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수복기 (43)
북진군.
202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참 많은 것을 상징하는 단어다.
과거 6.25 전쟁이 발발했던 것처럼 한반도에서 또 한 번 남북 전쟁이 발발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무조건 치고 올라간다는 7기동군단의 부대 상징이 바로 ‘북진선봉(北進先鋒)’인데, 북진군은 이들과 함께 가장 먼저 북한으로 치고 올라간 여러 군부대를 총칭하는 말이 되었다.
북진군은 처음 DMZ를 넘어 올라간 그 순간부터, 대통령의 입에서 종전 선언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단 한 명도 대한민국 땅으로 ‘멀쩡하게’ 복귀하지 않았다.
기묘하게도 그들에게는 5년간 휴가나 순환 교체 근무라는 개념이 없었고, 북한 땅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두 번 다시 전투를 속행하지 못할 만큼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싸늘한 주검이 되어 실려 나오는 것뿐이었다.
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북한 땅이라는 거대한 고독 항아리 속에 갇혀서, 이 악물고 지하 도시나 땅굴, 민가로 숨어든 북한군을 상대로 드잡이질을 한 역전의 용사들이 바로 북진군.
그들 중 한 명이 자신들의 오랜 숙원과 신앙, 그리고 사업을 방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니 회담장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흉흉해졌다.
“북진군이라면 나도 좀 알지. 한 명당 최소 북한군 모가지 100개 이상은 따야 내부에서 인정을 받았다든가, 같이 작전을 수행하는 미군들도 전쟁 범죄 보고서를 쓰는 게 질려서 중간에 합동 작전을 포기했다든가, 여러모로 통제도 안 되고 사후 처리도 어려운 정신병자 전쟁광 집단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었지.”
“세간에 알려진 소문은 약과요. 그 개새끼들이 북한에서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우리 동지와 한민족을 어떻게 핍박하고 잔혹하게 처형했는지 세상이 알면 깜짝 놀랐을 거외다.”
그럼 왜 종전선언 직후 평화의 시대에 그 북진군의 만행이라는 것들을 세간에 까발리지 않았느냐, 한대상은 그런 시시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이 바닥에 선과 악 같은 건 없다. 결국 다 자기가 잘 먹고 잘살자고 다른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아귀다툼일 뿐. 그 5년간 질질 끌었던 2차 남북 전쟁조차 사실 여러 정치적인 문제가 얽힌 불필요한 전쟁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삶이란 그런 것이고, 투쟁이란 그런 것이다.
그저 조금씩 형태와 목적이 다를 뿐, 거기에 구태여 이유를 찾는 놈들은 머릿속에 꿈만 가득한 이상주의자, 혹은 머저리다.
“그래도 아직은 주의할 만한 대상에 불과하지 않나?”
한대상은 이미 이 지역 일대는 물론이고, 타 지역에서 흘러 들어오는 상당한 양의 정보를 모두 꿰차고 있다.
그가 흩뿌려 둔 눈과 귀는 상당히 많았고, 바로 어제도 대구에서 군대의 이질적인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참이다.
야생이나 다름없는 저 척박하고 살벌한 북한 땅이라면 모를까, 대한민국 내에서 인간의 손길이 닿는 곳이라면 거의 대부분 그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한다.
즉 그 신흥 세력과 한대상이 이끄는 대한제국파간의 힘 차이가 너무나도 압도적이라, 아직까지는 이승권 개인을 ‘토벌 대상’으로 격상시킬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자꾸 이런 자리에서 언급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그럼에도 계속 뜸을 들인다는 건, 필시 뭔가 더 있다는 뜻 아닌가. 아니면 고객님께서는 내 인내심을 시험하고 싶으신가?”
“그럴 리가. 본의 아니게 뜸을 들이긴 했지만, 놈을 단순히 ‘주의대상’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도 있소. 다만 이 마지막 증거는 저 사이비 새끼들과 교차 검증을 해 봐야 하는 부분이라 말을 아끼고 있었던 거요.”
바로 최근까지만 해도 서로 죽일 듯이 치고받았던 양 세력이 고작 한 인물의 행적을 알아내기 위해 교차 검증까지 필요로 한다라, 회담이 더욱 흥미로운 방향으로 흘러가자 한대상은 입꼬리가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너희 사이비 새끼들이라면 모를 리가 없겠지. 약 40일 전에 구미에서 특수 개체가 토벌되었다는 사실을.”
“호오.”
이것만큼은 한대상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주 목격되는 일반 좀비와 변종 좀비와는 궤를 달리하는, 아예 이 세상의 생명체가 아닌 듯한 불가해(不可解)를 몇몇 각성자들은 ‘특수 개체’라고 불렀다.
특수 개체가 처음 목격된 것은 당연히 한반도에서 기념비적인 첫 번째 좀비 사태가 발발한 서울이었다. 물론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생지옥이 된 서울에 직접 각성자들이 들어가서 목격한 것은 아니었고, 사태 발발 당시 피난하던 민간인들의 스마트폰에 우연히 촬영된 것이었다.
서울에서 모습을 드러낸 특수 개체들은 이윽고 서울을 기점으로 주변 지역으로 조금씩 퍼져 나갔는데, 크고 작은 도시들을 자신들의 거점으로 삼아 둥지를 틀었다. 주로 수도권 주변에.
개중에도 인간들의 영역까지 꽤나 깊숙이 침투해 온, 경북 구미에 자리 잡은 특수 개체는 한대상도 잘 알고 있는 놈이었다.
그런데 이 특수 개체의 생존 여부를 어째서 새천년평화교와 교차 검증을 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들이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으드드득!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테이블을 손아귀 힘으로 부러뜨린 교주의 대리인, 평화전도사가 간질 환자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형제님, 제가 그리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 주의를 드렸거늘! 감히 평화 앞에서 ‘신의 사도’를 능멸한단 말입니까!”
그렇다.
이 땅에서 모든 다툼과 불화가 없어지는 것을 교리로 삼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 평등하게 인간을 도륙하고 분쟁을 종식시키는 좀비란 신이 내리는 벌이 아니라 은총이다.
그런 좀비들을 대량 생산하고 인간 말살을 주도하는 특수 개체들은 곧 그들에게 있어서 신의 사도, 즉 천사 같은 존재인 셈.
그것을 특수 개체니 뭐니 싸잡아 부른 것도 모자라 필멸자가 감히 위대한 존재를 죽였다고 말했으니 경기를 일으키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 그 또한 한대상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었기에, 그저 그들의 격한 반응을 통해 헬조선 단장의 말이 진실이었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진위 여부는 더 따져 볼 필요도 없겠군. 그 북진군 출신에 의해 벌써 도시가 여럿 함락되었고, 구미에서 꾸준히 대구의 전력을 갉아먹고 있던 특수 개체도 토벌되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어.”
“그러니 더더욱 토벌을 주장하는 거요. 그놈은 명백하게 우리 영역에 침범해, 우리 일을 방해하고 있잖소! 당장 대한제국파도 가축 공급이 끊어졌으니 남 얘기처럼 들리지만도 않을 터!”
“틀린 말은 아니군.”
자신 같은 시대가 선택한 권력자가 굳이 심혈을 기울여서 토벌해야 할 만큼 상대의 몸값이 올라갔다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대상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지금 토벌하지 않으면 상대는 얼마나 더 성장할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좀비 같은 하찮은 괴물들을 싹 쓸어버리고 대한민국을 집어삼킬 자신에게 얼마나 더 큰 방해 요소로 작용할까?
자신이 이끄는 조직의 이익과 한대상 개인의 흥미.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번만큼은 한대상도 자신의 개인적인 흥미를 우선시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중요한 고객인 헬조선과 새천년평화교의 분쟁을 일시적으로 종식시키면서까지 이런 자리를 마련했고, 그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이승권이라는 남자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헬조선은 자신의 단원과 지부를 박살 내 버린 이승권을, 새천년평화교는 자신들이 신의 사도라 믿어 의심치 않는 위대한 존재를 토벌한 이승권을 매우 간절하게 쳐 죽이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니까.
특히 입만 열면 평화 나팔을 불어 대는 저 사이비 광신도들이 드물게도 격한 반응을 보였으니, 이승권과 그의 신흥 세력, 겸사겸사 추가적인 가축 공급을 위해 대구까지 토벌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인간들 간의 전쟁은 1년 전 이후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 줄 알았는데, 설마 다른 이도 아닌 내가 그 주역이 될 줄이야.’
마치 와인을 숙성하는 오크통처럼 죽음의 향이 짙게 밴 불법무기들을 마구잡이로 팔아 치워 온 것에 대한 책임인가?
아니, 책임 같은 시시콜콜한 것보다는 숙명이라는 멋들어진 단어가 더 어울린다.
그래, 이것은 숙명이다.
대한제국이라는 허황된 꿈을 조직명으로 내세운 것처럼,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라는 운명적인 이끌림처럼.
이것은 한대상이라는 남자가 살아오면서 반드시 한 번은 거쳐야 할 통과 의례였다.
“앞으로의 방침이 정해졌군. 서로 간의 케케묵은 감정은 조금 더 오래 묻어 두기로 하고, 여기서는 일단 임시 연합이라는 형태로 이승권이라는 수괴를 토벌, 대구를 점거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는 게 어떤가?”
한대상은 헬조선과 새천년평화교를 고객으로 대우해 주었지만, 딱히 존중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하자고 하면 하는 것이고, 하지 않으면 압도적인 힘으로 분쇄하거나 굴복시킬 뿐이니까.
“우린 당연히 동의하는 바요. 그 개새끼를 씹어 먹지 않고서는 내 분이 안 풀려. 먼저 간 동지들을 위해서라도 그놈만큼은 꼭……!”
“교주님께 전권을 위임받은 저 역시 평화를 저해하는 분쟁과 불화는 가급적 지양하고 싶습니다만, 그자만큼은 반드시 신의 이름으로 벌을 내려야 할 것 같군요.”
분노에 찌든 헬조선은 말할 것도 없었고, 교주의 말이 절대적인 새천년평화교조차 자신들이 떠받드는 신의 사도를 토벌한 이승권을 죽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고작 한 명이 받기에는 너무나도 과한 스포트라이트가 아닌가 싶지만, 오히려 상대가 그쯤은 돼야 한대상도 움직일 마음이 든다.
“전쟁을 준비해야겠군.”
한반도에 또다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 * *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을 알고 있는가?
당장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이 있듯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나도 입에 뭔가를 밀어 넣는 것은 잊지 않았다.
정확히는 뽀글이를 끓여서 보온병에 넣고 음료수처럼 마시고 있었다. 뭐, 왜, 뭐.
“크! 국물이 억수로 얼큰하네.”
“……사장님, 지금은 회의 중입니다.”
“회의 중이라도 뭔가를 마시는 건 괜찮잖아요?”
“그건 마시는 게 아니라 먹는 거잖습니까.”
“아니죠. 지금 여기에 김치가 없잖아요? 그럼 이건 먹는 게 아니라 마시는 겁니다.”
암, 그렇고말고. 김치맨은 식탁에 김치가 없으면 식사를 한 게 아니라 잠시 목을 축인 것에 불과하다.
“하아, 보온병에 된장국 넣어서 마시는 사람은 봤어도 뽀글이를 끓여서 마시는 사람은 또 처음 봅니다.”
“한입 드려요?”
“사양하겠습니다.”
요 근래 못 본 사이에 엄청난 격무에 시달렸는지 김진경 경장은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온 상태였다.
하기야 지구대 시절에 그가 한 일이라곤 대부분 취객 상대와 간단한 서류 업무가 전부였을 터. 사회 생활 경험에 비해 과한 업무를 맡겼다는 사실은 나도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거점 일원들 중 공무원이었던 사람, 서류 업무에 능한 회사원들을 뽑아서 그의 밑에 붙여 준 참이다.
겉으로만 저렇게 골골댈 뿐, 곧 능숙한 짬 때리기를 시전하며 김해 군주인 나보다 더 널널하게 지낼 것이다.
“아무튼 회의에 집중해 주십시오. 현재 김해와 창원의 공업 단지에서 확보한 군수 물자와 생존 물자 재고는 넉넉잡아 약 1만 명이 2개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양입니다. 또한 공장을 24시간 가동하고 있는 만큼 생산 라인은 이미 안정화되어 있다는 게 현장 근무자들의 평가입니다. 일 자체는 거의 기계가 대신하고 있는 데다, 사장님의 스킬 효과를 받고 있기 때문에 과부하로 인한 안전 사고 및 생산 저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습니다.”
후르르릅.
잘게 뽀개진 면발과 걸쭉한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켠 나는 김진경이 미리 나눠 준 보고서를 빠르게 훑었다.
내 영역 내에 속한 공업 단지는 모두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며, 능력에 의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실수가 섞이지 않는다면 불량품 생산율은 0%에 수렴했다.
‘원자재 수급도 안정적이군.’
거점 방위 무기의 탄약이 일정 시간마다 자동적으로 재생산되는 것처럼, 영역 지정(A-) 스킬과 천혜의 요새(A-) 효과를 받고 있는 모든 거점은 각 용도에 걸맞은 원자재나 기초물자를 꾸준히 재생산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홈마트에는 정기적으로 사용한 상품이 재입고 되었고(완제품인 만큼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 공장에서는 당연히 이미 사용한 원자재들이 일정 시간마다 다시 창고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럼에도 부족한 물량은 내가 직접 막대한 양의 DNA 샘플을 지불해서 추가 구매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 공업 단지의 생산 라인이 멈출 일은 없었다.
이마저도 전기, 수도, 가스 등을 반영구적으로 공급해 주는 최후의 보루(A+) 스킬이 없었다면 나 혼자서는 절대로 유지하지 못해서 고작 며칠 만에 퍼졌을 것이다.
새삼 내 직업은 여러모로 참 축복받은 직업이구나 싶었다.
“전쟁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죠?”
“일단은 순조롭습니다. 당장은 출격 준비를 하고 있는 모든 전투 부대에 우선적으로 필수 물자를 배급하고 있으며, 각 전투 부대에서 군 장교와 전투에 익숙한 베테랑 각성자들을 모집해 단기간 속성 훈련 겸 실전 배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좋네요. 공유받은 작계는 확인했죠? 작계의 큰 틀은 어지간하면 바뀔 일이 없겠지만 자잘한 부분은 현장 인원의 판단으로 커버해야 해요.”
“예, 그 부분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다른 각성자분들과 함께 검토하면서 보완점이나 개선점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번 작전에서 김진경은 박지찬 병장과 함께 김해 생존자 집단의 군부대를 이끄는 현장 지휘관, 채성아는 의료인 및 비전투원들과 함께 의무병, 의무관 역할을 맡게 된다.
나? 나는 소수 정예로 구성된 각성자 부대를 이끄는, 일종의 유격대를 담당하게 됐다.
크게 놓고 보면 나도 당연히 지휘관 중 한 명으로 대우받겠지만, 펜대나 굴리며 말로만 지휘하는 자리와는 영 맞지 않아서 그냥 각성자 대표 겸 전투원으로 현장에서 뛸 생각이다.
우리가 바쁘게 전쟁 준비를 하는 사이에도 살을 에는 듯한 추위는 점점 더 거세지고, 올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보온병 속 뽀글이를 마지막 한 입까지 털어 넣은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며 통신병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회의 중에 실례합니다! 신해룡 육군 참모총장님으로부터 이승권 각성자 대표님께 긴급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사태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빠르게, 그리고 조금 더 격하게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