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투쟁기 (37)
난 부비 트랩을 싫어하지만 좋아한다.
부비 트랩을 싫어하는 이유는 내 전우들을 고통스럽게 했기 때문이고, 부비 트랩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 적들을 고통스럽게 했기 때문이다.
부비 트랩이라는 게 참 요망한 놈이라서 뻔히 보이는 놈은 시험 내용처럼 달달 외우기만 하면 손쉽게 해제하거나 회피할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기출 변형이 더해지면 얄짤없이 피를 본다.
전장에서 부비 트랩을 설치하는 적들은 마치 C뿌리기를 시전하는 대학 교수님 같았다. 어쩜 그리도 기똥차게 기출 변형을 가하는지.
당연히 당하면 배우고, 배우면 써먹는 게 인간인지라 우리도 만만찮게 부비 트랩을 설치했었다.
다만 큰 과점에서 보면 방어자의 입장이었던 북한군은 필사의 ‘니가 와’를 시전하면서 부비 트랩을 깔았다면, 우리는 놈들의 엉덩이를 찌르면서 부비 트랩으로 살살 유도하는 ‘니가 가라 하와이’를 시전했다.
자존심 강한 양측 군대의 대결은 항상 끔찍한 희생만을 낳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불타올랐던 것 같다.
당했으면 당한 것 이상으로 갚아 줘야 한다는 강박증이 밤낮으로 우리를 괴롭혔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진 근본적인 허점까지 파고들어 가며 부비 트랩을 설치하거나 기습적인 작전들을 벌였다.
그것은 더 이상 이성적인 인간들의 싸움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가 안 되면 잇몸으로 달려드는 미치광이들처럼, 우리는 어느 쪽이 더 빨리 인간성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버릴 수 있는지 서로 내기하듯 싸웠던 것이다.
부비 트랩은 마치 이혼한 전 아내와 같다. 밉지만 그립고, 재결합은 하고 싶지만 결국 현실을 깨닫게 해 주는 애증의 존재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부비 트랩을 싫어했지만, 미치도록 좋아했다.
“놈들이 복귀하고 있습니다.”
건물 옥상에서 망원경을 든 채 꾸물꾸물 움직이는 좀비들을 주시하고 있던 한동석이 중얼거렸다.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L마트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진 곳에 은신처를 구한 뒤, 나와 한동석만 다시 밤의 거리로 나선 참이었다.
“놈들은 야행성이라 밤이 되면 평상시처럼 활동을 재개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대로 복귀할 줄이야. 의외입니다.”
“놈들이 일반적인 좀비와 다르다는 점에서 따져 봐야 할 조건이 더 있다는 거겠죠. 바이오리듬이라든가, 에너지의 급격한 소모율이라든가, 아니면 자신들보다 상위 개체인 ‘무언가’의 명령이 필요하다든가.”
“우리가 낮에 일으켰던 소란은 놈들 입장에서 완전히 허를 찔린 일이었을 테니 지휘 체계가 엉망이 되었을 겁니다. 사장님의 추측이 맞는다면 상위 개체에게 지휘를 받지 못했거나, 휴식을 취해야 할 때 휴식을 취하지 못한 것이 놈들에게 뼈아픈 실책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비록 날씨가 어두워서 햇빛의 영향이 적었다고는 하나,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하는 낮에 야행성인 놈들이 신경을 곤두세운 채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졌을 텐데, 내가 준비해 둔 마지막 선물까지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겠지. 벌써부터 뿌듯해지는 기분이다.
“사장님, 놈들이 마트 안에 거의 다 들어갔습니다.”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격발 스위치를 당겼다.
원격에서 신호를 받고 뇌관이 작동한 C4는 정교하게 건물 내부의 특정 위치에서 차례차례, 놈들이 눈치채고 대응할 수도 없을 만큼 매우 빠르게 폭발했다.
콰아앙! 쾅! 콰가가가강!
쿠구구구구구구구!
건물 내부에서 연쇄적으로 울려 퍼지는 엄청난 폭음과 진동.
좀비 아포칼립스 시대에서 여전히 멀쩡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커다란 강화 유리가 폭압으로 산산조각 날 만큼, L마트의 내부는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었다. 그래도 현대 건축 공학의 정수가 담긴 만큼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아,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딱히 폭탄을 써서 저 건물과 함께 통째로 놈들을 소탕하려는 게 아니다.
저 거대한 건물을 폭삭 주저앉히려면 전문적인 폭파 지식도 필요하거니와, 엄청난 양의 폭약이 필요하다.
내가 DNA 샘플이 아무리 넘친다지만 그 아까운 걸 죄다 C4 구입에 쓰는 건 너무 멍청한 짓이다.
그렇다면 부족한 화력으로 어떻게 놈들을 엿 먹이느냐, 사실 그건 어렵지 않다.
지상을 돌아다니는 생물에게 가장 두려운 건 머리 위에서 갑자기 뭔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잘 걷고 있던 지반이 찰나의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거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건 피하거나 막을 수라도 있지, 지반이 무너지면 중력과 함께 그대로 떨어져 버린다. 지금까지 내가 상대했던 놈들 중 그 누구도 지반 붕괴 함정만큼은 피하지 못했다.
“폭음과 진동의 규모를 보건대, 저 마트의 1층 지반이 완전히 붕괴했을 겁니다.”
하지만 튼튼한 맷집을 자랑하는 놈들이다 보니 완전히 죽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게 묻는 듯한 한동석의 시선에 나는 다음 격발 스위치를 당겼다.
지반 붕괴 함정의 진짜 무서운 점은 1차 붕괴에서 운 좋게 살아남더라도, 2차 붕괴에선 절대로 살아남지 못한다는 점이다.
수많은 잔해와 함께 지하로 곤두박질친 놈들의 머리 위로, 1층 천장의 잔해들이 또 한 번 붕괴되면서 우박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만약 저 2차 붕괴에서 살아남는다면 그놈은 좀비가 아니라 신이다, 신.
쿠구구구구구구구구!
“허어, 저리 쉽게…….”
“놈들은 후각이 없으니까요. 폭탄이든 독이든 뭔가를 꽁꽁 숨겨 놨다면 절대 못 찾죠.”
특수한 임무를 부여받은 군인이나 경찰이 괜히 훈련받은 군견을 데리고 다니는 게 아니다.
인간이 맡지 못하는 마약이나 폭발물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녀석들을 대동해도 부비 트랩 수색과 해제 작업은 굉장히 위험한데, 아예 후각이 존재하지 않는 놈들이라면 저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좀비의 시체는 처리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의 습격 사실을 눈치채기도 어렵다.
실시간으로 내 지갑에 들어오고 있는 무수한 DNA 샘플과 경험치가 바로 그 증거였다. 실제로 오랜만에 레벨 업도 했다.
“상태창.”
[생존자 : 이승권]
[직업 : 퇴역병]
[직업 숙련 레벨 : 35 > 36]
[칭호 : 오버킬, 피바람, 응급 구조 요원, 동족 포식자, 농성의 왕, 변종 혐오자(NEW)]
[생존 기간 : 39일 차]
[숙련 포인트 : 0 > 1]
변종은 확실히 일반 좀비에 비해 지급되는 경험치나 DNA 샘플의 양이 많았다.
김해와 부산에서 마주친 변종들은 많이 쳐줘도 한 마리당 DNA 샘플 5 정도였던 것 같은데, 저놈들은 무려 한 마리당 30이다. 저 정도면 변종 중에서도 특수 개체라고 부를 만했다.
“이걸로 완벽하게 이 지역의 변종들을 처리했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놈들의 머릿수는 크게 줄였을 겁니다. 당분간 대구가 공격받을 일은 없겠지요.”
“그것도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놈들을 생산하던 그 기괴한 살덩어리를 없애 버린 거죠. 분명 구미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무언가’에게 적잖은 타격이 되었을 거예요.”
아직 ‘무언가’가 뭔지는 모른다.
추측건대 우리가 구미에 도착하고 막 은신처를 확보했던 어젯밤, 공단 최중심부에서 들려온 그 끔찍하고도 소름 돋는 울음소리와 관련이 있으리라.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거대 괴수는 아닐 거다. 그런 놈이 이곳에 자리 잡았다고 하기엔 주변 도로나 건물이 너무 멀쩡해.’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세상이 비록 비현실적인 좀비 놈들에 의해 반쯤 망하고 시스템이라는 것이 등장했지만 그래도 현실은 현실 아닌가.
내부에서부터 무너진 L마트에서 개미 새끼 한 마리 살아나오지 못하는 것을 확인한 나와 한동석은 그대로 복귀했다.
중간중간 시끄러운 폭음에 어그로가 끌려 몰려든 좀비들이 있었으나, 알다시피 좀비란 새로운 자극이 없으면 금세 통제를 잃고 아무렇게나 배회하는 놈들이다.
저들을 통제해 줄 변종 대부분이 L마트 지하에 생매장된 지금, 놈들은 더 이상 우리의 적수가 아니었다.
가끔 앞길을 막는 놈들만 조용히 처리하고, 조심스럽게 은신처로 돌아온 우리는 이번에야말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간밤에 팀원들을 배려할 겸 변종들을 경계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기로 했던 것이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회란 이토록 아름답다.
이제 눈을 감고 자기만 하면 된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체력과 정신력을 회복해야 하니까.
‘이승권 특: 막상 이렇게 자리 깔고 누워도 절대 못 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적당히 침낭을 깔고 누운 한동석과 다른 팀원들은 벌써 코를 골기 시작했다. 반면 나는 피로에 찌들어 있음에도 눈이 말똥말똥했다. 이런 말똥 같은 새끼.
세상이 이 지경이 되기 전에 잠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소파에 드러누워 넷플러스를 하루 종일 감상하면서 눈의 피로도를 최대한 높여 눈꺼풀이 저절로 감기게 하는 것.
다른 하나는 배달 어플로 치킨을 시켜 먹은 다음 도파민 수치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신경 정신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입에 털어 넣고 죽은 듯이 잠드는 것.
공교롭게도 지금은 둘 다 불가능하다.
결국 나는 인벤토리에 넣어 두고 한동안 건드리지 않았던 라디오를 꺼내 들었다.
자칫 다른 이들의 수면을 방해할 수 있으니 라디오에 이어폰을 연결했다.
기지국이나 전파 송신탑은 물론이고 민간 방송국까지 죄다 좀비 때문에 가동을 중단한 지금, 딱히 라디오에서 신박한 소식이 들려오는 것을 기대하는 건 아니다.
이런 시국에 태평하게 라디오나 만지작거리고 있을 사람은 거의 없다. 대구의 군인들이 간혹 군용 주파수로 타 부대와 교신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민간인들 중에 라디오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태 초기만 해도 라디오를 쓰는 사람이 제법 있었는데,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라디오를 쓸 사람도, 그럴 여유도 대부분 사라진 거야.’
조심스럽게 채널을 돌리고 주파수를 맞춰 봤지만 들려오는 건 높낮이가 다른 잡음뿐이었다.
아예 이 잡음을 백색 소음 삼아 들으면서 잠들어 볼까 고민하던 중, 갑자기 잡음 하나 없이 깔끔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기합, 반복한다. 기합.
-오도짜세의 정신으로 북녘땅을 점거하고 있던 대마왕의 목을 베고 지저에 숨어든 마왕군을 끝끝내 괴멸시킨 위대한 ‘북진 용사’들은 들으라.
-나 강원도 고랭지 배추의 적법한 소유권자이자 언젠가 이세계 트럭에 치여 치트키 스킬을 가지고 이세계로 향할 자.
-북진멸공 이기열 병장이 그대들의 합류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 합류한 북진 용사들의 수는 창천이사 황천당립을 꿈꾸던 노랭이들만큼 많이 있으니 안심하고 합류하라.
나는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순간적으로 자신의 고막을 의심했다.
하지만 귀를 기울여서 자세히 들어 보니 굉장히 낯익은 목소리와 어조였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우연처럼 귀에 딱 꽂히는 목소리였으니까.
-잊지 마라. 빨갱이 스-껌들은 아직도 대한제국의 전복을 꾀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녘땅 대마왕의 빠빠빠 빨간 맛을 잊지 못한 사악한 테러리스트와 반국가 단체가 이 땅의 혼란을 틈타 온갖 기행을 펼치고 있다.
-영국의 저명한 반공 단체 회장 알토리아 팬드래건 박사의 말에 의하면 이 빨갱이들은 몹시 위험한 집단이며, 그들의 뇌는 좀비와 유사할 만큼 썩어 문드러졌다고 한다.
‘그거 씹덕 망상 2D 캐릭터잖아, 미친놈아.’
나는 흡사 괴벨스가 빙의라도 한 것처럼 궤변과 헛소리를 단조로운 목소리로 주절주절 떠들어 대는 이 정신병자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전쟁 중에도 부대에서 몰래 가져온 라노벨을 몇 번이나 다시 읽고, 전쟁이 끝나면 꼭 집에 돌아가서 못 본 애니를 다 보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중증 라노벨 중독자.
오도봉고 트럭으로 이세계 전생을 꿈꾸었던 기열찐빠 이기열 병장, 내 동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