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수복기 (2)
나와 팀원들은 흰둥이 1호로 불리고 있는 장갑 구급차에 탑승한 채 김해 서쪽 외곽 경계를 막 넘어선 참이었다.
우리의 사전 연락을 받은 박지찬 병장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예비 병력을 이쪽으로 이동시키고 있었으니, 창원에서 일이 틀어지더라도 김해로 후퇴한다면 아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도로 상태가 영 아니네요.”
덜컹덜컹.
차량 안에서 안전벨트를 메고 있는 그녀가 툭 내뱉은 한마디에 팀원들 모두가 동의하는 눈치였다.
정리되지 않은 도로에는 정말 많은 장애물이 존재했다.
아무렇게나 방치된 폐차량, 부서진 가드레일 파편, 사람들이 버리고 간 각종 잡동사니나 여행용 캐리어 따위가 넓은 고속 도로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장갑 내구도와 크기, 엔진의 힘으로는 어지간한 중장비에 필적하는 장갑 구급차 덕분에 대부분의 장애물은 그냥 밀고 나갈 수 있었지만, 그래도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차량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구에서 구미로 이동할 때는 각성자들끼리 움직이는 거라 도보로 이동했으면서, 어째서 김해와 가까운 창원으로 움직일 때는 장갑 구급차를 이용하는 건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어째서냐고? 내 마음이다.
솔직히 구미를 조사하기 위해 도보 행군을 했을 때 옛날 생각이 떠올라서 은근히 힘들었다. 그런데 굳이 편한 이동 수단을 내버려 두고 그 짓거리를 또 하라고? 내가 무슨 마조 변태도 아니고.
물론 진짜 그런 이유 때문에 장갑 구급차를 타고 바로 옆 동네로 가는 거라고 팀원들에게 말하는 건 쪽팔려서, 나는 그럴싸한 변명을 덧붙였다.
“아직 정리도 되지 않은 길을 차량으로 통과하는 게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텐데, 창원에는 좀비만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그래요.”
“이상하네요. 거점 일원들에게 듣기로는 창원에서 간간이 넘어오는 건 좀비들뿐이었다고 하니, 저 지역은 이미 부산과 비슷한 상황일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우리도 그걸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것 아닌가요?”
“최근에 변수를 포착했거든요. 얼마 전에 제가 남부 해안 공업 단지를 확보하기 위해 한바탕했다는 건 다들 들어서 알고 있죠?”
백미러 너머로 보이는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포격 좌표를 딸 겸 정찰 목적으로 UCAV를 날려 보냈는데, 심심해서 거제도까지 내려보냈다가 UCAV가 격추되는 일이 있었어요.”
“UCAV라면 그 드론이랑 비슷한 거 아닙니까? 그게 사고로 추락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격추가 됐다는 겁니까?”
한동석이 그리 되묻기에 나는 당시 UCAV의 감시 영상을 녹화해 둔 스마트 패드를 어깨 너머로 건네주었다.
스마트 패드 속의 감시 영상에는 푸른 바다를 넘어 거제도 상공으로 진입한 지 얼마 안 된 UCAV가 곧바로 록온, 공격받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대구 근처에서 UCAV가 격추됐을 때는 대구의 군인들이 방공 시스템을 작동시켜 기관포로 두들겨 맞았다는 걸 뒤늦게 확인했지만, 아직까지 거제도에 방공 시스템을 전개하고 상시 하늘을 감시하고 있을 만큼 한가한 군대가 주둔 중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 뒤로 UCAV를 몇 번인가 더 내보내서 창원과 인근 해역을 먼 거리에서 대충이나마 확인해 봤는데, 다수의 무장 병력이 바다를 통해 창원으로 이동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 말은 거제도에 아직 생존한 군부대가 있다는 겁니까?”
“자국 군대라는 확신이 없어요. 대공 시스템에 걸리지 않도록 매우 먼 곳에서 깔짝깔짝 확인한 터라 인종과 국적을 확인하기 어려웠거든요. 군복도 살짝 칙칙한 게 육군이 아닌 건 확실했어요.”
현재 대구에 주둔하고 있는 다수의 육군과 김해에 주둔하고 있는 소수의 육군들은 모두 군복 양식이 똑같아서 구별하기 쉬웠다.
하지만 바다에서 작은 고속정이나 고무보트를 타고 이동하는 그 무장 병력들은 뭔가 달랐다. 어쩌면 한국군이 아닐 수도 있다.
“거제도에 자리를 잡았고, 한국군과는 뭔가 다르고, 이 시국에도 대공 시스템을 전개한 데다 내륙으로 침투하고 있다? 굉장히 수상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일본 해자대일 가능성도 있군요.”
한동석이 또 음모론자처럼 중얼거리자 김진경 경장이 적당히 맞장구쳐 주었다.
일본에서 도망쳐 온 크루즈선이 부산항을 들이박아서 부산이 그 꼴이 났는데, 일본 자위대라고 멀쩡할 수 있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애초에 일본은 한국보다 큼지막한 섬이 많아서 굳이 해자대가 작은 거제도로 도망쳐 올 이유가 없다. 하다못해 도망쳐 오더라도 거제도가 아니라 제주도로 향했겠지.
그런데 한국군도, 일본 해자대도 아니라면 대체 누가 거제도에 자리 잡은 걸까?
남의 나라에 뻔뻔하게 자리 잡을 만큼 양심 없는 놈들이 과연 지구상에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중국군이라면…….’
어쩌면 중국군은 좀비 사태가 발발하자마자 대만과 제주도까지 꿀꺽 삼키고 한술 더 떠서 거제도를 전초 기지 삼아 내륙으로 침공하려는 계획을 세웠을지도 모른다.
이쯤되면 나도 빌 게이츠가 사실 COREX 백신으로 전 인류를 조종하고 있다거나 베리칩을 박아서 24시간 감시하고 있다고 믿는 음모론자인 걸까?
아니, 그래도 상식 따윈 존재하지 않는 중국이라면 가능성이 꽤 있다.
“확실한 건 우리보다 저쪽의 무장 병력 수가 훨씬 더 많다는 겁니다.”
우리는 각성자와 일반인으로 구성된 전투원을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모으면 대략 1천 명쯤 되는 병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저쪽은 한 명 한 명이 체계적으로 훈련받고 중무장을 한 정예 강군으로 추측된다.
한 번에 움직이고 있는 병력이 얼추 2~300은 되는 것으로 보건대, 거제도 어딘가에 자리 잡았을 본대까지 합친다면 우리의 총 전투원 숫자 정도는 가볍게 상회하는 거대 세력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런 거대 세력이 갑자기 어디서 뚝 떨어졌냐는 거다. 지금까지 거제도에서 김해로 넘어오거나 접촉을 시도해 오는 낌새 같은 건 조금도 없었기에 더욱 의문이었다.
“그만한 수의 무장 병력이 어째서 위험한 내륙으로 들어오는 걸까요?”
순서대로 UCAV의 감시 영상을 돌려 본 채성아가 의아한 듯 중얼거렸지만, 이 자리에서 명쾌한 해답을 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군에 대해 빠삭한 나조차도 몇 가지 추측만 하는 게 고작이었다.
나는 차창 너머로 창원의 불모산 저수지 방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만약 거대 세력이 최근에 거제도에 자리 잡았다면 지금쯤 물자난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섬사람들은 좀비 사태가 터지자마자 배를 타고 더 멀리 떨어진 외딴섬으로 피신했을 텐데, 아까운 물자 같은 걸 남겨 두고 갔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나마 거제도에 규모가 큰 조선소가 있어서 군함을 정박시키기엔 좋지만, 물자가 없으면 결국 세력을 유지할 수 없잖아요? 섬보다 내륙이 훨씬 위험하긴 해도 일단 물자부터 수집하고 보자는 의도인 것 같아요.”
“하긴, 특정 지역의 좀비를 완전히 소탕하고 장악할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병력을 총동원했겠네요.”
“그렇죠. 아니면 김해에 자리 잡은 우리의 존재를 사전에 파악하고 접촉해서 협력을 꾀했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방공망에 UCAV가 들어오면 즉시 격추하고 무선 통신도 침묵, 김해에 정찰을 보내는 낌새도 없었으니 우리와 친하게 지낼 생각은 없다고 봐야겠죠.”
“그 말인즉슨 좀비가 아니라 저 무장 세력과 싸워야 할 수도 있다는 겁니까?”
“대구와는 사정이 달라요. 상대의 국적과 소속을 모르고 의도 역시 불명확한 이상, 일단 잠재적 적대 세력으로 인식해야겠죠.”
물론 이런 시국에 인간끼리는 서로 싸우지 않는 게 최선이며, 이 사실에는 뿌리 깊은 군대 혐오증에 걸린 나조차도 동의하는 바이다.
만약 직접 만나서 저들의 국적과 소속을 확인하고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면 협상의 자리를 가지는 게 최고의 선택지일 것이다. 저런 세력과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대구 같은 강력한 동맹을 하나 더 얻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말도 안 통하고, 우리랑 협력할 의사도 없는 타 국적의 적대 세력이라면 전쟁은 불 보듯 뻔하고, 설령 같은 국적의 다른 소속 부대라고 해도 흉악한 의도를 품고 있다면 마찬가지로 전쟁 확정이다.
기껏 김해 내부를 정리하고 내실 다지기에 막 들어간 참인데, 좀비도 아니고 같은 인간과 싸우느라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면…… 아마 내 이성의 끈이 뚝 끊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꼭 생존에 필요한 물자가 목적이 아니라고 해도 다른 것이 목적일 가능성이 있어요.”
“예를 들면요?”
“창원에는 국내 최고 규모의 군수 공장들이 자리 잡고 있죠. 창원이 다른 지역들처럼 좀비 사태에 대응하지 못해 쉽게 무너져 내렸다면, 군수 공장을 비롯해서 군수 물자를 보관해 두는 각종 창고가 그대로 남아 있지 않겠어요?”
“아, 그래서……!”
그래, 군대는 돈 먹는 하마다.
군인들을 먹이기 위한 식량, 입히기 위한 피복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탄약과 무기가 없으면 군대라는 형식을 유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사실 나도 창원으로 향하는 김에 군수공장과 창고가 자리 잡고 있는 공업 단지를 노리고 있는데, 군대로 추정되는 무장 세력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설령 중국군이나 일본 해자대라고 해도 한국 최대의 군수 공장이 창원에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가상 적국들은 유사시 서로 간의 최우선 타격 지점을 조사해 두는 편이니까.
즉, 이 상황은 주인 없는 대량의 군수 물자와 생산 공장을 먼저 손에 넣기 위한 양측 세력의 치킨 게임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차가 좀 흔들려도 참으세요. 출발하기 전에 멀미약도 먹었잖아요?”
장갑 구급차는 방탄, 방편, 방폭, 방독 기능까지 두루 갖춘 최고의 이동 수단이라 대전차 미사일이 한 무더기로 날아오는 게 아닌 이상 충분히 버텨 줄 수 있다.
각성자도 총 맞으면 죽는 건 똑같으니까 더욱 조심해야지.
“그런데 사장님, 너무 조용하지 않습니까?”
한동석이 차창 너머로 바깥 풍경을 확인하다가 대뜸 자신의 엽총을 꺼내 들며 말했다.
나도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서 주변을 경계하다가 확실히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창원에는 딱 3개가 존재한다. 수많은 근로자들이 출근하는 공장, 수많은 산업 재해 피해자들이 찾는 대형 병원, 그리고 수많은 워커 홀릭들이 잠자고 씻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주거 단지.
당연히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는 도시라 좀비들도 김해 이상으로 많아야 정상이건만, 이상하리만치 주변은 조용하고 좀비들도 없었다.
“고요한 시내에서 차량 엔진음이 울려 퍼지면 보통 좀비 몇 마리 정도는 튀어나올 법도 한데, 아까부터 좀비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안 보입니다.”
단순히 아직 외곽에 가까운 초입이라 좀비들의 수가 적은 것일 수도 있다. 얼마 전에 UCAV로 창원 시내를 잠깐 훑어봤을 때도 좀비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때 한동석이 뒷좌석에서 조수석으로 넘어오더니 예리한 눈빛으로 이곳저곳을 훑었다.
“우리가 오기 전에 운 좋게 좀비들이 다른 곳으로 더 많이 몰려갔을 가능성은?”
“멍청한 일반 좀비들도 본능적으로 사람이 많은 곳을 알아서 찾아가지 않습니까. 그리고 김해의 거점 일원들에게 얘기를 들어 보니 종종 창원에서 흘러 들어온 몇몇 좀비들 때문에 거리 정비가 귀찮아졌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김해와 가까운 이 주변에 당연히 좀비 몇 마리 정도는 배회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일부러 어그로를 끌어서 좀비를 다른 지역으로 빼낸 건가?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는데?”
내가 무식하게 포격으로 남부 해안 공업 단지를 조질 때도 창원에서 좀비 대군이 우르르 넘어오는 일은 없었는데, 하물며 우리가 창원에 도착하기 전부터 친절한 누군가가 이곳에 있던 좀비를 다른 곳으로 싹 빼돌렸다? 그럴 리가.
차라리 우리가 오기 전에 이곳의 좀비들이 다른 지역으로 먼저 이동했기 때문에 텅 비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합리적이다.
내 말을 들은 한동석도 긴가민가하는 눈치였다. 뭔가 이상하기는 한데 확실하게 콕 집어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막말로 누군가가 도시 내부에 존재하는 좀비들의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통제하지 않고서야…….”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까운 공장의 창고 문이 갑자기 덜컹! 하고 개방되었다. 정적이 내려앉은 도로 한복판에서 울려 퍼진 그 소리는 제법 시끄러웠기에 저절로 고개가 홱 돌아갔다.
“저기! 공장 옥상에 누가 있습니다!”
한동석이 가리킨 그 누군가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지만, 그 대신 두꺼운 철문이 개방된 공장 창고 안쪽에서 대량의 좀비가 쏟아져나왔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이승권!
“이런, 씹!”
구미처럼 또 다른 상위 개체가 좀비들을 통제하는 건가 내심 걱정했더니만, 이번에는 사람이 좀비를 미리 가두리 양식에 가둬 놓고 사냥개처럼 풀어 대고 있어?!
‘저 새끼는 나한테 잡히면 뒤졌다, 진짜.’
부르르릉!
인근 공장에서 갑자기 쏟아져 나온 좀비들 때문에 머뭇거릴 틈도 없이 다시 차량을 급가속시켰다.
진짜 뭐지? 깜짝 이벤트 같은 건가?
줘도 안 가지는 좀비를 사은품으로 주는 이 개같은 이벤트는 어떤 새끼가 기획한 거지?
‘내가 발로 기획해도 이것보다는 잘 기획하겠다!’
정작 내 발은 지금 엑셀을 밟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아무튼 우리는 인연에도 없던 깜짝 좀비 함정에 걸려 더욱 깊은 창원 시내로 도망쳐 들어가야 했다.
내 이성의 끈이 벌써부터 끊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