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수복기 (38)
“괜찮냐?”
“후욱…… 후욱…… 후욱……!”
나는 최상층의 한구석에서 전신에 피 칠갑을 한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는 최묵호에게 다가갔다.
이런 상태를 예전에도 몇 번인가 본 적 있었기에 섣불리 손을 대지는 않았다. 멋모르고 저걸 건드리면 나조차도 적으로 판단하고 미친개처럼 달려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친개에게는 역사적으로도 몽둥이가 약이라는 조상님들의 지혜를 빌려, 사람 하나 작정하고 두루치기로 만들기 딱 좋은 몽둥이를 들었다.
“셋 셀 때까지 제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매콤한 맛을 보여 주겠다, 묵호 아쎄이. 하나, 둘, 셋, 야!”
빠악!
“악! 씨발!!”
인간이 가장 짜증스러운 고통을 느낀다는 조인트를 냅다 후려갈기자 퍼뜩 정신을 차린 놈이 제 다리를 부여잡고 날뛰었다.
고통을 참기 위해 쓰으, 쓰으, 하고 침 삼키는 소리를 연신 흘리는 녀석의 추한 몰골을 보고 있자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전투에 너무 과몰입한 나머지 제정신을 잃고 날뛰는 전우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몸으로 배우는 정신 교육을 단행하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최묵호의 담당 일진, 아니. 담당 교사였다.
“야, 이 개또라이 새끼야! 멀쩡한 사람 정강이는 왜 후드려 까고 지랄이야!”
“지금 이 건물에 멀쩡한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지랄! 아오, 더럽게 아프네…….”
사실 반 정도는 틀린 말이 아니다. 바로 조금 전에 각성자 집단의 마지막 한 명까지 좀비들에게 뜯어 먹히는 것을 감상하고 온 직후니까.
그럼 남겨진 좀비들은 어떻게 됐냐고? 사업체 건물 취급을 받은 내 영역 내에 침투한 놈들이기 때문에 폐쇄 격벽을 내려서 따로따로 격리했다.
그렇게 격리한 놈들에게 거점 방위 무기와 1대1 데스매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성능이 엄청나게 향상된 내 거점 방위 무기들이 백전백승으로 놈들을 처발랐다.
“엄살 그만 부리고 일어나. 우리가 여기서 나가야 건물이 리뉴얼되지.”
“리뉴얼은 또 뭔 개소리…… 잠깐, 지금 밖에 좀비들이 득시글거리는데 어떻게 나가지?”
나와 함께 이 빌딩에 침투할 때만 해도 앞뒤 안 가리고 일단 다 쏴 죽이자는 생각뿐이었는지, 뒤늦게 현실을 깨달은 최묵호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당연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미리 내가 생각해 둔 기가 막힌 탈출 루트가 있으니까.
“받아.”
상점창에서 구입한 배낭을 녀석에게 던져 주자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새끼가 의심은 많아 가지고.
“탈출해야 할 거 아냐. 아니면 평생 여기 남아서 좀비들이랑 짝짜꿍할래?”
“배낭 안에 낙하산이라도 들어 있는 거냐? 옥상에서 낙하산 펼친 다음 활공해서 탈출하자고?”
“비슷해.”
겨우 정신을 차린 녀석과 함께 빌딩 옥상으로 올라간 나는 배낭의 덮개를 열고 내부에 초고압축 가스의 밸브를 열었다.
“뭐 하는 거냐? 그냥 줄 당기면 낙하산 펼쳐지는 거 아니었어?”
“우리가 포항에서 할 일은 끝났어. 포항 내부 정리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생각이야. 그리고 원래 네 목적지도 포항 아니면 대구였다며? 그럼 당연히 대구로 가야지.”
“아니, 대구로 가야 하는 건 맞는데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냐는 거지.”
“상관이 있지.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대구로 갈 수 있는데 넌 아니잖아. 그렇다고 이제 와서 저 좀비 밭을 뚫고 차량을 구해서 같이 대구로 가는 건 너무 느리고 귀찮아.”
쉬이이이이이익……!
곧 최묵호의 배낭 속에 압축되어 있던 헬륨 풍선이 부풀어 오르고, 연결된 와이어와 함께 하늘 위로 솟구쳤다. 멀리서 보면 사람 머리 위에 커다란 풍선이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묵호 아쎄이가 발버둥을 쳤지만, 녀석은 이미 체력을 크게 소모한 상태라 지쳐 있었기 때문에 그 발버둥도 오래 가지 못했다.
“야, 잠깐. 뭔가 이상한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풀톤 회수 시스템(Fulton surface-to-air recovery system) 알지? 미군이 종종 써먹었던 거.”
“아! 그거!”
최묵호가 생각났다는 듯 박수를 쳤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다시 한번 발버둥쳤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이미 저 멀리서 스카이훅(Skyhook)를 달고 있는 UCAV가 날아오고 있다. 조금 전에 호출했다.
“씨발! 넌 왜 같이 안 가는데?! 왜 나만! 왜 나만!”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대구로 갈 방법이 있거든. 이승권 아시아나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야 이 개새……!”
후우우욱!
UCAV가 우리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며 헬륨 풍선에 연결된 단단한 와이어를 스카이훅에 걸었다.
순식간에 하늘 위로 끌어 올려진 최묵호가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벌써 저만치 날아가고 있었다.
UCAV는 컨트롤러로 직접 조종하지 않더라도 목표 지점을 정해 주면 자동 항행과 자동 복귀가 가능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써먹을 수 있었다.
사실 나도 처음 시도해 보는 거라 정말로 성공할까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나의 믿음직한 전우이자 군 동기가 이승권식 야매 풀톤 회수 시스템의 안전성을 몸소 검증해 줬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후우, 올겨울은 좀 느긋하게 보내나 싶었더니…….”
기지개를 켜며 찌뿌둥한 몸의 근육을 풀었다.
아무리 이런 진흙탕 싸움에 익숙해져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람이 할 짓은 아니었다.
나는 옥상의 난간에 기대어 포항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이 도시에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는 정말 나 하나뿐이다.
나에 대한 어그로가 풀린 지금, 과할 정도로 이 도시에 몰려 있는 놈들은 다시 조금씩 흩어져서 다른 도시로 진격하겠지.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한 체력을 이용해 밤낮으로 쉬지 않고 움직일 거다. 놈들이 인간의 영역으로 침투할수록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피가 흐를 것이다.
쓰레기 같은 놈들 때문에 포항과 울산, 창원에서 불필요한 피가 흘렀던 것처럼.
“대체 뭘 하는 거지.”
진짜 이게 맞나?
왜 다들 서로 죽고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지?
그 지독한 전쟁은 우리가 5년에 걸쳐서 이미 끝냈잖아.
죽여야 할 놈들도 과감하게 죽였고, 죽이지 말아야 할 놈들은 필사적으로 살렸잖아.
죽여야 할 놈도, 살려야 할 놈도 공평하게 물어뜯으려는 저 괴물들이 온 천지에 도사리고 있는데.
대체 왜 같은 인간끼리 서로 못 잡아먹어서 지랄 염병인 건지 당최 모르겠다.
“대체 사람 목숨을 뭘로 보는 거냐고, 개새끼들아.”
한숨을 푹 쉰 나는 품속에서 피 묻은 스마트폰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내 영역인 이 빌딩 내에서 사망한 모든 각성자들의 소지 아이템을 자동 회수하는 과정에서 손에 넣은 물건이었다.
이 스마트폰의 주인은 내가 몰살시킨 각성자 집단의 우두머리, 마지막까지 내게 한 방 먹이려다 끝끝내 실패한 김주윤의 것이었다.
김주윤은 꼴에 기업 운영하던 놈이었다고 꼼꼼하게 기록해 두는 타입이었는지, 스마트폰 속에는 충격적인 내용들이 여럿 담겨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기록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얼마나 많은 인간들을 팔아넘겼는지에 대한 장부였다.
장부에 기록된 인신매매의 주범들은 크게 셋이었다.
빨갱이와 반국가단체가 서로 연합하여 ‘대한민국 멸망’을 최종 목적으로 삼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테러리스트 조직 헬조선.
2차 남북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우르르 들고 일어나서 전쟁은 무조건 나쁜 거라며 반전 운동을 벌이던 국내 최대 규모의 사이비 종교 단체 새천년평화교.
전쟁의 여파로 국내 문제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던 정부의 감시망을 피해 북한과 러시아, 중국, 동남아에서 흘러들어 온 온갖 불법 무기와 마약, 필요에 따라서는 인간까지 거래했던 국내 최대 규모의 범죄 조직 대한제국파.
험한 산세와 외진 지역이라는 특성상 뒤가 구린 놈들이 숨어 지내기 딱 좋은 강원도에 자리 잡은 암 덩어리 3개가 모두 포항과 연결되어 있었다.
“참 많이도 팔아먹었군.”
울산과 포항에서 약 2개월에 걸쳐 엄청난 수의 인간들을 꾸준히 공급받아 왔던 놈들 아니랄까 봐 장부에 새겨진 숫자와 거래 횟수의 규모가 남달랐다.
놈들이 어떤 용도로 사람을 거래했는지에 대한 내용도 자세히 쓰여 있었는데, 구매 규모가 가장 적은 헬조선은 주로 세뇌 작업을 거친 후 자신들의 전투원(보나 마나 자폭병이겠지만)으로 써먹기 위함이었다.
헬조선보다는 좀 더 많은 구매 규모를 자랑하는 새천년평화교의 주요 구매 사유는 인신 공양에 쓰일 제물과 여러 종교 활동을 도와줄 노예들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많은 구매 규모를 가진 대한제국파는 매우 심플했다. 경험치와 DNA 샘플을 얻기 위해 사육하고 있는 좀비에게 던져 줄 밥과 노예를 구하는 것.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이 끔찍한 구매 사유로 엄청난 수의 사람을 거래한 덕분에 포항의 쓰레기들에게 내어 준 물자의 양도 상상을 초월했다.
내가 소유한 리뉴얼된 홈마트를 꽉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막대한 양을 자랑했으니, 강원도에 자리 잡은 암 덩어리들의 규모가 내 예상을 훨씬 웃돌고 있음을 의미했다.
불행 중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포항에서 쓰레기들을 처리하면서 놈들이 가지고 있던 물자 대부분을 내가 회수했다는 거다.
회수한 대량의 물자가 억울하게 팔려 나가서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 사람들의 피값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이 나라를 좀먹고 있는 암 덩어리를 절개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서울 한복판에 달랑 합동 추모비 하나 세웠던 그 병신 같은 추모 방식보다는, 아예 뿌리 하나 남기지 않고 싹 쓸어버리는 내 추모 방식이 피해자들의 마음에 들 것이다.
‘놈들의 순수한 무력 수준은 아마 대구에 비견될 만할 거다. 경기도, 강원도, 경상북도를 포함해서 놈들에게 피해를 입은 민간인들의 수를 가볍게 헤아려도 최소 수백만이니까.’
놈들의 더러운 욕망과 이익을 위해 희생된 피해자만 최소 수백만 규모라니. 믿기는가?
여기가 무슨 학살이 밥 먹듯이 일어나는 고대 중국도 아니고, 21세기 최첨단을 달리는 대한민국 땅에서 수백만 규모의 학살과 인신 공양, 노예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나조차도 장부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믿기 힘들었을 얘기인데, 이 나라의 호국 선열들이 들었다면 현충원에서 벌떡 일어나고도 남을 만한 일이다.
전쟁은 이미 끝났는데, 겨우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는데, 모두가 합심해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도 모자랄 판국에 앞다퉈서 생지옥을 실현하고 있다.
어차피 망한 세상인데 마음 내키는 대로 살겠다는 그 기분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모든 이들이 공평하고 평등하게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해서 책임까지 저버려도 된다는 건 아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달게 받아야 하고, 스스로 인간이길 저버린 짐승들은 마땅히 인간의 손에 죽어야 한다.
나는 결국 다시 한번 북진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것은 얄궂은 운명도, 필연적인 숙명도, 짊어져야 할 사명도 아니다.
그저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북진뿐이니까 다시 한번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마치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빠른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