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133)화 (134/227)

133화 투쟁기 (33)

폭발이 일어난 직후, 우리가 얼마나 급하게 움직였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시커멓게 탄 좀비의 살점이 하늘에서 비 대신 후두둑 떨어져 내리기도 전에 지면을 박차고 달려 나간 각성자 10명은 놀랄 만큼 빠르게 콘크리트 밀림 속으로 몸을 던졌다.

연막작전을 펼침과 동시에 우회 기동을 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부담을 짊어지는 행위다. 아군의 손발이 딱딱 맞아야 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고, 기동력도 엄청나게 좋아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손발이 잘 안 맞는 것을 능력과 경험으로 커버하는 각성자들이었고, 덕분에 기동력이 부족할 일도 없었다.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다만 경거망동은 하지 않았다.

“전방에 일반 좀비 셋!”

“내가 먼저 하나 잡고, 양쪽으로 나뉘어서 한 마리씩!”

척후인 우리는 당연히 뒤따라오는 팀원들의 길잡이 역할이기도 한지라, 운 나쁘게 전방에서 좀비와 마주치면 처리할지 우회할지 결정하는 것도 우리 몫이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0.5초가 채 걸리면 안 된다는 페널티가 있지만.

파아아앙!

각성자 특유의 근력으로 개조된 새총의 고무 패드를 한계까지 당겨 날카로운 볼트를 쏘아 보냈다.

변종이라면 급소를 제외하고 씨알도 안 먹히겠지만, 사격 스킬의 효과 덕분에 일반 좀비 정도는 머리통을 터뜨리는 것도 가능했다.

공작 기계로 끝부분을 날카롭게 갈아 낸 쐐기 형태의 볼트는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쥘 수 있는 손잡이 부분을 포함해서 조약돌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통짜 금속이라 무게감이 상당한 데다 개조된 새총의 장력도 무시 못 할 수준이라 위력이 상당했다. 하물며 각성자가 볼트를 쏜다면 그 위력은 권총탄 못지않았다.

빠직!

시원스럽게 좀비의 미간에 적중한 볼트는 놈의 두개골을 깨부수고 뇌를 헤집었다.

소음이 거의 없고, 크로스보우나 컴파운드보우처럼 큰 부피와 중량을 가진 것도 아니다. 결정적으로 어린아이나 노인도 쏠 수 있을 만큼 진입 장벽이 매우 낮다.

‘총이 없으면 사람들이 좀비에게 어떻게 대응하나 싶었는데, 결국 방법을 찾아내기 마련이라니까.’

우리보다 먼저 새총을 활용하고 있었던 약탈자 놈들 덕분에 좋은 아이디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고마워요, 약탈맨!

“마무리!”

“흐압!”

중앙의 좀비가 맥없이 쓰러지자 나와 한동석이 양옆으로 갈라지면서 남은 좀비들의 머리통을 둔기로 내려쳤다.

한동석은 엽총의 개머리판으로, 나는 인벤토리에 적당히 챙겨 두었던 공사장 철봉으로.

당연하지만 눈앞의 좀비 몇 마리를 처리했다고 잠시 쉬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우리는 거의 파쿠르 전문 암살자들처럼 담벼락을 타 넘고, 도로 위에 방치된 온갖 장애물이나 폐차량 위를 넘나들면서 숨 막히는 도주극을 벌여야 했다.

세상 모든 일이 도망치기만 하는 것으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막장으로 치달은 내 인생처럼 우리 조사 팀 앞에도 클리셰 같은 위기가 떡하니 나타났다.

넷플러스를 복구하고 나면 클리셰 범벅인 드라마는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아무튼, 우리의 ‘클리셰’ 님께서는 왕방울만 한 눈을 아주 가늘게 뜬 채, 기분 나쁜 침을 뚝뚝 흘리면서 우리의 앞길을 막아섰다.

시간이 지날수록 먹구름이 조금씩 물러가고 짧은 겨울 햇빛이 더욱 강렬해지고 있는 지금, 변종이 활동하기 점점 힘들어지는 구조였다.

애당초 야행성인 놈들이 어그로가 끌린 탓에 어거지로 바깥에 나와 있는 판국인데 멀쩡할 리가 없지.

나는 굳이 총을 사용하기보단, 후방에 있는 이형진과 진가희를 불렀다.

소방 도끼를 들고 있는 ‘소방관’ 각성자 이형진, 진검을 들고 있는 ‘검사’ 각성자 진가희.

각성자가 근접전에서 좀비를 상대하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않지만, 나는 이런 상황이야말로 오히려 근접전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썩 좋은 상태가 아닌 변종 하나, ‘소란 없이’ 처리할 수 있겠죠?”

“그 정도면 어렵지 않습니다.”

“별 모양으로 썰어 볼게요.”

자신감을 내비친 두 사람의 태도는 결코 허세가 아니었는지,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이던 변종은 뛰어난 신체 능력으로 단숨에 덤벼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장동 해체 쇼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밤이 오면 다시 놈들의 세상이 도래할 테니, 밤이 오기 전까지는 시내의 조사를 끝마쳐야 한다.

폭발 지점으로부터 충분히 멀어졌음을 확인한 우리는 빈집이나 다름없는 구미 시내에 성공적으로 숨어들었다.

중간중간 폭발 지점으로 몰려 가는 좀비 떼와 맞닥뜨릴 뻔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사랑과 우정, 그리고 스킬이 있다면 헤쳐 나가지 못할 것도 없었다.

“후우, 후우…… 이 미친 짓을 한 번 더 하면 제가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잖아요?”

큰 전투나 어떠한 손실 없이 무사히 시내로 진입했으니 사실상 무혈입성이었다.

고속 도로가 도시 중심부를 관통하는 구미는 당연하지만 교통로 확보에 어마어마하게 공을 들였다.

하루에만 공단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온갖 화물의 수량이 막대한 만큼, 교통로가 조금이라도 혼잡해지면 여러 업체들의 금액 손실로 이어진다.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도시 전역에 깔린 교통 인프라는 구미의 규모에 비해 상당히 좋은 축에 속했다.

교통이 활발하면? 유동 인구가 많아진다. 마침 공단이라는 거대한 일자리도 보유하고 있겠다, 공단 주변 시내에 상권과 주거지가 우후죽순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구미의 발전이 사실상 대규모 공단과 교통 인프라 덕분이라는 걸 증명하는 요소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게 바로 대기업이 직접 세운 대형 마트 3개였다.

홈마트, E마트, L마트.

구역 하나당 마트 하나라는 극단적으로 짧은 거리감을 과시하면서 구미 중심부에 떡하니 자리 잡은 3개의 마트가 마치 랜드마크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곳들이 바로 우리가 시내에서 조사해야 할 장소다.

“저 대형 마트에서 변종들이 튀어나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가장 가까운 L마트로 접근하면서 한동석이 영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시내에 자리 잡았으면서 공단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또한 변종들이 낮의 태양을 피해 숨어 지낼 수 있을 만한 ‘근거지’라고 말하기에는 다른 건물도 있으니 조금 억측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대형 마트에서 풍겨 오는 특유의 분위기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증거가 있었다.

“주변을 잘 살펴보세요.”

내 지적에 한동석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마트 주변을 살폈다.

겉보기엔 사람의 흔적이라곤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마트였다.

버려진 폐차량, 당시 소란에 의해 박살 난 기물들, 그리고 지면에 마구 버려지고 짓밟힌 흔적이 있는 쓰레기들.

좀비 아포칼립스가 도래한 이후로 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광경이었다.

“뭐가 있다는……아.”

역시 전직 엽사답게 눈썰미가 좋다고 해야 할까.

그는 처음 우리가 대구에서 출발했을 당시 고속도로에서 확인했던 ‘요소’를 이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영역 표식이 있군요.”

“예, 우리가 지나쳐 온 공단에는 영역 표식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죠. 아마 변종들도 공단 중심부에 자리 잡은 ‘무언가’를 의식해서 영역 표식을 새기지 않은 것 같지만, 여긴 다른 구역과 다르게 영역 표식이 있어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사태 초기의 여파라고 생각될 수밖에 없는 영역 표식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다른 좀비들과 다르게 저 변종 놈들은 대놓고 표식을 남기는 습성(생태)이 있었는데, 다른 곳에는 없었던 흔적이 마트 주변에는 잔뜩 남아 있다? 안 봐도 비디오다.

“우리가 일으킨 소란 때문에 상당수의 변종들이 폭발 지점으로 몰려갔죠. 게다가 지금은 먹구름 때문에 날이 좀 어둡긴 해도 낮이에요. 놈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지금이야말로 빠르게 조사하고 빠질 절호의 기회 아니겠어요?”

본래 야행성이라 밤에 대비해 근거지에서 푹 쉬고 있어야 할 놈들이 갑작스러운 폭발로 우르르 뛰쳐나갔다.

이는 마치 야간 경계 근무를 서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곧바로 작업이나 훈련에 끌려 나가는 병사와 같다.

나의 개똥 같은 설명도 찰떡같이 알아들은 팀원들은 이유야 어찌 됐든 놈들의 근거지로 추정되는 마트를 조사해야 한다는 사실에 빠짐없이 동의했다.

야외에서는 원거리 공격에 능한 척후가 앞장섰지만, 시야가 극히 좁아지고 갑작스러운 기습에 대응하기 힘들어지는 실내에선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이번에는 진가희와 이형진이 선두에 서고, 나와 한동석이 두 사람을 보조하듯 뒤에 바짝 붙었다.

반면 중심을 받쳐 주고 있던 나머지 6명의 팀원들은 후방과 양 측면의 기습을 경계하기 위해 2인 1조로 조금 넓게 포지션을 잡았다.

지금 우리의 포지션을 굳이 비유하자면 삽자루 같은 형태의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욱, 이게 무슨 냄새야.”

“젠장, 하수 종말처리장에 온 기분이네.”

“누린내에 구린내, 거기에 피비린내까지. 산골에서 불법으로 식용견 사육하는 곳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풀풀 날리는 먼지부터 코를 찌르고 들어오는 온갖 악취에 팀원 모두가 인상을 찡그렸다.

전장에서 숱한 악취를 맡아 가며 코가 멀쩡할 날이 없었던 나도 무심코 욕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악취야말로 결정적인 증거였기에 이제 와서 되돌아 나갈 수는 없었다.

사람이 없는 텅 빈 도시에서, 좀비들끼리 동족상잔을 하는 것도 아닌데 유독 이런 장소에서만 지독한 악취가 풍기는 이유라면 뻔하지 않은가?

“핏자국입니다. 주변의 말라붙은 핏자국과 다르게 아직 번들거리는 물기가 남아 있으니…… 최근에 생긴 겁니다.”

한동석의 경고와 함께 팀원들이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거나 스킬 사용을 준비했다.

야외라면 소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갈 테니 최대한 자제하면서 싸우거나, 아예 싸움을 회피해 왔다.

하지만 실내라면 두꺼운 콘크리트 벽이 자체적으로 방음재 역할을 해 주기 때문에 굳이 자제하며 싸울 필요는 없었다.

나는 실내전에 익숙지 않을 팀원들을 위해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었다.

“여러 층이 존재하는 대형 마트인 만큼 위 아래를 항상 조심하시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팀원과는 다른 방향을 주시하세요.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으면 필연적으로 사주경계에 빈틈이 생기니까요. 그리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수상하다 싶은 것, 주변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싶은 것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세요. 필요하다면 선조치 후보고를 해도 상관없지만, 팀원 모두에게 정보 공유를 하는 것도 잊으면 안 돼요.”

어둠이 내리깔린 지하 땅굴. 눅눅하고 고요한 그 지옥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 본 적 있는가?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온갖 함정과 기습을 준비한 채 어둠 속에서 매복한 적군이었다.

독기밖에 남지 않은 놈들의 정신은 이미 자신들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미제앞잡이 남조선반역도당괴뢰들을 저승으로 함께 끌고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아주 작은 숨소리에도 민감해지고, 어쩌면 바로 지척에서 나와 함께 움직이는 소대원의 심장 소리마저도 신경 쓰이기 시작할 무렵, 고막을 찢을 듯한 폭음이나 총성이 울려 퍼지면 누군가의 심장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우리와 달리 땅굴 처리 작전을 하지 않는 미군에게서 몰래 긴빠이 친 야간투시경도, 소총탄까지는 너끈히 막아 주는 육중한 이동식 방탄 방패도, 성능이 의심스러운 헬멧과 방탄복도 우리를 안심시켜 주지는 못했다.

우리의 구세주, 우리의 희망, 우리의 용기는 오직 손에 쥐고 있는 총이었고, 우리의 예비 목숨은 허리춤에 달고 있는 군용 대검과 수류탄이었다.

당황하지 마라.

전쟁에서 누군가가 죽는 것은 당연하고,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전투를 벌이는 것이니까.

총탄이 빗발치고 폭탄의 파편이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들어도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수행해야 한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이가 죽고, 다른 이가 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사장님?”

“…….”

나는 조심스럽게 어깨를 건드리는 한동석을 돌아보았다.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 계속 움직이죠.”

나는 지하 땅굴을 빠져나와 구미의 L마트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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