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157)화 (158/227)

157화 수복기 (7)

“그러니까 창원에 자리 잡고 있을 정체불명의 세력은 사실 테러리스트 조직일 가능성이 높다, 이겁니까?”

“저보다는 김진경 경장이 더 잘 알고 있을걸요.”

나는 한동석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김진경 경장에게 넘겼다.

애초에 나는 종전 선언 이후 이 사회에 환멸이 나 버려서 근 1년 동안 방구석 은둔자 생활을 했다.

기껏해야 인터넷 커뮤니티와 뉴스를 통해 제한적인 바깥소식을 접했을 뿐, 일상 생활의 대부분을 먹고 놀고 싸는 데 전력을 다했던 잉여 인간이었다.

그냥 ‘그런 놈들이 있다.’ 정도로 알고 있는 나와 달리, 좀비 사태가 발발하기 전까지 현역 경찰로 활동하고 있던 김진경 경장이 아는 게 더 많을 것이다.

“흠흠, 사실 저도 그리 많은 걸 알지는 못합니다. 경찰 업무라는 게 워낙 많다 보니 전문 수사 팀과 그걸 보조하는 팀, 여유가 생기면 상황 보고 지원 나가는 팀 등등, 그때그때 구멍을 메우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김진경은 내심 자신이 미국 LA에서 야구공을 던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야기를 풀고 싶어 하는 남자처럼 목을 풀었다.

“그래도 군대를 제외한 총기 사고와 폭발 사고의 8할은 그 조직이 관여되어 있다는 말은 경찰 조직 내에서도 유명한 말이었습니다. 먼 옛날 산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활동했던 빨치산과 달리, 그들은 일반인으로 위장한 채 어느 날 갑자기 테러리스트로 돌변했다더군요. 게다가 점조직 형태이다 보니 비밀스러운 채팅 어플이나 인터넷 사이트의 암호문으로 지령과 연락을 주고받은 탓에 꼬리를 잡는 것도 굉장히 어려웠다고 합니다. 감시 인력을 아무리 늘려도 항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고가 터졌으니 말입니다.”

“총기 소지 불법 국가가 때아닌 전쟁을 맞이한 탓에 국내에 불법 무기가 어마어마하게 풀렸다는 소식은 나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뒤에도 경찰들의 삼엄한 감시 때문에 엽사 활동을 하기 어려웠지요. 그때 스트레스로 머리 빠졌던 거 생각하면…… 어휴!”

엄연히 허가받고 엽사 활동을 했던 한동석도 경찰들의 감시 대상이었을 만큼 대한민국의 내부 문제가 심각했던 것이다.

종전 선언 이후 찾아온 짧은 평화의 시대가 사실은 시중에 풀린 불법 무기와 범죄자들로 인한 또 다른 전쟁의 서막이었을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동석 씨의 불만도 이해는 됩니다만, 당시 경찰들은 정말 주먹구구식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테러의 진짜 무서운 점은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도 무기의 사용법을 익히고 흑심만 품는다면 사람 몇 명 죽이는 건 일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합법적으로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사람, 혹은 불법과 거리가 가까운 사람, 그밖에도 전문적으로 군사 훈련을 받았거나 그쪽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요주의 대상이었던 겁니다.”

“요는 그 썩을 놈들이 좀비 사태가 터지자마자 창원을 점거했고, 지금 창원에 기어들어 온 사람들을 엿 먹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이거 아닙니까?”

“폭발물을 이용한 부비 트랩이나 좀비를 사냥개처럼 풀어 생화학 공격(감염)을 유도하는 것은 전형적인 테러리스트의 방식입니다. 실제로 첩보를 받고 테러리스트 조직의 본거지를 급습했던 경찰 특공대 친구들이 크게 당한 사례도 몇 개인가 있습니다.”

경찰의 입으로 전해 듣는 경찰 내부 이야기는 제법 흥미로웠다.

경찰은 군대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많이 다른 집단이지만, 폐쇄적인 문화만큼은 서로 닮은 구석이 있어서 묘하게 친근감이 느껴지는 조직이었다.

“한국 경찰은 특히 흉악 범죄자라고 해도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고 현장 사살을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 여럿 죽인 연쇄 살인마나 중국으로 도망치려 했던 장기 밀매범, 마약 범죄 조직원 등등 그런 놈들이 흉기 들고 덤벼들어도 어지간하면 제압 선에서 그치지요. 그런데 일반인인지 테러리스트인지 분간도 안 되는 상황에서 용의자와 피해자가 마구 섞여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어떤 일이 벌어졌을 것 같습니까?”

“2차 피해가 나왔겠죠.”

“예, 실수로 죽이고, 실수해서 죽고, 그런 사례가 쌓이면서 상황은 더 안 좋아지고. 그야말로 악순환의 무한 굴레에 갇힌 겁니다. 결국 좀비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불법 무기를 암시장에서 유통하는 범죄 조직도, 불법 무기로 테러를 자행하는 놈들도 완전히 소탕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이것이다.

차마 거기까지는 말할 수 없었는지 김진경 경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던 한동석은 장갑 구급차 안에서 팔짱을 낀 채 고민하는 듯하다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상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테러리스트 조직이라면 아무래도 우리 같은 소수 정예 각성자가 상대하기는 조금 힘들 것 같은데, 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질문이 날아들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했다. 일단 첫 번째 군수 물자를 성공적으로 획득하기는 했지만, 우리의 목표는 자잘한 군수 물자 회수로 끝나는 게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김해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 창원을 평정해야 한다. 또한 창원뿐만 아니라 다음으로는 포항에도 한번 들러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지역 단위로 인간의 영역을 되찾으면서 한반도의 정세를 안정화시킨다는 게 나의 최종 목적이다.

팀원들 입장에선 기껏해야 다섯 명의 각성자가 좀비 떼도 아니고 악의와 불법 무기로 무장한 테러리스트 조직을 이길 수 있겠냐고 의문을 표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세상에서 빨갱이를 가장 싫어하고, 착한 빨갱이는 죽은 빨갱이라는 명언을 남긴 역사적 위인이며, 빨갱이 때문에 인생을 조진 불쌍한 피해자이기도 했다.

나는 피해자의 눈물이 곧 증거인 대한민국에서 보증하는 피해자 겸 굳건이 1호.

평화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잠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안의 굳건이(다크)가 다시금 깨어났다.

-힘을 원하는가?

아아, 힘을 원해. 빨갱이 스-껌을 조질 수 있는 힘을!

-크큭. 그렇다면 다시 한번 내 손을 잡아라, 이승권. 네게 힘을 주겠다!

그렇게 나는 어둠의 굳건이가 내민 손을 다시 한번 잡았고, 굳건이는 내게 이 상황을 능히 타개할 수 있는 최적의 답을 알려 주었다.

“테러리스트가 가장 잘하는 게 뭡니까?”

“그야…… 테러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도 테러리스트입니다.”

“?”

나는 상점창에서 인원수에 맞게 복면을 하나씩 사서 팀원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다.

“함무라비 법전을 통해 알 수 있듯 인간은 결국 자기가 남한테 저지른 악행을 그대로 당해 봐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족속입니다. 부비 트랩을 설치하고, 좀비 떼를 사냥개처럼 풀고, 불법적으로 손에 넣은 무기로 이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내 넷플러스 복구 계획을 막겠다면, 우리도 그냥 똑같이 해 주면 되는 겁니다.”

“내가 이래서 사장님을 싫어하지 않는 겁니다, 흐흐.”

“민중의 지팡이로서 못다 한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겠지요.”

“사장 오빠가 준 복면 쓰니까 꼭 은행 털러 가는 모양새인데요.”

“털러 가는 게 은행이 아니라 나쁜 놈들 본거지라면 저도 찬성이에요.”

폭풍을 부르는 역지사지 작전이 무사히 입안, 발의, 심의를 거쳐 성공적으로 개정되었다.

사랑과 정의, 우정으로 똘똘 뭉친 이승권 사단이 갑자기 지옥에서 돌아온 암흑의 복면단으로 돌변했다.

나는 장갑 구급차의 엑셀을 거칠게 밟았다.

“우리가 소수 정예 각성자라는 이점을 최대한 살려 보죠.

압도적인 기동성과 대인 전투 능력, 부족한 화력을 커버할 수 있는 막강한 스킬과 아이템까지.

상대에게도 각성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내가 이끄는 각성자 팀은 대구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좀비들과 맞서 싸워 온 역전의 각성자들보다도 레벨이 높았다.

레벨이 높다는 건 그만큼 손에 많은 피를 묻혔다는 것이고, 인간은 손에 피를 많이 묻힐수록 강해지는 법이다.

나는 이대로 창원을 벗어나는 대신, 창원의 주요 공단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시가지로 차의 방향을 돌렸다.

‘좀비 떼를 공장 곳곳에 가둬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놈들의 사고방식 특성상, 좀비를 경험치보단 고기 방패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각성자 입장에선 한 곳에 몰아넣은 저 좀비들을 싹 잡아 죽이기만 해도 경험치와 DNA 샘플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며 좋아라 할 텐데, 놈들은 오히려 도시 전역에 좀비를 풀어서 침입자를 격퇴, 저지하는 용도로 쓰고 있으니, 정말 전형적인 범죄자들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외세의 공격으로부터 자기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고생도 덜하고 싶은 놈들의 마인드야 불 보듯 뻔한 것 아닌가?

침입자들이 반드시 거쳐 올 수밖에 없는 주요 공단에 고기 방패 역할 좀비들을 배치해 두고, 겸사겸사 부비 트랩으로 적의 전력도 깎아 먹은 다음 마지막에는 손쉽게 과실을 취할 속셈일 터.

그런 놈들이 창원 어디쯤에 자리 잡고 있을지는 굳이 치트키를 쓰지 않아도 훤히 보인다.

‘창원 파티마 병원과 인근 시가지에 위치한 주요 거점들.’

규모가 큰 병원이나 마트, 백화점 등은 몸을 숨기기 좋으면서도 창원 내부에서 벌어질 격전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거점들이다.

놈들이 자체적으로 군수 공장을 돌려 추가 물자를 생산, 축적할 것이 아니라면 기존에 존재하던 물자를 어딘가로 옮겨서 보관했을 텐데, 당연히 뒤가 구린 놈들답게 분산 저장했을 것이다.

평범한 약탈자 무리처럼 거점 하나가 망하면 전부 망하는 건 놈들의 습성과도 맞지 않으니, 병력과 물자가 고르게 퍼져 있을 터.

우리가 노릴 허점은 바로 그곳이다.

“지금쯤 우리 움직임이 포착됐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빠르죠.”

창원 내부가 침입자와 방어자들의 한판 승부로 다소 소란스러워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놈들의 감시망은 멀쩡했다.

특히 건물 옥상이나 골목 사이에 숨어서 거리를 감시하는 놈들이, 눈에 확 띄는 장갑 구급차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을 리가 없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신이 있었다.

놈들이 대비하는 것보다 우리가 한발 더 빠르게 테러를 저지르고 빤쓰런을 할 수 있다는 자신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창원대로를 가로지른 우리는 딱 봐도 사람의 손길을 탄 흔적이 있는 마트 입구로 쳐들어갔다.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있지만, 그깟 장애물쯤 장갑 구급차의 수십 톤짜리 몸통 박치기에 비하면 모래성보다도 약했다.

감시망이랍시고 세워 둔 놈들이 침입자의 접근을 알리는 것보다 우리가 먼저 도착했으니 저 안의 놈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하지만 각성자가 진짜 무서운 건 사실 기동성이나 대인 전투 능력만이 아니다.

필요한 게 있다면 상점창이나 인벤토리에서 즉시 꺼내 쓸 수 있다는 점이 무서운 거다.

“내가 상점창에서 기름을 매우 싼값에 대량 구매할 수 있다는 걸 미국 정부가 알면 군대를 보낼지도 모르겠군.”

순식간에 꺼내 든 수십 통의 기름을 건물 주변에 빠르게 배치하고 안쪽에도 불이 잘 붙을 만한 곳이 있다면 닥치는 대로 기름을 흩뿌렸다.

뒤늦게 침입을 눈치챈 놈들이 안쪽에서 달려 나오는 게 보였지만 놈들도 대량의 기름이 뿌려진 것을 눈치챘는지 섣불리 총격을 가하지 못했다.

이게 바로 ‘진짜배기’ 테러리스트와 그 흉내만 내는 인생 밑바닥 떨거지들의 차이점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진짜배기들은 폭탄 조끼를 입고 당당하게 달려들었거든.

우리는 건물 밖에서 놈들이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각성자의 막강한 힘과 스피드를 이용해 역으로 출입구를 틀어막았다.

나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느껴진다.

“동남풍이 부는군.”

화공(火攻)을 쓰기에 참으로 적절한 바람이다. 적벽에서 쬬를 조지던 제갈공명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내가 신호를 주자 컴파운드 보우의 화살촉에 불을 붙인 채성아가 멋들어진 불화살을 쐈다.

마트 안에 갇힌 놈들이 꽉 틀어 막힌 입구를 뚫기 위해 아등바등 발버둥을 쳤으나, 각성자들이 작정하고 막아 버린 입구는 일반인의 힘으로 뚫을 수 없었다.

아낌없이 퍼부은 기름에 불화살이 닿은 순간, 삽시간에 덩치를 키운 화마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소화기 몇 개로는 결코 끌 수 없는 불.

저수지의 모든 물을 끌어 오지 않는 한 이 거대한 건물이 전소되기까지는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복면을 쓴 다섯 명의 각성자(테러리스트)는 유유히 불타는 마트를 뒤로한 채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거리로 풀려나온 좀비 떼도, 우리를 저지하기 위해 총을 든 빨갱이 스-껌도 모두 공평하게 창원의 잿더미 아래에 파묻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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