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수복기 (33)
김수환은 사흘 밤을 꼬박 지새운 후에야 겨우 허가를 받고 외부 소음이 거의 완벽하게 차단된 빌딩 지하층에서 잠들 수 있었다.
오늘로 포항에서 급변 사태가 일어난 지 나흘째 되는 날이기에, 이젠 정말로 교대하면서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다들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다는 고통을 호소한 덕분이다.
사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늘을 밝게 물들이며 펑펑 터졌던 폭죽,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괴한 음악 소리, 하늘을 날아다니며 꾸준한 소음 공해를 흘리던 이상한 비행 물체까지.
좀비도 좀비지만, 단 한 순간도 경계 근무 인원의 눈을 감을 수 없게 했던 그 모든 방해 공작들은 이젠 멀쩡한 사람도 발작을 일으키게 할 지경이다.
그렇다고 건물 전체를 방음 소재로 떡칠해서 외부의 모든 정보를 차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윗분들은 참고 버티라 하셨지만,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건 그저 짧은 휴식이었다.
여자도, 술도, 마약도 아닌 그저 휴식.
‘고작 싸구려 침낭에 누워 잠을 자는 게 이렇게나 행복한 행위였나?’
잠깐 눕기만 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전신이 무겁게 짓눌린다.
자신의 육체가 드디어 쉴 곳을 찾았다며 ‘크하하 천근추!’를 시전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눈을 감자마자 의식이 수면 아래로 빠르게 강하한다.
꿈도 꾸지 않고, 뒤척이지도 않고, 죽은 듯이 고요하게 잠들 수 있었다.
쿠르르르…….
“허억!”
층 전체를 감싼 방음재 덕분에 소음은 거의 들려오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김수환을 비롯한 여러 각성자들이 헐레벌떡 잠에서 깨어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마치 지진을 연상케 하는 진동이 건물 전체를 타고 지하까지 흘러 내려왔던 것이다. 심지어 진동은 한 번에서 끝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중장비로 건물 벽을 때리고 있는 것처럼 쿠웅, 쿠웅, 하고 크고 작은 진동이 계속 느껴졌다.
“뭐, 뭐야… 뭔데. 우리 아직 한 시간밖에 못 잤다고……!”
“한 시간? 눈 감은 지 30초도 안 된 것 같은데?”
“염병, 위에서 또 뭔 짓거리를 하는 거야.”
“야야, 신경 꺼. 어차피 건물 입구 주변으로 싹 다 공구리 쳐 놔서 좀비들은 들어오지도 못해. 보나마나 위쪽에서 이번에 대량으로 소모한 DNA 샘플 복구하려고 좀비들 학살하고 있는 거겠지.”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임시 휴게실에서 누군가가 내뱉은 추리는 꽤 그럴듯하게 들렸다.
실제로 자신들은 이 고층 빌딩 하나를 지키기 위해 엄청난 양의 DNA 샘플을 소모했으니까. 물자, 아이템, 바리케이드, 방음재 구입 등등 무려 1만에 달하는 DNA 샘플을 소모했다고 들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조직 내의 각성자들이 열심히 모았던 DNA 샘플의 태반을 소모해 버렸기 때문에, 다시 비축하기 위해 좀비들을 때려잡기 시작했다고 해도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좀비를 잡을 거면 좀 조용히 잡아야지. 왜 잘 쉬고 있는 사람들 수면까지 방해하는 거야? 누가 위에 올라가서 한마디 하고 와라.”
“병신, 누가 가겠냐. 딱 봐도 회장님이 내린 지시 사항일 텐데.”
“야, 그래도 어떤 미친놈이 사흘 밤낮을 빵빵 터뜨리던 것에 비하면 선녀잖아. 다시 잠이나 자자. 교대 시간 정해져 있어서 지금 못 자면 손해다.”
“그래, 잠이나 자자.”
“무슨 문제가 생겨도 위에서 해결해 주겠지.”
애초에 이 빌딩 안에 있는 각성자만 몇 명인가? 거의 300에 달한다.
조직원 개개인의 레벨이나 직업은 완전히 천차만별이라 당연히 통합 전투력을 평가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반인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강한 각성자가 세 자릿수나 대기하고 있는데 설마 적의 침입을 허용할까.
그들이 만전의 상태라면 온갖 스킬과 무기를 총동원해서 일반 좀비 수천 마리쯤은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고, 연약한 일반인이 상대라면 어린아이 손목 비트는 것보다 훨씬 더 쉽게 농락할 수 있다.
자칭 관대왕 크세르크세스와 싸웠던 그 300 스파르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게 김수환을 비롯한 각성자들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다시 잠들기 위해 하나둘씩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곧 그들은 다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쿠구우우우우……!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훨씬 더 큰 진동이 그들을 덮쳤다. 지근거리에서 폭탄이 터진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강렬한 진동에 바닥이 드드드드 흔들릴 정도였다.
“이 새끼들이, 진짜! 좀비 쉽게 잡겠다고 폭탄이라도 쓰고 있는 거 아냐?!”
“잠은 자게 해 줘야 할 것 아냐! 씨발!”
결국 제대로 쉬지 못해 극도로 예민해진 몇몇 각성자들이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임시 휴게실의 문을 열었다.
누군가가 먼저 행동을 보이자 다른 이들도 이대로는 편히 자기 글렀다 싶어 하나둘씩 뒤따라 나갔다.
1층에 도달한 그들은 점점 더 커지는 소음과 진동에 의아함을 느끼며, 강화 콘크리트와 철근까지 박아서 막아 두었던 빌딩의 입구로 향했다.
쿠웅! 쿵! 콰직! 콰앙!
두꺼운 콘크리트 벽 너머로 울려 퍼지는 기괴한 소음에 그들의 얼굴이 점점 굳어 갔다.
누군가 총을 쏘거나 폭탄을 터뜨리고 있는 게 아니다.
무언가가 벽을 두드리고 있다.
결코 뚫리지 않을 벽을 뚫기 위해,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몸으로 쉴 새 없이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좀비다.
자신들이 그토록 얕보고 있었던 좀비들이, 어그로만 풀리면 다시 멍청하게 거리를 배회하는 금붕어 대가리들이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듯이 ‘아무것도 없는’ 콘크리트 벽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누, 누가 좀비 어그로를 끌기라도 했나? 아니, 어그로를 끌었다고 해도 보통 저렇게까지 하나?”
그렇지 않다.
좀비의 어그로 메커니즘은 굉장히 단순해서, 제 목숨 소중한 줄 아는 각성자들이라면 이 어그로 메커니즘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았다.
좀비가 먼저 인간을 인식하고 달려들어도, 그 인간이 지속적으로 ‘자극’을 주지 않으면 좀비의 어그로는 굉장히 빨리 풀린다.
좀비의 어그로를 끈 인간이 더 이상 좀비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소음을 흘리지 않고, 어떤 충격을 가하지 않으면 좀비는 금세 해당 인간을 추격 대상에서 해제하고 다시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이런 단순한 놈들이니까 포항 북구를 차지하고 있어도 그리 쉽게 포항 도심 생활권 내부로 흘러 들어오지 않았던 거다.
포항에서 민간인들이 거의 다 사라진 뒤에는 도시 단위로 대규모 좀비 웨이브가 올 만큼 어그로가 끌리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저 바깥의 좀비들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조용해야 정상이다.
멍청하게 침을 뚝뚝 흘리면서 거리를 배회하다가, 가끔 각성자들이 DNA 샘플을 회수하기 위해 한바탕 휩쓸어 주면 다시 어그로가 끌려서 울부짖기나 해야 한다는 거다.
B급 좀비 영화 속의 그 멍청한 놈들처럼.
쿠웅! 쾅!
바스스…….
콘크리트 벽에서 떨어져 나온 돌가루가 흩날린다.
중장비를 동원해야 겨우 깨부술 수 있을 법한 두꺼운 콘크리트 벽이 점점 뚫리고 있다. 자신들과 같은 단백질 덩어리들에 의해서.
“뭐, 뭐라도 해 봐야 하는 거 아냐?”
“우리가 모아 둔 DNA 샘플은 이미 다 썼잖아.”
“그럼 아무거나 대충 가져와서 바리케이드를 보강해야…….”
콰아아앙!
그들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결국 콘크리트 벽의 일부가 박살 났다. 그 좁은 틈으로 보이는 것은 곤죽이 된 좀비들이었다.
곤죽이 될 때까지 벽을 부수고, 자멸한 좀비는 시스템에 의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새로운 좀비가 다시 그 틈을 메우면서 굴착을 이어 나갔다.
그 결과, 중장비로 뚫어야 할 벽을 좀비 대군이 뚫어 버리는 기염을 토해 냈다.
몇몇 각성자들이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무기를 꼬나쥐었지만, 그들은 만전의 상태가 아니었다.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했고,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인원은 다 합쳐도 50명이 채 안 된다.
그에 비해 저 두꺼운 콘크리트 벽을 뚫기 위해 스스로 살점과 뼈를 깎아 내면서까지 발광하면서 달려들고 있는 좀비들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천 이상. 어쩌면 거리 전체의 좀비들이 이곳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건 중화기를 가져와도 막지 못한다.
그런 생각이 김수환의 뇌리를 스쳤을 때, 그는 이미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저 좀비들과 목숨 걸고 싸우다 보면 DNA 샘플도 얻고 레벨 업도 할 수 있겠지. 싸우면서 강해지는 게 목적이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점이 내키지 않는다. 자신들은 언제나 안전한 곳에서 편하게 인간과 좀비를 사냥해 왔던 입장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절대로 나서지 않았던 기조가 문제였다.
저건 이길 수 없다.
대체 무엇에 그리도 흥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콘크리트 벽의 좁은 틈을 더욱 벌리기 위해 벽을 깨부수고 있는 좀비들은 자신들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으로 죽을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엄청난 광분 상태에 빠진 놈들이 노리는 것은 애초에 자신들이 아닌 듯했다. 이 빌딩 안에 있는 다른 ‘무언가’를 노리기 위해 그저 걸리적거리는 벽을 깨부수고, 겸사겸사 자신들까지 쓸어버릴 생각인 거다.
“씨발, 뭐라도 해 봐, 새끼들아!”
“저것들 눈이 완전히 맛 갔잖아.”
“혈관도 울긋불긋 올라오고, 근육도 부풀어 오른 게 평상시랑은 확실히 뭔가 달라.”
“이, 일단 위에 알리자고. 여기 있어 봐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뒷걸음질 치는 인원이 점점 많아졌다.
엘리베이터는 사용할 수 없으니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고층 빌딩 안에는 계단이 많지만, 계단이 그리 넓은 구조는 아니라서 한 번에 많은 인원이 이동할 수 없다.
그것을 눈치챈 누군가가 먼저 계단을 향해 뛰기 시작하자 다른 이들도 덩달아 뛰었다.
그리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삽시간에 폭우로 물이 불어난 계곡처럼 좀비들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맞서 싸워, 이 새끼들아!”
“지금 도망치면 회장님이 너흴 그냥 내버려 둘 것 같아?!”
자신들이 맞서 싸우면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몇몇 머저리가 어설프게 무기를 들고 있다가 그대로 좀비의 급류에 휩쓸렸다.
광분한 좀비 떼에 의해 각성자 몇 명이 인간의 형태를 잃고 잘게 다진 고깃덩어리 신세가 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각성자를 잡아먹은 좀비들은 그 자리에서 급속도로 변이를 일으키며 더욱 흉측한 몰골로 변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으으으으으으응!”
일반 좀비와 변종이 뒤섞인 살덩어리 군대가 계단으로 몰린다.
직접 뛰어올라가지도 않고, 그저 뒤에서, 아래에서 받쳐 올려 주는 무시무시한 힘을 받아 로켓처럼 치솟았다.
도망쳐 올라가던 각성자들은 자신들보다 빠른 속도로 뒤쫓아 오는 좀비들에 의해 하나둘씩 집어삼켜졌다.
스스로 그렇게나 강하다고 자부하던 각성자들이, 좀비들에게 붙들린 순간 아이템이니 스킬이니 할 것도 없이 갈기갈기 찢기고 씹혔다.
육체 강화 스킬까지 사용하며 전력으로 계단을 뛰어오르던 김수환은 어느덧 자신의 뒤에 아무도 남지 않은 것을 눈치챘다.
“아, 안 돼……!”
달콤한 휴식을 간절히 원했기에.
영원한 휴식이 그의 뒷덜미를 잡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