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투쟁기 (22)
신해룡은 긴 회의용 테이블 끝자락에 껄렁한 자세로 앉아 있는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을 이승권이라고 소개한 청년은 잘 쳐줘도 20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자신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눈앞의 청년과 비슷한 나이대였을 것이다.
그 아들뻘 되는 청년이 웃어른을 상대로 보이는 태도치고는 상당히 예의가 없었으나, 시국이 시국인지라 한가하게 예의범절이나 지적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그런 걸 지적한다고 해서 바로 태도를 고칠 청년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젊은 친구답지 않게 눈빛이 상당히 날카롭군. 그런데 생기가 없어.’
보면 볼수록 참 묘한 청년이었다. 한창때인 나이에 저런 분위기를 흘리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생기 한 점 보이지 않는 눈으로 자신을 관찰하고 있으니 좀처럼 파고들기 어려웠다.
‘단련된 육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팽팽하게 당겨진 근육,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 이런 타입을 어디서 본 적이…… 아.’
어디서 이런 타입을 봤나 싶어 기억을 더듬던 신해룡은 자신이 육참 총장으로 취임하던 시기를 떠올렸다. 새로운 정부가 발표한 종전 선언으로 마침내 한반도에 영구적 평화가 찾아온 역사적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 당시 북한에서 마지막 한 명 남은 ‘잔당’까지 처리하고 있던 북진군이 마침내 트라우마 센터를 거쳐 1차적으로 일상생활 가능 여부를 검증받고, 이후에 상태의 경중에 따라 국내의 병원이나 요양원으로 보내졌다는 보고를 받았었다.
물론 개중에도 사회로 복귀한 군인들이 제법 있었는데, 대부분은 조용히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 일상생활을 다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예외는 있었다.
일상생활에 복귀해도 적응하지 못하는 참전 군인들, 특히 북진군 출신 퇴역병들은 평화의 시대에 새로운 구설수로 떠올랐다.
PTSD에 시달리는 퇴역병이 죄 없는 사람을 때렸다던가, 갑자기 불법 무기를 소지한 채 거리 한복판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만든다던가, 약에 취해 거리를 활보하거나 소음 공해를 유발한다던가 등등.
국가가 5년간 전장에서 굴린 청년들의 삶은 이미 끔찍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신해룡은 눈앞의 청년도 그들 중 하나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다면 저런 분위기에 저런 태도로 일관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기에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북진군 출신 군인들은 딱히 특전사나 첩보 요원처럼 고도의 훈련을 받은 대단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5년간 대한민국의 통수권자(대통령)와 군 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전장을 헤집고 다니던 이들이다.
잃은 것이 너무 많아서 더 잃을 것도 없는 비운의 세대. 건드려 봤자 하등 좋을 일이 없다.
그러니 우선은 차분하게 본 주제로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가기로 했다.
“상도덕과 신뢰를 거래하고 싶다고 했었지. 정확한 의미를 알려 줄 수 있겠나?”
“밀양과 접선해서 밀양 내에 있는 군부대를 처리한 거, 그쪽 아닌가요?”
평소였다면 신해룡을 ‘그쪽’이라고 지칭한 청년에게 윽박지르거나 쓴소리 한마디쯤 했으련만, 오히려 갑작스럽게 밀양 쪽 얘기가 나온 것이 더 신경 쓰였다.
분명 밀양시와 접촉해서 그쪽 시장 세력과 협력해 월권행위를 저지른 군부대를 제압하기는 했다.
각성자로 구성된 군사 경찰(MP)을 동원해서 뒤탈 없이 깔끔하게 처리했다고 보고까지 받았는데, 어째서 외부인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그리고 왜 하필 밀양을 언급하며 ‘상도덕과 신뢰’ 운운한단 말인가?
신해룡의 의문에 답하듯 청년은 청산유수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늘어놓았다.
“밀양과 접촉한 건 꽤 최근이었겠죠. 정확히는 밀양 중심지를 연결하고 있는 교각이 모두 끊어져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복구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접촉했을 겁니다.”
그 말대로였다.
처음에는 밀양 중심지와 연결된 모든 교각이 끊어져 있어, 밀양 외곽에서 간간이 물자나 구해 오던 수색 팀이 갑작스럽게 복구된 교각을 발견하자마자 보고를 올렸었다.
당시 보고를 받았던 신해룡은 즉시 밀양 중심지에 남아 있는 생존자 집단, 그러니까 시장 세력과 접촉했다.
그들은 이성철 대령을 비롯해 중대 규모의 실험적인 군부대 하나가 월권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물론, 민간인 압박과 통제를 서슴지 않았다는 주장을 해 왔다.
특히 누군가에 의해 갑작스럽게 복구된 밀양역을 시장 세력보다 먼저 손에 넣기 위해 무단으로 군을 투입시켜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다는 제보도 받았다.
심지어 그렇게 투입한 군인들을 개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정황 증거까지 포착되어, 결국 각성자로 구성된 군사 경찰을 파견하게끔 했다.
이것만 놓고 보면 딱히 이상할 것이 없었다.
커다란 강줄기 사이에 고립된 도심 속 섬에서 어떻게든 민간인을 지키기 위해 애써 온 시장 세력, 그리고 사리사욕으로 군대를 움직이고 민간인을 핍박한 자들의 처리.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 아닌가.
하지만 눈앞의 청년은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듯, 신해룡이 모르는 얘기를 꺼내 놓았다.
“밀양의 중심부에 위치한 그 섬의 생존자들은, 좀비 사태가 발발했을 당시 수십만 생존자들의 눈앞에서 모든 교각을 끊어 버린 것도 모자라 그들을 좀비와 함께 산 제물로 바쳐 도시를 불태운 놈들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증거 있나?”
“복구된 밀양역 주변에 불타 죽은 시체와 폭발로 인해 인위적으로 붕괴된 건물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쪽과 접선하느라 밀양역 근처는 살펴보지도 않았던 모양이죠?”
“단순한 억측 아닌가? 사태가 발발했을 당시에는 전 세계, 전국적으로 난리였네. 우리 군인들도 제때 대응하지 못해서 수많은 희생자를 낳으며 여기까지 후퇴했는데, 밀양에서도 그와 비슷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어떻게 확신한단 말인가.”
“수십만 좀비와 수십만 사람이 뒤엉킨 콘크리트 밀림이 철저하게 불타고 파괴되는 것이 자연적으로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밀양 인근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고 해도 도시의 절반을 그렇게 불태우지는 못했을 겁니다. 하물며 제 눈으로 확인한 밀양 인근 산은 모두 멀쩡하더군요. 산불도 없었는데 도시만 홀라당 불탔다? 차라리 가스관 대규모 폭발 사고가 있었다는 말이 더 그럴싸하겠습니다.”
순간적으로 그 난리통에 인프라까지 파괴되었다면 가스관 폭발 사고도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스쳤지만, 신해룡은 이내 지적하는 것을 관뒀다.
대한민국 인프라가 어디 후진국의 싸구려 인프라도 아니고, 서울에서 그 난리통이 벌어져도 가스관 폭발 사고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만에 하나 가스관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고 해도 그의 말마따나 도시의 반절을 홀라당 태우고 파괴하기에는 부족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스 폭발 사고로 유명한 사례가 하나 있다. 1995년 대구에서 발생한 지하철 가스 폭발 사고. 그만한 규모의 피해에도 콘크리트와 철근, 아스팔트로 구성된 현대 도시는 쉽사리 파괴되지 않는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전 인간이 가진 악의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인화 물질과 교각 파괴용 폭발물을 도시 곳곳에 배치해서 인위적으로 대형 화재와 폭발, 건물의 연쇄적인 붕괴를 노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믿기 힘들군. 고작 도시의 시민 수만 명을 살리기 위해 수십만 피난민과 그 괴물들을 한꺼번에 태워 죽였다는 말을 대체 누가 믿겠나.”
“제가 믿습니다. 정확히는 제 경험을 믿죠. 단순 안전 부주의나 인프라 노후화 등으로 발생하는 화재 사고와 명백하게 누군가가 손을 쓴 화재 사고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특히 끊임없이 무언가가 터지고 불타는 전장을 겪어 봤다면 그 차이를 모를 수가 없죠.”
그렇게 말하는 청년은 신해룡에게 꽤나 노골적인 눈빛을 보내 왔다.
그것은 대한민국 정부와 군부에서 ‘모종의 이유’로 5년간 쉼 없이 전장을 헤집고 다니게 만든 북진군 출신 퇴역병이 가진, 순수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신감이었다.
* * *
나는 눈앞의 포 스타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인 군 경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 전장에서 뛰고, 적을 죽이고, 작전 목표를 달성한 경험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남들보다 더 대단하다고 자랑하고 싶은 건 아니다. 애초에 서로 맡은 바 직책과 역할이 달랐는데 누가 더 대단하고 자시고 할 게 있나.
단지 나의 군에 대한 뿌리박힌 혐오감 때문에 말이 좀 세게 나온 거지, 신해룡이라는 인간 자체를 이유 없이 비난하거나 부정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비각성자임에도 이런 시국에도 어떻게든 사람을 한데 모아 도시를 통제하고, 온갖 위험으로부터 사람을 지키고 있으니 실로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라고 봐야겠지.
그러니까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그를 압박하고 있는 것뿐이다.
저 밀양의 금수 새끼들을 똑같이 쳐 죽여야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원한이 조금은 풀리겠거니 하고.
딱히 의무도 아닌데, 이상하리만치 그들의 죽음에 신경 쓰고 있었다.
“좋아, 자네 말대로 그게 전부 사실이라고 치세. 일단 가정을 해 보자는 거야. 그래서 결국 어쩌자는 건가? 수십만 피난민들을 그 괴물들과 함께 태워 죽이고 자신들만 안전한 곳에 숨어 못 본 척 외면한 밀양의 생존자들을 똑같이 죄다 학살하자는 건가? 미안하지만 우린 동의할 수 없네.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에는 이의가 없지만, 그 도시의 생존자 모두가 범죄자일 리가 없잖은가. 그들 중 절대다수는 아무것도 모를 텐데.”
“…….”
차분히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다.
아니,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밀양의 생존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수십만 피난민을 학살시킨 그 사건에 한 손 거들었을 리가 없으니까.
그냥 모든 것이 무서워서 집구석에 처박혀 있던 사람, 영문도 모르고 일단 피난에 성공한 사람, 제발 더 많은 피난민들이 도심으로 들어오기 전에 교각을 끊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한 사람.
그들 모두가 결과적으로 방관자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었다. 당연히 나도 안다.
피난민 호송 행렬에서 품속에 폭탄을 숨긴 북한 사람과 폭탄을 숨기지 않은 북한 사람, 그들 모두를 똑같은 테러리스트로 규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딜레마와 비슷하다.
그 당시 우리는 피난민 호송 행렬에서 폭탄이나 총기를 사용한 테러가 발발하면 그들 모두를 같은 테러리스트로 규정했었다.
테러리스트와 테러리스트가 아닌 일반인을 일일이 구분하기엔 너무나도 오랫동안 전쟁의 광기에 시달려서, 너무나도 많은 동료를 잃어서, 너무나도 많은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어서.
그래서 극단적이면서도 편한 방법을 골라 왔던 거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퇴역한 지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서 좀 나아졌나 싶었는데, 여전히 내 시간은 그곳에서 멈춘 것만 같다.
“이보게, 내 말 듣고 있나?”
“……예, 잘 들었습니다. 요컨대 그 학살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놈들만 찾아서 처벌하자는 것 아닙니까?”
“자네 말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주동자와 관련자를 일벌백계하는 것은 나도 찬성하네. 하지만 같은 인간들끼리 협력해서 위기를 이겨 내고 미래를 논해도 모자랄 판국에 쓸데없이 과한 피를 흘릴 이유가 없어. 안 그런가?”
“동의합니다. 피를 흘릴 거라면 필요한 만큼만 흘리는 게 낫죠.”
왜 그때 우리가 흘린 피는 항상 과했던 걸까?
왜 그때 우리는 ‘필요한 만큼’의 정의를 확립시키지 못 했던 걸까?
“빠른 시일 내에 조사단을 꾸려서 밀양역 인근으로 파견하지. 또한 그곳에서 생포한 군인들을 얼마 전에 대구로 압송했으니 적극적으로 심문해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조사하지. 그리고 자네 말대로 정말 그런 끔찍한 참사가 있었다면, 우리는 망설임 없이 합당한 처벌을 내리겠네. 그것으로 우리가 자네와의 ‘상도덕’을 지키고 ‘신뢰’를 얻을 수 있겠나?
그는 압도적인 물자와 외부 정보, 그리고 거점을 비롯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나와 어떻게든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했다.
나를 설득하는 한편,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는 말은 결코 허울뿐인 사탕발림이 아니리라.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대구 상황이 그리 좋지 않네. 따라서 우린 자네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물론 섣불리 우리의 관계를 정의할 생각은 없네. 조사와 사실 확인, 그리고 뒤처리가 끝난 후에 다시 한번 우리 관계에 대해 논하고 싶네. 괜찮겠나?”
“예, 그거면 충분합니다.”
줄곧 살의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과 달리, 나는 선선하게 답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깜짝 놀랄 만큼 깔끔한 대답이었다.
-그 금수 새끼들을 다 죽여 버려야 해.
그런 생각에 휩쓸려, 대구를 방문하기도 전에 밀양을 향해 폭탄을 퍼붓고 총기를 난사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아마 눈앞의 포 스타가 우려하는 대로 또 다른 학살 사건 하나가 추가되었을 것이다.
내 이성의 끈이 끊어지기 전에 우연찮게 대구를 방문할 일이 생기고, 그 결과 차분히 생각하고 대화할 시간을 가진 덕분일까.
아니면 내 마지막 남은 인간성의 한 조각이 무의식적으로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막고, 내 의식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렸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조금 더 나은 결과를 내는 데 도움이 된 것은 확실하다. 그게 아니면 지금 나는 이 자리에 없었겠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때, 갑자기 시야 한편에서 알림 메시지가 나타났다.
-당신의 스테이터스가 유의미한 데이터 변경을 받아들였습니다.
[신체 상태 : 매우 건강]
[정신 상태 : 매우 ■■]
[근력 : B]
[심폐 지구력 : B-]
[반사 신경 : B+]
[사고 회전 : B]
[무의식 통제 : A+(NEW)]
나는 마지막 한 조각 남은 인간성의 흔적을 간신히 찾아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