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수복기 (1)
창원행은 아쉽게도 ATX를 동원할 수 없다.
첫째로 좀비 사태 초기 당시 김해 외곽을 포함해 시내 전역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지형지물의 파괴 정도가 상당히 심했다.
김해 내부에 존재하는 일부 선로는 밀양과 부산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스킬의 영향으로 복구되긴 했으나, 내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 창원의 선로는 여전히 박살 난 상태 그대로였다.
둘째로 지금 가용할 수 있는 ATX가 없다. 내가 한 번에 동원할 수 있는 ATX는 최대 4대, 뉴동대구역에 예비로 남겨 둔 1대까지 합치면 총 5대다.
하지만 ATX는 지역 방위부터 물자, 사람, 원자재 수송까지 온갖 스케줄로 바쁘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상시 경상도 지역을 돌아다녀야 한다.
일단 목적지를 지정해 두기만 하면 알아서 움직이는 자동 운행 기능이 있으며, 어지간한 좀비들로는 쉬이 건드릴 수 없는 막강한 방호력을 갖춘 무장 열차. 그런 걸 ‘전쟁’에 써먹는 건 아직 이르다.
‘ATX는 아직 땅따먹기 기계로 사용하기엔 보완해야 할 점이 많아. 복구된 선로를 통해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제약도 있고.’
일전에 계획해 둔 ‘경비 로봇을 ATX에 태워서 순회 공연을 시키자’는 계획도 당장은 써먹기 어렵다. 내 영역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넓어져야 시도해 봄 직하다.
ATX 문제는 잠시 뒤로 제쳐 두고, 나는 팀원들과 함께 창원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경희대 중앙 병원에 들러서 의사들과 따로 만남을 가졌다.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병원장님.”
“제가 없는 동안 별일은 없었습니까?”
“간혹 이 병원을 노리는 소수의 약탈자 무리나 좀비 떼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거점 일원들이 방위 무기와 함께 손쉽게 처리하더군요. 덕분에 저희 같은 비전투원들은 두 발 뻗고 잘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네요. 현재 김해 내부에 존재하는 좀비와 소수의 약탈자 잔당들을 빠르게 소탕하고 있으니 조만간 비전투원도 바깥을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될 겁니다. 김해에 한정되겠지만요.”
“어휴, 그것만으로도 어딥니까? 솔직히 물자 수색이나 정찰 목적으로 바깥에 나갔다가 다쳐서 돌아오는 사람들 볼 때마다 안타까웠습니다. 일반적인 부상은 저희가 어떻게든 치료할 수 있는데 감염은…….”
지금은 흉부외과 과장을 맡고 있는 김두성이 말끝을 흐렸다.
흉부외과의인 그가 요즘 같은 시국에 개흉 수술을 할 일이 얼마나 많겠느냐마는, 의사 같은 희귀 전문 인력은 굉장히 적어서 그도 전공과는 다른 유형의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보내 주신 샘플 말입니다. 그거 감염내과의 최 선생이 다른 선생들이랑 협력해서 연구 중입니다. 이 병원이 더욱 커지면서 각종 병원체와 감염성 물질을 별도 취급할 수 있는 부속 연구실이 생긴 덕분이라더군요.”
“제가 그쪽 분야는 잘 모르지만, 평범한 연구실에선 연구하기 힘들지 않습니까?
“이것저것 따져 보니 생물 안전도(BSL) 3급에 해당하는 연구실이더군요. 연구에 필요한 어지간한 기재와 장비, 소모품이 대부분 갖춰져 있고 별도의 소독실과 오염물 폐기 시스템도 갖춰져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만으로 좀비 바이러스 같은 상당히 위험한 걸 다루기엔 위험할 것 같아 따로 전신 방호복을 필수 착용하도록 규정을 추가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제가 따로 주의를 줄 필요는 없었네요.”
“하하, 이런 것도 못 하면 의사 딱지 떼야지요. 요리사보다 더 위생에 목매는 건 아마 우리들뿐일 겁니다.”
김두성과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넓은 병원 내부 부지를 걷자, 곧 내 거점 지정 스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별도의 건물이 나타났다.
부속 연구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거대하고 입구에서부터 까다로운 소독, 경비 시스템이 따로 갖춰져 있을 정도였다.
일반 좀비에게서 뽑아낸 DNA 샘플은 무형의 아이템 취급이라 따로 연구할 수는 없었지만, 변종에게서 직접 채취한 생체 샘플은 얘기가 달랐다. 나는 일단 이것도 시스템의 노림수 중 하나라고 추측하고 있다.
아직 나와 가까운 각성자 동료들에게도 이런 걸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리지 않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라 동료들에게도 순차적으로 정보를 공유할 생각이다.
김두성과 함께 소독 시스템을 통과하고, 연구실에서 정기적으로 자동 생산되는 방호복을 하나씩 꺼내 입었다.
김두성은 방호복을 입을 때 반드시 2인 이상의 연구원이 서로의 상태를 확인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방호복에 아주 미세한 틈이라도 존재하면 연구실 내부에서 감염에 노출될 수 있을뿐더러, 그 상태로 바깥으로 나가면 순식간에 슈퍼 전파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6년이 넘도록 인류를 지독하게 괴롭힌 COREX 바이러스도 중국의 어떤 부주의한 연구원 때문에 연구소 외부로 바이러스가 유출된 것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고 할 정도니까.
소독하고 방호복을 걸친 후에도 몇 개의 보안 절차를 거친 후에야 겨우 연구소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물 샐 틈 하나 없이 완벽한 이음새를 갖춘 박스형 연구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연구실의 기본 구조는 거대한 철골과 두껍고 투명한 유리 벽, 그리고 내부 공기가 절대로 외부에 새어 나가지 않도록 배치된 공기 정화 시스템이 핵심이었다.
우리는 섣불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선 복도에 서서 유리 벽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연구실 내부에는 총 세 명의 남녀가 있었다. 그중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는 남자가 김두성이 말했던 감염내과의 최 선생이었다.
그는 현미경을 들여다보다 말고 고개를 들어 옆에 서 있던 여성에게 무어라고 말하고는 다시 현미경 관찰을 반복했다.
“이것만 봐서는 문외한인 제가 연구에 진척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김 과장님은 뭔가 들은 게 있습니까?”
“저 친구들이 거의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독종들이라 저도 아직 자세한 건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만, 감염 경로가 하나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습니다.”
“감염 경로가 하나가 아니다?”
“자세한 건 저 친구를 통해 들어 보지요.”
김두성이 복도에 비치된 인터폰을 들어 안쪽의 인원을 호출하자, 그제야 저들도 우리가 왔다는 걸 눈치챘다.
연락을 받은 최 선생이 연구실에 딸린 소독실에 들어가서 한바탕 요란하게 소독액을 뒤집어쓰고 압축 공기 분사까지 시원하게 맞은 후에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병원장님. 이게 얼마 만이죠?”
“근 한 달 만이죠. 연구가 잘돼 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걸 연구가 잘되고 있다고 해야 할지…… 하하.”
그는 방호복 마스크 안쪽에서 피곤에 찌든 얼굴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할 말이 있는데 쉽게 입 밖에 꺼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로 저런 표정을 짓곤 했다.
“연구 성과가 없다고 해서 여러분을 질책하거나 페널티를 줄 생각은 없으니까 속 시원하게 말해 보세요. 얼굴만 봐도 얼마나 오랫동안 쉬지 않고 연구해 왔는지 알 것 같거든요.”
“그러시다면야…… 덜 나쁜 소식과 아주 나쁜 소식이 하나씩 있습니다. 어느쪽부터 들으시겠습니까?”
난 이런 클리셰 싫은데.
“좋은 소식은 없나요?”
“있었다면 제가 먼저 병원장님을 찾아갔을 겁니다.”
“젠장. 덜 나쁜 소식부터 듣죠.”
누가 내 인생을 설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덜 나쁜 소식은 이미 생명 활동이 정지된 시체에 바이러스를 주입해도 좀비화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즉 판타지처럼 싸늘하게 식은 시체가 부활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까?”
“예. 병원장님은 바깥을 자주 돌아다니셨으니 좀비들이 살아 있는 인간을 습격할 때의 광경도 꽤 많이 보셨을 겁니다. 그때 좀비들이 감염시킨 대상을 아군으로 인식하고 습격을 멈추는 사례 A와, 아군으로 인식하지 않고 살점 한 조각까지 모조리 포식해 버리는 사례 B가 나뉘어 있지 않았습니까?”
“……확실히 그랬던 것 같네요.”
생각해 보면 지금껏 내가 마주친 모든 좀비들은 살아 있는 인간을 무작정 피라냐처럼 깔끔하게 포식하지는 않았다.
일단 감염시키는 것에 성공하면 아군으로 인식하고 함께 행동하거나 지나쳤으며, 반대로 감염의 성공 여부와는 관계없이 우르르 몰려들어 게걸스럽게 포식한 적도 더러 있었다.
“아마도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는 과정에서 숙주 후보가 너무 빠르게 죽어 버리면 그대로 포식, 반대로 생명 활동 정지보다 감염이 더 빠르면 아군으로 인식하는 구조가 아닐까 합니다.”
그의 말에 대구와 구미에서 마주쳤던 변종들의 사례도 기억해 보았다.
놈들은 어둠 속에서 인간을 습격해 게걸스럽게 포식하거나, 반대로 특정 부위만 물어뜯거나 할퀴어서 빠르게 아군으로 만들어 대구 외곽 방어선을 공격했었다.
일반 좀비에 비해 좀 더 지능적으로 포식 대상과 감염 대상을 구분했던 것은 변종이 일반 좀비의 상위 개체였기 때문이겠지.
퍼즐이 하나둘씩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가만, 그래서 거리에 ‘평범한’ 시체가 하나도 없었던 건가……?”
“예, 감염이 되기 전에 사망한 인간의 시체는 각성자들이 말하는 시스템에 의해 자동적으로 소멸하지 않으니 좀비들에겐 포식 대상이고, 반대로 감염이 빠르게 진행된 피해자들은 모두 죽기 전에 좀비로 변했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 바깥을 돌아다니는 건 사실상 살아 있는 비감염체(인간)와 살아 있는 감염체들뿐이지요.”
나는 무심결에 손뼉을 쳤다.
사태 초기에는 길거리에 널브러진 시체를 몇 구인가 본 적 있었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지난 뒤에는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거리에 남겨진 건 오직 살아서 움직이는 좀비와 생존자들 뿐이었다.
게다가 지금껏 내가 마주친 모든 좀비들의 공통점은, 인간이었을 때 뇌와 심장의 손상이 즉사에 이를 만큼 심각하지 않았거나 아예 없다는 점이었다. 간혹 몸이 반으로 잘린 좀비는 있어도 머리가 잘린 좀비가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팔다리가 하나쯤 뜯어졌거나 내장이 질질 쏟아져 나온 상태라고 해도 일단 좀비가 되기만 하면 그런 상처로는 죽지 않는 게 좀비니까.
“잠깐, 그렇다면 좀비들은 왜 ‘포식’을 하는 거죠? 놈들은 엄밀히 따지면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상태인 데다 인간처럼 정상적인 신진대사를 하고 있지는 않을 텐데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에 불과합니다만, 각성자분들이 말하는 그 ‘시스템’에 의해 사망한 좀비는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소멸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성자는 ‘경험치’와 ‘DNA 샘플’이라는 것을 얻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죠.”
“각성자와 좀비가 모두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는 구조라면, 이론상 좀비도 각성자처럼 인간을 감염시키거나 포식하는 것으로 ‘무언가’를 얻는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단순히 열량을 섭취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말입니다.”
최 선생의 가설과 함께 떠오른 것은 수많은 변종과 그 상위 개체인 영역 지배자였다.
‘생각해 보면 아주 이상한 말은 아니야. 사태 초기에 특정 조건을 만족하지 못해서 여전히 각성을 하지 못한 일반인들은 둘째 치고, 우리 각성자들은 좀비를 죽일 때마다 시체는 시스템에게 헌납하고 경험치와 DNA 샘플을 얻고 있잖아.’
좀비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나?
각성자처럼 특정 행동(감염, 포식)에 따라 경험치(각성)를 얻고, 어떤 계기(DNA 샘플)를 얻는 것으로 변이(레벨 업)하고, 영역 지배자처럼 스킬(직업 숙련 포인트)을 획득하는 것도 이론상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실제로 그런 좀비들과 마주쳤고, 싸워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구미에서 변종들이 토막 낸 인간의 시체를 자신들의 근거지에 쌓아 둔 것도 갓 태어난 변종들에게 포식시켜 경험치를 얻게 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면…… 앞뒤가 맞는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가설들이 어느샌가 완벽하게 증명된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놈들은 생물이되 생물이 아니고, 시체이되 시체가 아니며, 각성자이되 각성자가 아닌 존재들. 즉 시스템에 의해 설정되고 종속된 ‘무언가’.
시스템은 어째서 우리 각성자들에게 좀비의 DNA 샘플을 모으게 하는 것일까? 사실은 이 모든 게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한 것처럼 보이게끔 시스템이 설치한 맥거핀이라도 되는 걸까?
‘모르겠다. 나 같은 문돌이가 머리 부여잡고 끙끙댄다고 해결될 차원의 문제가 아니야.’
애초에 세상이 갑작스럽게 멸망한 것도, 좀비라는 것들이 등장한 것도, 시스템이 나타나 소수의 인간들을 각성시키고 보조하는 것도 전부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말도 안 되는 비현실 속에서 답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도 없다.
네스호에 정말로 괴물이 사는지 안 사는지 알 게 뭐란 말인가?
나는 시스템에 대한 생각을 빠르게 떨쳐 버렸다. 내가 각성자인 이상 시스템은 그냥 각성자를 보조하는 괴현상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거다.
그건 그렇고 좀비들의 행동 원리를 알게 된 것이 그나마 ‘덜 나쁜’ 소식이라니. 이제 아주 나쁜 소식을 들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숨이 턱턱 막힌다.
생각해 보니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의사잖아. 혹시 시한부 선고를 받는 환자들이 이런 기분일까?
“덜 나쁜 소식은 이제 됐고, 그 아주 나쁜 소식을 한번 들어 보죠.”
“아주 나쁜 소식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 드리는 게 낫겠군요. 같이 연구실로 들어가시죠.”
나는 이쪽 분야의 전문가인 그에게 연구실 출입 및 행동거지에 관한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전달받고서, 소독 절차를 밟은 후에야 겨우 연구실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안쪽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다른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특수 보관 용기를 열더니, 급속 냉각 시킨 ‘무언가’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벌레?”
흡사 칠성장어와 민달팽이를 합친 듯한 기괴한 벌레가 은은한 형광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크기는 대량 성인 남성의 팔뚝보다 조금 작은 정도.
그런데 저 형광빛을 어디서 봤더라…….
“폭발형 좀비가 ‘폭발’하는 것과 동시에 총알과 맞먹는 속도로 살아 있는 인간을 향해 발사되는 놈입니다. 일단 살아 있는 인간에게 박히기만 하면 해당 인간을 빠르게 새로운 폭발형 좀비로 변형시키는 것 같더군요. 즉 폭발은 숙주를 갈아타기 위한 탈출 시스템이었던 겁니다.”
“실패하면 그대로 죽는 건가요?”
“예, 새로운 숙주로 갈아타지 못한 놈들은 바깥 환경에서 매우 짧은 시간 만에 사망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른 거점 일원들이 김해 시내에서 좀비들을 소탕하며 검증해 준 사실입니다. 이 표본도 그분들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얻은 것이지요.”
“아아, 그래서…….”
폭발형 좀비들은 가까운 곳에 인간이 있으면 자폭하고, 반대로 주변에 인간이 없으면 독가스를 내뿜어 어딘가에 숨어 있는 인간들을 기어 나오게 하는 영악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게 왜 더 나쁜 소식이죠?”
“예를 들면 말라리아 원충을 옮기는 모기와 이 좀비 바이러스를 품은 기생충의 숙주인 폭발형 좀비, 어느 쪽이 더 위협적이겠습니까?”
“당연히 폭발형 좀비죠.”
말라리아는 불완전하지만 엄연히 백신도 존재하는 데다, 현대에는 제법 다양한 치료제가 개발된 상태다. 즉 과거와 달리 아주 심각하게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좀비 바이러스와 그걸 몸에 품은 사람 팔뚝만 한 기생충, 그리고 그런 기생충이 탈출 시스템으로 쓰는 숙주의 무시무시한 자폭은 인간을 100% 죽음에 이르게 한다.
“예, 폭발형 좀비가 압도적으로 더 위험합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다른 좀비들이 더 없을 거라는 보장은…….”
“없죠.”
그의 말대로 이 사례가 반드시 폭발형 좀비에게만 한정되어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어쩌면 이와 유사하면서 더 위협적인 변종도 있을 터.
이쯤 되면 시스템이 사실 인간을 조지는 김에 약간의 유흥을 위해서 좀비 바이러스와 각성 기회를 같이 준 게 아닌가 의심될 지경이다.
“이 기생충도 엄밀하게 따지면 좀비입니다. 바이러스의 형태가 아닐 뿐, 인간의 체내에 침투해서 숙주를 변형시키고 인간을 해하려 든다는 점에선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요.”
“조심해야 할 게 하나 더 늘었군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원거리에서 저격이나 폭발로 놈들을 처리하는 방법을 고수해야겠어요.”
“안전이 제일이긴 합니다. 아, 그리고 이놈들이 내뿜는 독가스에 매우 심하게 노출되었다가 좀비처럼 변한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가볍게 노출된 환자들은 지금도 병원에서 케어하고 있고요.”
“그럼 역시 공기 중으로 퍼진 독가스에도 좀비 바이러스가 있었나요?”
그렇다면 큰일이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폭발형 좀비가 내뿜은 다량의 독가스를 흡입했다고 해서 무작정 좀비로 변이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그 독가스에 노출된 피해자들은 아직까지도 인간이며 체내 혈액 및 세포 조직 검사 결과에서도 좀비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김진경 경장님과 병원장님이 당시 사건 현장에서 함께 처리했다던 그 피해자들은 이 기생충이 없었음에도 폭발형 좀비와 비슷하게 변이하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독가스를 일정량 이상 흡입해야 좀비로 변이하는 조건이 있는 건지, 아니면 각성자분들이 말하는 ‘시스템’의 영향을 받은 건지, 무엇 하나 확실한 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모든 사례를 그냥 ‘시스템’의 영향으로 치부해 버리면 편하기야 합니다만, 그래서는 본말 전도이니 이렇게 계속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폭발형 좀비가 내뿜는 독가스에 의해 공기 전염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데 솔직히 우리도 잘 모르겠다. 대충 그런 의미인 것 같다.
그러니까 현재 그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답은 ‘그 독가스는 위험하니까 웬만하면 노출되지 않는 게 좋다’ 정도일 것이다.
일단 100% 공기 전염이 되지 않는다는 좋은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찝찝한 것은 사실이다. 폭발형 좀비는 보이는 족족 쳐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거점 일원이나 거점 방위자들을 통해서 말해 주세요.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각성도 못 한 일반인들을 이렇게 챙겨 주시는 건 병원장님뿐인데 작게나마 보탬이 되어야지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먼저 가 볼 테니 다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하세요.”
그 길로 의사들과 헤어진 나는 병원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팀원들에게 돌아왔다.
착잡한 심정이었으나 팀원들에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지금부터 우리는 창원으로 가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