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수복기 (18)
포항은 장기간 농성을 하며 버티기에 그리 적합한 도시가 아니다.
국가 간의 전쟁이 발발한 상황이라면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 도시가 외부의 지원을 받기도, 또 배를 이용해 비전투 민간인을 국외 도피 시키는 것도 편리할 것이다.
어쩌면 인근 해역에 군함을 주둔시켜 방공망을 형성하여 날아오는 미사일을 격추한다든가, 육지로 포격을 시도해 적들의 진격을 저지하는 것도 시도해 봄 직하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도 손쉽게 인간들의 전술 전략이나 재난 대비책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원리로 변이했는지 알 수 없는 지독한 바이러스 하나를 세상에 풀어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기존의 국가 간 전쟁이 사라지고, 다시 먼 옛날의 군벌이나 제후들이 각자의 영역을 두고 패권 다툼을 벌이던 시절로 회귀해 버렸다.
이제 개인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가까운 편의점이나 마트를 가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야생에서 직접 구해야 한다.
살아남고 싶다면 법과 질서를 지키며 국가가 나를 보호해 주길 기대하는 것보단 차라리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이 되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누군가의 생존으로 이어지기에.
같은 인간과 경쟁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두려워하고, 밤이고 낮이고 인간의 영역을 침범해 오는 좀비 무리들로부터 최대한 숨죽인 채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길 기도해야 한다.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사, 살려 줘…….”
“감염자는 캠프로 복귀할 수 없다는 거 너도 알잖아. 미안하다.”
타앙!
포항 북구 어딘가, 또 한 명의 인간이 삶을 박탈당하고 차가운 지면 위에 스러졌다.
불과 수 초 전까지만 해도 목숨 걸고 지킬 가치가 있는 친한 동료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쏴 죽였다.
골목길 사이로 팽팽하게 조여 오듯 기이한 소리를 흘리는 바람을 등진 채, 홀로 남게 된 남자는 ‘아직’ 깨끗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마른세수를 한 끝에 시야에 들어온 광경은 잘려 나간 팔 한쪽을 천으로 동여맨 채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동료의 시체.
좀비와 사투를 벌이다 오른팔 살점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갈 만큼 크게 물렸던 동료는 재빨리 칼로 자신의 팔을 잘라 낸다는 과감한 선택까지 했다.
좀비에게 물린 부위를 5초 안에 처리하면 좀비로 변하지 않고 생존할 가능성이 있다는 그럴듯한 소문이 그의 생존 본능을 자극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바이러스가 체내에 침투한 순간 아무리 빠르게 처치를 하더라도 감염될 가능성은 굉장히 높았다. 실제로 그의 동료는 조금씩 피부 위로 검붉은 혈관이 도드라지고 숨을 헐떡이며 변이하고 있었다.
좀비에게 살짝 긁히기만 해도 늦든 빠르든 확실하게 감염되는 마당에, 체액 감염이라면 굳이 말할 것도 없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고, 생존자 캠프의 또 다른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미래를 위한 과거의 투자.
그 어떤 말로 포장하더라도 이 끔찍한 현실은 바뀌지 않겠지만, 어쨌든 누군가는 죽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
총을 쏜 그를 원망하듯 뜬 눈으로 사망한 동료의 눈꺼풀을 조심스럽게 닫아 준 남자는 피 묻은 장갑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장갑을 착용했다. 그리고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동료의 유족에게 그의 죽음을 알리기 위한 증거(유품)를 가져다줘야 했고, 또 버려진 구역에서 어렵사리 구해 온 각종 물자, 개인 장비까지 전부 챙겨 가야 이번 달을 버틸 수 있다.
“어쩐지 오늘따라 재수가 좋더라니만…….”
앞서 말했듯이 포항은 농성을 벌이기에 적합한 도시가 아니다. 적과 맞서 싸운다면 작정하고 시가전으로 끌고 들어가는 방법이 있지만 그것도 상대가 인간일 때나 먹히는 법.
이처럼 좀비들이 기어코 인간의 영역까지 기어들어 오면 결국 손해를 보는 건 그들 같은 인간이다.
대구는 물자도 풍족하고 사람도 많은 데다 천혜의 요새 같은 자연 환경 덕분에 좀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습격해 와도 굳건하게 버틴다던데, 포항은 이미 북구 생활권을 90% 가까이 상실한 지 오래다.
좀비의 침입을 막으려면 놈들을 시가지에 들이지 말고 최대한 외곽에서부터 방어선을 형성해야 하는데, 포항은 대구만큼 단결되어 있지 않았다.
도시 내의 혼란을 수습하고 민간인의 무질서한 행동을 통제하고 생활의 전반을 책임지는 정치 세력이나 군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남고자 하는 자들로 한가득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포항의 항산강을 기준으로 도심 생활권과 남구 생활권을 나눠 패권 다툼을 하는 미친놈들이 수두룩한데, 누가 총대를 메고 이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여 대동단결을 이끌 수 있단 말인가.
남자는 괴로운 표정으로 동료의 장비와 물자를 챙기면서도 곧 포항 북구 전역이 좀비 혹은 외부 세력에 의해 몰락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태 초기부터 버려진 포항 북구에서 주인 없는 물자를 주워다 교환하거나 내다 파는 길거리 청소부(SCAV/Scavenger) 노릇을 하고 있었으니 남들보다 사태 파악이 빠른 것은 당연했다.
“이번에 크게 한탕하면 이제 스캐브 짓 관두고 대구로 갈 생각이었는데, 빌어먹을.”
사태 초기부터 함께 해 온 믿음직한 동료는 이제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체 어떤 경로로 유입되는 건지 알 수 없는 좀비들이 꾸역꾸역 포항 북구를 장악하고 있다. 옆 동네 대구를 못 먹으니 포항이라도 집어삼키겠다는 심산인 것일까.
남자는 회수한 장비를 커다란 백팩에 담아 짊어진 뒤 조심스럽게 자리를 떴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진 탓에 자신들 같은 스캐브들의 행동 반경과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다행히 포항은 특유의 기후 덕분에 발목이 푹푹 잠길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 아니라 아차 하는 순간에 고립될 위험이 적다.
문제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요소는 좀비에게도 도움이 될 여지가 있다는 거다.
“아아아아, 으으으으응!”
반쯤 갈라진 턱을 축 늘어뜨린 채 기괴한 신음을 흘리며 터벅터벅 걸어다니는 좀비들. 일단 인간을 포착하기만 하면 사흘은 굶은 사람처럼 미친 듯이 달려든다.
‘벌써 여기까지 왔다고?’
다른 스캐브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좀비들의 어그로를 최대한 분산시켰다고 생각했건만, 남자는 자신이 서 있는 골목길 인근까지 기어들어 오려는 좀비의 기척에 숨소리를 최대한 죽였다.
요 근래 좀비들이 계속 포항 북구로 유입되는 것도 문제지만, 스캐브들의 피신처나 물물 거래소를 관리하는 중소 규모 거점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최근 총성이나 폭음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중립 지역(회색 지대)의 사람들이 점점 모습을 감추는 기현상이 이 상황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남자는 이곳에 가만히 서서 복잡한 생각이나 하기보단, 일단 움직이는 게 낫겠다 싶어 좀비의 신음 소리로부터 최대한 멀어졌다.
자신은 이 근방 지리를 잘 알고 있으니 운이 좋으면 좀비들에게 들키지 않고 무사히 도심 생활권으로 복귀할 수 있을 터.
달그락.
발에 채는 돌멩이도 아니고, 백팩 속에 한가득 들어 있는 물자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도 아니다.
이질적인 소음이 자신의 퇴로 앞에서 들려왔음을 인지하자마자 남자는 권총을 뽑아 들었다. 여기서 더 총성을 내면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위치가 확실히 특정되어 좀비들에게 쫓기겠지만 어쩔 수 없다.
‘최대한 깔끔하게 머리 한 방 맞히고 전력 질주 해서 벗어난다.’
곧 코너에서 달그락거리는 기이한 소음을 흘리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남자를 당황케 했다.
매우 사나운 도사견을 통제할 때나 사용할 법한 금속 구속구를 전신에 액세서리처럼 착용하고 있는, 신장 2m는 훌쩍 넘어 보이는 거구의 좀비가 하나뿐인 눈알을 데구르르 굴리며 육중한 발걸음을 옮겼다.
눈과 귀를 제외한 나머지 부위는 모두 금속 구속구로 가려진 좀비는 움직일 때마다 쿵쿵 하는 소리와 금속 구속구들이 부딪치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끊임없이 자아냈다.
“아아아아아, 으으으응!”
조금 전 들었던 또 다른 좀비의 신음성과 매우 흡사한 소음을 흘린 ‘그것’은 총알이 관통된 흔적으로 보이는 구멍에서 검은 피와 진물을 질질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거구의 좀비와 남자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포항 북구에서 인간의 영역이 한 명분만큼 더 사라진 것은 확실했다.
폭발적인 각력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온 거구의 좀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솥뚜껑만 한 손을 뻗어 남자의 머리통을 움켜잡았다.
할퀴어서 감염시키거나, 붙잡아 당겨서 물어뜯어 감염시키려는 일반적인 좀비들과는 확실히 궤를 달리하는 움직임이었다.
머리통이 잡히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옆으로 몸을 던진 남자는 ‘최대한 깔끔하게 머리 한 방만 쏴야지’ 하고 다짐했던 것은 잊어버리고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연달아 실린더가 회전한 .38 구경 리볼버는 화약의 힘을 빌려 두툼한 납탄을 토해 냈다.
지금껏 수많은 인간(주로 약탈자나 배신자) 혹은 좀비들의 머리통을 터뜨려 왔던 .38 구경 리볼버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버린 그의 동료처럼 믿음직스러웠으나, 이번에는 운이 좋지 않았다.
머리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는 금속 구속구를 뚫지 못한 탄환이 티이잉! 하고 요란하게 도탄되는가 하면, 거대한 몸뚱이에 박힌 탄환은 제대로 관통조차 하지 못하고 파묻혀 버렸다.
실질적인 대미지는 0. 이로써 남자가 생존할 가능성도 똑같이 0에 수렴하는 결과를 낳았다.
“아아아아아, 으으으으으으으으응!”
자신의 몸에 가해진 충격을 느낀 탓일까, 아니면 눈앞의 먹이가 쉽게 잡혀 주지 않고 난동을 부린 탓일까, 어느 쪽이든 지금 이 상황이 기괴한 좀비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분명했다. 마음이 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남자가 무거운 백팩까지 내팽개치며 도망치려 했지만, 좀비가 한발 빠르게 긴 리치의 팔을 내뻗어 남자의 머리통을 움켜쥐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꼬챙이인지 지퍼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금속 구속구를 잡아당겨 닫혀 있던 복부를 개방했다.
복부 안에 손을 넣어 뒤적거리던 좀비는 이내 무언가를 꺼내 들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필사적으로 발악하고 있는 남자의 복부에 쑤셔 박았다.
“우욱?! 우우우우우우우우웁?!”
곧 그 남자의 복부 안쪽도 장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비워지고, 새로운 ‘무언가’로 가득 차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몸소 느끼게 될 테니까.
안타깝게도 오늘 그의 재수는 그 어떤 날보다 좋지 않았다.
* * *
남부 지방에 살다 보면 생각보다 눈 구경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겨울에 발목 높이 이상으로 쌓인 눈 구경을 하고 싶다면 못해도 경북 지역까지는 올라가야 하고, 그곳에서 내리는 눈도 대부분 진눈깨비가 고작이다.
어쩌면 발이 잠길 만큼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씨는 남부 지방 사람들에게 있어서 특별한 이벤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새하얀 똥 만지는 게 뭐가 그리 좋다고, 눈사람이나 눈 오리 만들어서 SNS에 올려 대는 사람들을 볼 때면 괜스레 우스워 보이곤 했었다.
진짜 성인 남성 신장만큼 눈이 쌓이는 미친 광경을 목격해 봐야 ‘아! 지금 내리는 건 오늘의 내가 치우고, 내일의 내가 또 치워야 하는 똥이구나!’ 하고 생각할 텐데.
차치하고, 내가 왜 남부 지방에선 구경하기도 힘든 새하얀 똥 얘기를 하고 있느냐면.
“사장 오빠, 눈 위에 팥 앙금이랑 연유랑 과일 얹어서 퍼먹고 싶지 않아요? 난 하루 종일 퍼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서라, 야생에서 식수 구하기 어려울 땐 눈을 끓여 먹기도 한다만, 기본적으로 우리 시대에 내리는 눈은 더럽다.”
“그것 좀 먹는다고 안 죽어, 아재!”
“죽지야 않겠지! 배탈 나서 하루 종일 화장실에 처박혀 있겠지!”
내 양옆에서 한동석과 진가희가 눈은 먹을 수 있다 없다를 두고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똥인지 눈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아는 진가희나, 똥을 끓여 먹는 게 무조건 낫다는 한동석이나 내 입장에선 오십보백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둘 다 창원에 두고 올 걸 그랬네요.”
“에이, 또 그런 말 하신다. 나 같은 천생 엽사들은 책상머리 앞에 앉혀 두면 1시간도 못 버팁니다, 사장님. 저 기지배는 책상머리 앞에 좀 앉혀 놓을 필요가 있어 보이지만.”
“하! 아재가 정신 수양이란 걸 해 보긴 했어? 난 검도장에서 하루에 몇 시간씩 명상도 했었거든?”
“거짓말 하지 마, 이 기지배야. 내가 장담하는데 넌 하루 10분 명상도 못 버텼을 거다. 그리고 정신 수양하면 검도보단 사냥이지. 사냥감 하나를 잡기 위해서 하루고 이틀이고 버틸 수 있는 게 바로 나 같은 프로 엽사들이라고.”
“그럼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 내기해 봐?!”
“어이구 무서워라~ 내기해! 해!”
아오 시끄러워. 내가 미군 야전 부대 긴빠이를 하려고 데리고 다녔던 지옥의 3인조도 이렇게 시끄럽지는 않았는데. 젊디젊은 내 모발에 흰머리가 조금씩 나타나는 건 사실 이 두 사람 때문일지도 모른다.
“둘 다 그만 떠들고 앞이나 제대로 봐요. 곧 울산에 도착할 것 같으니까.”
좀비 사태 초기에 부산이 순식간에 함락당하면서 마찬가지로 큰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또 하나의 음울한 도시, 울산이 우리를 반겨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