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수복기 (11)
“다시 말해 봐.”
“사, 사냥하러 나갔던 주력 전투원들이 전부 당했습니다…….”
심호연은 눈앞에서 덜덜 떨며 말 같지도 않은 보고를 하는 단원을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나더러 훈련받고 무장까지 갖춘 단원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서 사냥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전멸당했다는 미친 얘기를 믿으라고?”
“…….”
“단원들 훈련도가 부족했나? 무장 수준이 형편없었나? 아니면 하다못해 싸울 의지가 없기라도 했나?”
“그건 아닙니…….”
“그게 아니면, 개새끼야! 네 말은 지금 우리가 지려야 질 수 없는 싸움을 졌다는 건데,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주, 중간까지는 확실히 우리가 몰아붙이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 이상하게 생긴 장갑 차량을 시내 구석으로 몰아넣으면서 처리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었는데…….”
“내가 지금 여자친구한테 스윗하게 말하는 것처럼 ‘했었는데?’ 하고 되물어 봐야 하나?”
심호연이 급기야 권총을 뽑아 들자 단원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중간부터 일이 틀어졌습니다. 시내 곳곳에 배치해 둔 눈과 귀가 갑자기 암살당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측 정보망을 상실했습니다.”
“정보망을 상실했다고 해도 당장 쫓고 있던 놈들을 잡아 족치기엔 충분했을 텐데?”
못해도 300명 이상의 단원들이 동원된 역대급 규모의 ‘인간 사냥’이었다. 시내 곳곳에 미리 배치해 둔 눈과 귀를 포함하면 당연히 규모는 더 커진다.
비록 부비 트랩으로 먼저 피해를 입히고 기습적으로 좀비 떼까지 풀면서 게릴라전으로 승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들은 정규군과 싸워 이기지 않았던가? 덕분에 사기도 상당히 높은 상태였다.
심지어 어디 후진국의 반군처럼 가내 수공업으로 만든 구닥다리 총기로 무장한 것도 아니고, 군수업체에서 전문적으로 찍어 낸 성능 좋은 무기로 무장하지 않았던가.
사기도 높았고 무장 수준도 나쁘지 않았다면 남은 패배 요인은 훈련 부족으로 인한 오판 혹은 실수 남발일 수밖에 없다.
아니, 설령 그런 상황을 고의적으로 연출했다고 해도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애초에 싸움으로 성립할 수도 없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대놓고 ‘사냥’이라는 단어까지 썼는데, 이건 마치 총을 든 사냥꾼이 사냥개 여러 마리를 끌고 가서 토끼한테 패배했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놈들의 머릿수는 잘 쳐줘도 대여섯 정도라고 하지 않았나? 혹시라도 각성자일 가능성이 있으니 우리도 각성자를 내보냈고.”
각성자가 유용하다는 건 좀비 사태 초기부터 인지한 사실이지만, 그래 봤자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총 한 방 맞으면 죽는 건 똑같았으니까.
압도적인 물량과 화력으로 밀어 버리면 제까짓 놈들이 아무리 대단해 봤자 바람구멍 송송 뚫려서 뒈질 터.
그래도 놈들 중에 그 ‘북진군’ 출신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이미 놈들의 게릴라전에 역으로 당한 전적이 있으니까, 그래서 이쪽도 최소한의 방어 병력만 빼고 모든 전투원들을 내보냈던 것 아니었나?
사실상 9할에 달하는 전력을 동원했으면 하다못해 큰 피해를 입더라도 이기고 돌아와야 정상인데 역으로 전멸이라니?
심호연은 진지하게 부하들이 자신에게 철 지난 만우절 농담이라도 하는 것 아닌가 의심했다.
차라리 만우절 농담이었으면!
하지만 내년 만우절이 오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고, 부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보고에 의하면 우리 측 단원들을 전멸시킨 것은 그 장갑 차량에 탑승한 적들이 아닌 다른 무언가였습니다. 사람도, 좀비도 아닌 무언가가 우리 단원들 이상의 압도적인 화력을 동원해 역으로 찍어 눌렀다고 합니다.”
“정규군 놈들도 무장 수준은 나쁘지 않았지만 놈들이 동원할 수 있는 화력은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어디서 전차를 끌고 온 것도 아니고, 미사일이나 포탄으로 폭격을 때려 부은 것도 아니었어. 물자가 부족해서 창원까지 기어들어 온 놈들이 그 정도였는데, 우리보다 더 막강한 화력을 보유한 제3의 집단이 갑작스럽게 뿅 하고 나타나서 우리 애들을 조졌다? 소설도 그따구로 쓰면 욕 먹어, 이 새끼야.”
철컥.
보고를 올리던 부하의 미간에 총구를 들이밀자 그도 억울하다는 듯 필사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단원들이 방심을 하더라도 그런 소수 세력을 상대로 질 리가 없다는 건 지부장님을 포함해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그럼에도 단원들이 전멸했다는 건, 적들에게 그만한 수의 단원들을 전멸시킬 만한 압도적인 화력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당연히 훈련받고 무장까지 한 전투원 수백 명을 전멸시키려면 그만한 화력이 필요한 법. 문제는 ‘그만한 화력’이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냐는 것이다.
각성자가 아무리 강해도 베이스는 자신들과 같은 인간. 각성자의 능력이 집단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소수의 각성자가 수백의 무장 세력을 일거에 전멸시킬 만한 오버밸런스적인 능력을 가졌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 각성자가 흔했다면 벌써 좀비들을 싹 전멸시키고 대한민국을 재건했겠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총을 거둬들인 심호연은 남아 있는 인원을 둘러보았다.
지금 이 회의실에 모인 인원과 병원을 지키고 있는 소수의 방어 병력까지 다 합쳐도 50명이 채 안 된다.
이들을 데리고 최소한의 물자만 챙겨서 ‘본대’가 있는 강원도로 후퇴하는 것이 가능한가?
‘경상도권이 타 지역에 비해 안전하다는 전제로 움직인다면, 올해가 끝나기 전에 어떻게든 강원도에 도달할 수 있다.’
그전에 적들이 가지지 못하도록 주요 군수공장을 불태우고 노예 겸 포로로 붙잡아 둔 공장 직원들을 싹 죽인다면 일정은 훨씬 더 늦어진다.
하지만 이미 크게 잃은 마당에 남이 먹게 될 밥에 침 뱉고 밥상까지 엎고 간다면 억울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 같다.
“창원은 포기한다. 최소한의 물자와 중요 자료만 챙겨서 강원도로 후퇴한다. 그래도 놈들에게 엿은 먹여야 하니 남아 있는 애들 동원해서 공장 못 쓰게 만들어 놔.”
“직원들도 싹 다 입막음합니까?”
“당연하지.”
자신들이 직접 관리하던 주요 공장들은 비상 발전기에 아까운 연료를 넣어 가면서 어찌어찌 라인을 돌렸었다.
당연히 라인을 돌리는 건 그쪽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만큼, 사태 초기부터 붙잡아 둔 공장 직원들이 제법 된다.
대충 공장에 가둬 두고 불 지르거나 폭파시켜 버리면 알아서 뒷처리도 되고, 자신들의 자리를 낼름 집어삼키려는 적에게 작게나마 엿을 먹일 수 있다.
비록 싸움에서 진 개 신세가 되어 창원에서 물러날지언정, 헬조선의 교관들에게 배워 온 악바리 근성만큼은 조직의 고위 간부가 된 지금도 잊지 않았다.
-싸울 수 없다면 물러나는 것도 하나의 전술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거나 적에게 피해를 입힐 기회가 있다면 망설이지 마라.
다시 한번 그때의 가르침을 상기하며 철수를 준비하던 그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건물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울려 퍼진 총성은 그 심각성이 궤를 달리한다.
심호연은 홀스터에 권총을 집어넣으려다 다시 꺼내 들었다.
좀비 사태 초기에 자신들은 딱히 좀비를 사냥하지 않았다.
혼란을 틈타 누구보다 빠르게 무기부터 확보하고 무방비한 공장과 몇몇 거점을 제압해서 그대로 틀어박혔으니까. 대략 일주일 정도 기다린 후에야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었다.
덕분에 창원 지부 소속 단원들 중 각성자 비율은 굉장히 적었지만, 그래도 다들 스스로를 각성자보다 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런 세상이 되기 전부터 훈련과 교육을 받았으며, 경찰에게 쫓기고 교전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필 이런 상황에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채도 덜덜 떨면서 주저앉을 만큼 나약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탕! 타탕! 탕!
희미하지만 똑똑히 들려오는 총성.
보통 제압 사격은 상당히 많은 총알을 낭비하니 이보다 더 많은 총성이 울려 퍼져야 정상이다.
총성이 적게 울려 퍼지고 뚝뚝 끊긴다는 것은…….
‘침입자 제압에 성공했거나, 아니면 방어 병력이 다 죽었거나.’
심호연이 가까운 곳의 단원에게 눈치를 주자 그가 조심스럽게 권총을 들고 문을 열어 복도를 확인했다.
더 이상 총성이나 시끄러운 고함 소리 같은 건 들려오지 않았다. 한겨울의 추위를 동반한 바닷바람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그들의 숨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 지경이었다.
당장 침입자가 이곳으로 오지 않았음을 확인한 심호연은 남은 인원에게 수신호를 전달했다.
다 같이 사주 경계를 철저히 하며 병원 뒤쪽 주차장으로 빠르게 이동해 조용히 빠져나간다는 심플한 계획이었다.
그곳에 차량이 있으니 아직 누가 건드리지 않았다면 탈출할 기회가 있다.
곧 단원들이 각자의 무장을 치켜든 채 조심스럽게 복도로 빠져나가고, 마지막으로 심호연과 간부진이 회의실을 나섰다.
그때 복도 끝자락 코너에서 사람 같은 것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커흐으으……!”
그것은 피투성이가 된 단원이었다.
좀비는 아니고, 그저 큰 부상을 입어서 제 발로 걷는 것조차 기적처럼 보이는 그의 몰골에 단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꼴이 말이 아닌 동료에게 차마 총을 겨눌 수 없었던 단원들의 총구가 조금 흐트러졌다.
큰 부상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이 뛰어와 사람을 덮치는 좀비라면 또 모를까,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한솥밥 먹으며 단체 생활을 하던 동료 아닌가.
하지만 심호연은 무언가 이질감을 느끼고 재빨리 총구를 들어 올렸다.
“미친 새끼들아, 총 들어! 목덜미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놈이 어떻게 제 발로 걸어서 여기까지 와?!”
목이 반쯤 베인 채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초인적인 정신력을 가진 사람도 저런 부상을 입고 혼자 돌아다니지는 못한다.
하지만 심호연의 경고는 너무 늦었고, 신음을 흘리며 어색한 걸음걸이로 걷고 있던 단원의 몸이 갑자기 무언가에 등을 밀린 것처럼 몸이 꺾였다.
뒤늦게 단원들이 총을 들어 발포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시체’를 앞세운 무언가는 순식간에 긴 복도를 주파해 그들 앞에 당도했다.
그것은 성인 남성에 비하면 다소 왜소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장검을 보유한 여자였다.
일합에 총을 들고 있던 단원들의 머리통이 깔끔하게 베여 나간다.
수확철이 된 과수원의 열매들도 이보다 더 쉽게 따이지는 않으리라.
타타타타타! 스컥!
“아아아악! 내 팔이이이이?!”
인간과 각성자, 좀비는 근본적으로 같다.
인간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좀비로, 사태 초기에 그 좀비를 죽였다면 각성자로.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총을 맞으면 죽는다는 것이고, 결국 전문적으로 총을 다룰 수 있는 인간이 가장 강하다는 논리를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심호연은 ‘각성자도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치부하며 모든 단원들은 평등해야 한다는 헬조선 내의 규율을 칼같이 지켰던 것을 후회했다.
만약 각성자를 일반 단원보다 좀 더 높게 대우했더라면.
그 많은 좀비들을 공장 창고에 가둬 두지 않고 각성자들의 경험치로 배분해 주었더라면.
각성자들을 좀 더 다양한 전투에 써먹을 수 있는 전술 전략을 강구했더라면.
그랬다면 총화기는커녕 칼 한 자루만 달랑 들고 있는 여자한테 이렇게 떼 몰살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단원들의 목과 사지가 연두부처럼 허무하게 잘려 나가는 것을 보며 심호연은 필사적으로 눈을 돌리고, 권총의 총구 방향을 틀었다.
저 움직임을 눈으로 좇아야 한다.
좇을 수 없다면 하다못해 예측이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아.”
흡사 잔상을 남기는 듯한 귀신같은 움직임을 좇아 간신히 총구를 겨눴다고 생각한 순간, 권총을 쥔 그의 손은 이미 핏방울과 함께 허공을 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