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182)화 (182/227)

182화 수복기 (32)

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인간들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전쟁이라는 놈은 그런 평범한 인간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특별함을 요구하곤 한다.

평범하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평범하게 대학에서 술이나 퍼마시던 새파란 애송이들이 평범하게 군에 입대해서 배운 게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총은 군인의 애인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런 애인을 놔두고 허구한 날 삽이라는 내연녀와 바람을 피는 게 군인들의 일상이었다.

배수로 파고, 진지 공사 하고, 하늘에 떨어지는 하얀 똥 쓰레기를 치우고, 일광 건조 하고, 남는 시간은 싸지방과 체단실을 들락날락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훈련하고 전쟁에 대비하는 군인이라기보단, 그냥 빚을 변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2년이라는 시간을 노역 캠프(강제)에서 머무르는 느낌이었다.

그런 애들을 갑자기 전장에 투입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참 많이도 죽었다.

분명 훈련을 받기는 했는데, 총 쏘는 법이나 좌표 따는 법, 부상자를 어떻게 처치해야 하는지도 다 배웠는데.

귀를 때리는 총성과 폭음, 누군가의 비명 소리에 그런 얄팍한 지식들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평범한 인간들에게 특별함을 요구하고, 특별하지 않은 대가로 하나뿐인 목숨을 받아 가는 불합리와 부조리의 극치가 바로 전쟁이었다.

우리는 전우의 죽음에서 실수를 깨닫고, 적의 죽음으로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고,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성장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고 인간성을 깎아 내면서 얻은 유일한 지식이 바로 사람 죽이는 법이었다. 물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전제가 추가된 금단의 지식이었다.

“컥! 끄륵……?!”

푹! 피시이이이잇!

우리가 어떤 방향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몰라 허둥대던 놈을 코너에서 돌아 나오는 즉시 덮쳐 목덜미에 대검을 때려 박았다.

실내전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구간이 바로 코너였는데, 언제나 서로의 사각지대에서 먼저 적의 움직임과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하는 쪽이 선공을 가져갔다.

좁고 어두운 실내에서 선공을 허용한 인간은 아무리 잘 훈련받았든, 튼튼한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든 죽음과 다이렉트로 딥키스를 했다.

정말 운이 좋아도 반죽음에 가까운 불구자 신세가 되었으며, 그렇게 살아남은 놈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이대로 간다.”

적의 목덜미에 대검을 때려 박아서 단단히 고정시킨 다음, 그대로 고기 방패처럼 들고 전진했다. 등 뒤에 바짝 따라붙은 최묵호가 인간 방패를 들고 있는 내 어깨 너머로 총구를 겨눈 채 리드를 따랐다.

인간을 활용한 고기 방패보다는 당연히 방탄, 방폭 성능이 뛰어난 전술 방패를 드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만 우린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우리가 전우를 끔찍이 여기듯, 적들 역시 자신들의 전우를 끔찍이 여기는 만큼 고기 방패를 보면 심리적 압박감에 더해 멘탈이 실시간으로 깎여 나가기 때문이다.

울컥울컥 피를 토해 내고 있는 고기 방패를 앞세운 채 전진하자 복도 끝자락에서 모습을 드러낸 놈들의 움직임이 잠깐이지만 덜컥 굳었다.

손에 들고 있는 불법 무기로 우리를 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스킬을 발동시켜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텐데, 자신의 동료가 축 늘어진 고기 방패 신세로 다가오는 걸 보면 사고가 일시 정지 하는 것도 당연했다.

꽝! 꽝! 꽝!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은 최묵호가 연달아 샷건을 발포하자 복도를 가로지른 무수한 산탄이 놈들을 덮쳤다.

앞에서 얼타고 있으면 걸레짝 신세가 된다는 것을 확인한 놈들이 그제야 반응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하지만 실내전에서는 무기와 교전 방식을 통합하지 않으면 그 효율이 어마무시하게 떨어진다. 누구는 전기톱을 들고, 누구는 기관총을 들고, 누구는 마법지팡이를 들고 있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만 될 뿐이었다.

머리에 열이 오를 대로 오른 놈이 냅다 사시미를 손에 쥐고 암살자처럼 빠르게 접근해 오는가 하면, 동료가 뛰쳐나간 상황에서도 냅다 총을 갈기는 미친놈도 있었다.

탕! 탕! 타탕!

나는 상대가 쏜 권총탄을 고기 방패로 막아 내는 한편,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까지 접근한 사시미의 처리를 뒤쪽으로 넘겼다.

내게 시야가 가려져 사시미의 접근을 재빨리 파악하지 못한 최묵호가 선택한 방법은, 그냥 군홧발로 놈을 냅다 걷어차는 것이었다.

뻐억!

“커헉?!!”

내 측면을 스쳐 지나가면서 허벅지와 옆구리를 노릴 생각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사시미가 내 몸에 닿기 전에 최묵호의 발길질이 먼저 놈의 안면을 구겨 버렸다.

미친 속도로 달려들었다가 강한 발길질에 카운터를 당해 다시 튕겨나간 놈은 묵직한 슬러그탄 한 발에 가슴팍이 꿰뚫리며 절명했다.

아무래도 근접 전투에 특화된 각성자들은 말도 안 될 만큼 튼튼하거나, 눈으로 좇기도 힘들 만큼 빠르거나 둘 중 하나인 듯했다.

슬슬 고기 방패의 효력이 다하는 것 같아 목덜미에 박아 두었던 대검을 뽑아내서 던졌다.

이번에도 누군가의 미간에 박힐 것이라 생각했던 대검은 또 다른 각성자가 주먹으로 쳐 내서 허무하게 막혔다.

“정면으로 붙지 마, 이 새끼들아! 총알이 뭐 알아서 피해 가는 줄 알아?!”

놈들도 드디어 우리가 중무장을 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는지, 각성자 특유의 재빠른 몸놀림으로 즉시 총구를 피해 몸을 숨겼다.

또 한 번 최루탄을 터뜨려서 강제로 근접전을 유도하는 방법이 있지만, 저놈들이 금붕어 대가리가 아니고서야 그런 술수에 또 당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산탄이 박히지 않는 튼튼한 엄폐물 뒤로 숨어든 놈들을 처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튼튼한 엄폐물도 뚫어 버릴 만한 무기를 준비하면 된다.

“엄호해.”

내 명령에 최묵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걸어 나오고, 그 틈에 나는 인벤토리에서 또 다른 총을 꺼내 들었다.

내가 꺼내 든 것은 200발짜리 박스형 탄창을 달고 다니는 묵직한 K-15 경기관총이었다. 또한 박스형 탄창 안에 장전된 탄환은 모두 내가 직접 제작한 고관통 5.56mm 탄약이었다.

총과 탄창의 무게를 합치면 10kg을 가볍게 넘기는 이 경기관총은 다소 빈약한 감이 있었던 국군의 보병 화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개발되었는데, 무려 2차 남북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에 개발이 끝나 빠르게 양산된 따끈따끈한 신품이었다.

창원의 SN그룹 산하 공장을 접수하면서 곧바로 생산에 들어간 대망의 분대 화력 지원 무기인 만큼, 가장 먼저 사용할 권리는 내게 있었다.

잠깐이지만 경기관총을 준비하는 사이에도 각성자들이 작정하고 덤벼들거나, 온갖 기괴한 스킬이 가미된 원거리 공격을 가해 왔다.

그런 일대다의 상황에서도 최묵호는 묵묵히 산탄총으로 제압 사격을 가해 놈들의 움직임을 봉쇄하거나, 작정하고 달려든 근접 전투 특화 각성자를 처리했다.

확실히 나 혼자 이 빌딩에 침투했다면 꽤나 애먹었을 것이다.

“재장전.”

내가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최묵호가 즉시 뒤로 빠지면서 재장전을 하고, 나는 위풍당당하게 개선문으로 진입하는 나폴레옹처럼 K-15 경기관총을 들고 전진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람보, 터미네이터, 혹은 분노로 도로 위를 질주하는 대머리 아저씨가 된 기분으로 시원하게 방아쇠를 당기면서 전진하니, 내 앞에 존재하는 모든 벽과 장애물이 순식간에 형태를 잃고 박살 나기 시작했다.

특히 콘크리트 벽 뒤에 숨어 있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던 놈들이 가장 먼저 바람구멍이 뚫렸다. 건물 내벽은 외벽에 비해 상당히 얇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인 소총탄이라면 또 모를까, 이 특제 관통탄은 쉽사리 막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아아아악! 씨발! 내 다리!”

“저, 저 미친 새끼!”

“막아, 씨발! 스킬은 뒀다 국 끓여 먹냐?!”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고관통 탄환 세례 속에서도 일부 각성자들은 이를 악물고 각자의 스킬과 아이템을 활용해 방어했다.

개중에 엄폐물 하나를 집어 들고 스킬을 시전하자, 엄폐물이 검은색으로 바뀌며 매우 튼튼한 내구도를 가지게 되었다. 내 특제 고관통 탄환도 방어 스킬을 덧씌운 엄폐물은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방어 스킬을 덧씌운 엄폐물이 뚫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각성자들은 내 위치를 파악하고 즉각 반격에 나섰다.

깡!

어떤 미친놈이 던진 단검이 허공에서 길쭉한 창으로 변하더니 아슬아슬하게 내 헬멧 끄트머리를 때리고 지나갔다.

“쓰읍…….”

이번에는 충격량이 상당했는지라 가벼운 뇌진탕 증세에 시야가 살짝 흐려지고 신체의 균형도 어그러졌다. 아마 정통으로 맞았다면 충격으로 목뼈가 꺾였을 것이다..

이렇듯 스킬이 가미된 각성자의 공격은 상당히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게 매우 까다로웠다.

그저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서 기관총의 총구를 단검이 날아온 방향으로 돌리자 때마침 2차 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놈의 손목이 갈려 나갔다.

“끄아아아아아……!”

“멍청한 새끼, 그거 하나 똑바로 못 해?! 뒤로 빠져!”

꽤 많은 각성자를 죽인 것 같은데, 어디서 이렇게 벌레처럼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내 시선과 총구가 분산된 틈을 타 또 다른 각성자가 불법 무기의 총구를 겨눴다. 다행히 최묵호가 미리 캐치해서 산탄을 퍼부어 제압했으나, 찰나의 순간에 드르륵하고 긁히듯이 터져 나온 총알 몇 발이 내 근처에 박히며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현역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최신예 방탄복에 세라믹 방탄판까지 끼워 넣었다고는 하나, 총알이라는 것은 그 충격량만으로도 인간의 뼈를 부수고 근육을 파열시키는 위용을 자랑했다.

각성자인 저들조차 총알 앞에서 필사적이듯, 나 또한 총알 앞에서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바닥난 200발짜리 탄창을 새로운 탄창으로 교체하기까지는 1초가 채 소요되지 않지만, 나는 일부러 탄약이 다 떨어져서 당황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서로 알 거 다 아는 각성자들 간의 전투에선 이런 작은 심리전도 상대의 허를 찌르는 한 방이 될 수 있기에.

“지금이다!”

“죽여!”

인벤토리에 총을 수납해서 탄창만 바로 교체하고 꺼내는 이 기막힌 재장전에 깜빡 속아 넘어간 몇몇 각성자들이 이때다 싶어 달려 나왔다.

내가 비틀거리기도 했고, 무엇보다 최묵호가 커버해 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인지, 놈들도 이 타이밍에 가능성을 보고 과감하게 총구 앞으로 달려 나온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재장전 끝난 지가 언젠데 병신들이.’

내가 허둥대며 탄창을 교체하는 대신 재차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자, 무방비하게 달려 나온 놈들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썩어 들어가는 게 보였다.

나는 남들의 고통에 쾌락을 느끼는 싸이코패스 정신병자가 아니지만, 내 총구를 눈앞에 둔 적들이 저런 표정을 보일 때면 내가 겪은 모든 고생이 보답받는 것 같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아마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 감정을 ‘보람차다’라고 사회적 합의를 봤기 때문이겠지.

북한군을 상대로 그랬듯이, 이 쓰레기들을 상대로 방아쇠를 당기는 것에 나는 일말의 주저도,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이 일이 끝나면 나는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다고 일기에 쓸 생각이니까.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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