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136)화 (137/227)

136화 투쟁기 (36)

“퉷! 빌어먹을.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감사 인사를 못 했는데…… 고마웠수다, 젊은 사장님.”

한바탕 격전을 치른 끝에 어둠 속에서 습격해 온 변종들을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내 덕분에 죽다 살아난 전직 노가다 판 에이스 오함마 아재는 걸레짝이 된 변종에게 침을 뱉으며 감사를 표했다.

이렇게 나이 좀 먹은 사람들은 나와 계약한 뒤에도 반존칭 비스무리한 화법으로 ‘젊은 사장’이라고 불렀다. 제법 신선한 호칭이라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내가 이놈들 꼴통만 수십 번도 넘게 깨 봤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죽어라 달려든 건 또 처음이었어. 대체 이 더럽고 음침한 곳에 뭐가 있다고 발작을 해 대는 건지. 보물이라도 숨겨 놨나?”

“하하, 좀비들이 까마귀도 아니고 무슨 보물을 모으겠습니까. 다만 본능에 몸을 맡긴 채 야생에서 살아가는 놈들은 제 영역과 동족의 안위를 끔찍이도 중요히 여기는 법입니다. 윤리와 도덕, 법치와 질서로 이성을 갈무리한 인간도 제 영역이나 권리를 침해당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지 않습니까?”

“엽사 양반이 말하는 거니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건 좀 과했어. 내가 대구에서 자경단으로 활동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까딱 잘못했으면 오늘이 내 초상 치르는 날이었을지도 몰라.”

“뭐, 자세한 건 조사해 봐야 알겠습니다만, 저는 사장님의 추리가 맞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화두가 내게로 향하자 장비를 갈무리하고 있던 팀원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몰렸다.

“일반 좀비들은 그냥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정처 없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놈들인 반면, 변종들은 확실하게 높은 지능과 저들만의 체계를 확립해 무리 사회를 구축했습니다. 인간을 감염시킨 걸 보면 놈들도 좀비라는 종 안에 속한 건 확실한데, 일반 좀비의 생태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지요. 놈들의 흔적이 가장 많고, 놈들이 죽을 각오로 달려들어서라도 침입자를 배제하려는 장소, 딱 봐도 수상하지 않습니까?”

“이곳에 엄청난 비밀이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구만.”

“바로 그겁니다, 우리가 모르는 변종의 비밀. 그 생태를 파악하고 다수의 인간이 적절하게 대응한다면 방어 일변도에서 역으로 공격하거나, 아예 놈들을 끝장내 버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직 엽사 한동석은 야생 동물의 생태에서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뱀은 변온 동물이다. 과거에는 냉혈 동물이라고 잘못 불릴 만큼 추위를 멀리하고 온기를 좋아하는데, 고작 이런 정보 하나만으로도 땅꾼(뱀잡이)들이 산을 돌아다니며 야생 뱀을 잡아 낸다.

뱀이 어떤 장소를 좋아하는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어떤 먹잇감을 선호하고 그 먹잇감이 자주 다니는 길목은 또 어디인지.

정보 하나가 다른 정보로 연결되면 문자 그대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격이라, 하나만 우직하게 파고들어도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생활 양식이 야생 동물과 비슷한 변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적어도 한동석은 내가 그런 변종의 생태를 알아내고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약점 같은 귀중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게 분명했다.

그의 눈썰미나 추측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라서 딱히 부정하지도 않았다.

‘엄밀하게 따지면 이렇게 얻은 정보를 이용해서 우리 쪽의 희생과 노력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목적이지만.’

정보라는 놈은 참 얄궂게도 잘 사용하기만 한다고 해서 끝인 게 아니다.

희소성이 높은 정보는 그저 가지고 있기만 해도 가치가 꾸준히 올라가는 데다, 그런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 역시 평가가 오르기 마련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해커’나 ‘브로커’ 같은 이들이 별 볼 일 없는 인물상을 가졌음에도 알게 모르게 견제를 받거나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독자적인 정보망.

꼭 영화나 드라마 같은 픽션에서 찾을 필요 없이, 현실에서도 이것 하나만 있으면 남들이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

남들은 모르는데 나는 알고 있다는 우월감은 단순히 자아도취에만 쓰이는 게 아니다. 실제로 남들보다 앞서갈 수도 있고, 일부러 정보를 풀어서 소란을 유도하거나 이간질을 시도할 수도 있다. 아니면 비싼 정보를 팔아서 큰 대가를 얻어 낼 수도 있겠지.

우리가 하는 일이 바로 그런 거다.

매장금을 찾는 도굴꾼이나 트레저헌터처럼 목숨 걸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정보의 우위를 점하는 것.

만약 정보 하나로 대구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와 각성자 집단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굉장히 싸게 먹히는 장사 아닌가?

미래의 편의를 위해 현재의 불편을 감내하는 것, 내게는 상당히 익숙한 일이다.

“말했잖아요,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에 함께하게 될 거라고. 미래의 편의를 위해서 현재의 불편을 감수하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렇다고 해도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 상당한 보수와 대우를 약속해야 하는 젊은 사장이 너무 손해 보는 구조 아닌가?”

“내가 직접 하지 않으면 누구도 내 노후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그걸 몇 년 전에 깨달았거든요.”

국가가 책임져야 할 우리 가족은 버려졌다.

계약상으로만 묶인 보험사들이 형식적으로 보험금을 지급했을 뿐, 나는 그 염병할 합동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5년이 지난 끝에 추모비 앞에 설 수 있었다.

결국 인생은 혼자 사는 거다. 앞가림도 자기 몫, 노후 대비도 자기 몫.

국가에 데이고, 사회에 데이고, 사람에게 데인 끝에 도출해 낸 결론은 ‘더러워서 내가 직접 한다’였다.

어쩌겠나, 윗대가리는 다 병신이고, 말뿐인 약속과 신뢰만으로는 이미 인간이라는 종 자체를 믿을 수 없게 돼 버렸는데.

결국 이런 세상에서 뭐라도 해 보려면 아깝더라도 내 지갑을 열고, 내가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 내가 이들과 계약해서 사장님 소리 듣고 있음에도 직접 조사 팀을 이끌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대가를 주고 일을 맡기되, 신뢰하지는 못하니까 나도 이 위험천만한 일에 함께하는 것뿐이다.

“정비 끝났으면 슬슬 움직이죠. 해가 지기 전에 빠르게 이곳의 조사를 끝내고 새로운 은신처를 찾아야 하니까요.”

어쩌면 은신처를 찾기도 전에 일이 꼬여서 도망쳐야 할 수도 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그러려고 도주 루트까지 짜 놓지 않았던가.

“그건 그렇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습해지는 것 같군. 아무리 비가 왔다지만 한겨울에 건물 내부가 이렇게 습할 리가 없는데.”

“저 더러운 놈들이 이곳에 머무르면서 온갖 흔적을 남겨서 그렇겠죠. 코 킁킁대지 말고 내 뒤에 서기나 해요, 아재.”

“아니, 이 습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니까?”

“그러니까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그만…….”

한동석과 실랑이를 벌이던 진가희가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안쪽을 노려봤다.

또 뭐가 있나 싶어 팀원들이 다시 긴장했지만, 딱히 변종이 튀어나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 소란에 어그로가 끌리지 않고 여태껏 안에 숨어 있는 좀비라면 기꺼이 박수 쳐 줄 의향이 있었다.

“저게 뭐죠?”

감각이 상당히 예민한 진가희는 정말로 어둠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건지, 유독 넓은 마트의 지하 창고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참다못한 누군가가 손전등을 비추자 곧 ‘무언가’의 실체가 드러났다.

손전등 불빛으로 밝혀진 그곳에는 거대한 가죽으로 만든 포대 자루 같은 것이 포도 알갱이처럼 거대한 기둥과 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대충 성인 남성 두 명을 집어넣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가죽 포대는 멀리서 보면 표면이 부드럽고, 왠지 기분 나쁘게 꿈틀거리는 계란처럼 보였다.

변종이 알을 낳기라도 하나? 아니, 몸집이 아무리 거대해도 저만한 알을 낳지는 못하겠지. 오히려 저만한 알이라면 변종 한 마리를 품고 있기에 적합한……

“잠깐, 주변을 봐 주십시오.”

이형진의 말에 팀원들이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자, 그제야 임팩트가 큰 알 대신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에는 살점 한 조각까지 깔끔하게 발린 채 높이 쌓여 있는 백골의 산.

다른 한쪽에는 인간의 시체가 정육점의 고기들처럼 잘 손질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토막 낸 인간의 시체 따위를 들고 어디론가 향하던 변종들의 의도를 마침내 이해할 수 있었다.

‘알에서 태어나는 놈들을 위한 먹이 보급 활동이었던 건가?’

그렇다고 해도 저 알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만한 크기의 알을 낳으려면 못해도 이 창고를 꽉 채울 만큼 거대한 생물이 알을 낳아야 한다. 애벌레처럼 특별한 물질로 고치를 만들었다고 해도 저렇게까지 크면 말이 안 된다.

그러다 문득 나는 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흉물스러운 살덩어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게 사실은 누군가가 생산한 알도, 인위적으로 만든 고치도 아니라면?

‘일종의 ‘인큐베이터’라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오소소 소름이 돋는 한편, 나는 상점창에서 팀원 모두에게 나눠 줄 수 있을 만큼 방독면과 정화통, 위생 장갑을 구입해서 나누어 주었다.

좀비의 체액이나 피가 상처를 통해 혈관으로 직접 침투하지 않는 한 감염될 일은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나는 이만철 세력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준 근접 무기 중 괜찮은 평가를 받았던 쇠 파이프 창을 꺼내 들었다.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좀비의 멱 정도는 가볍게 꿰뚫을 수 있는 합금 창을 내지르자 알의 겉면이 손쉽게 찢어졌다.

이윽고 주르륵 흘러내린 반투명한 배양액이 축축하고 더러운 바닥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찢어진 알 속에서 튀어나온 건…….

“사람?”

알몸이긴 했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사람이었다.

다만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근육이 좀 더 비대해지고, 골격이 뒤틀렸으며, 짐승처럼 체모가 눈에 띄게 자라난 인간이었다.

지금이라면 아무리 말재주가 부족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마치 인간에서 변종으로 변하기 직전 단계를 보는 것 같다고.

“어째서 우리가 매일 밤마다 놈들을 쳐 죽였는데도 머릿수가 줄지 않았는지, 그리고 유독 일반 좀비보다 지능이 높은 모습을 보였는지 알 것 같습니다.”

아직 온전히 성장하지 못한 채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된 미숙아처럼, 손상된 알에서 흘러나온 변종도 잠시 꿈틀거리다가 움직임이 멎었다.

나를 포함해서 이 중에 전문적인 의학이나 생물학 지식이 있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뭐라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저 미숙아 변종은 ‘아직’ 알 밖에서 온전히 살아가기엔 부족했던 것이다.

무엇이?

‘성장, 변이, 적응, 여러 단계가 있겠지.’

인간의 체내에 바이러스를 주입시켜서 감염만 시키면 즉각 동료로 만들 수 있는 일반 좀비와는 다르다.

이 변종은 연금술이나 의약품 제조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 만들 수 있는 거다.

살아 있는 인간이든 아니면 비교적 멀쩡한 일반 좀비든, 어떤 처리를 해서 이 알 속에 집어넣고, 딱 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배양액에 오랜 기간 절여 놓은 다음 태어나면 즉시 풍부한 먹이를 공급한다.

문외한인 내가 봐도 대충 이런 과정이 떠오르는데, 실제로는 더 복잡하고 섬세한 작업일지도 모르지.

중요한 건 놈들이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새로운 변종을 공장인 양 찍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내 직감이 맞는다면 이 거대한 살덩어리가 일종의 배양 기관 역할을 하고 있는 거다.

‘그럼 저 거대한 살덩어리는 대체 어떻게 만든 거지? 아니, 애초에 놈들이 만든 게 맞긴 한가?’

다른 존재가 저 배양 기관을 제공해 준 것이라면?

변종보다 훨씬 더 상위 개체가 존재한다면?

이 말도 안 되는 가설들이 눈덩이처럼 크기를 불릴수록 내 인상은 점점 일그러졌다.

“사장님, 일단 여기서 벗어나는 게 좋겠습니다.”

방독면을 착용한 팀원들의 눈이 하나같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이들이 역전의 각성자들이라고는 하나 베이스는 인간.

본능적인 두려움이나 걱정이 없을 리가 없다. 오히려 남들이 모르는 변종의 실체를 알고 나니 더 불안해진 것이리라.

나는 상점창에서 구입한 주사기와 앰플을 이용해 표본을 간단하게 채취하고 특수 보관 용기에 담았다.

어째서 상점창에서 이런 것들을 판매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스템은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안배한 것 같았다.

‘상점창에서 뭔가를 구입할 때 소모되는 재화가 좀비에게서 습득 가능한 DNA 샘플인 것부터가 수상하지.’

각성자들에게 미지의 힘을 제공한 시스템이 좀비의 DNA 샘플을 원한다면, 좀비의 표본 자체가 조사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시스템은 그걸 적극 장려하고 있다.

‘내가 공항을 접수했을 때도 비행기나 전투기를 주지는 않았지. 어쩌면 시스템은 무의미하게 좀비를 대량 살상하길 바라는 게 아니야.’

좀비 떼를 쳐 죽이든 말든 신경 쓰지는 않겠지만, 거기에 의미를 담아서 쳐 죽이라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습득한 DNA 샘플을 상점창에서 소모하는 것으로 시스템에게 ‘상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일개 퇴역병에 불과한 나한테 뭘 바라는 건지 모르겠군.’

표본을 모두 채취한 나는 특수 보관 용기를 인벤토리에 넣고 C4를 꺼내 들었다.

아, C4. 우리의 친절한 이웃.

닫힌 문도, 막힌 벽도, 층간 소음으로 항의하는 아랫집 북한군 주민의 천장도 시원하게 박살 내 주는 만능 해결사.

“빵빵 터뜨려 주지.”

폭발은 언제나 옳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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