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202)화 (202/227)

202화 북진기 (2)

저격과 낚시는 서로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자신이 파 놓은 덫에 사냥감이 접근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인내해야 한다.

물론 단순히 인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냥감이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주변 환경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불필요한 소음을 흘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아주 미세한 움직임도 기나긴 인내의 시간의 물거품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

또한 100%의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절대로 섣불리 사냥감을 자극해선 안 된다. 자신이 하는 것은 고작 운 따위에 결과를 맡기는 도박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이 미학을 모르면 이 세계에 좀처럼 발을 들이기 힘들지.’

설령 발을 들이더라도 금세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이 일을 함에 있어 기본적인 예의도 갖추지 않은 무지렁이들을 지금껏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하지만 자신은 그런 놈들과 다르다.

사냥감을 취하기 위해, 100%의 확신이 들 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잠들지도 않고 수십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을 길렀다.

쓰디쓴 인내 끝에 전신이 녹아내릴 정도로 달콤한 보상이 돌아온다는 건 알고 있으니,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버틸 가치가 있다고 굳게 믿으면 버틸 수 있다.

눈구덩이 속에 몸을 파묻은 남자, 이보성은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몸을 떨지 않고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옆에 놓여 있는 거대한 대물 저격총은 새하얀 붕대로 총신과 스코프까지 빠짐없이 감아서 반사광을 지우고, 그 위에 눈 뭉치를 조금 얹어서 확실하게 위장해 두었다.

저격의 장점을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일반적인 소음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소음기까지 부착한 그의 저격총은 길이만 거의 1.3m에 달했다.

성인 남성 팔뚝보다 굵은 거대한 원통형 소음기는 대포 같은 총성을 장난감 폭죽 수준으로 줄여 주었다. 물론 총의 위력이 위력인 만큼 연달아 사격하면 금세 소음기의 수명이 다해 버려서 교체 주기가 매우 짧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멋들어진 총은 그의 독보적인 사냥 미학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누가 뭐래도 2차 남북 전쟁 종전 이후 더 이상 이 땅에서 인간을 사냥할 수 없을 거라는 암담한 미래를 치워 준 고마운 총이었으니.

‘어젯밤, 운 좋게도 최우선 타깃을 포착하고 기습적으로 저격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실제로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었지. 안전지대 스킬 같은 걸 보유한 각성자였나?’

만약 안전지대 스킬 같은 걸 보유하고 있다면 저격으로 처리하는 건 상당히 힘들 것이다. 상대가 안전지대에만 틀어박히는 안전제일주의 성향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최우선 타깃이 이 산맥을 들쑤시며 매복조를 직접 처리하고 있다는 보고는 이미 받았으니, 저격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 이보성을 직접 처리하기 위해 제 발로 걸어 나올 것이 분명했다.

상대가 직접 나오지 않고 군대를 동원한다고 해도 딱히 상관없다. 적당히 상대해 주면서 적 병력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히고 빠르게 물러나면 그만이니까.

이보성 한 명을 잡자고 대규모 폭격을 때려 박을 가능성?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굉장히 희박하다. 심지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경북과 강원도의 경계인 이 근방 산세는 특히나 험준하니까.

핵미사일이라도 투하하지 않는 이상 이 산맥 어딘가에 숨어 있을 자신을 핀 포인트로 타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까 상대는 반드시 제 발로 걸어 나온다. 수많은 매복조를 직접 처리했던 것처럼 자신의 실력과 능력을 과신해서 ‘이번에도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 같은 안일한 태도로 나설 것이다.

‘헬조선과 새천년평화교가 이를 갈고, 보스께서 직접 토벌을 명령할 정도로 대단한 놈인 건 사실이겠지. 하지만 지금껏 놈이 상대해 왔던 건 길거리의 돌멩이처럼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어중이떠중이들뿐이었다.’

아무리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들, 자신의 능력에 비해 너무 약한 적들만 상대하다 보면 철인 같은 강대한 전사도 무심코 방심하는 법이다.

이보성은 망원경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분류, 분석하면서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지정한 암살 목표와 ‘히트맨’과의 거리 : 3km 이내

-지정한 암살 목표가 10분 전에 머물렀던 마지막 장소에 핑(PING)이 찍힙니다. 미니맵으로 확인 가능합니다.

-지정한 암살 목표가 ‘히트맨’을 육안으로 포착할 시 최초 1회에 한하여 경고 메시지를 송신하고 ‘암살 목표 지정’ 스킬이 강제로 해제됩니다.

“예상대로 움직이는군.”

어젯밤, 안전지대로 추정되는 장소에 몸을 숨긴 최우선 타깃을 ‘암살 목표 지정’ 스킬로 점찍어두었다.

암살 목표 지정 스킬은 히트맨인 이보성이 직접 스킬을 해제하거나, 상대가 그를 역으로 포착하기 전까지 쭈욱 유지된다.

언뜻 보면 추적계 스킬의 압도적인 상위 호환 스킬인 것 같지만, 사실은 스킬과 지정 대상을 연동시킨 감지계 스킬에 가까웠다.

일반적인 추적 스킬은 대상이 남긴 흔적을 스킬 시전자에게 보여 주고 효율적으로 추적할 수 있게끔 돕지만, 이 경우에는 스킬에 연동된 대상의 대략적인 위치를 실시간으로 공유해 주기 때문이다.

‘대략적’이라서 나머지는 실력과 감으로 때려 맞춰야 한다는 불편한 점도 있지만, 숙련된 히트맨은 그 정도 정보만으로도 충분했다.

애초에 주변 환경을 보라. 은엄폐에는 최적이지만 고속 이동에는 부적합하다.

눈이 너무 쌓인 탓에 발목은 푹푹 잠기는 데다 이따금 불어닥치는 바람을 제외하면 그 어떤 소음도 기대할 수 없다.

먼저 움직이는 놈, 먼저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놈이 무조건 불리한 환경이다. 이런 겨울 산에서 자신을 찾겠답시고 어리석게 혼자 튀어나온 암살 목표를 찜 쪄 먹는 건 일도 아니다.

‘약 20분 전에 핑이 찍힌 장소는 저 이상한 구조물이 갑작스럽게 돋아난 산의 아래쪽이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상대의 10분 전 위치 정보지만, 다음에 들어올 10분 전 위치 정보와 대조해 보면 상대가 어떤 방향으로, 어느 수준의 기동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수십 초가 더 흐른 뒤, 최근 10분 전 상대가 마지막으로 머무른 장소에 대한 정보가 이보성의 뇌 내 미니맵에 핑으로 찍혔다.

산에서 내려온 상대는 온 천지가 눈으로 뒤덮인 것 치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자신을 향해 접근해 오고 있었다.

어제 저격에 실패한 직후 곧바로 위치를 변경했음에도 똑바로 자신을 향해 접근해 오고 있는 것은 단순한 직감이거나 운인 걸까?

‘아니, 이 바닥에 운 같은 건 없다. 상대도 간밤에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저격수가 자리 잡기에 적합한 최적의 장소 후보를 추려 낸 게 분명해.’

애초에 상대는 그 명성이 자자한 북진군 출신 아닌가.

반평생을 총기 소지 불법 국가에서 청부 살인업자로 살아온 그도 단순한 소문으로 흘려들을 수 없었던 진짜배기 전쟁광 집단이 바로 북진군이다.

그런 집단에 소속되어 있던 자가 단신으로 거대 세력의 팔다리를 잘라 내고 전쟁의 선봉대로 나서기까지 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절대로 할 수 없는 짓을 멀쩡하게 실행하는 놈에게 상식을 기대하면 안 된다.

‘내가 매복하고 있는 대략적인 포인트를 파악했다고 해서 내 위치가 발각되었다는 건 아니다. 실제로 암살 목표 지정 스킬은 해제되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어. 그렇다는 건…….’

이보성은 눈을 가늘게 뜨며 저격총을 집어 들었다.

무게만 해도 족히 10kg이 넘는 이 대물 저격총은 대한제국파 내에 존재하는 솜씨 있는 건스미스의 손을 거쳐 다목적으로 개조되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이론상 단 한 발로 침묵시킬 수 있는 압도적인 위력과 원본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튼튼한 내구도, 거기에 대폭 늘어난 유효 사거리까지.

히트맨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할,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이 총으로 임무를 성공시켜 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생기는 마성을 자랑한다.

‘보스께서 내게 이만한 물건을 쥐여 주면서 놈이 강원도에 도달하기 전까지 반드시 처리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 터.’

이보성은 빠르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격의 기본은 호흡 조절에서부터 시작한다.

숨을 쉬기 위해 산소를 흡입하면 폐가 확장되면서 흉부가 움직인다. 저격총을 견착한 자세에선 필연적으로 흉부와 개머리판이 닿을 수밖에 없다. 설령 흉부가 닿지 않는다고 해도 흉부와 연결된 팔이 움직인다.

그리고 미세한 떨림이 견착된 총의 밸런스를 망가뜨릴수록 장거리 저격 명중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고작 100m 거리에 떨어진 수박을 맞춰야 하는 난이도가, 본인의 부주의로 인해 1km 너머의 작은 깡통을 맞추는 수준까지 난이도가 상승하는 것이다.

“후우…….”

본래 저격수는 반드시 보조 역할을 담당하는 부사수와 함께해야 하지만, 히트맨인 이보성에게 부사수는 필요 없었다. 만일에 대비한 백업만 있으면 충분했다.

빠르게 호흡을 정리한 이보성은 자신이 매복한 포인트를 향해 정직하게 움직이고 있을 최우선 타겟을 찾기 위해 또 다른 스킬을 발동했다.

-‘킬링 필드’가 형성됩니다.

-히트맨을 기준으로 반경 1km 이내에 형성된 영역 내에 존재하는 모든 적성체가 ‘강조’됩니다.

-‘강조’된 적성체를 최초 1회 공격 시 ‘킬링 필드’ 스킬이 강제로 해제됩니다.

킬링 필드.

단 한 번의 암살 기회로 타깃을 깔끔하게 처리해야 하는 히트맨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제공격권.

무조건 상대를 먼저 포착하고, 먼저 공격할 수 있는 이 스킬 덕분에 이보성은 언제나 암살에 성공할 수 있었다. 어제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번에는 다르다. 제 발로 안전지대를 벗어난 놈의 명줄을 끊는 데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번이면 충분하지.’

묵직한 총의 무게감을 느끼며, 스킬에 의해 붉게 강조된 상대를 스코프 속에 담았다.

나름대로 이쪽에 맞서기 위해 동계 위장 길리슈트 같은 걸 껴입고 움직이는 모양인데, 확실히 스킬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이보성도 쉽게 포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좀비 따위가 세상을 휩쓸고, 시스템으로 명명된 기이한 현상이 인간들에게 큰 변화를 안겨 준 지금, 새로운 시대에 먼저 적응한 인간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이다.

이제는 구시대적인 약육강식 체계를 넘어서, 누구보다 앞서 나가는 선구자가 되어야 이 시대의 흐름에 올라탈 수 있다.

‘지금까지는 어중이떠중이에게 힘의 논리가 먹혔으니 기고만장해졌겠지. 그 마음 십분 이해한다.’

철컥.

세이프티를 해제하고 방아쇠에 검지손가락을 걸친 이보성은 상대를 사냥할 수 있다는 100% 확신이 선 순간,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투캉!

귀를 때리는 날카로운 총성과 묵직한 반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는 마음속으로 ‘잡았다!’라고 외쳤다.

-‘킬링 필드’ 스킬이 해제되었습니다.

킬링 필드 스킬이 해제되었다는 건 상대에게 공격이 적중했다는 것. 개조된 12.7mm 탄환은 단 한 발로 상대의 몸뚱이를 찢어발겼을 것이다. 이보성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머리를 노릴 수 있는 거리였지만 혹시라도 탄환이 빗나가는 대참사를 막기 위해 정확히 흉부를 노렸으니까.

‘방탄복에 방탄판을 삽입해도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 설령 천운으로 관통되지 않았다고 해도, 제아무리 튼튼한 각성자의 몸이라고 해도 그만한 충격량이면 확실하게 내장 파열이다.’

마치 스스로에게 암시를 거는 것처럼 상대는 그 어떤 조건을 갖다 대도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을 되뇌이며, 이보성은 스코프를 통해 상대가 서 있던 장소를 살폈다.

그만한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되었으니 상대의 시체는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산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졌거나,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터.

그때, 그의 시스템이 그의 뇌 내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암살 목표 대상에게 당신의 위치가 노출되었습니다.

-‘암살 목표 지정’ 스킬이 해제되었습니다.

“뭐? 아니, 그게 무슨…… 상대는 틀림없이 죽었을 텐데?”

총을 발포한 순간 반동 때문에 스코프가 크게 흔들려 찰나의 순간에 상대의 모습을 놓치기는 했지만, 상대가 저격에 당한 것은 틀림없는 팩트였다. 즉 상대는 이미 죽었어야 정상이다.

여느 때처럼 암살 목표로 지정한 대상을 성공적으로 암살하고 추가 보상을 받으면서 기분 좋게 복귀하면 그만인 결과로 이어져야 한단 말이다.

이보성은 이 일을 시작한 이래, 이보다 더 동요해 본 적이 없을 만큼 흥분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상대가 방금 저격으로 죽지 않았다면, 아니. 애초에 그걸 노린 거라면?

‘설마 일부러 내가 먼저 저격해서 자발적으로 위치를 노출하게끔 유도했다고?!’

미친 짓이다.

100% 죽을 수밖에 없는 그 미친 짓을, 대체 뭘 믿고 실행한단 말인가.

제정신 박힌 인간이라면, 나사 몇 개 빠진 인간이라고 해도 그런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스릴에 중독된 도박사들도 자신에게 최소한의 승산이 있을 때나 승부수를 던지기 마련이니까.

이보성은 저격 총을 쥐고 어느새 희끄무레한 연기가 자욱하게 깔린 산 아래를 다시 한번 조준했다.

대체 언제 전개된 건지 알 수 없는 저 연막이 그의 보조 추적, 감지 스킬의 시전을 막고 있었다.

기릭기릭.

그때, 예민한 그의 귓가를 자극하는 기이한 기계음에 이보성은 재빨리 총구와 시선을 돌렸다.

그가 시선을 돌린 나무에는 원반형 지뢰에 거미 같은 다리가 달려 있는 괴상한 소형 로봇이 매달려 있었다.

‘이거 상점창에서 본 적 있는 더럽게 비싼 능동 감지형 살포 지뢰……!’

1개에 무려 1천 DNA 샘플을 요구하는 최악의 가성비 아이템이 왜 여기에, 같은 생각을 하며 미친 듯이 후방으로 달렸다.

그의 등 뒤에서 퐁, 퐁, 퐁, 퐁 하고 흘러나온 소형 폭탄들이 잠시 후 엄청난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폭압만으로 이보성을 멀리 날려 버렸다.

나무에 부딪히고, 바위에 튕기고, 눈밭을 구른 이보성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들었다.

이곳에 더 이상 사냥의 미학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불쌍한 약자와 정신 나간 괴물만이 존재할 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