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155)화 (156/227)

155화 수복기 (5)

인간이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나 예의를 완전히 저버리고 타인에게 오직 고통과 절망만을 주겠노라 다짐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악의’라고 부른다.

악의란 직접 살을 맞대지 않고서도 다양한 루트를 통해 느낄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악의를 쏟아 낼 대상만을 위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상황’ 속에서 우리는 그 진득한 악의를 뼛속 깊이 느끼곤 한다.

오직 관람객을 겁주기 위해 귀신 분장이나 깜짝 놀랄 만한 요소를 잔뜩 준비해 둔 귀신의 집이 그러하듯, 전장에서도 아군을 위해 적군이 공들여 준비한 어떤 요소들이 그 지역을 지배하는 것이다.

갑자기 발밑에서 터지는 지뢰,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드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과 쇳조각의 파편, 건드리는 순간 유출되어 방독면을 쓸 겨를도 없이 주변의 인간들을 픽픽 쓰러지게 만드는 독가스까지.

‘자연스러운’ 위장막을 덮어쓴 채 어느 불쌍한 희생양이 건드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인위적인 부비 트랩은 인간의 악의를 꾹꾹 눌러 담은 정수와도 같았다.

때문에 부비 트랩에 한번 당한 인간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운 좋게 즉사한 인간, 혹은 운 나쁘게 목숨을 부지한 인간.

운 나쁘게 살아남은 인간들은 육체의 고통과 정신적 공포에 짓눌린 채 평생을 살아야 한다. 설령 부상당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부비 트랩이 작동했다는 것은 누군가가 죽거나 다쳤다는 것이고, 부상당하지 않은 인간은 전우의 시체를 직접 치우거나 부상자를 후방으로 이송시켜야 했으니까.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유독 공감대 형성이 잘되는 매우 귀찮은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어서, 피범벅이 된 채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고 있는 전우를 보면 자신도 그렇게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운 좋게 즉사하고, 운 나쁘게 살아남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놈들도 저러는데 우리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나?

순수한 악의가 멀쩡한 인간의 정신을 오염시키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부비 트랩은 무조건 조심하거나 피해야 한다고? 그건 틀린 말이다.

부비 트랩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고, 언제든지 추가될 수 있다.

도망친 곳에 낙원 따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목표 지점으로 향하기 위해 기존의 루트를 빙 돌아서 우회한다고 부비 트랩의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의 악의에 맞춰 똑같이 악의를 품었다.

상대가 가시를 세우면 우리도 가시를 세웠고, 상대가 독을 내뱉으면 우리도 독을 내뱉었다.

우리는 함무라비 법전으로 상대의 머리통을 깨 버리고 싶어서, 없는 각개 빤쓰까지 싹 털어 가며 못난 놈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부족한 IQ를 총동원했다.

그렇게 부비 트랩을 연구하고, 해제하고, 실험한 끝에 우리는 인간을 대적하는 법이 아니라, 인간을 사냥하는 법을 터득했다.

“자세히 보면 저 상자와 저 상자, 그리고 기둥과 천장을 가로지르는 아주 가느다란 와이어가 보일 겁니다.”

“잘 안 보입니다만.”

“잘 안 보이게 설치해 뒀으니까요.”

전력이 공급되지 않는 공장 내부는 낮이든 밤이든 기본적으로 어두컴컴했다. 특히나 한겨울의 칙칙한 날씨가 지속되고 있는 지금은 손전등 불빛만으로 모든 어둠을 밝히기엔 한계가 명확했다.

그걸 알고 있는 상대는 처음부터 손전등이나 기타 조명의 광원만으로 밝힐 수 있는 영역과 그럴 수 없는 영역을 철저하게 분간했다.

“부비 트랩을 간파하는 기본적인 방법은 부비 트랩이 직접 설치된 곳을 살필 게 아니라 그 주변을 살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아군의 시체가 빈 건물 안에 쌓여 있다고 가정해 보자.

보통은 시체 더미 속에 작은 충격만으로도 터지는 폭탄 내지는 오염 물질을 숨겨 둔다. 기본 맛 부비 트랩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거기서 기출 변형을 조금 더 하면 아예 건물 주변 밑바닥에 IED를 파묻은 다음, 시체 속에 뭔가 없다는 걸 확인시킨 후에 호출한 수송 부대가 오면 다 함께 폭사시킬 수도 있다.

그밖에도 건물 입구나 창문에 인계 철선과 연결된 수류탄을 설치해 둔다든가, 아니면 처음부터 시체를 옮기기 위해 수송 부대를 부를 것을 상정하고 도로에 대전차 지뢰를 깔아 두는 방법도 있다.

사람들이 돌아다닐 때는 잠잠하던 대전차 지뢰가 시체를 옮기기 위해 두돈반 트럭이나 구난 장갑차가 오는 순간 펑 터지면 아주 기가 막히지 않는가.

부비 트랩이란 건 명확한 목표, 혹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주변 요소 속에서 인간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자극하는 ‘정신의 독’이다.

그저 심리적으로 압박만 한다면 모를까, 실제로 사람을 죽인다는 점에서 특히 그 악랄함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탄약 박스와 무기 상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건물에 전력이 들어오더라도 불을 밝힐 수 없도록 모든 전등이 빠져 있었다.

아마 우리 같은 침입자들이 연료를 가져와 공장 내부의 비상 발전기를 가동시킬 것을 우려한 조치인 듯했다. 영악한 놈들.

‘꽤나 전문적인 부비 트랩을 설치할 줄 안다는 건 그에 상응하는 지식과 경험이 있다는 뜻인데, 그렇다고 북진군 출신이라고 하기엔 다소 어설프군.’

나를 포함한 북진군 출신 전우들이라면 이 정도 수준의 부비 트랩을 보면 ‘오~ 좀 치는데?’ 하고 감탄은 하겠지만, 그렇다고 당해 줄 만큼 기가 막힌 물건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정도 수준의 부비 트랩에 당하거나 실수로라도 해제에 실패해서 작동시켰다간 그놈은 하루 종일 놀림거리가 됐을 거다.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로 폭발물을 해체하는 폭발물 전문가랑 다르게 우리는 인간의 악의를 읽는 것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지켜 나갔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저 전선을 따라 연결된 끈이 보이죠? 검은 페인트로 칠해 놔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선처럼 보이는 끈.”

“……진짜 끈이군요.”

“저렇게 천장에 연결된 끈을 따라 올라가 보면 이질감이 느껴지는 합판이나 조명등이 보일 텐데요, 만약 그런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부비 트랩을 설치하는 사람의 심리를 역으로 생각해 보면 ‘침입자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는 위치와 타이밍’을 고려해서 손을 썼을 썼을 테니까요. 그럼 귀찮게 하나하나 살펴볼 필요 없이 부비 트랩을 숨겨 놓기에 최적화된 장소를 특정 지을 수 있죠.”

이른바 핵심 파헤치기다.

만약 생각 없는 놈들이 저 겉으로만 보이는 군수 물자 부비 트랩을 건드렸다고 한들, 아마 건드린 놈들만 피해를 입는 선에서 그칠 터.

하지만 진짜는 그 충격파를 계기로 작동하는 천장의 2차 부비 트랩이다.

나는 거점 창고에서 꺼내 든 대형 사다리를 설치한 후 공구 상자를 들고 직접 천장으로 올라갔다.

부비 트랩의 핵심을 간파했다고 해서 희희낙락하며 무작정 달려드는 건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소련과 미국 간의 국가 간 경쟁기를 총성 없는 물밑 전쟁이라고 해서 냉전(COLD WAR)이라고 불렀던가.

전장에서 고작 부비 트랩 하나를 두고 군인들끼리 목숨을 건 수 싸움을 하는 것도 그것과 비슷했다.

방심해도 죽고, 무신경해도 죽고, 몰라도 죽고, 알아도 늦게 대응하면 죽고, 빠르게 대응해도 완벽하지 않으면 죽는 그런 지옥 속에서 언제나 살아남는 쪽은 남들보다 늘 앞서 나가는 놈들이었다.

상대가 10을 생각하면 나는 100을 생각해야 한다.

상대가 나와 똑같이 100을 생각했다면 나는 즉석에서 재빨리 1을 더해 101 이라는 결과를 도출해 내야 한다.

‘어떤 수단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외부의 침입을 미리 눈치채고 좀비 떼를 숨겨 둔 것도 모자라 부비 트랩까지 설치해 뒀다. 전술적 역량이 제법 있는 놈들이야.’

적어도 생판 아마추어 수준의 집단은 아니다.

그렇다고 북진군에 비교하면 뭔가 어설픈 감이 있으니, 마찬가지로 전쟁의 주역이었던 현역 군인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키이이잉!

천장의 합판을 뜯어 내는 대신 드릴로 조각상을 깎아 내듯이 틈을 파냈다.

스마트폰 하나가 통과할 수 있을 만한 구멍이 뚫리자 야간 촬영 모드로 전환한 스마트폰을 밀어 넣었다.

천장으로 들어간 스마트폰은 합판 너머 어둠 속에서 먼지 풀풀 날리는 천장 내부를 빠짐없이 촬영해서 내게 보여 주었다. 천장의 중심부에 끈이 연결된 투박한 IED와 충격에 매우 취약한 충격 신관이 눈에 들어온다.

설령 각성자가 인벤토리 기능을 이용해 군수 물자만 쏙 빼먹어 1차 부비 트랩이 비활성화되더라도, 물자 사이에 고정되어 있던 끈이 갑자기 탁 풀리면 천장까지 연결된 IED를 헐렁한 합판 아래로 끌어내리는 심플한 구조였다.

복잡하게 시한 신관이나 원격 제어로 폭파시킬 필요도 없이, 그냥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기만 해도 몹시 불안정하고 예민한 IED가 알아서 펑 터지는 구조였다.

즉, 침입자가 각성자라는 것까지 고려해서 만든 부비 트랩이다.

각성자에 대해 알고 있는 집단이다. 혹은 각성자가 존재하거나.

‘머리는 제법 썼다만, 그래도 트랩펑크 2077에는 못 미치는구만.’

1차 부비 트랩과 2차 부비 트랩은 어느 한쪽이라도 작동하거나, 반대로 어느 한쪽이라도 작동하지 않으면 결국 무조건 침입자들이 피해를 입는 구조.

그렇다면 동시에 건드리는 게 답이다.

나는 합판의 구멍을 더욱 넓힌 다음 안으로 대검을 밀어 넣어서 IED와 연결된 끈에 칼날을 대고 아래쪽의 김진경 경장에게 신호를 주었다.

“제가 신호를 주면 인벤토리 아이템 회수 기능으로 저 군수물자들을 회수하세요.”

“예.”

내가 신호를 준 순간, 그가 인벤토리 기능으로 재빨리 군수물자만 수거하는 것과 동시에 나도 IED에 연결된 끈을 잘라 냈다.

이러면 군수물자와 연결된 끈이 맥없이 풀리지만 IED에 어떠한 물리력이 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폭탄이 헐렁한 합판을 뚫고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질 일은 없었다.

차라리 모든 부비 트랩이 전선으로 연결된 까다로운 최신식 폭탄이었다면 그냥 해제를 포기하고 물러났을 텐데, 제작자가 쓸데없는 아날로그 방식과 장인 정신을 더한 덕분에 오히려 처리가 쉬웠다.

천장에 손바닥만 한 점착 폭약(C4)을 붙이고 내려온 나는 팀원들과 함께 공장을 벗어났다. 저 IED가 터지면 아까운 공장 설비도 피해를 입겠지만, 나중에 영역 지정 스킬로 복원하면 그만이라 내 입장에선 조금도 손해가 아니다.

‘오히려 공장과 설비를 걸고 도박한 데다 물자까지 빼앗긴 놈들이 손해지.

콰아아아아앙!’

공장을 빠져나온 직후에 기폭시키니 무식한 IED가 폭발하면서 창고 지붕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폭발의 위력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가까운 건물 외벽도 와르르 무너질 지경이었다.

허망하게 무너지고, 옮겨 붙은 불이 점점 커지고 있는 공장을 바라보며 팀원들이 한마디씩 툭툭 던졌다.

“……저런 부비 트랩에 우리가 당했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네요.”

“대체 어떤 쓰레기 같은 놈들이 저런 악독한 짓을…….”

“생각해 보면 아까 이상한 놈들이 좀비 떼를 사냥개처럼 써먹지 않았습니까. 분명 한통속일 겁니다.”

“우리는 사장 오빠 덕분에 멀쩡했지만,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 것 같은데요?”

조금 멀지만 다른 곳에서도 폭음이 연달아 울려 퍼지거나, 좀비 떼가 괴성을 내지르며 우르르 몰려가는 소음이 똑똑히 들려왔다. 아마 거제도에서 건너왔을 그 무장 세력은 부비 트랩에 당한 모양이다.

우리 같은 일반 생존자나 제대로 된 체계와 무장을 갖춘 정규군(추측)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그저 ‘사회’에 소속된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자비한 공격을 일삼는 악독한 놈들이다.

이 나라의 근간을 파괴하고 죽음과 혼돈, 절망을 초래하는 것만이 유일한 자랑거리이자 일생일대의 목표인 집단은 내가 알기로 이 나라에 하나밖에 없다.

반국가, 반질서, 반자유, 반법치주의로 무장한 광기의 회색분자 집단.

북한과의 2차 전쟁으로 끝끝내 멸망할 거라 생각했던 대한민국이 망하기는커녕 기어코 통일에 성공하자, 결국 저들과 뜻이 맞는 자들을 마구 긁어모아 대한민국을 직접 망하게 만들겠다고 천명한 공식 테러리스트 조직 ‘헬조선‘.

나는 그 배후에 가장 혐오스러운 놈들이 암약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빨갱이 스-껌.”

빠빠빠 빨간 맛을 아직 잊지 못한 그 종자들이 이곳 창원에 자리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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