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수복기 (28)
포항이 수만, 어쩌면 수십만일지도 모르는 좀비 군단에 의해 물샐틈없이 포위된 지도 벌써 이틀, 아니 사흘째.
몽롱한 정신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눈을 치켜뜬 백도진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거점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알이 옆으로 굴러갈 때마다 음침하고 칙칙한 풍경이 가장 먼저 들어오고, 그 주변에는 미처 다 치우지 못하고 모가지만 잘라서 좀비 감염을 막아 둔 조직원들의 시체 몇 구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설령 좀비에게 물리거나 할퀴어졌다고 해도 미리 모가지를 잘라 두면 좀비로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노하우를 적극 활용한 예방법이었지만, 사실 그냥 방치해 둔 시체도 충분히 껄끄럽고 위험했다.
의사도, 병원도 없는 이 시국에 전염병이 돌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코는 진즉에 마비되어서 더 이상 시체 썩은 내 같은 건 느껴지지도 않지만, 저렇게 모가지만 뎅겅 잘려서 바닥을 굴러다니는 시체들을 보고 있자니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이 모든 게 한겨울 밤의 꿈 아닐까?
‘진짜 꿈이라면 다행이지. 어쨌든 내가 자고 있다는 증거니까.’
불법 마약도, 술도 다 필요없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건 꿀보다 달콤한 수면이었다.
악몽에 시달리든, 가위를 눌리든, 하다못해 두어 시간 선잠을 자다가 발작적으로 깨어나도 상관없으니까 제발 눈좀 붙여 봤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도시는 그들에게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어찌어찌 좀비를 막아 내고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 것 같아서 교대로 휴식을 취하려고 하면 귀신같이 어떤 ‘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폭죽일 수도 있고, 잠시도 끊이질 않는 온갖 음악으로 짬뽕된 무한 락 페스티벌일 수도 있다.
눈이 감긴다. 스르륵 감긴다. 12시가 되면 신데렐라가 더이상 드나들 수 없도록 성문이 닫히는 것처럼 눈꺼풀이 서서히 닫혔다.
잠시라도 좋다. 1분만이라도 좋다. 라면 하나 끓여 먹기에도 벅찬 시간이지만 뇌를 재부팅할 수 있는 찰나의 시간적 여유만 주어진다면…….
-빠빠빠 빠빠 빠빠빠빠 굿!!!!! 모닝!!!!!!!! 빠빠빠 빠빠 빠빠빠빠 굿!!!!!! 모닝!!!!!!!!!
건물 전체가 드드드드드 진동하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만큼 엄청난 음량의 모닝콜이 백도어파의 본거지를 덮쳤다.
바리케이드 근처에 기댄 채 반쯤 눈을 감고 있던 조직원도, 탄약을 다 소모한 탄창에 새로운 탄약을 삽탄하다 말고 고개를 꾸벅꾸벅 아래로 흔들어 대고 있던 조직원도, 한겨울의 추위를 오히려 덥다고 말하며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잠들고자 했던 부하도 반강제로 눈이 확 뜨였다.
“아, 안 돼……!”
“제발 그만해……. 그만하라고 씨발.”
“대체 어디서 자꾸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어디냐고!”
지속적인 자극이 존재하는 한 아무리 피곤해도 쉽게 잠들 수 없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자극에 너무나도 민감하니까.
조금만 더 긴장의 끈을 놓치면 잠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신선한 자극들이 훅 치고 들어오면 인간은 저도 모르게 근육을 바짝 긴장시키고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쯤 되면 이제 강인한 정신을 소유한 인간도,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건한 신체를 지닌 인간도 서서히 자기 자신을 잃게 된다.
오랜 시간 잠들지 못해 재부팅을 할 수 없게 된 뇌는 빠르게 기능이 저하된다.
처음에는 건망증 초기 증상의 환자처럼 매우 짧은 기억을 깜빡하게 된다거나, 두루뭉술한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게 된다.
그러다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면 갑자기 사고 능력만이 아니라 신체 능력도 노약자 수준으로 급감한다. 제대로 중심을 잡아 걷지 못하게 되고, 한 곳을 집중해서 바라볼 수 없다.
명확한 목적이나 목표를 설정하기 힘들어지고,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는 기초적인 행동 양식마저 잊어버리는 것이다.
“아으으으…… 놈들이…… 놈들이 온다!”
“다들 준비해! 놈들이 온다!”
“놈들이 온다! 놈들이 온다! 놈들이 온다!”
“아아아아아아! 난 죽기 싫어! 이 개새끼들! 내가 너희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악! 날 왜 때려! 이 괴물 새끼! 그동안 날 속이고 있었구나!!”
이성을 상실하면 그때부터는 더이상 정상적인 부분을 찾기 힘들어진다.
스스로 신체의 움직임을 조절하지 못해 침을 질질 흘리게 된다거나, 장난감을 사 주지 않았다고 대형 마트 바닥에 드러누운 어린아이처럼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기 시작한다.
환청을 듣고, 환각을 보게 되며, 급기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진짜라고 인식한다.
머리가 터질 정도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바이오리듬이 완전히 망가지고, 짧은 시간에 급격한 호르몬 불균형이 일어나면 뇌가 제멋대로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자극’을 주면 인간은 잠들지 못한다.
쿵! 쿵! 쿵!
가까스로 막아 두었던 바리케이드를 다시 무언가가 흔들기 시작한다.
하늘에선 마치 UFO 같은 이상한 비행 물체가 빠른 속도로 저공비행을 하면서 부착된 스피커를 통해 기괴한 모닝콜을 계속 쏟아 냈다.
쿵! 빠빠빠!
쿵! 빠빠!
쿵! 빠빠빠빠 굿!!!!!! 모닝!!!!!!!!!
정신 나갈 것 같은 박자와 소음, 눈이 시릴 정도로 청명한 하늘과 아침 햇살, 바리케이드의 틈새로 보이는 역겨운 좀비들의 눈깔.
백도진은 귀마개를 뽑아 버리고 차라리 고막을 죄다 터뜨려 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럼 청각을 영영 잃게 되겠지만 최소한 고요함 속에서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고막을 어떻게 터뜨리더라?’
물 같은 걸 끼얹나?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비척비척 걸어간 그는 식수통에 담겨 있는 투명한 물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왠지 독이 들어 있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물은 투명하지 않은가?
원래 최고의 독은 무색무취의 독이라는 말이 있다.
독은 믿을 수 없다. 자신은 고막을 터뜨리고 싶은 것이지 중독되고 싶은 게 아니었으니까.
“이게 아니야,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라고.”
있는 힘껏 식수통을 팔로 쳐서 엎어 버린 백도진은 촤악 쏟아지는 무색무취의 독을 바라보고 히죽 웃었다.
하찮은 놈. 내 고막을 터뜨릴 방법을 찾지 못했으면 그렇게 될 각오는 했어야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백도진은 바리케이드에 다가갔다. 그리고 바리케이드 틈새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수십, 수백, 수천 개의 눈동자를 일일이 찾아내서 두더지 잡기를 하듯 나이프로 푹푹 찔렀다.
“너! 눈깔을 왜 그렇게 떠?!”
“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
“그래! 나 이런 남자야! 몰랐니?!”
푹! 푹! 푹!
눈깔 하나를 터뜨릴 때마다 보너스 점수를 얻는 것 같은 묘한 쾌감 속에서 백도진은 나이프를 쥔 손이 피로 물들 때까지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인간형 대상을 상대로 나이프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위력이 최대 10회까지 중첩된다는 ‘인간 도살자’ 직업의 고유 스킬이 자동적으로 발동되었다.
하지만 스킬을 사용해 무수한 좀비들의 눈을 터뜨려도, 바리케이드 틈새는 좀처럼 깨끗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눈 하나가 사라지면 눈 두 개가 새로 추가되고, 눈 두 개 다음에는 열 개, 백 개, 천 개로 늘었다.
개중에는 아예 첫날 밤에 봤던 그 기괴한 좀비처럼 철판을 두른 눈알도 있었다. 무슨 선글라스를 착용한 것도 아니고 철판을 두른 눈알이라니!
“이제 보니 이거 완전 터미네이터였구만? 그래, 내가 포항의 존 코너다, 이 새끼들아!”
철판 두른 눈알들을 향해 열심히 나이프를 휘두르던 그는 어느 순간 너덜너덜해진 팔의 무게 중심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벌렁 넘어졌다.
빌어먹게도 청명한 하늘과 밝은 햇살이 보인다.
뿐만 아니라 UFO 같은 비행체가 빠르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염병할 모닝콜을 동네가 떠나가라 울부짖으면서.
자신은 이렇게나 열심히 적들을 처리했는데, 대체 자신의 부하들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어 고개를 돌려 보니, 다들 이미 한참 전부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다더니, 이 게으른 놈들이 조직의 우두머리인 자신보다 먼저 누워 있었다는 사실에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건 명백한 항명이었으니까.
“너 이 새끼, 이리 와!”
그러자 누군가가 깔끔하게 잘라 낸 그들의 모가지가 데굴데굴 굴러와 백도진 앞에서 딱 멈췄다.
“조직 생활이 장난이야?! 여기가 안이지 밖이냐고!”
“죄송합니다!”
“죄송할 짓을 왜 하냐?”
“시정하겠습니다!”
“뭘 시정할 건데?”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조직 생활 끝나냐?”
조직원 모두는 가족 같은 관계!
살아도 다 같이 살고 죽어도 다 같이 죽겠노라 다짐했던 그날의 맹세가 이토록 무심하게 짓밟혔다는 사실이 가장 큰 슬픔이었다.
“잊지 마라! 우리 백도어파는 살아도 다 같이 살고! 죽어도 다 같이 죽는다!
눈을 질끈 감고 조직의 신념을 울부짖은 백도진은 마치 의식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한 편안한 느낌에, 전신이 아래로 축 늘어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맡겼다.
질끈 감았던 눈을 뜬다.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모가지가 잘려 나간 몇몇 조직원들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던 백도어파의 본거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대신 시야에 들어온 광경은 난장판이 된 아스팔트 도로 한복판이었다. 그 중심부에 세워진 ‘낯익은’ 철골 구조물과 좀비들의 진격을 위태롭게 가로막고 있는 철제 펜스 하나.
블랙 프라이데이에 매장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는 미국인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괴성을 내지르고 있고, 매장 안에 비치된 상품인 백도진은 철골 구조물에 못 박힌 채 손님들의 거친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빠빠빠 빠빠 빠빠빠빠 굿모닝!
백도진은 자신의 머리 위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모닝콜 사운드에 인상을 찡그렸다.
조금 전도 꿈이었다면 지금도 꿈일 터. 그렇다면 자신은 여전히 잠들어 있는 것이다. 악몽을 꿔도 상관없으니 잠들 수 있게만 해 달라고 간절히 빌었던 것이 이런 식으로 실현될 줄이야.
이 또한 머지않아 끝나겠지. 그리고 휴식을 취한 자신은 다시 좀비들의 포위망을 뚫고 해안 도로를 타고 올라가서 강릉으로 무사히 빠져나갈 것이다.
쿵! 쿵! 쿵!
악몽 속의 악몽에서 바리케이드가 뚫리지 않았던 것처럼, 악몽 속의 저 철제 펜스도 무너지는 일 따윈 없겠지.
쿵! 쿵! 우지끈!
“……음?”
펜스가 무너졌다.
놈들이 온다.
놈들이 온다.
놈들이 온다.
백도진은 수십, 수백, 수천 개의 눈깔이 자신 하나를 지켜보고 있음을 눈치챘다.
삽시간에 달려든 놈들이 내뻗은 무수한 손이 자신을 붙잡고, 잠시나마 감각이 무뎌졌던 팔과 다리를 사정없이 찢고, 살점이란 살점은 모조리 물어뜯고 할퀴는 그 순간까지도.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 자신의 머리 위에 감시 카메라를 부착한 UFO가 날아다니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