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154)화 (155/227)

154화 수복기 (4)

콰아아아앙!

“씨발! 무슨 일이야?!”

“부, 부비 트랩입니다! 비축된 물자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창고에 들어간 팀이 부비 트랩에……!”

“좀비가 썩어 넘치는 이 거리에 대체 어떤 미친 새끼가 부비 트랩 따위를 설치한다는 거야?!”

좀비가 물자를 찾아서 공장이나 물류 유통 업체 창고에 기어 들어갈 것도 아닌데 굳이 창고 안쪽에 부비 트랩을 설치한다? 차라리 좀비를 한데 모아서 콘서트를 여는 게 더 그럴싸하겠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박철근 중위는 다급히 의무병을 불렀다.

하지만 그의 부름을 받고 급히 달려온 의무병도 별수 없었다. 부비 트랩에 당한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 있었으니까.

폭발에 의해 흔적도 없이 날아간 사람, 혹은 ‘흔적’만 남아서 바닥을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는 고깃덩어리로 전락한 사람.

독도함에서 근무하며 나름 특전병에 준하는 수준으로 애들을 훈련시켰다고 생각했건만, 박철근 중위는 자신의 예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창원의 악의에 치를 떨었다.

‘분명 선발대가 정찰을 했을 때는 그냥 좀비들만 좀 돌아다니는 한적한 공업 도시라고 하지 않았나? 우리는 특정 구역을 점거하고 필요한 물자만 징발해서 복귀하면 그만이라며!’

심지어 선발대도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북한에서 도망쳐 내려오느라 미 해군의 배를 얻어 탄 수색대가 직접 정찰을 했다고 들었다.

한국군과 달리 미군은 꽤 자주 인원이 교체된지라 수색대 개개인이 북한에서 근무한 기간은 종전 선언 이후 상당히 짧아졌다지만, 그래도 독도함이 주 근무처였던 자신들과 다르게 실전 경험이 있는 엘리트들이다.

그런 사람들조차 눈치채지 못한 뭔가가 이제 와서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 줄이야.

‘아니, 어쩌면 이 도시에 자리 잡은 정체불명의 세력은 몇 수 앞을 더 내다보고 있었을지도…….’

역겨운 광경에 정신 못 차리고 구토를 하는 병사들, 일단 급하게 ‘흔적’을 수거하는 의무병들, 그리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며 쉴 새 없이 무전을 치고 있는 다른 부대원들.

박철근 중위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이를 악물고 목에 핏대를 올렸다.

사실상 첫 실전이나 다름없지만, 군인이란 본디 위험 지역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죽음과 살인을 동시에 각오해야 하는 특수한 집단이다.

비록 자신의 소대원들이 불운한 사고를 겪기는 했지만, 이미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마당에 불운한 사고를 겪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 있겠나.

‘정신 차리자, 박철근.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이제부터라도 부비 트랩을 주의하면 돼. 더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오히려 지금은 부비 트랩이 터지면서 발생한 소음 때문에 거리를 가득 채운 좀비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 일을 막는 것이 급선무였다.

“최 중사! 애들 데리고 공장 밖 거리 확보해! 부비 트랩이 터져서 이곳 물자는 더 이상 쓸 수 없다! 일단 다른 소대와 합류해서…….”

끼이이이 쾅!

갑작스러운 추락음에 말을 하다 만 그가 주변을 확인했다.

그리고 창고 안쪽에서 터진 부비 트랩의 여파로 창고 바깥쪽 천장에 연결된 무언가가 지면으로 떨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모양새가 딱 가스통처럼 생긴 그것은 충격으로 끊어진 밧줄 쪼가리를 달고서 농구공처럼 지면을 몇 번 튕겨 올랐다.

앞뒤 안 가리는 놈들로 가득한 국가와 전쟁을 겪어 봤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보게 된다는 ‘수제’ 폭탄. 전문 용어로 IED(급조 폭발물)라고 불리는 물건이었다.

창고 안쪽에서 부비 트랩 작동, 이후 아군이 사망자의 잔해와 부상자 수습을 위해 접근하는 타이밍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연결되어 있던 2차 부비 트랩의 끈이 끊어지도록 설계.

해당 구역을 벗어나지 못한 아군에게 다시 한번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히는, 그야말로 순수한 악의의 결정체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보는 건 박철근도 처음이다.

그게 당연하다.

저걸 IED라고 식별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한 사람들은 대부분 죽었으니까.

꽈아아아아아앙!

교묘하게 설계된 2차 부비 트랩이 아직 1차 피해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대원들의 한복판에서 터졌다.

박철근과 최 중사를 비롯한 몇몇 인원은 공장 입구와 가까웠기 때문에 폭발에 휘말려 튕겨 나가는 정도에 그쳤으나, 폭심지로부터 최소 30m 이내에 존재했던 모든 인원은 문자 그대로 가루가 되었다.

1차에 이은 2차 폭발. 소대원 중 8할가량이 전투 불능 혹은 사망.

족히 수 미터를 튕겨 나가 벽에 부딪혀 쓰러진 박철근 중위는 지면을 쿵쿵 울리는 진동을 느꼈다.

고막을 다친 탓에 삐이이이 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 정확히 어떤 소음인지 분간할 수는 없었지만, 전신으로 느껴지는 지면의 울림은 틀림없이 행군의 진동이었다.

거제도에서 함께 넘어온 인원은 미군까지 포함해서 총 230명. 그마저도 침투에 성공하자마자 대부분 소대 단위로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에 지금 창원 내부에서 이런 진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대인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딱 하나 빼고.

“아, 아아……!”

부들거리는 손으로 더듬더듬 주변을 훑어 자신의 총을 찾아내고 벽에 기댄 채 어깨에 견착했다.

도망치기엔 늦었다. 놈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 것도 늦었다.

남은 것은 오지 않을 구원을 기다리며 처절하게 싸우는 것뿐.

설령 그것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해도 박철근은 해야만 했다.

“이 개새끼들……!”

타타타타타타타!

공장 부지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긴 담벼락과 철책을 지나 마침내 넓은 입구로 모습을 드러낸 혐오스러운 존재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제식 K-2C 소총의 방아쇠를 꾹 당긴다면 30발들이 탄창 하나를 소진하기까지 3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그렇게 호흡 한 번 고르기도 부족한 시간에 모든 탄을 소진한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물론 고속 철갑탄이 꿰뚫고 지나간 좀비들의 몸이 큰 충격에 잠시 밀려나거나, 운 좋게 머리통이 박살 나면서 일부는 그대로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일개 군인 한 명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적은 햄스터 한 마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밍기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면에 널브러져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던 전우들, 벽에 기댄 채 장교용 권총을 뽑아 든 박철근 중위가 살덩어리의 급류에 휩쓸리기까지는 찰나의 순간이면 충분했다.

* * *

“이, 이이…… 코쟁이 새끼들아! 분명 창원 내부는 생존자가 존재하지 않는 텅 빈 도시라며! 남아 있는 건 그 괴물들뿐이니까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이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며!”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과 폭음, 총성, 그리고 괴물들의 생살 씹어 먹는 끔찍한 고막 테러를 듣다 못한 이민상 대위가 화를 참지 못하고 미군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의 중대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공장, 어느 마트, 어느 창고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공격에 노출되고 있다.

혹시 이런 일이 생길까 봐 군의 높으신 분들이 독도함에 모여 회의까지 거쳐 가며 대비책을 준비해 두지 않았던가?

비록 좀비 사태가 벌어진 탓에 북한에서 급하게 도망쳐 내려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명성이 자자한 미 수색대가 선발대로 나선 것도 그런 이유였다고 들었다.

그런데 중대원들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건 처음부터 정보가 잘못되었거나 누락되었다는 증거 아닌가?

이민상 대위가 그런 이유로 화를 내자 주한미군 소속 통역병이 앞으로 나섰다.

“진정하십시오. 우리가 선발대로부터 받은 정보는 그게 전부였습니다. 애초에 협력하는 동맹 관계인데 정보를 누락할 리가 없잖습니까.”

“그럼 일을 제대로 안 했겠지! 사실 그 선발대 놈들도 지레 겁 먹어서 창원 내부를 제대로 조사 안 한 거 아냐?! 뇌피셜 범벅 정보만 갖다주고 입 싹 닦은 거 아니냐고!”

“입조심하십시오! 선발대가 직접 창원 내부에서 목표 지점과 그 주변을 철저하게 조사했다는 건 액션 캠 녹화 영상으로 모두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왜 정보랑 현장 상황이 다른 건데! 이거 씨발, 우리 애들만 엿 먹어 보라 이거야?!”

“현장 상황이라는 게 원래 사소한 요소 하나만으로도 급변할 수 있다는 건 그쪽도 잘 알지 않습니까!”

“지금 저 밖에서 죽어 나가고 있는 우리 애들 앞에서도 그따위로 말해 봐, 이 개새끼야!”

“이 사람이 진짜!”

서로 계급은 같은 대위지만 국적과 부대 소속이 다르다 보니 좀처럼 의견이 좁혀지지도, 협력 관계가 매끄럽게 유지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두 무리의 리더들은 이러나저러나 결국 이 작전을 속행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물자 징발 팀과는 다르게 그들은 돝섬을 지나 창원 외국인 출입국 관리 사무소 인근에 상륙, 공단이 아닌 다른 곳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세호 대통령이 박명식 함장을 통해 별도로 제공해 줬다는 창원시 비밀 군수 물자 창고가 바로 그들의 목표였다.

전쟁이나 국가적 재난 사태가 발발할 시 개방하여 미리 비축해 둔 물자를 꺼내 쓸 수 있도록 전국 각지에 만들어 둔 기밀 시설.

당연히 VIP가 몸을 피하기 위해 따로 준비해 둔 벙커나 임시 군사 시설 등도 존재하고 있으며, 특히 국내 최고 규모의 방위 산업체가 존재하는 창원의 산 곳곳에는 그런 시설들이 제법 갖춰져 있었다.

“자자, 캄 다운~ 캄 다운~.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닙니DA.”

살짝 어눌한 말투로 두 사람의 다툼을 중재시킨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성은 미 해병대 소속 군인이었다.

마린은 레인저 따위에게 절대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미친 스케줄의 개인 단련을 반복한다는 인간 전차가 중재에 나서자 두 사람의 흥분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해병대는 무식해 보인다는 고정 관념을 깨기 위해 전쟁통에도 한국어까지 독학한 그의 기백은 모두가 인정할 만했다.

“일이 틀어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또 유감스럽게 생각합니DA. But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 그렇긴 하지.”

“그래요. 아무리 상황이 안 좋다지만 서로 감정 상할 일은 만들지 맙시다. 그보다 좌표에 따르면 이 근방일 텐데…….”

한국은 산이 많은 만큼 등산객과 심마니, 산미치광이들이 굉장히 많다.

그런 인간들에게서 기밀 시설을 들키지 않고 잘 감춰 두는 방법은 대개 주변을 철책으로 막아 두고 송전탑 내지 중계기로 입구를 위장해 두는 것이었다.

“후욱, 후욱, 저기구만. 수풀에 살짝 가려진 철책이 보여.”

이민상 대위가 살짝 힘에 겨운 듯 숨을 크게 고르며 철책을 가리킨 순간, 뚜둑 하고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겨울철에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딱딱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아래쪽에서 열심히 올라오고 있는 병사들이 낸 소리는 아니었다.

“엎드려!”

타타타타타!

한 해병대원의 경고와 함께 산비탈을 오르던 군인들이 급하게 포복하고, 아슬아슬하게 그들의 머리 위로 총탄이 스쳐 지나갔다.

“매복이다!”

“12시 방향 신원 불명의 적 발견! 1시 방향에도 적영 확인!”

“엄폐해! 엄폐!”

“마르코, 존, 키커, 너희 셋은 날 따라 우회한다! 한곳에 뭉쳐 있으면 위험해!”

“이익! 우리도 대응한다! 각자 바위나 나무를 엄폐물 삼아 대응 사격해! 미군 애들 엄호해 줘! 거기 너! 이 개새끼! 무섭다고 계속 바닥에 처박혀 있으면 나중에 돌아가서 죽는다!”

타타타! 타타! 퍼억! 씨이이이이이이!

한겨울의 해풍과 산을 타고 넘어오는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가 겹쳐 흐르던 혹독한 겨울 산은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와 죽음으로 가득찬 전장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날아든 총탄에 맞아 치명상을 입은 군인들이 산비탈 아래로 맥없이 굴러떨어지는가 하면, 겁에 질려서 차가운 흙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벌벌 떠는 군인도 있었다.

어렵사리 엄폐한 군인들도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대응하기보단, 그저 총성이 울려 퍼지는 산 위쪽의 어딘가로 무차별 난사를 하는 게 고작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종전 선언을 한 지 벌써 1년이나 지난 마당에 그 악랄하다던 북한군과 제대로 싸워 본 적도 없는, 그저 바다 위에서 전역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평화 시대의 군인들이 뭘 할 수 있겠나.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도 적전 도주자가 없는 것이 기적일 지경이었다.

“얼어붙어 있지만 말고 조금씩 올라가면서 압박해! 저 새끼들 딱 보니 우리보다 머릿수 적어!”

이민상 대위가 적이 숨어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곳을 향해 총을 끊어 쏘면서 악을 썼다.

이러면 소대장이나 분대장들이 알아서 좀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줘야 하는데, 다들 생각지도 못한 ‘인간의 기습’에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빌어먹을!”

피잉! 끼이이잉!

공기를 찢어발기며 휙휙 지나가는 눈먼 총알들. 가끔 단단한 바위나 지면을 두들기고 아찔한 각도로 튀어 오르는 도비탄과 파편은 흡사 죽음의 소나기 같았다.

나무 옆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던 그의 방탄모 끄트머리를 총알이 맹렬하게 빗겨 때리고 지나갔을 때는 잠깐이나마 뇌진탕 때문에 몸을 가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자신들이 적보다 머릿수가 더 많은 것 같고, 바다 위만 떠돌았던 아군보다 훨씬 더 강인한 미군이 함께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이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물론 그 믿음은 산 위쪽에서 익숙한 괴성이 울려 퍼지는 것으로 산산조각 났지만.

“조, 좀비다!”

“산 위에서 좀비들이 굴러떨어지고 있다!”

“저 개새끼들이 좀비들을 산에 풀었어! 후퇴! 후퇴해, 씨발!”

“아아아아아악! 내 팔?!”

“우어어어어어어!”

뜨거운 피와 뜨거운 화약연의 공통점은 둘 다 똑같은 냄새가 난다는 거다.

이민상 대위는 곧 이 산 전체가 그 냄새로 뒤덮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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