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수복기 (29)
이 짓거리를 한 지도 벌써 4일째다.
처음 이 끔찍한 도시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차가운 분노에 찌들어 있던 나는 도시 전역에 폭죽을 터뜨리기 전, 일행과 함께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증거를 확보했다.
밀양처럼 사건의 진범과 무고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도시라면 섣불리 몰살시킬 수 없지만, 반대로 무고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악의 도시임이 확실해지면 거리낌 없이 몰살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행 중 다행인지, 아니면 일말의 희망 속에서 찾아낸 절망의 무더기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도시가 악의로 점철된 소돔 혹은 고모라일 것이라고 확신을 주는 증거들이 너무나도 쉽게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전문적으로 인간을 생포해서 타인에게 판매하는 상인들이 있었고, 그렇게 잡혀 들어온 인간들을 가둬 두거나 고문하는 핏빛 공간이 다수 발견되었으며, 밤이 되기 전에 거래한 인간들을 화물 트럭에 싣고 다급히 도시를 떠나는 무리도 포착했다.
5년간 전장의 밑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인간성이라도 지켜 보겠다며 발버둥 치던 이들도 있었는데, 이 도시에는 고작 2개월 남짓한 시간에 인간성을 가볍게 내던진 짐승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대구의 군벌을 책임지고 있는 신해룡 육참총장을 설득하기 위해 수많은 사진과 영상 기록을 남겼다.
인터넷의 금지(禁地)라 불리는 다크웹에서나 올라올 법한 스너프 필름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오직 사실에만 기반한 팩트를 우리 손으로 직접 확보한 것이다.
진가희와 한동석, 그리고 나는 모든 전후 사정을 살피고 증거를 수집한 끝에 완벽하게 일치하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싹 쓸어버리자.
과거에는 콧대 높은 판사님들께서 흉악 범죄자도 교화가 가능할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지만, 우리는 만장일치로 이 도시에 자리 잡은 순수 악 집단을 처리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정상 참작도, 인권을 지킨 재판도, 교화를 우선시한 처벌도 없다. 그런 건 오직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내용이니까.
같은 결론에 도달한 우리는 신속하게 계획을 구상했다.
이 도시에 기생충처럼 눌러붙어 있는 놈들을 어떻게 소탕시킬지에 대한 계획이었는데, 그 스케줄만 무려 일주일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었다.
1일째는 이 도시를 좀비라는 거대한 벽으로 봉쇄하는 것이 주 목표였다.
때마침 포항 북구에는 어마어마한 수의 좀비들이 정체되어 있었고, 외곽 지역에도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좀비들이 있었기 때문에,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댐을 폭파시킬 작은 폭탄 하나면 충분했다.
진가희와 한동석을 각각 포항 북구와 도심 생활권 구역으로 보냈고, 나는 포항 남구에 남아 폭죽 테러를 개시했다.
첫날밤에 쏘아 올린 엄청난 양의 폭죽 때문에 엄청난 수의 좀비들이 포항으로 몰려들었고, 도시 내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마치 주인 없는 빈집을 좀비들에게 무료 분양하듯이 도시를 꽉꽉 채우자 놈들은 알아서 자신들의 본거지에 틀어박혔다. 좀비들의 포위망을 화력으로 뚫고 도시 밖으로 도망치기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리라.
사실 그게 마지막 찬스였다는 사실도 모른 채, 우리의 계획은 순조롭게 2일째로 넘어갔다.
2일째는 첫날 밤의 좀비 대침공에 깜짝 놀란 놈들이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힘을 쓰고, 체력 안배를 하지 못해 크게 지쳐 있는 상황을 이용하기로 했다.
좀비들이 몰려 있는 놈들의 본거지 인근에서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폭죽을 터뜨리거나, 시끄럽게 노래를 틀었다.
첫날 밤과 달리 일정한 간격을 두고 소음 공해를 일으킨 것은 놈들이 휴식을 취하려고 할 때마다 타이밍 좋게 방해하기 위함이었다.
쉬려고 하면 소음 공해가 터져 나오고, 그렇게 터져 나온 소음 공해 때문에 소강 상태에 접어든 좀비들이 다시 발작을 일으키고, 또 발작을 일으킨 좀비들을 막느라 사투를 벌여야 하는 악순환의 반복.
2일째의 작전명은 무한 츠쿠요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대망의 3일째. 본격적으로 놈들의 거점이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하는 날이었다.
나도 처음 보는 거구의 좀비들이 일반 좀비를 훨씬 상회하는 신체 능력으로 바리케이드를 깨부수고 들어가더니, 반항하는 놈들 중 하나를 붙잡아 상당히 기괴한 방식으로 감염시켰다.
보통 변종이 인간을 감염시키면 일반 좀비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거구의 좀비는 자신의 뱃속에서 꺼낸 어떤 물질을 상대의 체내에 주입시키는 것으로 즉각 새로운 변종을 탄생시켰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던 놈이 순식간에 기형적으로 부풀어오른 골격과 근육을 가지게 되는 모습은 꽤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거구의 변종 좀비들은 일반 좀비와 달리 잘 죽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 틈이 생긴 거점을 매우 손쉽게 무너뜨렸다.
변종들을 앞세운 좀비 대군 앞에서는 각성자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매우 강력한 화력으로 변종을 한 방에 쓰러뜨리지 못하면 어느새 거대한 벽처럼 다가와 감염시켰으니까.
당연히 UCAV로 변종 좀비와 협력해서 놈들의 거점을 무너뜨리는 일반 좀비 군단의 움직임도 모두 자료로 남겼다.
“이렇게 손을 써도 아직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조직이 3개나 더 있단 말이지.”
3일째 작전을 끝마치자마자 진가희와 한동석의 건강 상태를 우려해 두 사람을 즉시 후방으로 빼냈다.
나는 만성 불면증과 야간 경계(B++), 통증 억제(D) 스킬 덕분에 잠을 자지 않고도 상당히 오래 버틸 수 있지만, 두 사람은 스킬의 보조를 받아도 거기까지 하긴 힘들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두 사람이 빠진 4일째부터는 나 혼자 방해 공작을 이어 나가게 되었는지라 효율이 다소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놈들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잘 버티고 있었다.
백도어파인지 백드롭파인지 하는 놈들의 우두머리가 4일째 아침이 될 무렵, 자신의 거점에서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며 스스로 부하들을 모조리 도살해 버리고 미친놈처럼 헤롱거리고 있었다.
그놈을 냉큼 붙잡아서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철골 구조물에 못 박은 뒤, 좀비 밥으로 던져 준 것이 오늘의 유일한 수확이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는 거다.
슬슬 놈들도 내 방해 공작에 익숙해지고 있어 나름의 대처법을 마련한 듯, 아직 남아 있는 거점들이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스킬과 아이템, 그리고 상점창에서 각종 필요 물자를 즉시 구입해 사용할 수 있는 각성자의 존재가 얼마나 귀찮은지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이대로 포항에 더 많은 좀비를 끌어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놈들에겐 충분히 비축된 물자가 있고, 좀비를 잡을수록 강해지는 각성자들도 있다.’
놈들의 거점을 내가 영역으로 지정해서 강제로 빼앗는다고 치자, 그럼 즉시 영역 전쟁이 발발할 것이고, 당연히 각성자의 수가 압도적인 저쪽이 무조건 이길 것이다.
‘게다가 내 영역 지정 스킬은 좀비도 같은 적성체로 취급하기 때문에, 만약 영역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중으로 공격받을 가능성이 높아. 거점 내구도가 아무리 많아도 10분을 채 버티지 못하고 함락될 거야.’
생각했던 것만큼 놈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못하고, 특정 영역을 지정할 수 있는 기회마저 허무하게 날린다면 영역 전쟁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렇다고 놈들이 틀어박혀 있는 거점을 힘으로 부수자니 그것도 좀 힘들었다. 놈들도 아주 작정하고 거점을 강화한 듯, 상점창에서 구입한 철근과 강화 콘크리트로 임시 벙커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폭약을 탑재한 UCAV를 지상으로 떨궈서 미사일처럼 써먹을까 생각도 해 봤지만, 저들 중 누군가가 보유한 스킬로 벙커를 강화한 흔적도 있어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러니까 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놈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수의 좀비를 더 불러들여서 놈들의 거점을 지속적으로 공격하게끔 유도하거나, 아니면 내 기준으로도 매우 강력한 각성자들이 희생을 각오하고 움직여서 놈들을 손수 도륙 내는 것.
진가희와 한동석은 내 기준으로도 상당히 괜찮은 전투력을 보유한 동료들이지만, 그럼에도 아슬아슬하게 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지금 후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라 당장 나설 수도 없고.
애초에 내가 정해 둔 ‘매우 강력한’ 기준에 부합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은 이 도내 최고 섹시남 이승권밖에 없다. 대체 누가 나보다 더 섹시할 수 있단 말인가?
‘문제는 내가 한 명이라는 거지.’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갑자기 플라나리아처럼 둘로 찢어져서 자연스럽게 이승권 1호, 2호를 탄생시킬 수는 없다.
나처럼 전투 경험이 풍부하고, 센스가 남다르며, 손발 쿵 짝도 기가 막히게 잘 맞는 멋진 놈이 어디 또 없을까?
철컥.
“아, 그래. 네가 있었지.”
좀비로 득시글거리는 포항 시내를 단신으로 ‘은밀하게’ 돌파해서, 미세한 소음 하나도 흘리지 않고 매우 빠르게 건물 옥상까지 올라와 내 뒤통수에 총구를 겨눈 남자를 후보에서 빼먹을 뻔하다니. 소름 돋는 찐빠가 아닐 수 없었다.
모가지나 팔다리가 아무렇게나 잘린 쓰레기들의 시체가 굴러다니는 핏빛 건물 옥상은 1년 만의 재회를 성사시키기엔 좀 지저분하지만, 다행히 우리가 그런 사소한 것까지 따질 만큼 서먹한 관계는 아니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냐, 개또라이.”
내가 만성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면 내 뒤통수에 총을 겨눈 남자는 만성 신경과민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은 매우 날카로운 어조였다.
“개또라이는 1년 만에 재회한 동기 대가리에 납탄을 박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너 아니냐?”
“내가 먼저 물었다.”
“보는 대로 환경 미화 하고 있지.”
목마른 놈이 우물 파는 법이라고, 경상도 일대를 복구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진 내가 포항, 울산, 부산을 안정화해 청정 구역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결국 쓰레기도 직접 치울 수밖에 없다.
눈치 빠른 내 동기는 환경 미화의 숨은 뜻을 파악했는지 곧바로 총구를 거뒀다. 과연 우리 소대원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합찬 에이스다웠다.
“뒈지고 싶으면 뭔 짓을 못 하겠느냐마는, 아주 대놓고 쏴 달라고 앉아 있는 건 어디서 배워 먹은 개짓거리야? 저격당하고 싶어?”
“저격당하면 좋지. 그 새끼 잡아서 합법적으로 사지를 찢어 버릴 수 있으니까.”
“미친 새끼.”
총을 거둬들인 놈은 피식 웃으며 옥상 난간에 걸터앉았다. 이 주변에 북한군 저격수 따윈 없다는 것쯤,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었다.
이제야 시선을 마주하게 된 녀석은 1년 전 그때처럼 똑같은 스포츠 헤어 스타일에 길고 선명하게 난 흉터, 나만큼은 아니지만 적당히 다부진 체격 그리고 심해의 쓰레기와 진흙처럼 착 가라앉은 특유의 눈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 지옥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포항 한복판에서, 하필 이런 상황에 재회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 인생이 마치 누군가가 의도한 것처럼 지극히 편의주의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만큼, 동기와의 재회는 상당히 뜬금없고 의외였으니까.
그럼에도 의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내가 인간 불신에 시달리고는 있지만 딱 하나, 같은 북진군 출신만큼은 100%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놈도 아마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상황이 작위적이고 편의주의적으로 흘러가면 좀 어떤가? 사실 이 모든 게 하나의 거대한 흐름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운’일 수도 있는데.
내 인생이 언제 평탄했던 적이 있나? 이놈 인생은?
그런 지랄맞은 인생들끼리 서로 얽히고설키다 보면 이런 일도 한두 번쯤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왕 이렇게 만난 거, 너 나랑 일이나 같이 하자.”
“무슨 일? 다시 북진이라도 하게?”
“그건 나중에. 지금은 집구석에 틀어박힌 바퀴벌레 새끼들 청소가 더 급해.”
최묵호는 딱히 이유나 내부 사정 같은 건 묻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