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114)화 (115/227)

114화 투쟁기 (14)

ATX를 타고 대구로 올라가려면 반드시 밀양을 최중심부에 위치한 삼문동(섬)을 지나쳐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엄밀히 따지면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 북쪽 노선은 따로 있고, 삼문동을 거쳐서 올라가는 노선은 북서 방향 노선이다.

둘 다 위쪽 지방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는 밀양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 동일하지만, 밀양에서 위로 올라가는 길이 하나로 고정된 건 아니었다.

사실 대구에 좀 더 빨리 진입할 수 있는 루트는 삼문동을 거쳐서 올라가는 북서 방향 노선이지만, 굳이 ATX를 그쪽으로 움직여서 자극할 필요는 없겠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ATX를 몰고 가서, 시가지 내부에서부터 무차별적인 파괴 행위를 벌이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러면 너무 재미가 없다.

가능하면 저 시가지 안에 숨어든 이기적인 금수 새끼들의 뇌리에 씻을 수 없는 기억과 공포를 함께 각인시켜 주고 싶다.

밀양역 앞에서 억울하게 떼죽음당해야 했던 수십만 피난민이 고통과 절규 속에서 죽어 갔던 것처럼.

대구 세력의 갑작스러운 등장 때문에 급하게 계획을 변경하게 된 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밀양이 맞이하게 될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자신의 안위를 위해 대문의 빗장을 걸어 잠근 것과, 고의적으로 죄 없는 타인의 목숨을 미끼로 던져서 자신의 안위를 챙긴 것은 천지 차이지.’

사람 같지도 않은 놈들.

내가 저런 놈들을 위해 5년간 의무라는 개 목걸이를 차고서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누볐다는 사실이 좆같았다.

나는 밀양시의 풍경과 점점 멀어지는 ATX의 객실 안에서 이윽고 시선을 돌렸다.

이미 UCAV 발사기를 밀양역으로 옮겨서 대구 지역을 정찰하기 위해 내보냈다.

태블릿 PC처럼 생긴 컨트롤러에서 송출되는 실시간 정찰 영상은 생각보다 별것 없었는데, 경상도 지역은 진짜 욕이 나올 만큼 산이 많았기 때문에 하늘 높이 날아오른 UCAV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산, 산, 산.

저놈의 빌어먹을 산들을 죄다 바리깡으로 박박 깎아서 평야로 만든 다음 벌집 같은 아파트를 수십 채씩 올리고 싶다.

단군 할배가 초기 투자를 잘못해서 국토의 절반 이상이 산으로 뒤덮인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그놈의 산 때문에 북한군들이 벙커와 지하 갱도, 지하 도시까지 건설했던 걸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울화통이 치민다.

사실 홍익인간이 아니라 산악 인간을 만드는 게 목표 아니셨을까?

‘진짜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도시가 첩첩산중에 둘러싸여 있다는 게 말이 되냐.’

ATX보다 먼저 산을 넘어 지상을 촬영하고 있는 UCAV의 정찰 카메라가 드디어 뭔가를 포착했다. 화면을 좀 더 확대해 보니 대한민국 분지 도시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대구가 마침내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장관은 장관이군.’

거대한 산맥이 감싸고 있는 이 분지 도시는 좀비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약 250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인구를 보유하고 있었다.

산맥 아래에 존재하는 드넓은 평지에는 빼곡하게 자리 잡은 건물들이 마치 거대한 기계 속 정교한 부품을 보는 듯했다.

부산이 살짝 정신없이 마구잡이로 개발되어 화려함과 난잡함이 한데 공존하는 해안 도시라면, 대구는 한정적인 분지 땅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애를 쓴 기색이 돋보였다.

분지 도시는 가장 뼈아픈 점은 빌어먹을 산을 깎아 내지 않는 한, 가용할 수 있는 토지 면적이 타 도시에 비해 적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대구를 둘러싸고 있는 건 어디 야트막한 동네 뒷산도 아니고, 무려 줄기부터 다른 거대한 산맥이었다.

‘지금이 여름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야.’

만약 지금이 여름이었다면 아마 좀비보다 더위가 더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다. 대구가 괜히 대프리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니까.

UCAV로 대구 상공을 날아다니며 편하게 정찰하고 있던 그때, 뜬금없이 UCAV 컨트롤러의 화면이 붉게 점멸하며 레이저 조준 경고 메시지를 토해 냈다.

“설마.”

잠시 후 화면 한쪽에서 뭔가가 밝게 빛나는 듯하더니, 곧 퍼버버버벅 하고 깨지는 소리와 함께 UCAV와의 연결이 끊어졌다.

치지직 노이즈가 흘러나오는 화면에서 익숙한 ‘SIGNAL LOST’ 문구만이 오갈 곳 없이 떠도는 내 시선을 붙잡아 주었다.

“이야, 어디서 드래곤 좀비가 날아다니는 것도 아닌데 방공망이 아직 멀쩡하게 가동하고 있어?”

내가 김해 공항을 너무 손쉽게 제압했더니 잠시 방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현재 경상도 지역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세력이 점거하고 있는 대도시니까 당연히 군사적 역량이 뛰어날 것도 예측했어야 했다.

하지만 현재 국가 간의 전쟁은 무의미하고, 하늘은 그 어떤 시대보다도 깨끗한 마당에 방공망이 멀쩡하게 하늘을 감시하고 있을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나.

물론 군 내부 시스템상 식별되지 않는 모든 비행체는 자국 영공에 침범했을 시 격추 내지는 무력 시위로 쫓아낼 수 있다.

사람을 태운 민항기라면 직접 안전하게 영공 밖으로 호위해서 내보내는 것으로 그치겠지만, 전투기, 폭격기, 수송기, 정찰기 등은 모두 ‘군용기’에 해당하므로 즉시 격추되어도 할 말이 없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드론 때문에 각국의 군대는 드론 침투에 매우 민감해졌다.

그래서 드론 주인이 누구든, 어떤 목적으로 드론을 조종하고 있든 일단 포착하면 즉시 격추시키도록 되어 있다.

아마 내 UCAV도 평범한 드론치고는 뭔가 좀 크고, 속도도 빠르니까 저쪽에서 식겁하고 방공 시스템으로 조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시스템은 내 UCAV를 조진 대구 측 군인들을 적성체로 취급하려나?’

엄밀하게 따지면 거점이나 거점 일원에게 피해를 준 건 아니기 때문에 UCAV를 격추시킨 군인들이 적성체로 규정되었을 가능성은 낮다.

애초에 자폭 기능도 딸려 있는 놈이고, 언제든지 재충전이 되는 데다 UCAV가 격추된 건 거점 내부가 아닌 바깥이었다.

시스템이 좀 더 그런 쪽으로 융통성이 있기를 바라며, 나는 ATX가 대구에 진입할 때 적으로 오인받지 않도록 외부에 설치해 둔 자동 포탑을 싹 다 걷어 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산맥 터널을 통과한 ATX가 대구에 진입하자, 저 앞에 선로를 가로막고 있는 바리케이드가 보였다. 대구도 선로를 봉쇄한 듯했지만 그냥 ATX의 장갑과 내구도(5000)을 믿고 밀어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ATX가 바리케이드를 쳐부수며 도시 내부에 들어선 것이 확인되자, 비상경보 역할을 하는 사이렌이 울렸다.

사실 반쯤은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막상 사이렌을 울리게 만든 입장이 되어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힘]?

‘그보다 역시 거리가 사람으로 넘쳐 나는군.’

기존 250만 인구에서 못해도 수백만이 더 추가된 대구는 그야말로 사람이 미어터지는 제2의 서울이 돼 버렸다.

노동 인구와 군사력이 확충된 건 대구 측에서도 반길 일이겠지만, 중요한 건 저들을 먹여 살릴 물자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그 증거로 ATX가 동대구역에 도착하기 전까지 지켜본 거리의 풍경에서 활기를 찾는 건 좀처럼 쉽지 않았다.

다들 죽지 못해 사는 느낌이라고 할까, 일단 안전한 도시에 피신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대다수의 피난민들은 뭔가를 애타게 찾는 눈치였다.

그것이 일거리든 음식이든.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군용 차량들이 동대구역으로 몰려드는 게 보였지만,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미리 제작해 둔 입간판부터 꺼내 들었다.

-김해의 군주, 부산 시장(후보)이 만든 크림 가득 수제 와플!

-천안이 망해서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호두과자!

-미제앞잡이 반역도당의 달콤쌉싸름했던 추억의 레모네이드 (기합!)

동대구역은 예상대로 피난민들의 임시 수용소로 쓰이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ATX에 다들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축 처져 있던 사람들, 잠들어 있던 사람들, 우는 아이를 보채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숨죽인 채 ATX만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

마침내 치이이익 하고 ATX의 장갑판이 밀려나면서 객실 문이 열렸다.

나는 각 객실 문 앞마다 직접 제작한 입간판을 하나씩 툭툭 던져 두고, 절망과 굶주림, 추위와 공포의 기운으로 가득한 동대구역 플랫폼에 고소한 빵 냄새를 흩뿌렸다.

“킁킁. 와, 좋은 냄새다…….”

“이게 얼마 만에 맡아 보는 빵 냄새야?”

“그보다 저 기차는 대체 뭐야? 아까 밖에서 사이렌 소리 울려 퍼지고 난리 났던데.”

“잠깐만, 기차 앞에 입간판 같은 거 세워 뒀는데?”

“호, 혹시 뭔가 나눠 주시러 온 건가?”

“미친놈, 이 시국에 귀중한 물자를 그냥 나눠 주러 오는 사람이 어딨어. 딱 봐도 뭔가 비싸게 받아먹으려는 거겠지. 아직도 대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서 그…….”

“비켜요, 비켜!!”

꾀죄죄한 몰골의 피난민들이 웅성거리고 있던 그때, 저 위에서부터 호루라기를 불며 급하게 달려 내려온 이들이 피난민들을 마구 밀어냈다.

그들 중에는 경찰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군복에 총기까지 들고 있는 군인들이었다. 움직임도 제법 빠릿빠릿한 것이 한눈에 봐도 체계가 잘 잡힌 이들이었다.

“비켜, 씨발! 비키라는 소리 안 들려?!”

경찰 제복을 입은 중년의 남성이 호루라기를 쉴 새 없이 불어 대며 욕설을 퍼붓자, 길을 막고 있던 피난민들이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옆으로 비켜섰다.

김해 공항과는 정반대로 이곳의 피난민들이 받는 대우는 생각보다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기야 한꺼번에 수백만이 몰려들었으니 그걸 다 감당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어서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 거겠지.’

김해 공항의 피난민들이 고마움을 모르는 뻔뻔한 족속들이었다면, 동대구역의 피난민들은 고마움을 느낄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들 같았다.

군인과 공무원들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자기가 무슨 예수님도 아닌데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켜서 수백만 피난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건 아니잖은가?

그래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더 상냥했다면 어땠을까 하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내 군인과 경찰들이 인파를 뚫고 ATX 앞까지 도달했다.

“어이, 당신 뭐야!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거야?!”

“즉시 머리 위로 양손 올리고 기차에서 내려!”

안 돼 참아 내 안의 사이다패스 승권!

상대가 아무리 아니꼽다고 해서 냅다 면전에 대고 패드립을 박는 건 유교 탈레반 국가에서 해선 안 될 짓이야!

“느그…… 그극…… 이번 한 번만 참는다.”

기어코 상대 어머니의 안부를 묻지 않았구나. 네가 자랑스럽다, 이.승.권!

하지만 이대로 내 안전지대이자 보험이나 다름없는 기차에서 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나는 일전에 홈마트에서 라면 먹방을 찍을 때 구입했던 대형 스피커를 기차 외부에 설치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 가정주부들의 지갑을 탈탈 털어 보겠다는 마트 점원에 빙의한 양 마이크에 대고 힘차게 소리쳤다.

“여기 쓰인 메뉴 다 공짜! 근데 이제 선착순을 곁들인!!”

군인과 경찰들은 눈이 뒤집힌 피난민들의 육탄 돌격을 정확히 0.3초 버텨 내고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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