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200)화 (200/227)

200화 수복기 (50)

전쟁은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병력, 무기, 차량, 식량, 의약품, 피복 기타 등등,

그렇게 기본적인 구색을 갖춘 후에도 무작정 명령을 내린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고, 통신 시스템과 지휘 체계 구축, 명확한 작전 계획 구상 및 입안을 통해 텅 빈 뼈대에 살을 붙여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준비한 끝에 각 부대에 걸맞은 작전을 하달하면 비로소 전쟁이 시작된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적을 섬멸해라’, ‘거점을 점령해라’, 시설을 파괴해라’ 같은 명령들이 떨어지면 군대가 움직이고, 적과 싸우거나 영역을 확보한다.

여기서 또 얼마나 많은 세부적인 명령들과 복잡한 보고 체계가 존재하는지, 또 전장에서 얼마나 많은 변수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오는지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모른다.

그냥 군대가 열심히 싸워서 이기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니까.

“전초 기지 구축 상황은 대부분 순조롭지만, 최전방에 해당하는 일부 지역에선 적들의 기습이 꾸준히 보고되고 있군. 추가 병력은 이미 배치했나?”

“예, 이승권 각성자 대표의 휘하에서 각 거점을 운영하고 있는 각성자들이 화물 및 병력 수송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고 있습니다. ATX와 각종 차량을 총동원해 이쪽의 병력을 수송하고 있으니 추가 병력 배치는 길어도 반나절이면 끝납니다.”

“좋아, 이승권의 보고에 따르면 적들이 우리의 예측 진격로에 해당하는 태백산맥 일부 지역에 게릴라 병력을 풀어 두고 매복한 것을 포착했다고 하는데, 대부분은 자신을 포함한 각성자 유격대가 처리할 수 있지만, 지형 특성상 극소수의 게릴라 병력이 남아 측후방을 교란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하는군. 이에 대한 대비는 되어 있나?”

“산악 지형에 능한 수색대를 풀고, 각 전초 기지와 보급 라인에 감지나 경계 관련 스킬을 보유한 각성자를 배치하는 것으로 게릴라전에 대한 충분한 대비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신해룡 육참총장은 지하 벙커 회의실에서 각 참모들에게 보고를 받는 한편,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변수들에 대한 대책을 끊임없이 되물었다.

현재 생존 유무가 확실치 않은 대통령을 제외하면 군 내에서 의전 서열이 가장 높은 것은 그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휘하의 참모진을 총괄하는 총사령관이 된 그가 이 모든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이미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먼저 수를 쓰기 시작한 적들도 문제지만, 모든 인간에게 호전성을 보이는 그 괴물, 좀비들도 문제군. 듣자 하니 총성과 폭음의 규모가 너무 크면 좀비들을 처리하는 속도보다 좀비들이 몰려드는 속도가 더 빠르다지?”

“시스템에 의해 주기적으로 대구를 침공하는 좀비 웨이브와 달리 자유롭게 활보하는 야생 좀비들은 시각과 청각을 통해 주로 먹잇감을 찾습니다. 총성과 폭음은 특히나 놈들의 예민한 청각을 자극하는지라, 아예 어그로가 끌려 몰려드는 좀비들만 전담하여 소탕할 수 있도록 소음기를 장착한 총기 사용 및 각성자들의 도움을 받아 은밀하게 처리하게끔 권고해 두었습니다.”

“지금까지 대구에서 처리한 좀비들만 못해도 백만은 가볍게 넘을 것 같은데, 야생 좀비들이 아직도 그렇게 많단 말인가.”

“한반도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같은 사태에 휘말렸습니다. 한반도의 인구만 해도 한국인과 북한인을 포함해서 대략 7~8천만에 달하는데, 이 중 절반만 감염되었다고 해도 아득한 숫자입니다. 그런데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까지 고려한다면…….”

“어딜 가나 좀비가 있다는 뜻이군.”

신해룡은 스트레스성 두통이 밀려오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한 참모의 말마따나 지금 한반도 땅에 퍼져 있을 좀비들의 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천만 단위일 터. 그걸 다 잡아 죽인다는 것은 세계대전을 한 번 더 일으킨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청년이 왜 분노했는지 알겠군.’

이 땅에 있는 좀비만 해도 최소 수천만이 도사리고 있는데, 인간이길 포기한 짐승들이 서로 협력해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는커녕 서로 죽이네 살리네 하고 있으니 분노한 것이다.

그에 대한 일부 책임이 있는 신해룡은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더 큰 비극을 막기 위해 이 예방 전쟁에 동의했다.

솔직히 현실적인 문제들을 들먹여 전쟁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이승권은 그마저도 모두 꿰뚫고 대부분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다.

아니, 기어코 예방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현실적인 문제들을 사전에 방지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마치 이 순간만 기다려 왔다는 것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양의 물자와 각종 운송 수단, 그리고 각성자를 동반한 전투 병력과 작전 계획을 제공했으니까.

전쟁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쟁 같은 건 두 번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할 텐데, 그 청년은 정반대였다.

‘위선적인 평화주의자나 제 이권만 챙기려는 정치인들이 이와 같은 문제에 직면했다면 어떻게든 전쟁을 막으려 했겠지만, 그 청년은 처음부터 전쟁으로 끝낼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평화적인 수단을 과감하게 버린 것이겠지.’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전 세계가 벌벌 떨던 당시에도 마지막까지 핵미사일 버튼을 누르는 미친 지도자는 없었다. 데드라인을 넘기 전에만 문제를 해결하면 어떻게든 싸우지 않고 끝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청년, 이승권은 창원과 울산, 포항을 통해 이 문제와 직면한 뒤 즉각적인 결단을 내렸다. 상대가 이미 데드라인을 넘었으니 망설임 없이 핵미사일 버튼을 눌러야 할 때라고.

제3자가 보면 그냥 정신 나간 전쟁광에 불과하겠으나, 신해룡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사실 누구도 누를 수 없고, 누구도 누르기 싫어하는 버튼을 그 청년이 대신 누른 것이라고.

소위 말하는 ‘총대를 멨다’에 어울리는 행동이었다.

이승권이 그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면 신해룡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 대신 대구를 안정화하고 조금씩 발전시킬 생각이나 하며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다가, 저 위쪽에 자리 잡은 짐승들이 불시에 치고 내려오는 모습을 봐야 했을 것이다.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남침을 한 6.25 전쟁의 서막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뻔한 미래가 그려진다.

‘그렇기에 더더욱 질 수 없다.’

이미 버튼을 눌러 버렸다면, 핵미사일이 적국에 투하되었다면, 남은 것은 어느 한쪽이 완전히 죽어 버릴 때까지 치고받는 것뿐이다.

“도시 방위도 게을리해선 안 되네. 우리가 전쟁을 일으킨 이상 적들이 역으로 후방을 노릴 가능성도 있으니까. 각성자 자경단 측에게 협조는 받아 냈나?”

“예, 어차피 각성자들은 도시 방위를 통해 DNA 샘플과 경험치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도시 방위 업무가 조금 더 늘어난 정도로 큰 불만을 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치안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소모되는 막대한 물자는 감당할 수 있겠던가?”

“계산해 보니 대구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물자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만, 이승권 각성자 대표가 제공하는 막대한 양의 물자를 더하면 오히려 넉넉한 수준입니다.”

“이만한 규모의 군대와 각성자들을 총동원했음에도 소모되는 물자를 감당할 수 있단 말이지…… 직접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군.”

만약 신해룡이 각성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었다면 자신에게 올라온 보고서들은 모두 날조되어 있으며, 이런 일에 전군을 동원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각성자에 대해 알고, 시스템이 그들에게 부여해 준 능력의 실태를 파악하고 나니 오히려 근거 없는 믿음까지 생길 지경이라 조금 곤란했다.

상식적으로 어떻게 인간 한 명이 최소 수만 명 단위의 군인과 각성자들을 먹이고 입히고 무장시킬 수 있단 말인가?

‘실로 두려운 능력이다.’

현재 대구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각성자인 그의 부관조차 이승권의 레벨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특히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부관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레벨이 높아지려면 못해도 수십만에 달하는 좀비들을 ‘혼자’ 처리했다는 뜻이다. 물론 레벨이 높은 각성자의 경험치를 빼앗는 방법도 있고, 실제로 그가 각성 범죄자를 여럿 처리했다고 스스로 밝혔으니 그렇게까지 많은 좀비를 학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승권에게는 같은 각성자들조차 범접할 수 없는 아득한 경지의 벽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했다.

전쟁을 홀로 책임질 수 있는 힘을 가진 어마 무시한 경지의 각성자. 아마 이 전쟁이 끝나면 그의 영향력은 고작 개인의 힘으로 대구와 맞먹거나 어쩌면 그 이상이 될 것이다.

‘이젠 나도 정치인이 다 됐군. 아직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줄을 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부터 고민하고 있다니.’

스스로에게 조소를 흘린 신해룡은 다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과 참모진들과 회의를 이어 나갔다.

이 전쟁을 체스로 비교하면 이미 양측이 폰을 조금씩 움직이며 간을 보기 시작한 상황이다.

머지않아 나이트와 비숍, 룩이 정신 사납게 움직이며 보드 위에서 서로를 부수고 잡아먹을 터.

신해룡은 적어도 이 전쟁을 통해 인간끼리의 전쟁은 여기서 확실하게 종식시켜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수많은 모니터들을 통해 전장 지도와 인원 배치도를 들여다보았다.

* * *

12월 23일 01시 33분.

시간을 확인한 나는 살덩어리가 타들어 가는 불쾌하면서도 익숙한 냄새를 맡으며 생태 공원에 진입했다.

거대한 유리 돔에 의해 한겨울의 추위와 눈보라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는 생태 공원 내부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산책과 피크닉을 즐기며, 아름다운 한때를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기에 걸맞은 장소였다.

그런 장소에서 살덩어리가 타들어 가는 냄새는 굉장히 비현실적이지만, 어차피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작정하고 손을 잡은 사이비와 테러리스트 놈들이다.

심지어 인간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멸해야 할 좀비까지 이 전쟁에 끌어들였으니, 놈들의 악랄함은 전장에 생화학 무기를 흩뿌리고 인체 실험을 하던 나치 못지않았다.

그래, 빌어먹을 나치를 가스실에 처넣었다고 생각하면 이 냄새가 마냥 지독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기관총에 갈려 걸레짝이 된 놈, 부비 트랩을 밟고 그대로 폭사하거나 주사기 함정에 걸려 과다출혈로 사망한 놈, 그 잘난 사냥개 좀비들과 함께 통째로 화염 세례를 맞아 바싹 웰던으로 익어 버린 놈, 어떻게든 내 영역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스킬과 아이템을 난사하다가 자동 포탑에 좋지 않은 곳을 맞아 아랫도리의 감각이 사라진 놈까지.

이승권과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살벌한 장소도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유원지가 될 수 있는데, 하필 이승권과 함께하지 않아서 지옥의 구렁텅이에 스스로 발을 들인 놈들이 맞이한 최후였다.

물론 나도 아주 피해가 없었던 건 아니다.

곧바로 사태를 파악한 적들이 내가 영역으로 확보한 산 곳곳에서 저항한 탓에 거점 방위 무기가 큰 손상을 입거나, 시설 일부가 파괴되었던 것이다.

영역 전체의 내구도가 50% 이상이라면 자동 수리가 가능했기에 망정이지, 그런 기능이 없었다면 기껏 넓은 영역과 좋은 시설을 확보하고도 속이 쓰렸을 것이다.

나는 별도의 물자와 인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쓸 만한 전초 기지를 확보했다는 사실에 곧장 무전을 쳤다.

마침 대구에서 최전방의 상황을 전해 듣고 추가 병력을 배치하기 위해 병력을 수송하고 있으니, 추가 병력을 이곳에 배치하고 본격적으로 경북과 강원도의 경계에 병력을 전개하며 적을 압박하기로 했다.

놈들이 경북과 강원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태백산맥에 병력 일부를 풀어 게릴라전을 걸어오는 것도 확인했으니, 우리도 역으로 놈들에게 게릴라전을 걸어 조금씩 간을 볼 생각이다.

아직 본대 병력을 완전히 전개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될 것 같으니, 그 전에 최대한 적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히면서 추가적인 전장 정보를 확보하는 게 나 같은 선봉대의 역할이다.

‘미 해군도 지금쯤이면 동해에 진입했겠지.’

그쪽은 그쪽 나름대로 포항에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또 국군 측을 속이기 위해 적당한 연막까지 뿌리느라 출격이 살짝 지연되었다고 들었다. 그래도 한반도가 그렇게 큰 땅은 아니라서 연안을 따라 북상하면 동해 진입은 금방이었다.

애초에 창원, 김해, 부산, 울산, 포항에 이르기까지 경남권 주요 해안 도시는 모두 내 관할이니 미 해군의 움직임이 느릴 이유도 없었다.

높은 산꼭대기의 전망대로 올라갔다.

고작 전망대일 뿐인데도 자동 포탑과 대공포, 심지어 광역 재밍 장치까지 설치되어 있어 느긋하게 주변 풍경을 관람할 수 있었다.

“TOD(Thermal Observation Device)도 있네?”

2차 남북 전쟁이 일어나기 전, 그러니까 파릇파릇하게 젊은 20대 초 이승권이 최전방에서 근무할 당시에 몇 번인가 본 적 있는 그 TOD와는 많이 달랐다.

쓸데없이 눈만 아픈 싸구려 군용 TOD에 비하면 시스템이 직접 제공한 이 TOD가 훨씬 더 괜찮아 보였다.

솔직히 전망대라고 해서 별것 없을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기상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가정하에 야간 경계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대놓고 전망대 유리창 앞에 서서 이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려던 그때, 정확히 내가 서 있던 지점의 유리창에 뭔가가 퍽! 하고 박혔다.

“…….”

내 영역 전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내구도 시스템 덕분에 전망대의 두꺼운 유리창은 멀쩡했지만, 조금 전에 유리창을 두들긴 것은 틀림없이 탄환이었다. 그것도 구경이 제법 되는 대구경 탄환.

워낙 갑작스럽게 저격이 날아들었는지라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이 산맥에 퍼져 있는 매복조는 게릴라전을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저격수처럼 ‘번거로운’ 병과는 준비하지 않았을 거라고 오판하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저격수까지 준비했다는 건, 그리고 이 산이 내 휘하에 들어왔다는 걸 알면서도 저격을 감행했다는 건…….’

놈들도 선봉대에 해당하는 매복조를 뒤로 물리고 선행 부대를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거리가 가깝지는 않다. 오히려 꽤 먼 곳에 있다. 탄이 먼저 박히고 나서 희미한 총성이 뒤늦게 들려온 데다 결정적으로 총염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내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새로운 적의 등장에 나는 조용히 TOD를 내려놓았다.

모든 저격수는 반드시 붙잡아서 사지를 찢고 참수하는 것이 우리 북진 용사들의 유구한 전통이었다.

“죽여 달라고 사정을 하는데 당연히 죽여 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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