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수복기 (10)
탕!
“카학?!”
김진경 경장은 장갑 구급차의 총안구 틈새로 권총을 발포했다.
바이크를 타고 세기말 약탈꾼처럼 변한 적이 장갑 구급차에 맹렬히 따라붙었던 것이다.
적들은 개인 화기로는 장갑 구급차에 흠집도 낼 수 없다는 걸 인지하고서, 장갑 구급차를 파괴할 수 없다면 최소한 발목을 묶어 붙잡겠다는 각오로 달려들었다.
흡사 매머드를 사냥하는 고대 원시인들처럼 몸을 아낌없이 내던지는 그들에겐 단순한 분노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좀비 사태가 발발하기 전에도 종종 테러리스트의 악랄함에 대한 정보를 접한 적은 있었지만, 세상이 이 지경으로 변하고 나니 한층 더 흉포해진 것 같군.’
좀비 사태가 발발하기 전에는 그래도 최소한의 법치와 질서가 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었다.
비록 그 당시 현역 군인 대부분이 한반도 북부에서 러시아와 중국군을 견제하고 복구 작업에 동원되었기 때문에 국내 치안 문제는 대부분 경찰에게 맡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경찰들은 나름 최선을 다했다.
부족한 지원, 부족한 인력, 부족한 정보 속에서도 악착같이 테러리스트와 각종 범죄자들을 쫓고 수사했으며, 피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제압하거나 잡아들였다.
만약 김진경 본인이 꼬꼬마 순경에서 경장을 단지 얼마 안 된 젊은 경찰이 아니라, 특공대나 형사였다면 훨씬 더 험한 꼴을 봤을지도 모른다.
‘기껏해야 신고받고 출동하거나 치안 순찰이나 하는 게 전부였던 내가 지금은 현대판 보안관이란 말이지.’
갑작스럽게 좀비 사태가 발하고, 운 좋게 각성자가 되면서 너무나도 많은 것이 변했다.
당장 앞에서 힘겹게 운전대를 잡고 있는 채성아만 해도 원래는 병원에서 시달리던 평범한 간호사 A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탕! 탕!
“카하아아악?!”
“순창아! 이 개새끼가! 죽어어어어어!”
퍼버버벅!
어차피 총탄 따위 먹히지도 않는데 동료의 원수를 갚겠다며 소총을 마구 난사하는 적. 당연히 전방 주시를 제대로 할 리가 없으니 부서진 잔해와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도로 한복판에서 그대로 미끄러져 어디론가 날아갔다.
굳이 총을 쏘지 않아도 저 광기 어린 집단이 폭주족처럼 위험천만한 곡예를 펼치며 바이크를 몰고 접근하면, 어느 순간 뭔가를 들이박고 눈앞에서 사라지거나 문자 그대로 도로 위에서 갈려 나가곤 했다.
더욱 무서운 점은 바로 코앞에서 동료들이 그렇게 죽어 나가도 놈들은 성난 원숭이 떼처럼 더욱 격정적으로 날뛴다는 것이다.
무심하게 총을 쏘고 싶어도 대체 무엇이 사람을 저 지경으로까지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처단해야 할 악인들이 분명함에도 방아쇠를 당기는 김진경이 오히려 자괴감을 느낄 지경이었다.
철컹! 끼이이이이이!
“됐어! 걸렸다!”
“더 걸어! 더! 지부장님이 저 새끼들 잡아서 산 채로 가죽을 벗기고 좀비 우리에 던져 넣겠다고 하셨으니까!”
‘이런.’
김진경의 사격 솜씨는 분명 이승권과 한동석도 인정할 만큼 대단했지만, 그렇다고 시야각이 한정된 장갑 구급차 안에서 모든 외부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의 리더인 이승권은 지금 하늘의 눈이 되어 최적의 도주 루트를 알려 주느라 바쁜 상황이다. 그것뿐이라면 차라리 함께 장갑 구급차에 탑승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으련만, 그가 ‘그것만’ 준비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도주 루트도 창원 시내를 빙글빙글 도는 루트다. 나와 채성아 씨가 잠깐의 시간을 버는 동안 병원장님도 따로 뭔가를 하고 있는 게 분명해.’
이승권은 비록 귀찮고 지루한 일은 전부 자신들에게 떠넘기는 몹쓸(?) 인간이었으나, 일단 이쪽에서 신뢰하고 따르기만 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와 보상을 약속하는 승리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채성아 씨! 장갑 구급차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아직 버틸 만해요! 내구도는 76% 정도 남았어요! 그보다 체인이 걸려서 속도가 살짝 떨어지는 것 같은데 어떡하죠?!”
“그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거점 방위자인 그들은 거점 내 방위 무기나 특정 설비, 아이템을 대리 사용하거나 내구도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승권은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장갑 구급차를 두 사람에게 맡겼으니, 김진경은 장갑 구급차의 내구도가 50% 이하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이 도주극을 지속시켜야 할 책임이 있었다.
‘후우, 후우, 겁먹지 말자.’
상점창에서 구입한 최신형 방탄복도 입었고, 방탄복 안에 세라믹 방탄판도 넣었다. 이 정도면 소총탄 몇방 정도는 맞아도 너끈히 버틸 수 있다.
게다가 이 도주극을 시작할 때부터 채성아가 약재 조합 스킬로 만든 ‘신체 능력 증진제’ 덕분에 부상 방지, 출혈 억제, 고통 경감, 근력 증강 같은 각종 버프를 몰아 받은 상태다.
막말로 머리통이 꿰뚫려 즉사하지만 않는다면 지금 가장 안전한 건 김진경 본인이었다.
그래도 눈먼 탄은 개인 사정 따윈 봐주지 않고 날아드는 법이니, 김진경은 장갑차 상부 큐폴라를 열고 몸을 내민 것과 동시에 차량 지붕에 걸린 체인을 권총으로 쏴서 박살 냈다.
신속 정확한 짜장면 배달부 같은 사격 솜씨에 놈들이 힘겹게 걸었던 체인이 풀리고, 장갑 구급차가 다시 우렁찬 엔진음을 토해 냈다.
하지만 적들도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려 버린 김진경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타타타타! 퍼엉!
그 짧은 시간에도 무수한 소총탄이 날아들고, 일부는 어디서 구했는지도 모를 유탄 발사기를 들고 공중 폭발을 노렸다.
이승권의 영역 및 거점 내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은 내구도가 특정 구간 이하로 손상되지 않는 한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는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40mm 고폭 유탄이 날아들어 차량 근처에서 폭발한다고 해도, 타이어가 터지거나 방탄유리에 금이 간다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내구도가 50% 이하로 떨어진다면? 그때부턴 긴급 수리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손상을 입기 시작한다.
“현재 장갑 구급차 내구도 65%!”
채성아가 남성 못지않은 격한 외침으로 다시 한번 브리핑을 했다. 우악스럽게 운전대를 잡아 돌리는 그녀의 팔뚝에선 뜨거운 김이 새어 나오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주사 맞기 싫다는 사람을 저 무시무시한 팔뚝으로 제압하는 건가. 절대 채성아 씨를 자극해선 안 되겠군.’
그녀가 사용하는 컴파운드 보우는 딱히 아이템도 아니고 스킬의 보정을 받는 것도 아닌데 유독 위력이 상당했었다. 저런 백만 불짜리 팔뚝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런 위력이 나올 만했다.
짧은 시간에 날아든 총탄이나 유탄보다 운전석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팔뚝에서 더한 위협을 느낀 김진경은 말없이 재장전을 했다.
아직 도주극을 끝내도 좋다는 이승권의 귓속말(진짜 귓속말처럼 속삭인다.)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장갑 구급차의 내구도가 50% 이하로 떨어지기 전에 본인이 직접 나서서 몸으로 때워야 한다.
“채성아 씨! 약점 공유 가능합니까?!”
“지금 해 드릴게요!”
채성아가 약점 공유 스킬을 시전하자 현재 적대하고 있는 모든 적들의 약점이 실시간으로 김진경에게도 공유되었다.
시야에 표시된 반투명한 붉은 점들은 모두 적성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약점들이었다. 게임으로 치면 화면 HUD에 표시되는 강조 포인트 같은 것이라 심하게 거슬리지도 않았다.
‘거기에 내 전투 자극과 고가치 표적 지정 스킬을 동시에 시전한다.’
전투 자극은 모든 아군의 신체 능력 스텟 수치를 1단계 상승시키는 스킬, 그리고 고가치 표적 지정은 김진경이 직접 지정한 적성체에게 추가 피해를 입히면서 처치 시 추가 보상도 획득할 수 있는 효과를 자랑했다.
특히 채성아의 약점 공유와 김진경의 고가치 표적 지정은 같이 사용하면 그 효과가 배로 증가했다. 약점이 드러난 적들의 정보를 파악한 김진경이 가장 중요한 적을 고가치 표적으로 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 자신들을 뒤쫓고 있는 추격대 중에서 가장 레벨이 높고 먼저 처리해야 하는 각성자 같은 존재들.
1순위 처리 대상을 확인한 순간 김진경은 이승권이 그랬던 것처럼 방탄 방패를 앞세우고 장갑 구급차 후문을 열어젖혔다.
표적 확인, 조준, 발포, 연이은 속사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1초 남짓.
탕! 탕! 탕! 탕! 탕!
그가 리볼버의 모든 탄약을 뱉어 냈을 때, 멍한 표정으로 미간이 꿰뚫린 채 허공을 날고 있는 적들은 정확히 소모된 탄약 수와 일치했다.
전투 자극 스킬과 본연의 스텟, 그리고 사격 스킬의 보조 등등. 끌어낼 수 있는 모든 이로운 효과를 더하니 그의 속사 능력은 흡사 귀신과도 같았다.
여기서 다 능력을 끌어 올린다면 0.3초의 벽을 돌파해 0.2초 만에 모든 탄약을 소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의 0.1초에 도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
-현재 우호 지역에 진입했습니다.
-우호 지역은 퇴역병과 거점 방위자, 거점 일원 모두에게 신체 능력을 ++ 하는 효과가 적용됩니다.
“!”
방탄 방패로 탄환 세례를 버티면서 재장전을 하고 있던 그의 시야를 차지한 건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이승권의 원호였다.
그가 직접 뭔가를 해 준 것은 아니지만, 창원이 우호 지역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병원장님이 창원 시내 일부를 영역으로 지정했다!’
이승권이 부산역의 사례처럼 창원의 중요 거점을 확보해서 창원 전체를 우호 지역으로 바꾼 것이다.
전투 자극에 이어 우호 지역 버프까지 받은 김진경의 근력과 반응 속도는 같은 각성자조차 지레 겁먹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상승했다.
그 어떤 인간도 넘은 적이 없다던 패스트 드로우 0.2초의 벽?
김진경은 너무나도 쉽게 0.1초대를 돌파했다.
상대가 김진경의 총구를 보고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총알이 날아들어 미간에 박히는 기염을 토해 내고, 한술 더 떠 차량으로 날아드는 유탄을 허공에서 적중시켜, 유탄이 도달하기도 전에 공중 폭발을 유도하기까지 했다.
-마지막 코너예요. 거기서 한 번 꺾고 쭉 직진하세요.
그때 귓가로 들려온 이승권의 명령에 채성아는 거침없이 핸들을 꺾었다.
장갑 구급차와 그 뒤를 바짝 쫓는 추격대가 도달한 골인 지점은 온갖 거점 방위 무기들이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공장 부지 한복판이었다.
-체크메이트.
살짝 들뜬 것 같은 목소리를 끝으로 김진경과 채성아는 장갑 구급차 문을 닫고 틀어박혔다. 그리고 귀를 막았다.
부나방처럼 자신들을 쫓아, 제 발로 함정의 가장 밑바닥에 내려온 적들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저들이 가진 것보다 훨씬 더 많고 강력한, 그야말로 압도적이라는 표현 외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는 무자비한 화력이 폭풍처럼 덮쳐들었으니까.
기관총, 기관포, 박격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적들의 발밑에서 난데없이 지뢰가 폭발하고, 머리 위로 폭발물을 탑재한 UCAV가 미사일처럼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다.
저들이 공장에 좀비 떼를 숨겨 두고 사냥개처럼 풀었던 것처럼, 공장 문을 박차고 나온 것은 양팔에 기관총을 달고 있는 경비 로봇들이었다.
쏘고, 태우고, 터뜨리고, 분쇄하고, 도륙하고, 갈아 버린다.
생명체가 가진 최소한의 존엄성도 지켜 주지 않겠다는 듯, 한없이 무기질적인 금속 덩어리들이 생명으로 가득 찬 살덩어리를 철저하게 유린했다.
분명 이 공장 부지는 자신들의 영역이었을 텐데.
이곳을 지키고 있던 자신의 동료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무슨 SF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자동화 무기들이 미쳐 날뛰고 있단 말인가.
적들이 그렇게 울부짖는 것도 당연했다.
이승권이 지금까지 창원 내부에서 영역을 확보하지 않은 건, 혹시라도 섣불리 영역을 확보했다가 허무하게 망가져서 두 번 다시 영역화하지 못 할까 봐 걱정했던 것뿐이다.
하지만 방해꾼도 없는 빈집을 손에 넣었다면 그다음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한때 저들의 사랑스러운 거점이었던 것은 이제 이승권이라는 금발 태닝 양아치의 손에 넘어갔다.
자기 집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사실은 자기 무덤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비통하고 억울할까.
자업자득이다.
테러리스트 따위가 되지 않았다면, 하다못해 좀비 사태가 벌어지고 세상이 망했을 때 최소한 인간의 도리만은 지켰더라면, 적어도 대구처럼 좋은 지역 동맹 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최악의 선택을 한 것도, 최악의 결과를 맞이한 것도 전부 저들의 책임이다.
총성과 폭음이 완전히 멎었을 때, 김진경은 딱히 저들을 위해 명복을 빌지는 않았다.
기억에 남겨야 할 소중한 이들과 그럴 가치도 없는 쓰레기들 정도는 구분해야 한다.
이승권이라면 분명 그렇게 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