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111)화 (112/227)

111화 투쟁기 (11)

“외람되지만 현시점에서 병력을 다시 한번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빌어먹을!”

쾅!

습관적으로 귀에 대고 있던 헤드셋을 집어 던진 이성철 대령은 스트레스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자신 아래에서 부대원들을 관리하고 있는 중대장이 머리를 짜내고 짜낸 결과, 현실적인 답을 내놓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놈의 빌어먹을 현실만 따지다가 진짜 비현실적인 존재와 불합리한 상황이 자신들을 위협한다면 어쩔 것인가? 때로는 현실적이지 않은 방법이라도 총동원해야 하는 것이 군대라는 조직이었다.

“……그렇게나 피해가 막심한가?”

“현재 귀환이나 정기 보고를 48시간 동안 기다리고 있지만 밀양역 측에서는 그 어떤 반응도 없습니다. 생환자 이전에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실정입니다.”

아랫것들이 밀양역을 성공적으로 접수하고서 자신들을 시원하게 배신하고 모르는 척 숨어 지내고 있다?

확 달라진 밀양역의 상태를 보면 그것도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소대원들이 파견된 밀양역에서 총성과 폭음이 어마어마하게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총 몇 발 쏴 주면 끝날 약탈자 무리들을 상대로 소대원 전체가 미친 듯이 화력을 쏟아부었을 리는 없고, 밀양역 내부에서 어떤 일이 터진 것이라고 봐야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드론을 몇 번이나 띄우면서 정찰을 시도해 봤거늘, 막상 드론으로 건질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었다.

밀양역이 복구되면서 기차가 다닐 수 있는 선로도 자동적으로 복구되어, 자신들이 미리 끊어 두었던 교각이 얼떨결에 다시 복구된 것?

아니면 요 며칠간 중대장 말마따나 밀양역에서 사람 그림자는커녕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차라리 핏자국이나 시체, 아니면 격렬한 싸움이 있었다는 증거인 탄흔이라도 남아 있으면 시원하게 소대원들의 전멸을 인정했으련만.

그런 소란이 일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론이 보내 준 실시간 영상 속 밀양역은 너무나도 깨끗했다. 마치 환경미화원 수십 명이 꼭두새벽부터 정성스럽게 쓸고 닦는 것처럼.

‘낭패다. 처음부터 무력으로 제압하기 위한 병력을 보내는 게 아니라 우선 정찰조부터 보냈어야 했어.’

상대를 너무 얕잡아 본 점, 자신들의 화력이 우세하다고 자만한 점, 마지막으로 상대의 전력을 완벽하게 오판한 점이 이번 작전이 실패한 원인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나 군인들이나 똑같이 대령 계급쯤 되면 상당히 높은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자기 휘하의 병력 손실을 직접 감당할 짬도 안 되는 자리다.

적어도 별 정도는 달고 나서야 작전 중 병력 손실에 대해 무덤덤해지기 마련이다.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군인이 인식하는 계급장에는 까마득한 차이가 존재했다.

“……우리가 실패했다는 사실이 시장 세력의 귀에 들어갔나?”

“숨기려 해도 숨기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우리 측 병력이 줄어든 것을 저쪽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으며, 밀양역에서의 소란이 우리 책임이라고 단정 짓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조만간 자기들 밑으로 들어오라고 압박해 오겠군. 계획만 성공했어도 우리가 주도권을 잡는 건 식은 죽 먹기였는데…… 후우.”

밀양을 외부와 완전히 단절시키기 전까지만 해도 군대와 민간 측은 서로 같은 뜻을 품고 함께 행동했었다.

서로 물과 기름처럼 다른 존재임에도 손발이 잘 맞아서 좀비 떼가 밀양을 완전히 덮치기 전에 모든 교각을 끊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서로 같은 방에서 지내는 식구끼리 얼굴 붉힐 일 없도록 무난하게 잘 지내 왔지만, 그래도 물과 기름은 결국 섞일 수 없었다.

소방관, 경찰, 의료진을 비롯해 주요 민간 직업군을 대거 인재로 채용한 밀양 시장은 자신의 영향력이 더욱 공고해지는 것을 원했다.

이성철 대령 역시 피난민들이 보는 앞에서 비정하게 교각을 끊었을 만큼 권력에 대한 야망이 있는 남자라 적절하게 대응했었다.

문제는 지금까지 어찌어찌 잘 맞았던 균형추가, 이번 밀양역 확보 작전이 실패하면서 완전히 저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비록 화력이 강한 군대라고는 하나 저쪽에 비해 머릿수가 한참 부족하며, 무엇보다 더부살이 신세였다.

반면 저쪽은 군대라는 군식구 하나를 끼고 있음에도 나름 도시를 잘 운영하면서 살고 있다.

파괴되지 않은 밀양 인근의 논밭에서 성공적으로 가을 곡식을 수확했고, 강에서 꾸준히 수산 자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배급제를 부활시켜 민심도 잘 달래고 있었던 것이다.

적지 않은 병력 손실을 입은 이성철 세력이 시장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전무한 셈.

막말로 지금 당장 밀양 시장과 그 측근들을 죄다 암살해 버리고, 기득권들의 자리를 이성철 세력이 완전히 집어삼키지 않는 한 패배는 확정된 것이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먼저 손을 써?’

불온한 생각을 하던 이성철 대령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장 다른 수단을 쓰기엔 부대 내부의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았다. 설마 중무장한 소대 병력이 48시간이 넘도록 연락 두절 상태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우선 밀양역에 대한 건 잠시 접어 두자고. 거긴 우리가 가진 일반적인 상식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장소 같으니까. 드론 정찰도 섬 바깥이 아니라 안쪽으로 돌려.”

“시장 세력을 감시하겠다는 겁니까?”

“저쪽에서 조만간 우리를 압박해 올 건 불 보듯 뻔한데, 하다못해 우리가 우위를 차지하는 부분이라도 있어야지. 특히 그 경찰서장 놈, 그놈이 꼬장 부리는 것만은 막아야 해.”

“……드론 운용반 대원들에게 일러 두겠습니다.”

중대장이 굳은 얼굴로 경례를 한 뒤 집무실을 나가고, 이성철 대령은 여전히 잠잠한 통신 설비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나름 엘리트의 길을 밟으며 대령까지 순탄하게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보직이 보직인지라 진급 기회가 돌멩이처럼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전쟁에서도 별다른 공적을 세우지 못했었다.

남들 다 하는 장성 진급, 남들 다 받는 좋은 보직을 맡지 못해 이런 작은 부대와 함께 섬에 처박힌 자신의 신세가 여간 꼴사나운 게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밀양이 아니라 포항으로 가는 거였는데.’

자신보다 운 없는 대령은 또 없을 거라며 자조하고 있던 그때.

탕탕!

갑작스러운 총성에 반사적으로 자세를 바짝 낮춘 그는 눈알을 데구르르 굴렸다.

탄약이 아까워서 사격 훈련도 못 하고 있는 마당에 총성? 좀비가 기어들어 왔다는 보고도 없었는데 총성?

심지어 정신 나간 초병이 실수로 발포한 게 아니란 걸 증명하듯, 여기저기서 산발적인 총성이 울려 퍼졌다.

한두 발이라면 아랫것들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라고 생각했겠지만, 팝콘 튀기듯 총성이 울려 퍼지니 그의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본능적으로 권총을 뽑아 든 그는 집무실 문 옆에 바짝 들러붙어 귀를 갖다 댔다.

바깥에서 누군가가 고함을 치는 소리, 다다다다 하고 달리는 소리,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 등 온갖 소음 공해가 그의 집무실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런 상황을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습격?’

쨍그랑!

갑작스럽게 깨져 나간 그의 집무실 창문 너머로 한 남자가 기세등등하게 걸어 들어왔다.

특수 부대인 양 몸에 로프를 연결하고 강습 침투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아래에서부터 외벽을 타고 올라온 듯했다.

“다, 당신 뭐야……?”

“군사 경찰입니다. 협조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이성철 대령.”

몸에 붙은 유리 조각을 탁탁 털어 내는 그의 팔뚝에는 선명하게 MP(Military Police)라는 이니셜이 새겨진 완장이 있었다.

옛말로는 헌병, 2020년대에 발발한 2차 남북 전쟁 때문에 군 내부 범죄 예방 및 수사 활동을 위해 기존의 헌병이 군사 경찰로 바뀌었다.

후방에서 근무하던 이성철 대령은 육본에 가지 않고서야 좀처럼 볼 일이 없었던, 애초에 이런 시국이라면 더더욱 볼 일이 없을 터인 존재가 떡하니 나타났다.

“방금 총소리…… 그거 당신들 짓인가?”

“당신 휘하의 부대원들이 협조를 하지 않길래 매뉴얼대로 제압한 것뿐입니다.”

그야 시장 세력이 우릴 노릴 수도 있으니 항상 허가받지 않은 외부인의 접근을 경계하라고 부대원들에게 일러 두긴 했지만, 고작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군대 주둔지에서 총을 갈겼단 말인가?

“이런 미친 새끼들이! 지금 정부고 군 지휘 체계고 다 날아간 마당에 왜 엄한 남의 부대에 기어들어 와서 헛짓거리야!”

“이미 밀양 시장님께 얘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지휘 체계를 무시하고 독립적으로 난폭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군부대가 이곳에 있다고.”

“그 개새……!”

욕설을 내뱉으려던 이성철 대령은 자신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탄탄한 체격을 소유한 군사 경찰이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까지 접근해 그의 멱살을 잡아챈 것이다.

반사적으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려 했으나,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든 주먹이 그의 복부를 파고든 탓에 실패했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고통에 눈앞에서 별이 번쩍이는 것을 목격한 이성철 대령은 힘없이 축 늘어지며 권총을 떨궜다.

“그륵, 그으으으. 너희…… 대체 어디서 온 놈들이야……?”

“당신들이 뒤에서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걸 눈치챈 밀양 시장님께서 대구로 이전한 임시 육군 본부 측과 접선했습니다. 당신들에 대한 정보는 그때 전부 넘겨받았습니다.”

“대, 대체 언제…….”

“이틀 전에.”

이틀 전이면 자신들이 밀양역을 접수하려다 실패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소대원들의 귀환이나 정기 보고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즉 시장 세력은 이미 자신들이 실패한 것을 알고, 어찌 된 영문인지 다시 복구된 교각을 통해 대구로 가서 몰래 접선했다는 얘기가 된다.

자신들의 손으로 군대를 처리할 수 없으니, 더 강한 군대의 힘을 밀양에 끌어들여서 처리하기 위해서.

“조까튼…… 새끼들……!”

“자세한 얘기는 대구에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많은 분들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게십니다.”

“지이이이랄…… 내가 입이라도 뻥긋할 것 같…… 아?!”

“글쎄요, 비각성자의 몸으로 각성자의 강도 높은 ‘심문’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그 말을 끝으로 이성철 대령의 경동맥이 더욱 압박되었다.

이윽고 정신을 잃은 그를 들쳐 업은 군사 경찰은 피와 화약 냄새를 잔뜩 묻히고 나타난 다른 군사 경찰들과 합류했다.

“이곳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이제 이곳을 새롭게 맡을 군부대에게 인수인계를 해도 좋다고 보고하도록.”

마치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그 시절, 식민지에 총독부를 세우는 것처럼 도시 하나당 대구의 입김이 닿는 군부대가 하나씩 배치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윽고 경상도, 나아가서 한반도 전체가 제2의 서울로 재탄생한 대구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리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