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투쟁기 (12)
뉴밀양역에 도착한 나는 생각보다 주변이 조용하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품었다.
‘그런 일이 있었던 곳치곤 너무 조용한데.’
‘거점 지정’ 스킬을 B- 등급으로 업그레이드시키면서 이번에 새로 얻게 된 ‘거점 연결’ 스킬과 ‘빠른 이동’ 기능은 실로 편리했다.
빠른 이동은 1일 1회 한정이긴 해도 연결된 내 거점이라면 어디든지 즉시 이동할 수 있는 편리한 기능이었다. 그걸 믿고서 거점 일원들에게 ‘내실 다지기’를 맡겨 두고 여기까지 혼자서 날아 왔건만.
막상 도착한 뉴밀양역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그야말로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않을 만큼.
나는 고개를 들어 강으로 둘러싸인 섬 방향을 바라보았다.
놈들은 지난번의 실패를 만회할 생각이 없는지 더 이상 습격을 걸어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금도 드론으로 간간이 이쪽을 염탐하는 듯했지만 그마저도 굉장히 소극적이었다.
사람이 있든 말든 다 죽여 버리고 뉴밀양역을 통째로 꿀꺽하려던 놈들치곤 태도가 확 바뀐 게 아닌가 싶었지만, 놈들이 입은 피해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드론으로 대충 훑어보고 대뜸 중무장한 소대 병력을 보내서 개같이 털렸으니, 지금쯤 부대 내부 분위기는 개판일 테고 지휘관도 속이 매우 쓰릴 것이다.
그런 일을 겪고도 또 병력을 보내는 짓은 못 하겠지. 진짜 막 나가는 장성 계급이 있지 않고서야.
‘아니면 그렇게 병력을 소모품처럼 팍팍 써도 될 만큼 군인이 많아야 하거나.’
김해 공항에는 군인들이라도 많았지, 저쪽은 생각보다 군인들의 수가 훨씬 적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 근거로는 첫째, 당시 뉴밀양역을 습격했던 놈들의 장비가 지나치게 좋았다.
특수 부대도 아니고 고작 일반 보병을 소대 단위로 그렇게 중무장시키는 놈들이 어딨나.
최전방에서 뛰던 우리도 쉽게 접하지 못한 장구류를 달고 다녔으니, ‘장비만 좋은’ 소규모 부대일 가능성이 높았다.
근거 두 번째, 그렇게 중무장한 놈들이 뉴밀양역을 자신 있게 습격한 것치곤 너무나도 어중이떠중이처럼 행동했다. 후방에 있던 놈들이니 실전 경험이 부족한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절대 ‘소수 정예’는 아니었다.
저런 게 소수 정예라면 밥 든든하게 먹인 북한군은 캡틴 노스 코리아를 자칭해도 됐을 것이다. 물론 그런 캡틴 노스 코리아는 모두 캡틴 사우스 코리아가 처리했으니 안심하라구~
차치하고, 나는 뉴밀양역의 상태를 한 번 더 점검했다. 김해 공항 인근에 배치해 두었던 ATX는 다시 뉴밀양역으로 돌아오게끔 조작했으니 몇 시간 뒤면 알아서 복귀할 것이다.
별 탈 없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경비 로봇들을 지나쳐, 카페테리아로 가서 간식과 음료를 챙겨 나왔다.
ATX를 끌고 이른 새벽부터 움직여 김해 공항을 제압하고, 늦은 오후까지 팀원들과 일하다 왔기 때문에 지금껏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좀비 아포칼립스가 도래한 한반도에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리고 목숨 걸고 일했다고 자부하는 내게 이 정도 보상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는 누군가가 소비하기 전까지 영구적으로 신선도와 온기, 식감이 보존되는 각종 디저트를 고민 끝에 고를 수 있는 보상 말이다.
“뚱카롱, 이것 한입만으로도 배가 부르지.”
반지 원정대의 귀쟁이가 빵 쪼가리 하나 들고 말했던 그 대사는, 영광스럽게도 현대의 뚱카롱이 유지를 이어받았다. 소위 말하는 정신적 계승작인 셈이다.
하지만 상남자는 뚱카롱 한입으로 배부를 수 없다. 에그 타르트에 에클레어, 에그 수플레까지. 아무튼 ‘에’ 자로 시작하는 디저트를 일단 하나씩 집어 들었다.
그리고 뉴밀양역의 옥상으로 올라와 선베드를 깔고 눕듯이 앉았다.
한 손에는 디저트, 한 손에는 망원경을 들고서 이미 저녁노을이 지고 있는 강 건너 시가지를 살폈다.
‘역시 더 남아 있는 폭약이 없는 모양이군.’
시스템에 의해 뉴밀양역이 복구되면서 교각과 함께 끊어진 노선도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갑작스럽게 섬 안쪽을 관통하듯이 연결된 노선을 저쪽에서 또 파괴해 버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놈들에겐 노선을 통째로 끊어 버릴 정도의 폭약은 더 이상 없는 듯했다.
대신 외부인이 교각을 통해 침투하는 걸 막을 요량으로 임시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둔 것이 눈에 들어오기는 했다. 이기적인 놈들답게 끝까지 이기적으로 가겠다는 의사 표명이었으니까.
“에그 타르트 존나 맛있네.”
입 안 가득 퍼지는 계란의 부드러움과 고소함, 그리고 모든 디저트류에 듬뿍 들어가는 설탕의 단맛이 내 입 안에서 거칠게 날뛰었다.
급격하게 충전되는 포도당 때문에 축 처져 있던 뇌도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더 많은 디저트를 입에 넣길 명령하고 있었다.
느슨해진 혈관에 끈적한 긴장감을 주입해 주는 디저트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에그 타르트 하나가 순식간에 소멸해 버렸으니까.
이는 양자역학적으로 도저히 말이 안 되는 현상이었지만, 이미 소멸해 버린 것을 어쩌겠는가.
나는 수첩을 꺼내서 ‘이승권 명언록’ 리스트에 지금 이 기분, 이 감각, 이 풍류를 담은 멋진 한마디를 적어 넣었다.
[사람은 밥이 없다면 에그 타르트를 먹으면 된다. - by zl존승권]
더 이상 저쪽에서 움직이는 드론도 보이지 않고, 그보다 강 건너 시가지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시선을 돌렸다.
망원경의 배율을 잘 조절해 가며, 콘크리트 정글 사이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 이기주의자들의 삶을 염탐했다.
‘예상대로 배급제를 실시하고 있군.’
저녁 시간이 되자 일사불란하게 어디론가 몰려간다 싶더니, 시가지 중심부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이 컨테이너를 열고 생필품과 식료품을 나눠 주고 있었다.
뉴밀양역을 습격한 건 틀림없이 군대였지만, 저 모습을 보니 군대가 시가지를 완전히 장악한 건 아닌 듯했다.
보통 이런 시국에 배급제를 실시할 수 있는 건 그 지역의 실세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김해 공항에서도 물자를 구해 오는 건 아랫것들이었지만, 정작 그 물자를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건 윗대가리였다.
즉 힘과 권력, 그리고 여론을 모두 등에 업은 세력이야말로 실세라는 뜻인데, 밀양 시가지의 경우는 그 역할을 경찰이 꿰차고 있었다.
‘군대와 척을 지고 있거나 라이벌 관계라면 당연히 시민들의 신임을 받고 있는 밀양 시장을 지지하는 입장이겠지. 그럼 뉴밀양역을 습격한 군대는 저들과 정반대되는 입장이며, 뉴밀양역에서 입은 피해 때문에 세력 구도가 크게 바뀌었다는 건가?’
당장 수많은 이들이 배급을 받고 있는 마당에 군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군대가 보유한 물자를 내부에서 직접 소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게 언제까지 가겠나?
결국 시가지를 장악한 세력에게 물리적으로 밀려나거나, 그들 아래에 기어들어 가는 비굴한 선택만이 남겨진 상황이리라.
이번에는 산딸기와 크림이 잔뜩 올라간 에클레어를 한입 베어 먹었다.
톡 쏘는 듯한 새콤달콤한 맛이 농가 딸기보다 훨씬 강한 산딸기와 크림 그리고 부드러운 빵의 조합은 실로 환상적이었다.
내가 에클레어를 먹고 있는 건지, 에클레어가 나를 먹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명언록 수첩에 ‘사람은 밥이 없다면 에클레어를 먹으면 된다.’는 명언을 한 줄 더 쓸 수밖에 없었다. 이건 너무 사기적이야.
입가심으로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쪽 빨아들이던 그때, 저 멀리서 희미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본능적으로 선베드에서 튀어나와 자세를 낮춘 나는 망원경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리고 곧 어떤 무리가 군대가 주둔 중일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진입하는 광경을 포착했다.
시가지의 주민들이 배급을 받기 위해 중심부로 모인 틈을 타, 외곽에서 몸을 사리고 있는 군대를 기습한 건가?
나는 선수를 빼앗겼다는 사실에 살짝 분노하면서도, 이 흥미진진한 실황 중계를 놓칠 수 없어 망원경에 눈을 한층 더 바짝 들이댔다.
Younoob에 꼭 ‘외국인 반응’, ‘외국인 리액션’ 같은 걸 검색해서 보는 관음 페티쉬 국뽕들의 기분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습격한 세력이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움직임이 상당히 빠릿빠릿하군. 제압 사격에 망설임이 없다.’
한두 발씩 끊어 쏘는 듯한 총성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개인 화기를 냅다 연발로 땡기지 않는 시점에서 상당한 베테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반면 군대 측에서도 반격을 하기 위함인지 무턱대고 연발로 당기는 총성이 팝콘 튀기듯 울려 퍼졌으나, 그 또한 제압당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끊어 쏘는 총성은 지속적으로 울려 퍼졌지만, 연발로 당기는 총성은 금세 멎었으니까.
‘완전한 학살과 침묵이 목적인가? 아니면 본보기로 몇 놈만 처리하고 군대를 제압하는 게 목적인가?’
잠시 끊어 쏘는 듯한 총성을 분석해 본 결과, 대략 스무 명이 넘는 군인들이 사망한 것 같았다.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지만, 전멸시키려는 의도가 아닌 건 확실했다.
전멸이 목적이었다면 저렇게 신사적으로 침투해서 신사적으로 교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내게 저 군대를 일망타진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면 포격 지원부터 요청해서 불벼락을 한바탕 퍼부었을 것이다.
그다음 최루탄과 수류탄을 잔뜩 까 넣고 튀어나오는 놈들부터 차례대로 학살, 이후에는 쥐새끼 한 마리 탈출할 수 없도록 모든 진입로에서 거의 동시에 진입하여 잔당을 쓸어 버렸을 테니까.
저렇게 침착하게 총을 쏘면서 본보기식으로 일부 적들만 처리하는 방식은 상당히 잘 훈련받은, 그리고 스스로 감정을 잘 제어할 수 있는 군인들이나 할 수 있는 거다.
나는 그런 건 모르는 개망나니 이승권이었으니까 당연히 저런 방식과는 맞지 않았다.
“끝났군.”
어느덧 총성과 폭음이 멎었다.
잠깐 시끄러워졌다 싶은 시가지에는 다시 ‘평소처럼’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마 저 괴한들이 기습한 군부대는 최소 수십 명이 사망했거나 다쳤을 것이고, 나머지는 저들에게 완전히 제압되어 포로 비스름한 상태가 되었으리라.
나는 남아 있던 뚱카롱을 통째로 으적으적 씹어 먹으며 저들의 최후를 감상했다.
내 손으로 저 시가지를 재도 남기지 않고 싹 다 날려 버릴 작정이었는데, 그중 일부를 다른 놈들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이 살짝 아쉬웠다.
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이제는 새롭게 경계해야 할 대상이 늘어났으니 감시와 정찰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는 걸 느꼈다.
‘행동 양식은 특수 부대와 흡사하지만, 특수 부대는 아니겠군. 그 엉덩이 무거운 양반들이 갑자기 밀양 시가지로 기어들어 와서 다른 세력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해 줄 리가 없어.’
오히려 자기들끼리 독립적인 생존자 그룹을 형성해서 서바이벌 영화 하나를 뚝딱 찍었으면 찍었지, 저렇게 남 좋은 일을 곧이곧대로 해 줄 리가 없다.
하지만 저것과 비슷한 일을 가능케 할 세력이 하나 있긴 하다. 공교롭게도 밀양과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있었고.
‘시스템이 밀양의 끊어진 교각을 복구해 주면서 유입된 외부 인력이군.’
그 외부 인력의 출신은 당연히 대구일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서 터진 팬데믹의 여파에 엄청난 인구가 지방으로 피난을 갔으니까.
그중 가장 많은 피난민을 받아들인 곳이 바로 경부선 고속 도로의 심장이자 지형적으로 방어가 용이한 대구였을 것이다.
만약 내 예상대로 대구가 제2의 서울이 되었다면, 그리고 수많은 권력자와 군대, 인재들이 그곳에 모여 있다면…….
둘 중 하나다.
내 계획의 걸림돌이거나, 아니면 최소한의 상도덕을 지키며 서로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하거나.
“앞으로 더 바빠지겠군.”
나 개인은 물론이고, 내가 운영하는 거점 전체가 미래에 대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