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108)화 (109/227)

108화 투쟁기 (8)

-저 간나 새끼 죽여 버려!

그런 외침을 꽤 많이 들어 봤던 것 같다.

오랫동안 굶어서 피골이 상접했음에도 아득바득 좀비처럼 덤벼들던 놈들이 상투적으로 내뱉던 외침이었으니까.

이미 자신들이 믿고 따르던 구국의 령도자 양반은 참수 작전에 의해 뒈진 지 오래고, 그렇게나 자신만만하게 자랑하던 핵미사일은 모두 파괴되거나 미군의 통제하에 놓인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은 ‘아프간’의 사례 하나만 믿고 미제승냥이떼와 그 앞잡이인 남조선괴뢰군에게 결사 항쟁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더라?

‘압도적인 전력 차이가 뭔지 보여 줬었지.’

놈들이 낡아 빠진 AK 소총을 갈겨 댈 때, 우리는 전차와 장갑차를 내세워 무자비하게 밀고 들어갔었다.

그러다 북한군이 벙커나 땅굴 속으로 숨어 들어가면 아무렇지도 않게 최루탄을 잔뜩 까 넣었다. 놈들이 꼬리에 불붙은 쥐새끼처럼 튀어나오면 항복이라는 말을 외치기도 전에 방아쇠를 당겼던 기억이 떠오른다.

억울하게 전쟁터에 끌려온 것도 모자라 허무하게 죽어 나간 전우들의 전별이라 생각하고 죄다 저승길 동무로 보내 준 것이다.

그곳에서만큼은 우리 모두가 살인 기계였고, 피의 복수를 갈망하는 정신병자들이었다. 어쩌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타카카카카카카카!

여기저기서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수십, 수백 발의 탄환에도 나는 하품만 쩍쩍 나왔다. 이른 새벽부터 움직이느라 간밤에 잠을 설친 탓이다.

저 머저리들이 무능한 장군의 지시에 따라 총구를 들어 올리기 전에 이미 상점창에서 구입한 초대형 방탄유리를 내 앞에 깔아 놓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전차포 정도는 쏴야 꿰뚫을 수 있는 엄청난 두께의 방탄유리는 내게로 날아드는 모든 탄환을 무리 없이 막아 냈다.

대통령 전용 차량에 쓰이는 방탄유리도 50cm를 넘지 않는다던데, 내 앞에 세워진 초대형 방탄유리는 최소 1m 두께를 자랑했다.

당연히 DNA 샘플을 그만큼 많이 잡아먹었지만, 내 지갑에는 3만이 넘는 DNA 샘플이 쌓여 있었다. 방탄유리에 허무하게 막히는 탄환처럼, 내 지갑 잔고에도 별 타격이 없다는 뜻이다.

“사, 사격 중지! 사격 중지!”

뒤늦게 자신들의 기습적인 화력 투사가 먹히지 않는다는 걸 눈치챈 장군이 손을 들어 올리며 사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그래 봤자 이미 대다수의 군인들이 탄창 안에 있는 아까운 탄약을 전부 소모한 뒤였다. 저 탄약을 전부 좀비들에게 쏟아부었으면 얼마나 좋아.

“윗대가리가 멍청하고 무능한 건 예나 지금이나 바뀌질 않는군. 그러니까 미군의 지원을 받고도 북한을 정리하는 데 5년이나 걸렸지.”

이제는 나도 막을 수 없다. 이미 나를 향해 명백한 적대 의사를 내비친 ‘외부인’을 시스템이 어떻게 판단하겠는가?

따카아아앙! 따아아아악!

내 예상대로 시끄러운 금속 마찰음이 울려 퍼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공항을 강제 탈취하자마자 자동 배치된 거점 방위 무기들이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금속 막대를 쏘아 냈다.

멋모르고 서 있던 군인들의 가슴팍과 머리통에 금속 막대가 차례차례 꽂혔다. 가장 처음 기둥에 박혔던 쏘가리처럼 그들 역시 벽이나 바닥을 장식하는 현대 미술품이 되었다.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금속 막대를 쏘아 낸다고 해서 레일건이라고 부를 만큼 거창한 방위 무기는 아니다.

화약이나 공기 압력을 대신해서 전기 에너지를 사용할 뿐, 위력은 잘 쳐줘도 대전차용 철갑탄을 대인용으로 줄인 것에 불과했다.

다만 뼈와 살로 이루어진 생물이 상대라면 어지간한 총탄보다 훨씬 더 괜찮은 위력을 자랑했다. 화약을 일절 사용하지 않아서 소음도 적고 총염은 아예 없다.

“으아아아아!”

“도망쳐!”

“이, 이쪽으로 오지 마, 새끼들아!”

처음 쏘가리가 죽었을 때만 해도 다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반응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빠르게 군인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하자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놈들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총을 바닥에 떨구든, 눈물과 콧물을 질질 짜면서 도망치든, 민간인 사이에 숨는 병신 짓을 하든 거점 방위 무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성체’를 사살해 나갔다.

따아아악! 따카아아앙!

무미건조한 금속 마찰음이 울려 퍼질 때마다 목표로 설정된 적성체의 몸이 크게 날아갔다. 방탄복을 입고 있어도, 하이바를 쓰고 있어도 날카롭고 길쭉한 금속 막대가 관통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공항 내부의 벽이나 천장에서 CCTV처럼 달려 있던 유사 레일건이 마침내 수십 명에 달하는 적성체를 사살했다.

저들은 그저 상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인 불쌍한 군인들 아니냐고? 때로는 상관을 프래깅할 각오를 다지는 한이 있더라도 명백하게 잘못된 명령은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

군인은 무조건 충성만 한다고 다가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군인으로서 의무를 다했지만,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상관에게는 단 한 번도 충성한 적이 없다. 내가 충성했던 것은 내가 지킬 가치가 있었던 것들 뿐이었다.

저놈들은 지킬 가치도 없는 것에 충성을 바쳤으니, 그 충성심에 따라 장렬히 전사하는 게 맞다.

개선의 의지도 없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각오도 없는 놈들까지 그냥 거둬 줄 만큼 나는 자비롭지 않았다.

기껏 리뉴얼되어서 깨끗해진 공항이 다시 피바다가 되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거점은 손상된 내구도를 다시 복구하려는 성질이 있으니까. 저 핏자국도, 시체도, 탄약이 튄 흔적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겠지.

그보다도 아직 처리가 안 된 쓰레기들은 내가 직접 치워야 한다.

초대형 방탄유리를 인벤토리에 넣은 나는 즉시 총을 들어 멍청하게 서 있던 군 간부나 장교들을 조준 사격했다.

병사들에게 사격의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들은 끝내 총구를 올리지 않았던 위선자들은 나의 출중한 사격 실력에 차례차례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어, 어어어억?!”

“저 미친 새끼!”

“대가리 숙여!”

다급히 총격으로부터 몸을 피하려는 시도가 꽤나 감동적이었으나, 사격 스킬 등급 A를 자랑하는 내 조준 사격에서 살아남은 건 눈치 빠른 장군뿐이었다. 그 외에는 전부 사망했다.

이제 실질적으로 우리를 위협할 무리는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나는 무전으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팀원들을 불러들였다.

이만철 세력에서 제공해 준 오더 메이드 갑옷과 총기로 무장한 팀원들이 우르르 달려 들어와 민간인들의 앞에 섰다.

어째서 군인도 아닌 내 팀원들이 총기로 무장하고 있냐고? 이곳을 함락시키는 과정에서 바깥의 군인들을 매수하고 총기를 넘겨받았거든.

지금 이곳에 있는 민간인들만 해도 수백 명이 넘고, 안쪽에 있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족히 만 명 단위는 훌쩍 넘어간다. 이쪽이 압도적으로 수적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총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저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미리 내 언질을 받은 팀원들은 무기를 손에 쥔 채 잔뜩 굳은 표정으로 민간인들을 압박했다. 허튼짓하면 머리통을 날려 버리겠다는 암묵적인 경고가 민간인들을 옭아맸다.

일부러 바닥이나 벽을 내려치거나, 욕설을 내뱉으면서 통제에 따르라는 등 상투적인 협박을 일삼지 않아도 민간인들은 금세 고분고분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더 이상 자신을 지켜 줄 군인들이 없어졌으니까.

팀원들에게 민간인 통제를 맡긴 나는 가볍게 산책이라도 하듯 2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내가 딱히 프래깅에 욕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썩어 빠진 군인을 내 손으로 처리하는 것은 묘한 쾌감이 있었기 때문에, 마치 화창한 날씨에 도시락 싸 들고 산책을 나온 기분이었다.

절대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절대로.

타앙! 깡!

2층으로 걸어 올라가자 총알 한 발이 날아들었다.

적의 진입을 기다렸다가 총을 쏘는 건 매복의 기본이니까 당연히 그럴 거라고 예측했다. 그래서 미리 원거리 공격형 좀비를 상대로도 써먹었던 방탄 방패를 들고 있었다. 난 너무 똑똑해.

대구경 탄환도 아니고 고작 권총탄이나 소총탄으로는 이 튼튼한 상점제 방탄 방패를 뚫을 수 없었다. 난 너무 튼튼해.

“너, 너 이 개새끼! 대체 뭐야! 뭔데 민간인을 보호하고 있는 우리 군을 공격하는 거야! 네가 지금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기나 해?!”

나를 향해 사격 명령을 내린 예의 장군, 정확히는 소장 계급의 사내가 기둥 뒤에 숨어서 꽥꽥 울부짖었다.

저렇게 말하니까 내가 꼭 나쁜 놈처럼 들리는데, 그렇다고 내가 딱히 착한 놈은 아니니까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나 김해와 부산의 적법한 군주 이승권 가라사대, 내 말이 곧 이 땅의 법이니라. 꼬우면 뒤지든가.

그래도 저놈은 자신이 갑작스럽게 공격당한 이유를 궁금해하는 것 같으니까, 적어도 합리화 정도는 할 수 있게 도와주자.

“너희가 노예처럼 부려 먹던 각성자 군인들에 대해서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그들을 지휘하던 대위 새끼가 우리 거점에서 물자를 강탈하려던 것도 모자라 날 강제 징집하려고 했어. 아주 괘씸했지.”

“그 대위는 분명 작전 중에 사망했다고 들었는데…… 설마 네놈이 죽인 거냐?!”

“당연히 죽였지. 그래도 꼴에 각성했다고 강압적으로 나오는 게 어찌나 꼴같잖던지, 내 안의 흑염룡이 못 참는 눈치더라고.”

“그, 그에 대한 보복이라면 관련자만 처리하는 선에서 끝내면 되는 것 아니냐?! 왜 죄 없는 우리까지……!”

“앞으로 내가 할 일이 많은데 너희 같은 버러지들을 등 뒤에 남겨 두긴 싫었거든. 전략적 가치가 높은 김해 공항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것도 좆같은데, 군인들을 동원해서 주변 생존자 그룹을 압박해 물자를 징발하려던 걸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나?”

우리 거점의 일원들이 김해 시내를 정상화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거기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것도 모자라 무력을 사용해서 핍박하려 했다?

만약 내가 부산역을 확보하지 못하고 사망했다면, 혹은 큰 실패를 겪고 후퇴하는 패배자의 입장이었다면 군인들을 막을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내 거점 방위 무기는 대부분 거점 내에 침투한 적만을 요격하지, 거점 바깥에서 공격하는 적에 대해서는 무용지물이었으니까.

게다가 원시적인 활이나 새총도 아니고 무려 진짜 총 화기를 대량으로 가지고 다니는 군인들이라면 명백하게 우리가 불리하다. 적들은 외부에서 저격과 포격만 퍼부어도 우리를 전멸시킬 수 있었으니까.

타앙! 깡!

또 한 발의 총성이 방탄 방패를 두들겼다. 소용없는 짓이란 걸 알면서도 상대는 여전히 이 상황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리라.

“여기에 대체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들을 먹여 살리고 보호하기 위해서 물자와 인력 징발은 필수 불가결한 일이었다고!”

“정부도, 사회 시스템도, 법도 모두 사라진 마당에 우리가 왜 생판 남을 위해서 무작정 희생해야 하지? 아니면 6년 전에 군인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희생시켰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발상인가?”

“너 이 새끼…… 역시 북진군 출신이었군!”

“그때 복무 중이었던 대한민국 장병들 중 북한 땅으로 안 올라간 사람은 없어 병신 새끼야. 아, 너흰 편하게 후방에 처박혀서 지휘만 했던가?”

타앙! 깡!

“너만 전쟁에 참전했나? 너만 희생했어? 그땐 모두가 힘들었고 모두가 희생했던 비극적인 역사였다! 아주 그냥 자기들만 억울하지?! 자기들 돕겠다고 발 벗고 나선 트라우마 센터 직원들 상대로 난동을 벌인 정신병자 새끼들이……!”

“그렇게나 비극적인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양반이 또 아랫것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자신의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겼나? 너희 윗대가리의 변명 패턴은 세월이 흘러도 토씨 하나 바뀌지 않는다는 게 참 놀라울 지경이야. 할 줄 아는 게 지휘봉 흔들어 대면서 말도 안 되는 명령 내리기랑 기자들 앞에서 포즈 취하는 것 말고 또 뭐가 있지? 병사들 옆에서 같은 식판에 담긴 개밥 맛있게 처먹는 척하기?”

“우리의 전장 현황 분석과 지휘가 없었다면 너흰 전부 개죽음이었어, 이 새끼야!”

“너희가 지휘 본부에서 뻘짓만 안 했어도 개죽음의 반은 줄일 수 있었어, 이 좆같은 새끼야! 현장에 나와 본 적도 없는 호로 새끼가 아가리 털긴!!”

방탄 방패를 든 채 밀고 들어간 나는 다급히 재장전을 하고 있던 놈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쿨럭! 크흑?!”

“북한군이 아군 병사들을 죽이든 말든! 저 바깥의 좀비 새끼들이 아군 병사들을 죽이든 말든! 너희 입장에서 아랫것들은 숫자로만 존재하는 소모품이잖아? 안 그래?!”

북한군의 자살 폭탄 테러에 죽는 아군이나, 좀비들에게 끔찍하게 뜯어먹히며 길바닥에서 차갑게 식어 가는 아군이나, 이놈에겐 ‘에이씨, 또 죽었네’ 정도의 감상으로 끝났을 것이다. 마치 게임처럼.

나는 놈을 지근지근 밟고 튼튼한 방패로 있는 힘껏 내려쳤다. 사람을 어떻게 패야 딱 죽기 직전까지만 팰 수 있는지는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전매특허였으니까.

악! 사 람만도못한짐승을패는건자신있어 이승권 병장님!

“쿨럭! 쿨럭! 흐으, 흐으…… 그래서…… 이제 와서 뭘 말하고 싶은 거냐? 대가리 박고 사죄라도 하랴? 흐흐흐…… 네가 국방의 의무를 짊어졌듯이 우리도 각자의 의무를 짊어지고 그에 맞게 행동했었다! 지금도 그 사실에 변함은 없어! 당장 날 죽이면 속은 편해지겠지, 하지만 저 수많은 민간인들을 봐라. 난 저들을 지금까지 안전하게 보호하며 먹여 살렸지만, 너는 죽이는 것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는 정신병자 살인 기계잖냐! 그런 네가 뭘 할 수 있지?!”

“……너희 윗대가리들이 자랑했던 그 1차원적 사고방식 때문에 북한 땅에서 허무하게 죽어 나간 내 전우들이 불쌍하다.”

나는 피떡이 되어 바닥에서 꿈틀대는 놈의 뒷덜미를 잡아서 질질 끌고 나갔다.

“네 눈으로 똑똑히 봐라.”

김해 공항 내부에서 나를 적대하다 죽은 군인들을 제외하고, 외부에서 근무하거나 물자를 회수하고 있던 군인들 모두 우리 팀원들을 따라 민간인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한창 바깥에서 물자를 회수하고 있어야 할 각성자 군인들도 있었다. 박지찬 병장과 그 일행은 이미 나와 일면식이 있었기에 가장 먼저 투항하고 합류하기로 한 이들이었다.

“저들을 매수하는 건 매우 쉬웠어. 네놈들이 했던 짓의 정확히 반대로만 하면 됐거든.”

내가 자랑하는 막대한 양의 물자와 안전한 거처, 그리고 계속 군인으로 일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면책권을 제시했더니 모두 내게 투항했던 것이다. 애초에 내가 저들보다 압도적으로 강하기도 했고.

바깥에서 격한 총격전이 일어난 것처럼 연기했던 이유는 그냥 김해 공항 내부에 있던 인원들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정말 죽이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놈이었다면 저들이 과연 순순히 내게 투항하고 협조했을까? 오히려 필사적으로 나와 맞서 싸웠겠지.”

“…….”

“하지만 보는 대로 현실은 정반대였어. 네놈은 약속하지 못했던 넉넉한 물자와 안전한 거처, 그리고 ‘사람다운’ 대우를 약속하니 다들 군말 없이 넘어오더라고. 우리 대단하신 장군님께선 죽이는 것밖에 못하는 정신병자 살인 기계보다 인망이 없으셨던 모양이야?”

이게 말로만 떠들었던 너와 책임지고 약속을 지키는 나의 차이다.

정치와 가장 거리가 멀어야 할 군인이 정치인처럼 더러운 짓거리를 일삼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저승에 가면 내 전우들에게 안부나 전해 줘.”

“잠……!”

나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름도 모르는-알고 싶지도 않은-소장의 머리통에 대고 권총을 쐈다.

얼굴에 뇌수와 피가 튀었지만 나는 덤덤하게 닦아 냈다.

이런 것까지 피부에 양보해야 할 만큼 내 피부 건강이 안 좋은 건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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