베이스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시스템이 치트키처럼 평범한 인간을 완전무결한 초인으로 만들어 주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당연하지 않나? 이건 지능 스텟에 투자한다고 정신력이 강해지고 마나통이 쭉쭉 증가하는 RPG 게임이 아니니까.

인간의 뇌는 엄연히 한계가 존재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스트레스 처리 능력을 요구하면 당연히 고장 난 컴퓨터처럼 블루스크린이 뜨는 거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패닉이라고 부른다.

모랄빵이 나서 주변의 아군이고 뭐고 닥치는 대로 총기 난사를 하고 있는 놈들을 보고 있자니, 확실히 진가희와 최묵호를 잠시 물려 두길 잘한 것 같다.

물론 나와 한동석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지속적으로 놈들을 저격하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제 적들도 총성으로 우리의 위치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는지라 대응은 반쯤 포기한 눈치였다.

탕! 탕!

“대가리 맛 간 새끼들부터 조져! 아군이라고 봐주지 말고 그냥 머리통 날려 버리라고!”

놈들은 눈물을 머금고 패닉에 빠져 아군 오사, 혹은 수류탄 핀을 뽑고 주변에 마구 던져서 자폭하는 놈들을 제 손으로 직접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뭐 하나? 나와 한동석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게 될 때까지 실컷 뽕을 뽑을 텐데.

한동석이 열심히 차량 근처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사태를 수습하려는 놈들만 골라 저격하는 동안, 나는 다른 목표물을 찾아서 총구를 돌렸다.

이왕 뽕을 뽑으려면 저런 말단 잡졸들만 조질 게 아니라 좀 더 대가리가 큰 놈들을 조져야 한다.

전쟁에서 병사들만 무조건 많이 죽인다고 다 능사가 아니다. 때로는 지휘관 몇 명만 처리하는 것으로 수많은 병사들을 오합지졸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하나의 전술이다.

‘특히나 저렇게 개성적이고 하나로 통일되지 않은 집단일수록 지휘관을 구분하는 건 쉽지.’

군대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계급장으로 구분하는 반면, 저놈들은 그냥 딱 봐도 ‘아 이놈은 끗발이 좀 있는 놈이구나.’ 싶은 것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어 패닉에 빠져 총기 난사를 하고 있는 헬조선 놈들과 달리, 침착하게 자신들끼리 뭉쳐서 방벽을 전개하거나 보호용 엄폐물을 꺼내 든 새하얀 로브 차림의 집단.

언뜻 죄다 똑같은 로브 차림이라 쉽사리 구분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놈들이 누군가를 중심으로 방진을 짜듯 뭉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저 새끼가 끗발이 좀 있는 놈이군.’

열심히 방벽을 전개하거나 엄폐물을 쌓아 아군을 보호하고 있는 아랫것들과 달리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서 가장 안전한 중앙에 있는 놈.

놈을 조준한 순간 방아쇠는 이미 당겨지고 있었다.

투캉!

기껏해야 소총탄이나 막을 수 있을 법한 엄폐물을 관통한 대구경 탄환이 정확히 중앙에 서 있던 놈의 머리통을 터뜨렸다.

한 놈 잡았고.

‘다음은 차량 안에 숨어서 무전기를 들고 있는 놈.’

투캉!

차량의 전면 방탄유리가 박살 나며 무전기를 들고 있던 놈의 가슴팍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아마 뒷좌석까지 뚫고 들어간 대구경 탄환이 군부대에서 긴빠이해 왔을 커다란 무전기까지 박살 냈으리라.

군대로 치면 소대장이나 부사관 계급 정도 되는 어중간한 놈들은 병사들과 함께 두돈반 트럭도 타고 다니지만, 저렇게 딱 봐도 중요도가 높아 보이는 전술 지휘 차량이나 장갑차 등에는 거의 확정적으로 간부 계급이 타고 있다.

지휘관이 탑승하고 있는 차량은 안전을 위해서 선행하지 않는다. 지휘관이 매복이나 함정에 당해 먼저 죽어 버리면 낭패니까.

따라서 이동 중인 병력의 대열 중간이나 조금 더 후방을 살피면 간부나 지휘관이 탑승한 차량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아까부터 아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데 슬금슬금 대열을 벗어나려는 장갑차가 있군.’

말해 뭐 하겠나. 체계적인 지휘 계통도 없는 비정규군 범죄 조직에서 부하보다 제 목숨을 더 소중히 여기는 놈이 없을 리가 없는데.

어느 조직이든 무능한 윗대가리는 존재한다지만, 저런 놈들은 특히나 질이 나쁘다.

그렇게나 도망치고 싶다면 아예 이승 하직을 시켜 드려야지.

나는 조용히 밤하늘을 날고 있던 UCAV를 원격 조작해서 지면으로 내리꽂았다.

이것은 이승권의 전매특허 ‘실례지만 지금 불타고 계십니다.’ 스킬이라고 한다.

꽈아아아앙!

제아무리 튼튼한 최신형 전차도 재블린 한 방에 뚜껑이 따이는 것처럼, 구형 장갑차의 널찍한 상부 장갑 위로 내리꽂힌 UCAV는 훌륭하게 벙커 버스터 역할을 해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불기둥이 치솟는 것을 보며 나는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걸 봐. 석양처럼 아름다운 불꽃이야.

아아, 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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