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북진기 (1)
자, 당신은 지금부터 지휘관이다.
당신 앞에 펼쳐진 거대한 전장에 동원할 수 있는 병력과 운용 가능한 각종 장비와 물자 역시 준비되어 있다.
당신은 전쟁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혹은 시작하기도 전에 여러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기습을 받고, 아군의 사기가 저하되고, 퇴각로가 막히고, 난데없는 포격이 떨어지고, 하늘도 우중충하더니 결국 비나 눈을 퍼붓기 시작한다.
전장 환경은 최악으로 치닫고, 아군이 이 난관을 타개하려면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희생은 필연적이고 어쩌면 전멸을 각오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항상 최적의 답을 도출하고 곧이곧대로 실행할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진급에 미친놈이라면 아마 ‘자신 있다’고 대답할 수도 있겠지.
사실 지휘관들의 태도는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그런 상황에서 지휘관들이 할 수 있는 건 군 내부에서 발생하는 혼란과 혼선을 최대한 줄이고 진격이냐 후퇴냐의 큰 방향성을 결정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큰 방향성을 잘못 선택하면 다 죽이는 꼴이지만, 그래도 병사들은 지휘관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그것이 잘못된 선택인지 옳은 선택인지를 따지지 않고.
내가 지휘관들의 잘못된 선택에 크게 데 봤던 입장으로 가장 좆같았던 사례를 하나 꼽자면, ‘저격수 처리’였다.
우리는 전문적인 특수 부대도 아니고, 하다못해 산악 수색 및 차단 작전에 능한 수색대도 아니고,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전방 부대에서 근무했을 뿐인 일반 소총병이었다.
그런 알보병들에게 산 어딘가에 숨어서 아군을 괴롭히고 있는 저격수를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게 정상인가?
그런데 대대장은 너희를 믿는다느니, 피죽도 못 먹고 산에 틀어박힌 저격수 따윈 병력 좀 투입하면 금세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느니,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맨정신으로 그런 헛소리를 늘어놓았던 대대장에게는 정말이지 무한한 존경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물이 없는 곳에서 이 정도의 수둔을 펼치는 중급 닌자를 봤어도 그 양반보다 더 대단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아무튼 우리는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 북한의 겨울 산으로 이동했다.
기본적으로 저격수를 처리하려면 최소한의 위치를 추려 낸 뒤 박격포든 견인포든 좀 쏴 갈기고 병력을 투입하거나 헬기 정찰로 확인하는 게 상식이지만, K-ARMY에게 그런 상식은 통용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전쟁 발발 초기라 주요 기갑 전력 및 고화력 부대는 북한의 주요 도시나 군사 거점을 타격하고 있었으니까. 7기동 군단이 허리케인처럼 휩쓸고 지나간 곳에는 분노와 악바리만 남은 빨갱이 게릴라들이 넘쳐 났고, 뒤처리는 모두 우리 몫이었다.
산에 숨어 있는 저격수 몇 명 처리하려고 투입시켜 줄 정찰 헬기나 자주포는 당연히 없고, 특수 부대나 수색대도 모두 필요로 하는 곳에 우선적으로 차출되었다. 요컨대 높으신 분들께서는 ‘지금 그럴 여력 없으니까 자잘한 건 너희가 직접 처리해라’ 같은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우리가 뭘 할 수 있었겠나.
부대 전체가 저격수 몇 명에게 겁먹어서 거점 장악 및 현지 치안 안정화 작업을 포기하고 후퇴할 수도 없고, 당장 저격수를 처리해 줄 확실한 지원을 받을 수도 없으니 결국 직접 처리할 수밖에 없지.
그때 투입된 알보병 수백 명 중 수십 명이 죽고, 부비 트랩이나 자폭 공격에 수십 명이 다쳤다. 고작 저격수 몇 명에게 사상자가 100명이 넘게 나온 것이다.
전쟁 초기만 해도 너무 순진했던 꼬꼬마 군인들은 말 같지도 않은 명령을 내린 지휘관을 프래깅할 생각도 못 하고, 그저 죽거나 다친 전우들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거나 조용히 분을 삭여야 했다.
어쨌든 그런 사건들을 수차례 겪으면서 우리는 암묵적인 룰을 정했다.
1. 스나이퍼, 테러리스트는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생포해서 잔혹하게 고문하고 처형하기.
2. 그런 놈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북한 주민들은 민간인으로 간주하지 않고 즉각 사살하기.
그 외에도 숱한 암묵적인 룰들이 생겼지만, 북한군에 한해서 1번과 2번 룰이 가장 중요했고 가장 많이 적용되었다.
전쟁 범죄고 지랄이고, 우리는 죽여야 할 놈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집착 같은 것이 생겼다.
전쟁 범죄 보고서에 우리의 적나라한 행위들이 몇 번이고 기록되어서 높으신 분들의 책상 위로 올라가겠지만, 그보다는 죽여야 할 놈을 확실히 죽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요컨대 지금 우리 선봉대와 전초 기지를 노리고 있는 정체불명의 저격수도 마땅히 죽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유 불문하고.
“현재 이 산맥 어딘가에 저격수가 잠복해 있습니다.”
대구에서 추가 지원을 온 병력과 각성자 유격대를 모두 영역 내부로 불러들인 나는 생태 공원을 감싸고 있는 유리 돔 바깥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오른 태백산맥은 어제의 낮과 달리 온 사방이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간밤에 눈이 워낙 많이 내리기도 했지만, 겨울 산은 일단 눈이 한 번 내리면 잘 녹지 않는 데다 누가 따로 치우는 것도 아니라서 눈이 쌓여 있는 기간이 유독 길었다.
그리고 2020년에 접어들면서 이상기후 현상이 더욱 심해졌으니, 여름과 겨울이 더욱 지독하고 오래 갈 것은 안 봐도 뻔했다.
나는 오늘 새벽, 전망대 인근에서 회수한 찌그러진 탄두를 모두의 앞에서 보여 주었다.
대부분은 내가 보여 준 것이 뭔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몇몇 이들은 찌그러진 탄두의 크기를 보고 놀라기도 했다.
“이 탄두를 보면 아시겠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적인 군용 제식 소총의 5.56x45mm와는 궤를 달리합니다. 7.62x51mm도 비교가 안 될 만큼 크죠.”
이렇게 무식한 크기의 탄두를 사용하는 변태적인 대구경 라이플을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도 좀처럼 보기 드물다. 나도 미군이 가끔 바렛(M82A1M)을 운용하던 걸 본 적 있는 게 전부일 만큼.
대구경 라이플로 사람을 죽이자니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고, 장갑차나 전차를 노리자니 단일 화력과 관통력이 대전차 무기보다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그런 걸 굳이 대인 저격용으로 사용하는 놈들은 높은 확률로 장거리 저격이 취향인 변태이거나, 아니면 살살 맞아도 죽음에 이르는 확실한 성능을 원하는 변태일 것이다.
“그럼 상대가 미군이나 국군에서 탈취한 대구경 라이플로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겁니까?”
누군가 손을 들어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물론 그에 대한 내 대답은 ‘No’였다.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집단은 한창 전쟁이 터지고 있던 북한 땅에서, 혹은 북한과 연결된 외국에서 불법 무기를 들여와 불법적으로 판매하던 범죄 조직과 테러리스트, 기타 등등입니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서구권, 국산 무기는 암시장에 거의 풀리지 않았을 겁니다. 그쪽은 감시가 워낙 심한 데다 설령 총을 구했다고 해도 탄약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을 테니까요.”
내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범죄자 놈들이 사용했던 총기는 대부분 중국, 러시아, 북한제로 추정되는 동구권 총기였다.
‘알라후 아크바르’만 외치지 않았다 싶을 뿐이지, 범죄자 놈들이 AK를 들고 마구 난사하던 모습은 지금 다시 떠올려 봐도 영락없이 테러리스트 그 자체였다.
“동구권에 이만한 크기의 대구경 탄환을 사용하는 대물 저격총이라면 아마 러시아제 VSSK나 ASVK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군이 사용하는 바렛과 비슷하게 12.7mm의 무식한 대구경 탄환을 사용하며, 유효 사거리 대비 명중률이 상당히 괜찮은 러시아의 대구경 저격 소총. 내가 왜 갑자기 이걸 언급했느냐면, 이놈들이 전쟁 중에 외부로 흘러나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쟁중에 북한군 저격수들이 주로 사용하던 건 낡은 드라구노프 소총이나 자체 생산한 78식 저격 소총이었지만, 정말 드물게도 대구경 저격 소총을 사용하는 사례가 있긴 했다.
전쟁 중에 러시아와 중국군이 직접적으로 한반도에 군을 투입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북한군의 체계라는 것이 남아 있을 때, 혹은 그 이전부터 꾸준히 뒷구멍으로 각종 물자와 장비를 대 주고 있었다.
그렇게 북한으로 흘러 들어간 것들, 혹은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고 현지의 러시아군이나 중국군 장교들이 암상인들에게 비밀리에 팔아먹고 장부에는 ‘제대로 전달했다.’로 체크한 품목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때마침 동구권 무기와 탄약을 긁어모으며 국내에서 혼란을 유발하고 있던 한국의 불법 무기 판매 조직 대한제국파에게 그것들이 흘러 들어갔을 확률? 90% 이상이다.
“지금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건 온갖 불법 무기로 무장한 각성 범죄자들입니다. 그냥 범죄자나 테러리스트도 불법 무기로 무장하면 무서운데, 무고한 민간인을 제물 삼아 성장한 각성자들이 도처에 깔려 있는 겁니다. 어차피 본격적으로 작전이 시작되면 적들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지만, 아직 그 단계는 아니죠. 따라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맨몸으로 나서서 정체불명의 저격수를 직접 찾아 죽이든가, 아니면 저격수가 매복하고 있는 지점을 강행 돌파 하라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단순히 할 수 있는 일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하니까요.”
“그럼…… 말씀하시고자 하는 게 뭡니까?”
“이 근방에 저격수가 움직이고 있다는 건, 저격수를 백업하기 위한 적의 선봉대, 혹은 선행 부대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겁니다. 저격수는 제가 처리할 수 있지만, 그 뒤에 있을 적들까지는 저 혼자 감당하기 힘들겠죠. 여러분들이 저를 백업해 줘야 합니다. 사실상 이 전쟁의 전초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로 조금씩 간을 보는 신경전이나 첩보전도, 슬슬 무력 도발을 시작하는 국지전도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총칼을 들고 서로를 죽이기 시작하는 각축장이 도래하는 것이다.
“적들이 게릴라전을 위해 이 산맥에 풀어 두었다던 매복조처럼, 저격수도 그냥 백업 없이 단독으로 움직이고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그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저격수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이죠. 하지만 실제로 저격수는 절대 백업 없이 혼자 움직이지 않습니다.”
저격수가 일반적인 병과보다 작전 범위가 훨씬 더 넓을 뿐이지, 특수 작전으로 적지에 단독 침투한 공작원이 아니고서야 저격수가 백업 없이 혼자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다.
군에서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양성하는 전문적인 병과들은 새로 키우는 것보다 가능한 오래 살려 두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다.
예를 들어 전투기 조종사나 특수 부대원, 첩보원, 저격수 같은 바로 대체하기 힘들고 양성하기도 힘든 병과들.
군대는 아니지만, 군대처럼 병력과 물자를 운용하고 있는 적들도 마찬가지다.
매복조랍시고 이 산맥 곳곳에 풀어 둔 놈들의 실력은 대부분 형편없었다. 기껏해야 삼류, 잘 쳐줘도 이류 수준. 무협지였다면 아마 산적으로 등장하자마자 주인공에게 썰렸을 놈들이다.
그런 놈들은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고 쉽게 양성할 수 있으니 ‘게릴라전이 먹히면 좋고 안 먹혀도 상관없다.’라는 느낌으로 막 던질 수 있다.
반면 아군이 무참하게 쓸려 나갔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나라는 중요 인물을 정확히 노려 저격할 수 있는 저격수? 게다가 각성자?
오우 쉣! 나라면 무조건 그 저격수를 위해 전용 탈출 루트를 마련해 두고 여차하면 그 저격수를 대신해서 희생할 백업 부대까지 준비해 둘 거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놈이다.
‘게다가 저격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추가 저격을 빠르게 포기한 놈이었다. 눈치도 빠르고 능력도 뛰어난 놈이야.’
그놈을 잡겠답시고 괜히 병력을 산에 푼다? 우리 병력 다 잡아먹고 무럭무럭 커 주십시오~ 하는 꼴이다.
차라리 위험을 감수하고 내가 직접 나서서 놈을 처리한 뒤, 놈을 지키기 위해 몰려드는 백업 부대를 아군들이 상대하게 해야 한다.
내가 그러한 의도가 담긴 작전 개요를 설명해 주자 대구에서 온 군인들과 각성자 유격대원들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런 소리 하면 안 되는 건 알지만, 혹시라도…… 이승권 각성자 대표님이 당하면 저흰 어떡합니까?”
“도망치세요.”
“예?”
“제가 죽으면 가망 없는 겁니다. 살고 싶으면 도망치세요.”
“…….”
남 입장에선 오만하기 짝이 없는 발언으로 들리겠으나, 애초에 이 전쟁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나다. 내가 죽으면 말짱 꽝이니 도망쳐서 대구든 어디든 틀어박혀 암담한 미래를 기다리는 게 최선이다.
그럼 내가 죽지 않도록 처음부터 몸을 사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도 이 전쟁의 결과를 좋은 쪽으로 장담하기 힘들다.
최묵호의 말마따나 나는 이미 총대를 멨다. 총대를 멘 놈은 살아서 모든 것을 쟁취하든가, 죽어서 이름만 남길 뿐이다.
“제가 죽으면 최묵호가 뒤를 이어 주겠지만,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장담하긴 힘듭니다. 그러니 최대한 자신이 살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을 하세요.”
“…….”
“뭐, 전쟁이라는 게 원래 이런 겁니다. 다들 이미 알고 있잖아요? 이건 애새끼들 소꿉장난이 아니에요.”
이게 정말 소꿉장난이라면 난 5년간 북한이라는 놀이터에서 질리도록 소꿉장난만 한 정신병자라는 얘기 아닌가.
“이미 시작된 전쟁이라면 죽고, 패배하는 불안한 미래보다는 살아서 이기는 미래만 생각하세요.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정신론을 논할 생각은 없지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전쟁에 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뀌기도 하더라고요. 경험담입니다.”
가벼운 농담을 던져 준 나는 각성자 유격대의 임시 지휘 권한을 한동석에게, 추가 지원 부대의 임시 지휘 권한은 최묵호에게 넘겨주었다.
내가 신호하면 즉시 아군이 움직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 후에, 실력 있는 저격수가 도사리고 있는 필드로 발을 내디뎠다.
미군이 고작 저격수 한 명을 잡기 위해 폭격기를 요청했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상점창에서 엄청난 양의 DNA 샘플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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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
-……구입.
-……구입.
잊지 마라.
티라노사우르스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