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수복기 (46)
홈마트에서 어른이용 장난감으로 팔고 있는, 가격대는 조금도 장난감스럽지 않은 고가의 소형 드론을 띄워서 산악 지대를 조사한다는 건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공중 정찰로 모든 지형지물과 숨겨진 퍼즐 같은 걸 파악할 수 있었다면 나는 진즉에 선베드에 드러누워서 UCAV와 소형 드론만 주야장천 띄웠을 것이다.
내가 그 편한 방법을 놔두고 굳이 개고생을 하겠다고 태백산맥에 도전하는 이유는 단순히 매저키스트 페티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겨울 산은 싱그러운 초록빛 나뭇잎이 진즉에 낙엽이 되어 떨어져서 언뜻 ‘공중 정찰이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절대 그렇지 않은데, 우선 겨울의 태백산에는 다른 수림뿐만 아니라 침엽수림도 존재하고 있다.
눈이 쌓이면 멋들어진 장식 같아서 배경으로는 상당히 괜찮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나무들의 부피가 최소 1.5배는 더 커진 것 같은 착각을 심어 주는 그 침엽수가 맞다.
그래, 한겨울의 지랄맞은 흰 똥과 내 숨결처럼 거친 산맥, 그리고 온갖 수림의 대환장 콜라보는 공중 정찰이고 나발이고 모든 것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
당장 산에 직접 들어가서 망원경을 들고 미친 듯이 훑어봐도 뭐가 뭔지 분간하기 어려운데, 무인기나 헬기로 산 위를 헤집는다고 해서 더 나은 정보를 얻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푸른 초목이 우거진 여름 산보다 온 천지가 새하얀 겨울 산이 훨씬 더 위장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냐고? 당해 봤으니까!
몸을 숨길 나무라곤 거의 없는 북한의 민둥산에도 당연히 눈이 펑펑 내리는데, 그 눈 속에 작정하고 숨어 버리면 열 감지 장비도 소용없다.
우리보다 훨씬 더 겨울에 익숙하고 지형지물을 잘 알고 있는 북한군 스나이퍼가 눈으로 뒤덮인 세상에 숨어서 저격을 가할 때면, 세상 모든 것들이 우리를 억까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차치하고, 민둥산이 가득한 북한 땅에서도 그 지랄을 겪어야 했던 내가 자연 보호가 아주 잘된 겨울의 태백산맥에 발을 들인 이상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
살아서 정보를 획득하고 무사 복귀 하든가, 죽어서 정보를 남기고 영영 잊히든가.
“어차피 군인들은 대부분 주요 도로를 통해 이동하겠지만, 사주 경계와 정찰을 위해서 소수 정예를 이런 산악 지형 곳곳에 배치하게 될 텐데, 후욱! 어쩌면 본격적인 전투 전에 비전투 손실까지 고려해야겠습니다.”
“흐흐, 확실히 겨울 산이 독하긴 하지? 나 때는 산길 못 외우면 그냥 죽는 거였지~.”
나는 다른 각성자들에 비해 직업 숙련 레벨이 워낙 높아서, 그리고 지금껏 쌓아 온 경험도 있어서 산악행에 뒤처지는 찐빠를 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미묘하게 박마춘 아재와 한동석보다 조금 더 빨리 지치는 느낌을 받았는데, 두 사람은 나보다 산을 탄 경험이 많은 프로 산악인이었기 때문에 걸음걸이부터 달라서 그런 모양이다.
고작 걸음걸이 하나로 차이가 그렇게 심하겠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산을 타기 시작한 지 5시간이 넘었을 무렵에는 확실하게 차이를 느꼈다. 그냥 차이도 아니고 클라스 차이를.
“저도 어디 가서 산악행에 꿇리지는 않는다고 자부하는데, 두 분에 비교하면 아직 햇병아리인 것 같습니다. 후욱!”
“쉬지 않고 5시간이나 겨울 산을 오를 수 있는 아마추어는 거의 없습니다. 각성자인 걸 감안해도 사장님 정도면 충분히 대단한 겁니다.”
“빈말이라도 고맙네요.”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일반 소총병이었기 때문에 평지 행군에 강했지, 험한 산악행에 강한 건 아니었다. 산악행에 특화된 수색대나 특전사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최묵호도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근력과 반사 신경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단기 결전형 타입이었는지라 우수한 실내전 능력을 갖춘 것이고.
반면 내 동기 중에 한동석처럼 산악행에 유독 강한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마장동 고깃집 주인 아들내미인 김호연이었다.
내가 퇴역병, 최묵호가 강습병, 이기열이 통신병이라면 김호연은 틀림없이 수색병으로 각성했을 만큼.
후두두둑!
손잡이 대용으로 근처의 나무를 살짝 잡았을 뿐인데 나뭇가지 위에 쌓여 있던 눈이 밀가루처럼 확 쏟아졌다.
방한모와 고글에 쌓인 눈을 대충 털어 내고 보니, 여전히 아득하게 느껴질 만큼 높은 산봉우리와 빼곡한 수림이 우리를 반겨 주고 있었다.
“조심해, 젊은 사장. 겨울 산은 세상천지 분간하기 어려워도 소음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들을 수 있으니까.”
“주의하겠습니다.”
뱀이 잘 잡힐 때는 땅꾼, 그렇지 않을 때는 심마니로 활동하며 산을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었을 박마춘 아재의 충고는 백번 옳았다.
산맥의 협곡 사이나 굽이진 경사를 따라 불어닥치는 바람 소리를 제외하면, 겨울 산은 마치 세상의 모든 소음을 눈 아래에 파묻어 버린 것처럼 고요했다.
발목까지 잠기는 눈 위를 막연히 걷고 있노라면, 이 고요하고 변함없는 정적인 세상에 삼켜진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리고 산악행에 익숙한 놈들일수록 이런 지형지물을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안다.’
나도 실제로 당해 봤고 그 파훼법도 나름대로 강구하면서 적절하게 대응했었지만, 그럼에도 지형지물이 가지는 고유의 이점은 개개인의 능력만으로 넘어설 수 없었다.
단순히 능력을 넘어서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고, 그것을 보조해 줄 전문적인 장비와 충분한 인력도 있어야 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겨우 지형지물이 가지는 고유의 이점을 상쇄하거나 뛰어넘을 수 있는데, 박마춘 아재 말마따나 정말 지독했다.
“잠깐.”
그때 앞서가던 박마춘 아재가 속삭이는 것 같은 목소리로 우리를 정지시켰다.
그는 온통 눈으로 덮인 새하얀 세상에서 뭔가 이질적인 것을 발견하기라도 했는지, 자세를 한껏 낮추고서 천천히 움직였다.
이런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산 중턱에서 수십 년 경력의 땅꾼이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건 뭔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보다 십수 미터 정도 앞서간 그는 곧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서더니, 이내 손짓으로 우리를 불러들였다.
“젊은 사장, 이게 뭔지 알겠나?”
그렇게 말하며 그가 보여 준 것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연결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조금 길게 뻗어 나온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밧줄이었다.
밧줄은 그냥 나무와 나무 사이, 나뭇가지처럼 보이게끔 살짝 꼬아서 연결된 게 전부였다. 특별한 장치가 더해진 것도 아니었으니 함정일 일은 더더욱 없었다.
차라리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와이어나, 산과는 어울리지 않는 굵은 전선이었다면 부비 트랩이나 통신선을 의심했을 것이다.
“그냥 밧줄 아닙니까?”
“그렇지, 그냥 밧줄이지. 그런데 산에 굳이 인공물을 설치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 대표적으로는 이곳에 뭔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표식, 혹은 진입을 막는 경계, 그것도 아니면 이곳의 위치와 연결된 특정 루트를 알려 주는 표지판 등등.”
“고작 밧줄 하나인데도 쓰임새가 상당하군요. 그래서 이건 어떤 용도인 것 같습니까?”
“이런 아무것도 없는 곳에 설치된 밧줄? 아무런 의미가 없지. 예전에 사용하다 만 과거의 잔재일 가능성이 높아.”
“그럼…….”
“하지만 과거의 잔재치고는 밧줄이 그렇게 낡고 헤지지 않았어. 최근에 설치한 거야. 그리고 이 시국에 이 주변을 돌아다닐 이유가 있는 놈들이 설치한 밧줄이라면 십중팔구 저들만 알아볼 수 있는 어떤 표식이겠지.”
그 말에 나와 한동석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사주 경계를 했다. 고요한 산에서 총을 쏘는 건 나 여기 있다고 홍보하는 꼴이지만, 무식하게 산에서 근접전을 치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굳이 이런 곳에 생뚱맞은 표식을 남길 정도면 당연히 이 표식의 위치를 가리키는 길 안내용 표지판도 다른 곳에 배치해 뒀겠지. 그럼 상대가 그 표지판을 따라 이 주변 루트를 이용했다는 흔적도 남아 있지 않겠남?”
생뚱맞은 표식을 찾아오기 위한 표지판. 그 표지판을 따라 이동했을 상대가 남긴 흔적.
거기까지 얘기한 박마춘 아재는 밧줄 근처를 수색하더니 곧 나뭇가지와 눈으로 엉성하게 덮인 비트를 발견했다.
성인 남성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은 비트였는데, 한겨울임에도 그곳에선 여름철 음식물 썩는 것 같은 지독한 악취가 풍겨 나왔다.
비트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눈이 내린 직후이긴 해도 인공적인 흔적이 몇 개인가 남아 있었다.
“여기서 뭔가를 꺼내 갔구만. 악취가 심한 걸 보니 단순한 물건은 아니겠고, 이 핏자국과 특유의 악취는…… 좀비인가?”
“이런 곳에 김치처럼 좀비를 파묻어 뒀단 말입니까?”
“내 코는 정확해. 여기 있던 건 틀림없이 좀비야. 우리가 이 산을 올라오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막상 산을 내려가서 조금만 걸어도 전초 기지와 꽤 가깝지 않나? 어떤 목적을 가진 놈들이 이곳에 좀비를 파묻어 뒀고, 용도가 끝난 걸 다시 꺼내 갔거나, 이 자리에서 처리했겠지.”
좀비는 죽이면 시체가 남지 않으니까, 말라붙은 핏자국과 악취를 빼면 좀비를 꺼내 갔는지 이 자리에서 처리했는지 확실치 않다.
그보다 중요한 건 누군가가 이곳에서 뭔가를 했다는 것. 무엇보다 밧줄이 설치된 것이 최근이라고 한다면 그들이 노린 것은 저 산 아래의 전초 기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고 보면 전초 기지를 습격하던 좀비들도 도시 내부와 산을 가리지 않고 튀어나왔었지.’
그때는 그냥 어그로가 끌려서 외부에 있던 좀비들이 마구잡이로 몰려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 수상쩍은 새천년평화교 문양과 마찬가지로 어떤 연관이 있어 보인다.
“나는 그 좀비란 것에 대해서 잘 모르니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는 않겠지만, 이런 산에서 자신들만의 체계로 움직이는 놈들이라면 이것 말고도 꽤 많은 수작질을 부려 놨을 것 같구만. 어쩌면 이걸 발견한 게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어.”
정체불명의 집단이 여기서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겨울 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놈들이라면 필시 뭔가를 더 준비했을 것이라는 박마춘 아재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박마춘 아재의 반응을 보면 상대는 아마 산에 꽤 익숙한 집단일 것이다.
산에 익숙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좀비를 활용할 줄 아는 집단, 당장 떠오르는 건 역시 창원에서 우리를 애먹였던 헬조선이다.
실제로 창원에서 조우한 헬조선 놈들은 좀비를 사냥개처럼 풀어서 생존자를 기습하거나 함정을 깔아 두는 교활함을 보인 적 있었으니까. 게다가 놈들은 산악 지형에 매우 익숙한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전초 기지를 습격한 호전적인 좀비 무리는 헬조선이 푼 사냥개가 아니라 새천년평화교를 상징하는 문양이 몸에 새겨져 있었다.
그렇다는 건……
‘설마 놈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채자마자 손을 잡았나?’
성향이 물과 기름처럼 다른 놈들이라 절대로 손을 잡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내 예상이 틀렸던 모양이다.
“쓰읍.”
이건 좋지 않다.
놈들이 이 주변 산에 아직 얼마나 더 수작질을 부려 놨을지 알 수 없고, 또 놈들의 의도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면 추후 아군이 어떤 피해를 입게 됐을지 가늠할 수도 없었을 터.
정보의 우위가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착잡한 심정으로 고민하고 있는 내 기분을 눈치챈 건지, 다행히 프로 산악인 두 사람이 내게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그 해결책이란,
“역추적을 합시다. 놈들이 미리 준비해 둔 수작질을 한 번 사용하고 나면 뒤로 빠진다는 걸 알았으니, 바꿔 말하면 놈들은 준비해 둔 수작질을 사용하기 전까지는 이 근방을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아직도 어딘가에 숨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겠죠. 그러니 우리가 역으로 기습을 하고, 놈들이 공유하고 있을 정보를 차단해 버리는 겁니다.”
“일리 있구만. 덫으로 산짐승을 잡고 조금만 방치해 두면 금세 다른 산짐승들이 눈치채고 더 이상 그 길을 이용하지 않지만, 사냥꾼이 직접 나서서 빠르게 사냥해 버리면 한순간의 위협으로 치부하고 다시 그 자리에 찾아오는 놈들이 많지. 잘하면 쉽게 허를 찌를 수 있겠어.”
“……이 겨울 산에서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흐흐, 젊은 사장. 이 한반도 전역을 통틀어서 나보다 산을 잘 아는 인간은 손으로 꼽을 거야. 게다가 그런 사태가 일어났으니 이제는 내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지.”
철컥.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좋네요. 마침 사냥이라면 제가 좀 할 줄 압니다.”
짐승 사냥은 전직 엽사인 한동석보다 훨씬 못하지만, 인간 사냥이라면 내 유일한 특기 분야다. 취업 준비할 때 이력서에 ‘인간 사냥이 특기’라고 쓸 수 있을 만큼.
우리는 눈 속에 감춰진 희미한 흔적을 쫓아 더욱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눈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