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153)화 (154/227)

153화 수복기 (3)

“전방에서도 놈들이 몰려옵니다!”

“일단 때려 박고 생각합시다!”

우리가 도망치는 경로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는 우리가 가는 길마다 공장의 창고나, 특정 건물을 개방해서 내부에 갇혀 있던 좀비 떼를 마구 쏟아 냈다.

거리에 좀비들이 적었던 이유가 놈들이 좀비를 빈 건물로 유인해서 가둬 두었기 때문이라니, 심지어 그걸 ‘인간 사냥’의 사냥개로 써먹고 있는 상황이라니.

올해 최고의 코미디 쇼가 따로 없다.

끼이이이이이익!

육중한 장갑 구급차는 거칠게 스키드마크를 남기면서 좀비들이 쏟아져 나오는 길의 빈틈으로 파고들었다.

영역 지배자를 죽이고 획득한 ‘공공의 적’ 효과 때문에 좀비들이 더욱 집요하고 악랄하게 나를 쫓는 것 같지만, 그래도 장갑 구급차의 돌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직 좀비들이 완벽하게 벽을 형성하지 못한 곳을 치고 나가자 몇몇 좀비들이 퍽퍽 하고 튕겨 나갔다. 장갑차에서 무장만 떼어 낸 것이 장갑 구급차라 좀비 몇 마리 좀 친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내가 소유한 영역 내의 차량이나 설비 같은 것들은 ‘내구도 시스템’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내구도에 손상을 입힐 만큼 강력한 공격을 받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심지어 일정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거나 수리킷을 사용하면 소모된 내구도를 즉시 수리할 수도 있으니 어지간하면 죽을 걱정은 없다.

그런 까닭에 운전대를 잡은 내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넷플러스로 광기의 질주, 매드니스 맥스, 0070 시리즈를 모두 섭렵한 나다. 이 정도 교통 체증 따윈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만약 김해가 아니라 부산으로 내려와서 살았다면 부산의 모든 택시 기사들은 바짝 긴장해야 했을 것이다.

부아아아아앙!

장갑 구급차의 속도를 한층 더 끌어 올리자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좀비 떼를 풀어놓는 것보다 한발 앞서 포위망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던 직업 정신 투철한 좀비들이 있었으나, 대부분은 장갑 구급차의 무식한 돌진을 견뎌 내지 못하고 잘게 쪼개진 피륙으로 돌아갔다.

“후욱! 후욱! 계속 이렇게 들이박아도 안전한 겁니까?! 이러다 차량이 퍼지기라도 하면……!”

“할 짓 없던 시절의 제가 좀비 영화와 드라마만 몇 편을 봤을 것 같아요? 차량이 퍼질 정도의 충격량과 차량이 돌파할 수 없는 좀비 무리의 규모 정도는 대강 알고 있다고요.”

픽션과 현실은 다르잖습니까! 하고 어린아이처럼 징징대는 한동석의 외침을 가볍게 무시하고, 다시 한번 운전대를 돌렸다.

아슬아슬하게 포위망을 벗어난 건 좋았지만, 시내에 없던 좀비들이 다시 시내에 쏟아져 나온 지금, 우리가 일종의 ‘기폭제’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창원에 자리 잡은 어떤 세력이 외부 침입자에 대응하기 위해 이런 덫을 대량으로 준비해 두었다면, 그 덫이 어디서부터 작동했는지 이미 소식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럼 도시 안으로 도망쳐 들어온 우리를 상대로 다시 한번 가두리양식을 시전할 수도 있으니, 차라리 과감하게 되돌아가야 한다.

‘풀려난 대부분의 좀비 떼는 가장 소란스럽게 움직였던 우리를 뒤쫓아 움직이느라 아직 고르게 퍼져 나가지 않았다. 덫이 작동했던 곳으로 되돌아간다면 역으로 쉽게 포위망을 벗어나는 건 물론, 우리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는 놈들의 추적도 따돌릴 수 있다.’

이른바 기만행위에 한 번 더 기만을 섞은 역페이크 작전이다.

차량을 반대로 돌려, 우리를 뒤쫓고 있는 좀비 떼의 측면을 스쳐 지나가듯이 작은 길을 억지로 파고들었다. 벽이나 장애물 같은 건 장갑 구급차의 내구도와 엔진의 힘을 믿고 그냥 밀어 버렸다.

내구도가 좀 깎여 나간다고 해도 당장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면 감당할 수 있다.

기긱, 기기기긱! 쿠웅! 까앙!

차량 측면이 마구 긁히고, 전면부가 들이박은 벽과 장애물이 요란하게 튕겨 나가자 도망쳐 나왔던 길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예상대로 좀비들은 먼저 다른 구역으로 빠져나간 터라 텅 비어 있었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좀비 대군은 무지막지한 규모 때문에 다른 곳에서 소음이 울려 퍼진다고 해서 무작정 움직임을 바꿀 수 없다.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인파도 갑자기 행렬을 바꾸거나 앞뒤에서 밀고 당기면 압사 사고가 심심찮게 벌어지는데, 하물며 무지성으로 움직이는 일반 좀비들이 거대한 행진의 흐름을 역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물론 이것도 임시변통이다. 한번 시내로 풀려나온 좀비들은 바깥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존재들을 찾아 나설 테니까.”

뭉쳐 있던 좀비는 자연스럽게 흩어질 것이고, 흩어진 놈들끼리 새로운 무리를 형성해서 다시 도시 곳곳으로 나무줄기처럼 빼곡하게 뻗어 나갈 것이다.

결국 시간 싸움이다.

‘창원 남부 해안에서는 이미 바다를 건너와 상륙한 무장 세력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거야. 그러니 아직 창원 중심부에 진입하지 못한 우리보다 먼저 군수 공장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눈앞에서 먹음직스러운 떡을 허무하게 빼앗길 수는 없지.

나는 차량을 몰아 조금 남하해서 남해안 대로에 올라탔다.

위쪽으로는 좀비 떼를 시내에 막 풀어 놓는 정체불명의 미치광이들이, 아래쪽 진해구 방면에선 의도와 목표가 확실치 않은 무장 세력이 움직이고 있는 지금, 최단 거리로 창원 중심부까지 파고들 루트는 이곳뿐이다.

덜컹! 덜컹! 쿠웅!

팀원들은 멀미약을 먹었음에도 디스코 팡팡과 맞먹는 흔들림에 속이 좋지 않은지 간간이 옅은 신음성을 흘렸다.

흘러 빠진 멀미 정신으로 무슨 대의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이게 다 기합 정신이 부족해서 그런 거다.

콰앙!

거슬리던 차량 하나를 마지막으로 시원스럽게 밀어내자 뻥 뚫린 길이 나왔다.

아마 창원시의 민간인들은 차량을 이용한 피난보단 차라리 배 타고 바다로 도망치겠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모양이다.

조금 전보다는 훨씬 널널해진 도로를 매끄럽게 주파하고, 공장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공단 중심부로 파고들었다.

한 번 다른 구역으로 빠졌다가 다시 빙 돌아오는 엄청난 시간 낭비를 했지만, 어떤 세력에게도 뒤를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가장 먼저 골인 지점에 도착했다는 것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로 했다.

좀비들와 적대 세력이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이 상황에서 무작정 공단에 영역 지정 스킬을 사용할 수는 없다. 우리는 천천히 차를 몰아 군용 개인 화기를 생산하는 SN 그룹의 공장을 찾았다.

우리보다 먼저 이 도시에 자리 잡은 세력이 있다면 그놈들이 군수 공장과 창고를 그냥 내버려 뒀을 리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밑바닥까지 빠짐없이 확인해 봐야 한다.

“이제 내리죠.”

외부에선 보이지 않도록 공장 부지 안쪽에 차를 세우자 팀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우르르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들 저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다음에도 운전대는 꼭 내가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다시는 사장님이 운전하는 차 안 탑니다.”

“그럼 걸어서 오시려고요?”

“사장님을 남해안 앞바다에 던져 버려야 할지 지금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한동석이 신선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더 흡입하기 위해 애쓰며 투덜거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의 투정을 넘기고, 군에 각종 개인 화기와 탄약을 납품하는 것으로 유명한 SN 그룹의 공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6년 전 2차 남북전쟁이 발발하면서 창원과 대구에는 군수 공장 규모가 확 늘었는데, 기존에 창원과 대구에서 군수 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몇몇 기업들이 전쟁으로 큰돈 벌 수 있겠다 싶어 바짝 투자한 결과물이었다.

기존의 공장만으로는 북한에서 소모하게 될 탄약과 포탄, 각종 군용 무기와 장비, 예비 부품 등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그리고 국군이 일본에서 생산한 물자를 돈 주고 사 오는 꼴이 보기 싫어서 그냥 무식하게 공장을 더 늘리고 물량을 마구 찍어 내기로 했던 것이다.

덕분에 내가 북한군과 한창 드잡이질하고 있을 때 병신 같은 짜요밥이나 전투 식량을 꾸역꾸역 처먹었을지언정, 무기와 총알이 부족해서 못 싸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일개 병사에게 지급되는 장구류와 군수 물자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었기에, 우리는 ‘작전명 : 긴빠이’를 천명하고 종종 미군 야전 부대에 야간 침투해서 필요한 물건들을 털어 오곤 했다.

양키 놈들이 쓰던 야간 투시경 성능이 어찌나 좋았는지 다들 그거 하나 가지려고 안달이 났었다.

심지어 그놈들이 처먹는 MRE조차 국군 전투 식량보다 훨씬 더 맛있고 영양가 있었으니, 주기적으로 긴빠이를 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

‘이 공장에서 생산된 군수 물자가 기차와 수송기에 실려서 최전선에 있던 우리에게 왔었단 말이지…….’

마치 미국의 2차 세계 대전 참전 영웅이 전쟁 박물관에 방문하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마음이 싱숭생숭하는 듯한 오묘한 감각을 느끼면서 공장 내부에 진입했다. 혹시 이곳에도 좀비들이 갇혀 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런 흔적은 없었다.

‘다른 공장과 달리 고작 좀비 따위를 가둬 두기엔 아까운 시설이긴 해.’

이 안에 들어 있는 설비만 해도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이론상 전력과 원자재만 공급된다면 최소한의 인원만으로도 군수 물자를 생산해 낼 수 있으니까.

아무리 정신 나간 놈들이라고 해도 전쟁통에 지어진 연식 5년 미만 최신예 공장이 가진 값어치를 모를 리가 없다.

나를 따라 들어온 채성아가 풀풀 휘날리는 먼지를 손으로 내저었다.

“어휴, 먼지. 그래도 먼지가 이렇게 쌓여 있다는 건 내부 설비를 건드린 사람이 없다는 뜻이겠죠?”

“그렇겠죠. 이런 자동화 공장의 설비는 특히 복잡하고 예민하니까, 차라리 먼지가 좀 쌓이더라도 괜히 건드려서 망가뜨리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을걸요.”

듣기로는 아예 중장비나 공장 설비만 전문적으로 수리 및 관리해 주는 전문 엔지니어들이 따로 있다던데, 그런 사람들은 억대 연봉을 우습게 받는다고 들었다.

사람으로 치면 VIP의 건강을 관리하는 주치의나 다름없으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이런 공장은 제가 알기로 별도의 보안 창고가 존재한다고 들었는데, 아직 뭔가 남아 있다면 전부 거기 있지 않겠습니까?”

한동석이 설비에 내려앉은 먼지를 손가락으로 스윽 훑으며 말했다.

군수 물자는 절대 허가받지 않은 민간인의 손에 들어가서도, 바깥으로 유출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에 생산된 물량을 납품하기 전까지 따로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

‘전시 체제가 선포된 국가의 군수 공장들은 특히 보안에 더 신경 써야 하는 만큼 당연히 별도의 보안 창고를 두고 관리했겠지.’

다행히 팀원들과 함께 텅 빈 공장의 내부를 뒤져 보니 보안 창고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리 창고 문은 반쯤 개방되어 있었고, 그 주변에는 누가 건드린 듯한 탄약 상자나 무기를 보관해 두는 케이스 같은 것들이 조금 난잡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마치 ‘너무 많아서 다 못 가지고 간’ 잔여 군수 물자들처럼 보였다.

한가득 쌓인 총과 탄약을 보자마자 입이 찢어져라 좋아하는 한동석.

총기 전문가인 그가 눈앞에 쌓인 보물 더미를 보고 평소답지 않게 앞서 나가려는 것을 내가 붙들었다.

“왜 잡으시는……?”

“자세히 봐요. 왜 저기 쌓여 있는 물자들만 깨끗하죠?”

“……!”

뒤늦게 이상함을 눈치챈 한동석이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섰다.

공장 내부는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 손을 타지 않은 탓에 먼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는데, 저 물자들만 너무 깨끗했다. 꼭 최근에 누가 가져다 둔 것처럼.

어렵사리 좀비 떼를 뚫고 창원 중심부에 침투해서 군수 공장을 발견한 외부인. 그들이 마침내 가장 중요한 목표물인 군수 물자를 발견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은가?

총포류를 좋아하거나 그 가치를 잘 알고 있는 한동석처럼 아마 눈이 뒤집어져서 냅다 달려들 수밖에 없겠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츄에이션 아닌가?

거기에 좀비들은 저런 물자를 건드리지 않으니까 아무렇게나 방치해 둬도 얼마든지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다는 심리적 방심까지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이렇게까지 ‘자연스럽게’ 잘 짜인 상황이라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홀라당 넘어갈 수밖에 없다. 엽사 경력이 긴 한동석조차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다.

“부비 트랩이에요.”

이곳 창원에 좀비보다 강렬한 악의를 품은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악의에 매우 익숙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