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199)화 (199/227)

199화 수복기 (49)

“예상대로군.”

한동석과 박마춘 아재의 길 안내를 받아 놈들의 매복지를 하나씩 처리하는 과정에서 놈들이 어떤 장치를 준비해 두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크르르르……”

“하아아악! 아아아아아!”

“까득! 까드드득! 드드드득!”

주요 매복지에 성인 남성이 들어가면 딱 알맞을 깊이의 비트를 파두고 그 안에 장독대처럼 좀비들을 몇 마리씩 파묻어 두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좀비들의 얼굴을 완전히 덮는 새하얀 두건을 씌워 뒀다는 점이었는데, 당연하게도 두건에는 새천년평화교의 상징인 월계수와 비둘기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아직 정확한 메커니즘은 알 수 없지만, 정황상 이놈들을 사용하면 낮에 대량의 좀비들이 우리를 습격했던 것처럼 주변의 좀비들을 불러들여 사냥개처럼 부려 먹는 구조겠지.’

어디까지나 정황에 따른 추측일 뿐이지만 아마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쪽 전초기지와 가장 가까웠던 매복지에서 이 흔적을 이미 발견한 바 있으니까.

물론 확실히 하기 위해 두건을 직접 벗겨서 같은 일이 일어나는지 실험해 볼 수도 있지만, 내 실험 정신이 그만큼 열정적인 편은 아니었다.

대신 다른 놈에게 물어보면 된다.

푸욱!

“끄으으으으윽!!”

아직 숨이 붙어 있는 헬조선 단원의 꼬리뼈 근처에 칼날을 박아 넣고 적당히 비틀어 주자 놈이 신음을 토해 냈다.

“너희가 우리의 예상 진격로 곳곳에 매복지를 준비해 뒀다는 건 이미 파악이 끝났다. 모르고 움직였다면 크게 당했겠지만, 훤히 꿰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이미 첫수 싸움에서 지고 들어가는 네 동료들은 가망이 없어. 아마 여기서 죽게 될 너보다 더 비참하고 꼴사납게 몰살당하겠지. 네 동료들이 너처럼 편하게 죽길 원하나? 그럼 알고 있는 걸 말해.”

“큭……!”

죽음을 각오한 놈들에게는 어지간한 수준의 고문이나 협박 같은 건 먹히지 않는다. ‘어차피 난 살 수 없으니 마지막까지 엿 먹이겠다.’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내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미친놈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죽음을 각오한 놈들이라고 해도 로봇이 아닌 이상 인간적인 감정(미련)은 남아 있는 법, 이때 가족이나 동료를 들먹이면 잔혹한 고문보다는 조금 더 효과를 볼 수 있다.

“네 동료들이 어떻게 죽게 될지 알려 줄까? 산맥 곳곳에 놈들이 매복하고 있다는 정보를 습득했으니 처음에는 가볍게 폭격으로 시작할 거다. 아쉽게도 북한군들이 민간인을 고기 방패로 내세워서 자주 사용하지 못했던 백린탄 재고가 군에 넘쳐나거든. 아예 민둥산을 만들어 버릴 작정으로 펑펑 터뜨리고, 죄다 박살을 내 버릴 거다.”

“!”

“너희는 기도비닉을 유지하고 발각될 위험을 줄이기 위해 통신 장비 사용을 스스로 제한하고 불도 피우지 않았잖아? 이런 산중에 적당히 엄폐하고 있는 너희들에게 폭격을 막아 줄 벙커가 어디 있겠으며, 또 사전에 폭격이 떨어질 거라는 외부 정보를 어떻게 습득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 애초에 너희 목적은 매복 후 기습한 뒤 곧장 후퇴하는 게릴라전으로 우리를 소모시키는 거니까. 반대로 말하면 ‘기습’에 성공하지 못한 네 동료들은 절대로 후퇴할 수 없어.”

고통으로 일그러진 놈의 표정은 꽤 봐줄 만했다. 독기로 가득 차서 핏발이 서 있던 놈의 눈동자가 서서히 공포와 절망으로 검게 죽어 갔으니까.

이미 첫 매복지에서 비트를 정리하고 기습에 써먹은 좀비까지 처리한 뒤 후퇴한 놈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 흔적을 쫓아 이곳까지 도달한 거다.

즉 놈들은 통신을 통해 외부 정보를 습득하지 못하는 대신 ‘기습에 성공한다.’는 전제하에 자발적으로 후퇴할 권리를 가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처리한 놈들 중에 현장 지휘관이 왜 없었는지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우린 너희 같은 짐승 새끼들과는 다르게 이성적인 문명인이거든. 필요 이상으로 상대에게 고통을 줄 필요가 없다는 뜻이야. 그러니 네 동료들이 인세의 지옥을 맛보길 원한다면 그대로 계속 침묵해. 그게 아니라면 알고 있는 걸 말하고.”

“저, 전부 말하면……자비를 베풀어 주는 건가?”

“그럼. 사람보다 좀비가 더 많은 판국에 구태여 아까운 포탄 재고를 낭비할 이유도 없고, 여기서 죽어 나간 네 동료들처럼 생화학 무기에 흠뻑 절인 인간 피클을 만들 이유도 없지. 어쩌면 너처럼 협조적인 놈들의 투항을 받아 줄 수도 있어. 그럼 살아남은 네 동료들은 내일 뜨는 해를 볼 수 있고, 운 나쁘게 죽게 될 네 동료들도 비교적 편하고 깔끔한 최후를 맞이하겠지.”

“…….”

놈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곧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

각 매복지에 배치된 대원들은 후퇴 지점으로 설정된 후방 매복지의 위치만 알고 있기에 다른 매복지에 대한 정보는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다고 한 반면, 매복지에 배치되는 인원의 규모나 구성, 무장 수준, 또 이상한 두건을 씌워서 비트에 파묻어 둔 좀비들의 용도 같은 중요한 정보들은 낱낱이 알려 주었다.

놈의 말에 의하면 이 정신 나간 한겨울 태백산맥 게릴라전에 동원된 인원은 대략 200명 정도.

군부대 단위로 치면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한 명 한 명이 일반인보다 강한 각성자인 데다 수많은 매복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는 점이 매우 거슬렸다.

이 산맥 전체에 미친 듯이 포격을 때려부어 죄다 몰살시켜 버리겠다는 블러핑을 내세웠지만,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게 매우 비현실적이라는 수단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놈은 그냥 머리에 피가 돌아가지 않아서 내 블러핑에 속아 넘어간 거고.

‘광범위 포격보다는 핀포인트 포격으로 조져야 하는데, 모든 매복지의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게 문제군.’

사실 작정하고 각성자 유격대와 군인들을 동원하면 대부분의 매복지를 소탕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엄청난 인력과 시간, 물자가 이 전쟁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만들 것이다.

내가 좀 더 힘내면 소모전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지만, 유일하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만큼은 필히 소모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게다가 문제는 수많은 매복지만이 아니다.

‘헬조선 놈들이 새천년평화교와 협력해서 확보한 이 변종 좀비.’

시각으로 인간을 포착하면 엄청난 소음을 내뿜어서 꽤 먼 곳에 있는 좀비들의 청각까지 자극해 인위적인 웨이브를 일으키는 용도였다.

그래서 사용하기 전에는 두건으로 얼굴을 덮어서 시각을 차단해 두고, 새천년평화교가 인간 노예를 부릴 때 사용하는 ‘평화 인장’을 좀비 몸에 새겨서 잠잠하게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좀비들의 몸뚱이에 새겨 둔 ‘평화 인장’은 어떤 조건을 만족하면 효과가 반전되는 성질이 있어 평소에는 잠잠하지만, 어떤 조건을 만족하면 일반 좀비보다 훨씬 더 흉포해지고 전투력이 크게 향상된다는 모양이다.

즉 전초 기지를 습격할 때 이 소음을 유발하는 변종 좀비를 이용해 꽤 먼 곳에 있는 좀비들까지 긁어모은 뒤, 좀비들의 몸에 미리 새겨 두었던 평화 인장의 반전 효과를 활용했다는 얘기가 된다.

새천년평화교의 근거지 인근 지역에는 신도들이 돌아다니며 ‘평화의 상징’이라고 하는 좀비들에게 평화 인장을 미리 새겨 두었고, 헬조선은 그 평화 인장이 새겨진 좀비들을 불러 모아서 사냥개처럼 써먹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좆같은 놈들이 서로 합심하면 더 좆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걸 놈들이 직접 증명한 셈이다.

대대 규모도 아니고, 끽해야 중대 규모의 게릴라 병력을 준비해서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정신 나간 계획을 준비한 놈들에게는 감탄만 나올 뿐이다.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하면 이렇게까지 악랄해질 수 있음을 6년 만에 다시 느끼게 될 줄이야.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 정도면 됐어.”

스컥!

무어라 더 말하려는 놈의 목덜미를 대검으로 그어 버리고, 비트에 파묻혀 있는 좀비들의 모가지도 추가로 수확해 주었다.

매복지 정리를 대충 끝낸 나는 각성자들이 보유하고 있던 경험치와 DNA 샘플, 각종 아이템을 모두 빨아들이며 날 기다리고 있는 동료들과 합류했다.

한동석은 시체에 박혀 있던 자신의 쇠구슬을 수거하고 있었고, 박마춘 아재는 시체들 주변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스킬로 시독(屍毒)을 뽑아내는 중이었다.

“그래서 뭐 좀 알아내셨습니까?”

내가 다가오자 쇠구슬 수거를 끝낸 한동석이 곧장 물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조금 전 습득했던 정보를 공유해 주었다. 역시나 두 사람도 놈들의 미친 짓에 혀를 내두르는 한편,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매복지가 훨씬 더 많고 넓게 퍼져 있다는 사실에 난처함을 표했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고민했다. 남자 셋이 뭉쳤으니 뭐라도 나오겠지. 도합 IQ만 300이 훌쩍 넘는다.

플랜 A : 대규모 폭격.

“자주포나 박격포를 총동원해도 이 거대한 산맥에 얼마나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겠습니까. 미군처럼 아예 나라 하나를 지울 만큼 어마어마한 수의 폭격기를 동원하고 순항 미사일을 미친 듯이 퍼붓지 않고서야 불가능합니다.”

플랜 B : 우리가 직접 개같이 돌아다니며 매복지를 하나하나 처리.

“너무 오래 걸릴뿐더러, 이미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챈 놈들도 있을 겁니다. 다른 매복지도 이미 대비하고 있겠지요.”

플랜 C : 각성자 유격대와 군대를 투입하기.

“소모가 너무 심합니다. 소수의 게릴라 병력을 잡자고 대규모 병력을 산에 밀어 넣는 건 진짜 미친 짓입니다. 어찌어찌 처리한다고 해도 적들은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 우리는 손해만 보는 결말일 게 뻔합니다.”

플랜들이 줄줄이 폐기당하자 슬슬 내 인내심도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역시 만국평등 핵무기로 조져야 하는가? 미제앞잡이들에게 불벼락을 내리꽂겠다고 엄포를 놓던 그 빨갱이들처럼 나도 핵무기 하나쯤 장만해야 하나?

‘나도 미래에서 회귀한 방산 재벌 친구 한 명쯤 있었으면 진즉에 핵무기 만들어 달라고 했지.’

근데 난 그런 친구가 없잖아?

그러니까 친구 찬스는 못 쓴다.

‘생각해라, 이승권. 섹시한 네 머리로 기똥찬 계획을 뽑아 봐! 뇌까지 섹시해야 뇌섹남이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후우, 어렵군요. 법과 질서가 살아 있을 적에는 주인 있는 산에 함부로 자리 잡거나 몰래 숨어들어서 불법 채집하던 사람들을 말 한마디로 쫓아낼 수 있었는데.”

“쫓아낸다고요?”

“예, 일반인들은 한국에 산이 굉장히 많아서 대부분 국가 소유인 줄 아는데, 의외로 일반인 소유도 많습니다. 남의 산에 함부로 들어가서 버섯이나 나물, 과일 같은 거 채집하면 그거 다 불법입니다. 사유지 불법 침입에 사유 재산 절도로 콩밥 먹이는 것도 가능합…….”

“그거야!”

생각해 보니 영역 지정은 거점 지정과 달리 같은 영역에 해당하는 땅이나 건물을 한 번의 스킬 시전으로 온전히 취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득이 큰 쪽으로만(주로 쓸 만한 건물이 많은) 스킬을 사용했었다.

창원과 김해에 위치한 대규모 공업 단지가 같은 ‘카테고리’ 내에 존재하는 동일 영역이라 한 번에 먹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스킬을 시전했던 것처럼,

‘스킬 시전 한 번으로 한반도 전역를 아우르는 태백산맥을 통째로 꿀꺽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애초에 거대한 산맥 내에 ‘산’으로 분류된 저마다의 별개 영역이 존재하니까.’

그러니까 산맥을 내 영역으로 지정하는 건 말도 안 되지만, 매복지가 몰려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산을 콕 집어서 점거해 버린다면 이론상 손도 안 대고 코를 풀어 버릴 수 있다.

놈들이 매복을 한 이유는 우리의 예상 진격로를 파악했기 때문이고, 당연히 매복지는 우리의 예상 진격로 근처 산에 집중되어 있을 터.

즉시 지도를 펼쳐서 우리의 예상 진격로와 가장 많이 겹치는 산을 추린 결과, 크기가 제법 크면서도 산세가 험준한 후보가 떡하니 튀어나왔다. 무엇보다 여기서 그리 멀지도 않다.

나는 말없이 손을 들었다. 한동석도 손을 들었고, 박마춘 아재는 술잔을 들었다.

짜아악!

땀내 나는 사내들의 감동적인 하이파이브를 끝낸 뒤, 우리는 눈발이 잠시 약해진 틈을 타 서둘러 목표 지점으로 이동했다

“영역 지정.”

쿠구구구구구구구구……!

리뉴얼이 시작되고 산 전체가 기함하듯 엄청난 진동을 토해 냈다.

자연 생태 공원이 생기고, 산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케이블카가 생기고, 산꼭대기에 전파 탑 겸 전망대가 생기고, 과수원과 계단식 논, 가축을 기를 수 있는 축사를 비롯한 농장도 생겼다.

저건 전부 내 것이고, 저걸 건드리는 놈들은 모두 극악무도한 절도범들이다. 따라서 판결은 사형이다.

“아아, 모르는가.”

이것은 창조주 위에 건물주, 건물주 위에 토지주가 행사할 수 있는 최대 권리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내 땅’이라고 한다.

이승권이 적법하게 소유한 산을 지키기 위해 산 곳곳에 배치된 무수한 거점 방위 무기들이 기계음을 흘리며 가동하기 시작했다.

경비 로봇이 철컹철컹하고 움직일 때마다 인간 시대의 끝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것 같았다.

재벌도, 대통령도, BTS도 이 산에서만큼은 나를 넘을 수 없다.

콰아아아아앙!

나는 겨울 산에서 불기둥이 치솟는 진풍경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역시 K-부동산이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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