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투쟁기 (32)
우리가 구미에서 짧은 시간 동안 파악한 좀비들의 움직임은 상당히 독특했다.
새로운 자극이 자신들의 감각을 일깨우기 전까지는 그저 무질서하게 주변을 배회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시야를 조금 더 넓히면 놈들의 배치 구조가 거미줄처럼 교묘하고 촘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직선으로 오가는 교각 위에는 좀비가 없지만, 반대로 교각 너머 시가지에선 놈들이 소규모 단위로 몰려다니는군요.”
대규모가 아니라 소규모 단위로 돌아다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규모로 돌아다니면 규모 특성상 위협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반대로 공백 또한 크다. 놈들이 우르르 몰려다닌다고 한들, 한번 지나가면 텅 빈 공간이 남으니까.
하지만 소규모 단위로 많이, 자주 돌아다닌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마치 순찰을 도는 군인이나 경찰처럼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멍청한 일반 좀비들이 저렇게 행동하는 배경에는 당연하게도 예의 변종이 있었는데, 놈은 일반 좀비들처럼 지상을 돌아다니지 않고 건물의 외벽이나 옥상에 서서 일종의 등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종종 인간의 청력으로 듣기엔 굉장히 불쾌한 소음을 내뱉었고, 일반 좀비들은 불쾌한 소음이 울려 퍼질 때마다 본능에 따라 이리저리 흩어지려던 것을 멈추었다.
원래 저 일반 좀비들은 진즉에 떼로 몰려다니면서 다른 곳으로 빠지거나, 특정 지역에만 고립되어 있어야 정상인데 변종이 그걸 제어하고 있는 거다.
“저놈들이 일반 좀비보다 상위 개체인 건 확실하겠습니다. 그럼 뿌리는 같다는 건데…….”
상위 개체로 추정되는 변종과 일반 좀비의 뿌리가 같다면, 그런 변종조차도 부려 먹는 또 다른 상위 개체가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변종은 감염에 의해 탄생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 상위 개체가 변종을 생산, 제어하고 있다면 꽤 그럴듯한 얘기가 된다.
“일단 놈들의 시야에 최대한 닿지 않도록 폐차량을 엄폐물 삼아서 움직이죠.”
다행히 버려진 폐차량 아래로 기어가듯 움직이니 놈들에게 들킬 일은 없었다. 척후인 나와 한동석이 후방으로 신호를 보내자 다른 팀원들도 우리처럼 엉금엉금 기어 왔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놈들에게 들켰다고 가정하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면 그때는 어떻게 대처하실 겁니까? 일단 도주 루트까지 짜 놨으니 여차하면 도망칠 수는 있겠습니다만.”
“변종부터 처리하고 빠르게 돌파해야겠죠. 일반 좀비들은 시야에서 모습을 감추기만 해도 색적 능력이 확 떨어지는 놈들이라 금방 본능대로 이리저리 흩어질 거예요. 반대로 변종을 제때 제거하지 못하면 놈이 먼저 달아나거나, 아군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겠죠. 그때는 진짜 좆되는 거니까 상황 봐서 숨거나 전력으로 도망칠 생각이에요.”
“그런 변종들이 득시글거릴지도 모르는 시내까지 나가야 한다니…… 심지어 우리가 척후라서 들켜도 가장 먼저 들키고, 공격받아도 가장 먼저 공격받는 입장 아닙니까.”
“쫄?”
“……돌아가면 술이나 양껏 주십쇼. 맨정신으로 이 짓거리 하고 나면 일주일 정도는 취해 있어야 할 것 같으니까.”
그거야 어렵지 않지.
나는 술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같이 어울려 주지는 못하겠지만.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며 먼저 교각을 넘어온 우리는 도로 위에 마구 버려진 폐차량의 수풀 속으로 재차 몸을 숨겼다.
대구까지 피신한 사람들이 이쪽 교각은 파괴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이곳은 차량을 이용하려다 어쩔 수 없이 방치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덕분에 좀비들도 굳이 통행하기 힘든 폐차량 사이를 오가는 것보다, 널찍한 인도와 도로 바깥쪽을 어슬렁거릴 뿐이었다.
한동석이 좌, 내가 우측 좀비들의 움직임을 살피다가 타이밍이 맞겠다 싶은 순간에 후방으로 다시 한번 신호를 보냈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숨을 곳이 많은 시가지로 진입하기만 하면 좁은 건물 사이를 이용하거나, 아예 건물 내부를 통해 다른 건물로 빠져나가는 방법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장소를 통과하는 게 가장 힘들다. 아무리 자잘한 엄폐물이 많아도 탁 트인 교각 주변은 우리를 빛으로부터 완전히 숨겨 줄 아둔의 그림자 같은 게 없으니까. 아둔 토리다스!
“쯧.”
척후로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우리 둘과는 달리,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팀의 중심부가 아무리 조심스럽게 움직인다고 한들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우리와 그리 멀지 않은 건물 옥상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던 변종이 낮게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지금은 칠흑 같은 밤이 아니라서 놈의 시야에는 익숙지 않지만, 그래도 뭔가 이상한 움직임을 포착한 것이다.
“아직 들킨 거 아니니까 계속 움직이세요. 오히려 지금 멈추면 놈이 이상함을 느끼고 즉시 반응할 겁니다.”
내가 무전기로 주의를 주자 잠시 멈칫했던 팀원들이 다시 움직였다. 일반 좀비들 중에는 간혹 하반신이 잘리거나, 다리뼈가 부러져서 엉금엉금 기는 놈들도 있었다.
변종도 그런 일반 좀비의 특성에 대해 모르지는 않을 테니 엉금엉금 기어 오는 우리를 무턱대고 인간이라고 보진 않을 터.
‘놈들이 칠흑 같은 밤에만 인간을 습격했던 이유는 신체 구조가 그쪽으로 몰빵되어 있기 때문이야. 먹구름이 잔뜩 낀 날이라고 해도 지금은 엄연히 아침이다. 직접 내려와서 확인하지 않는 한 원거리에서 우리를 구분할 수는 없어. 당장 우리를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하지 않는 게 그 증거다.’
어제 낮에는 놈들이 보이지 않았다. 날이 어둡지 않으면 야외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 우리만큼이나 놈들도 일정 수준의 페널티를 가지게 된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일반 좀비들은 변종과 달리 균형 잡힌, 어쩌면 약간 뛰어날지도 모르는 시력과 청력을 보유하고 있다. 놈들 눈에는 우리가 틀림없이 제 발로 기어들어 오는 신선한 고기로 보이겠지.
아직 팀원들이 이쪽으로 완전히 넘어오지 않았는데 일반 좀비에게 발각되면 변종도 우리가 적이라는 확신을 품게 된다.
나는 때마침 근처로 다가오는 두 마리의 좀비를 보고, 한동석에게 신호를 보냈다.
슬그머니 품속에서 군용 대검을 빼든 우리는 근처로 다가온 일반 좀비들이 팀원을 포착하기 전에 다리를 잡아당겼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폐차량 틈새로 확 끌려 내려온 놈들의 목젖을 대검으로 끊어 내고, 연약한 턱 아래로 칼날을 박아 넣었다. 놈들은 비명횡사조차 하지 못했다.
“좀비들에겐 후각이 없으니까 시체는 적당히 차량 아래로 밀어 넣어요.”
“후각이 없어서 천만다행입니다.”
후각이 있었다면 지금쯤 썩은 피 냄새가 확 퍼지면서 좀비 무리를 자극했겠지. 그 점은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시체를 차량 아래로 밀어 넣은 우리는 후방의 팀원들이 모두 넘어온 것을 확인한 뒤, 가장 가까운 건물 담벼락 아래로 재빨리 이동했다.
이 주변은 온통 공장이나 물류 창고, 사무실 천지라서 경계선을 구분 짓는 담벼락이나 철책이 굉장히 많았다.
저들끼리 경계를 나눠 둔 공장들 사이에 형성된 자연 골목길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편할 것이다.
갑자기 기어 다니는 좀비들이 근방에서 보이지 않게 되면 우리를 지켜보던 변종도 이상함을 느끼겠지만, 그땐 우리가 이곳에 없을 테니 상관없다.
익숙지 않은 움직임으로 여기까지 기어 온 팀원들을 맞아 주며 인원 체크를 하고, 다른 좀비들이 우리를 포착하기 전에 재차 움직였다.
대놓고 도로 위를 돌아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담벼락이나 철책을 넘어서 공장 부지 안쪽으로 움직여야 했지만, 그래도 숨어 다닐 곳이 많아 들킬 위험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대신 정해진 길로 다니지 않고 건물 부지를 넘나들면서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실시간으로 루트를 조정하는 게 매우 힘들었다.
이쯤 되면 우리가 구미를 조사하러 온 건지 미로를 탐험하러 온 건지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다.
무엇보다 본격적으로 좀비들의 본거지에 숨어든 지금, 들키는 순간 거의 확정적으로 소란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는 마치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 한복판에 서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감각이 예민해지고 집중력이 극도로 향상된 반면 정신과 육체가 받는 부담감은 어마어마했다.
내가 이런 감각을 또 느끼게 될 거라곤 예상 못 했는데, 인생이라는 게 참 알다가도 모를 놈이다.
물론 이렇게 열심히 공장 부지를 통해 움직여도 결국 도로를 넘을 때는 넘어야 한다. 교통이 원활해야 하는 공단의 특성상 도로가 안 이어진 곳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무식하게 버려진 차량 사이로 이동할 수는 없었다. 내부로 들어올수록 당연히 좀비들의 밀집도도 높아진 것이다.
그럼 놈들이 길을 비켜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이렇게 압도적인 물량에 의해 길이 막혔을 때를 대비해서 따로 준비해 둔 수가 있다.
“그건 뭡니까?”
“대대로 우리 헬조선은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난관이 있을 때마다 유교 탈레반 국가답지 않게 화끈한 방법으로 처리했었죠.”
화력.
더 많은 화력.
더 압도적인 화력!
집 안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려고 화포를 사용하려고 했던 또라이 같은 DNA가 현대의 한국인들에게도 이어져 내려온 것은 고구려 벽화 수박도에도 기록된 사실이다.
나는 이미 거점 공유 효과를 이용해 UCAV 발사대를 뉴동대구역으로 옮겨 둔 참이었다.
내가 가진 UCAV는 최대 항속 거리 100km에 달하고, 여차하면 정찰에서 자폭으로 용도 전환이 가능하다. 거기에 충전형이기 때문에 따로 손실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발사대에서 내보낼 수 있는 UCAV의 수가 제법 된다.
내가 스마트 패드로 조작한 UCAV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대구에서 칠곡을 넘어 구미에 도달했다. 바로 우리 머리 위를 날고 있는 것이다.
작은 소란 정도로는 이 근방의 좀비들만 자극하는 하수 중의 하수지만, 엄청난 소란을 일으키면 공단 내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좀비들을 자극할 수 있다.
폭파 지점은 우리의 현재 위치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지정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우리의 예상 경로를 텅 비우게 하기 위해, 우리 코앞에 떨구는 거다.
‘공단 북쪽 구역으로 쭉 우회해서 시내로 안전하게 진입하려면 이 방법뿐이다. 괜히 어설프게 다른 구역을 터뜨려서 이 근처의 좀비들이 우리의 예상 경로를 다 막아 버리면 그게 더 위험해.’
일단 이 주변에 있는 놈들만 빠르게 처리해 버리면 아주 잠깐이긴 해도 빠져나갈 틈이 생긴다.
어차피 어그로에 끌린 놈들은 폭발 지점으로 몰려들 테니, 우리가 먼저 폭발 지점을 빠져나와서 멀리 우회하면 다른 좀비들과 마주칠 위험은 거의 없다.
커티스 르메이 옹의 유지를 이어받은 나 커티스 이승권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자폭에 쓰일 폭약을 한가득 싣고 있는 UCAV가 구미 공단의 하늘에서 갑자기 맹렬하게 급강하를 시도했다.
과거 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군을 덜덜 떨게 했다던 슈투카의 급강하 폭격처럼, UCAV도 기세만큼은 그에 뒤지지 않았다.
내 UCAV가 돌진하고 있는 곳은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도로 한복판. 좀비 떼가 바퀴벌레처럼 득시글거리는 곳이었다.
“아. 좆됐…….”
UCAV의 정찰 카메라가 매우 낯익은 도로 한복판으로 내리꽂히고 있는 장면을 본 한동석이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잘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직후, 인근 도로에서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나며 버려진 차량과 좀비들을 함께 날려 버렸으니까. 막강한 화력과 차량 파편이 주변으로 흩뿌려지면서 도로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이제 움직일 차례다. 우리가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기까지 아마 1분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부터 멈추지 말고 빠르게 움직이세요! 시내에 진입하기 전까지 뒤처지면 안 됩니다!”
폭발이라는 엄청난 어그로에 끌린 좀비 떼가 이 주변을 에워싸기 전에 우리는 다시 한번 구역을 넘나들었다.
우리가 시내를 조사하고 다시 공단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놈들은 이곳에서 최대한 혼란스러워하고, 통제를 상실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걸 위한 연막(폭탄) 작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