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투쟁기 (7)
꽈아아아아앙!
김학렬 소장은 자신에게 배정된 1인실의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서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군인이라면 당연히 누군가가 귀에 대고 냅다 주먹을 갈긴 듯한 폭음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썩어도 준치라고, 이미 병사 시절 따윈 생각나지도 않는 그에게 폭음만큼은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뭐, 뭐지?! 북한의 기습 도발…… 아니, 북한은 이미 멸망했지.”
평화로운 한반도 땅에서 폭음이 울려 퍼질 일이라면 북한의 기습 도발이나 침공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벌써 6년 전 일.
지금은 북한도, 한반도의 평화도, 심지어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포격을 갈길 만큼 정신 나간 세력도 없었다.
김해 공항에 아직 155mm 견인포와 치장 물자로 남겨 둔 고폭탄이 꽤 남아 있긴 하지만, 그건 좀비들이 혹시라도 김해 공항으로 진격해 올 때를 대비해서 아껴 두지 않았던가.
‘내가 잠든 사이에 웬 미친놈이 그걸 창고에서 꺼내 쐈을 리는 없고…… 설마 적습인가?’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군복을 갖춰 입고 허리춤에 권총을 찼다.
그가 밖으로 나설 채비를 마치기가 무섭게 바깥 복도에서 누군가가 다다다 달려와 미친 듯이 노크를 해 댔다.
“이미 일어났으니까 진정해!”
문을 확 열어젖힌 그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부관에게 냅다 호통을 쳤다.
“상황 보고!”
“보, 보고드립니다! 공공 다섯 시경에 김해 공항 북쪽에 갑자기 ‘나타난’ 교각과 선로를 타고 부산 방면에서 침투해 온 미상의 장갑 열차가 포격을 가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분명 자신들이 미리 끊어 두었던 김해와 부산을 잇는 교각 중 하나가 며칠 전 갑자기 복구되었다는 보고는 이미 받은 바 있다.
그 괴현상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각성자 군인들을 불러 의견을 물었더니, 때마침 부산으로 작전을 나갔다 왔던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각성자의 ‘능력’일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여전히 각성자가 뭔지, 각성자가 지닌 능력이 뭔지는 늙은 꼰대인 김학렬 소장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들이 모르는 각성자 세력의 등장은 김해 공항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비상사태 선포하고 애들부터 다 깨워. 무기고 개방해서 탄약부터 지급해 주고 참모진은 전부 내 집무실로…….”
타타타타타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총성에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몸이 확 굳는 것을 느꼈다.
아직 자신이 교전 허가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총성이 들렸다는 건 둘 중 하나다.
1. 자신들처럼 총 화기로 무장한 적이 먼저 선제 발포를 했다.
2. 현장에 있는 지휘관 계급이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아군에게 발포 명령을 내렸다.
전자라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고, 후자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쪽이든 지금 자신들이 미증유의 위기에 처한 것이 틀림없다는 일종의 신호였으니까.
부관과 함께 복도를 한달음에 뛰어, 밖이 잘 내다보이는 김해 공항의 2층 라운지로 향한 김학렬 소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이 도착하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저 멀리서 불기둥이 치솟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폭음도, 총성도 더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 기색은 없었다.
특히 피난민의 임시 수용소 겸 피난처로 활용되고 있는 공항 1층과 지하는 이미 난리가 났는지, 여기저기서 비명과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군인들에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따져 묻는 사람들, 갑작스러운 총성과 폭음으로 패닉에 빠져서 발광하고 있는 사람들,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겠다며 무턱대고 뛰쳐나가려는 사람들까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보다 못한 김학렬 소장은 허공에 대고 권총을 몇 발 쐈다. 장성용 권총은 리볼버였기 때문에 총성도 상당히 컸다.
다수의 민간인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야만 편하게 왕처럼 군림할 수 있기에, 평소의 그는 군인들을 쪼아 댈지언정 민간인들에게는 항상 상냥하고 친절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방금 잠에서 깨어나 이 혼란스러운 정국을 맞이한 그는 더 이상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거, 뒈지기들 싫으면 다들 가만히 계쇼!”
총성과 호통, 그리고 이곳의 책임자라는 높은 직책까지 더해지면서 자연스레 난동을 피우고 있던 민간인들의 기세가 누그러들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상황은 무엇 하나 나아진 것이 없었다.
여봐란 듯이 김해 공항 부지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고, 무슨 테러리스트 조직이 단체로 게릴라 작전을 벌이는 것처럼 총성도 시끄러웠다.
마치 이 광경을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는 것처럼.
“애들 무장부터 시켜. 그리고 그 각성자 병사들도 싹 집합시켜!”
“어, 어제 명령을 받고 물자 구하러 나간 군인들이 아직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쓰읍…… 그럼 일단 남아 있는 애들이라도 무장을 시켜야 할 거 아냐!”
최근 각성자 병사들만으로는 물자 확보가 점점 더 어려워져서, 결국 괴물 놈들이 적게 나타난다는 김해 시내로 군인들을 급파했었다.
김해 시내는 생존자 그룹이 따로 거점을 마련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만큼 좀비들의 수도 적다고 들었기에, 일반 군인들 정도라면 물자 회수 작전을 진행해도 문제없을 것이라 판단했었다.
그때는 꽤 괜찮은 판단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하필 지금 이런 업보로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김학렬 소장은 급하게 달려 나온 장교와 간부를 싹 모아서 병사들의 지휘 및 통제에 나서게끔 했다. 또한 참모진들에게는 어떤 세력이 김해 공항을 노리고 있는 것인지 의견을 내게 했다.
일분일초가 촉박하게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김학렬 소장은 입 안이 바싹바싹 말라 가는 것을 느꼈다.
이 거점을 잃어버리면, 더 나아가서 이곳에 존재하는 군인들의 최고 상관이라는 직책이 사라진다면 자신의 인생은 최악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이 거점, 이 지위만큼은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권총을 꽉 쥔 그때.
그의 눈앞에 반투명한 메시지 박스 같은 것이 나타났다.
-현재 당신이 무단 점거하고 있는 ‘김해 국제공항’ 거점은 퇴역병에 의해 강제 탈취되었습니다.
-당신은 이제 ‘외부인’입니다.
-당신의 생존 자격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 메시지는 생존자(각성자)와 일반인(비각성자) 모두 확인할 수 있는 공용 메시지입니다.
“이, 이게 무슨?!”
“어억! 이게 뭐야!!”
“꺅! 내 눈앞에 이상한 게 보여요!”
“나도! 나도 보여!”
“설마 각성한 건가? 각성하면 이런 게 보인다고 하던데……!”
“아니! 각성한 게 아니야! 각성자와 비각성자 모두 볼 수 있는 공용 메시지라고 쓰여 있잖아!”
자신만 본 게 아닌지, 민간인과 군인 너 나 할 것 없이 갑자기 눈앞에서 나타난 메시지를 확인하고서 다시금 혼란에 빠졌다.
기껏 잠재웠던 혼란이 다시 격화되었다는 사실보다, 김학렬은 공용 메시지의 가장 첫 줄이 신경 쓰였다.
‘현재 당신이 무단 점거하고 있는 ‘김해 국제공항’ 거점은 퇴역병에 의해 강제 탈취되었습니다, 라고……?’
무단 점거까지는 그렇다 치자.
퇴역병은 뭐고, 강제 탈취는 또 뭐란 말인가? 애초에 주인 없는 이 공항을 손도 안 대고 빼앗는 게 가능하기나 한가? 무슨 권리로? 무슨 자격으로? 무슨 능력으로?
멍청하게 반투명한 메시지만 바라보고 있던 김학렬은 문득 발밑이 드드드드드드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자세를 낮췄다.
대지진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진동에 또 한 번 시끄러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혹시 포격으로 공항이 와르르 무너지는 게 아닌가 싶어 겁을 먹고 있던 찰나, 조심스럽게 눈을 떠서 확인한 공항의 풍경은 불과 몇 초 전과 비교해서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깨끗하고, 고급스럽고, 넓고, 아무튼 대단하다는 수식어를 다 갖다 써도 모자랄 만큼 김해 공항이 럭셔리스페셜울트라 김해 공항으로 새 단장을 한 것이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냐고 중얼거렸지만 명쾌한 해답을 내어 줄 사람은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김학렬 소장과 같은 심정이었으니까.
갑자기 김해 공항 내부가 확 넓어진 것도 모자라서 금방 대청소를 한 것처럼 쾌적해졌다. 거기에 이미 오래 전에 전기와 가스가 끊어져서 기대할 수 없었던 따스한 난방이 그들을 보듬어 주었다.
“이, 이게 정말 김해 공항인가?”
“김해 공항이지. 아니, 이제는 이승권 공항이라고 해야 하나?”
“!”
넓은 김해 공항의 출입구를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는 한 남성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쏠렸다.
과거 중동 지역 전쟁터에서 사람 죽이는 일로 돈 벌어먹고 살던 PMC(민간 용병)들이나 차려입고 다닐 법한 캐주얼한 복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남성은 멀리서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을 만큼 탁하게 죽은 눈을 소유하고 있었다. 누가 쿡 찌르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폭탄이 딱 저런 느낌이었다.
국군이 아니면 절대로 구할 수 없는 K-2C 소총을 든 채 걸어 들어온 그는 가만히 내부를 둘러보았다.
꼭 백화점에 들어온 큰손이 무엇부터 쓸어 담을지 가볍게 스캔하는 것처럼.
“어이! 당신 누구야?!”
모두가 숨 죽이고 있는 상황, 대뜸 1층에 있던 소위 한 명이 권총을 겨눈 채 조심스럽게 몇 걸음 다가갔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저 쏘가리가 미쳤나 하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이라면 표창을 받아도 모자랄 만큼 용감하고 당연한 행동이었다. 영내에 신원 미상의 무장 괴한이 침투한 상황이니까.
하지만 쏘가리의 용감한 행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장 괴한에게 총구를 겨눈 그 순간, 따아아아악! 하는 엄청난 금속 마찰음과 함께 그의 몸이 10m는 넘게 날아갔기 때문이다.
공항 1층의 대합실 돌기둥에 박힌 쏘가리의 가슴팍에는 가늘고 긴 금속봉이 박혀 있었다. 일격에 심장을 관통당한 것이다.
“아, 미안하게 됐네. 시스템상 일반적인 외부인은 거점 내에서 나한테 총구를 겨눈다고 해도 자동 요격 대상이 아닌데, 내 거점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는 외부인은 얘기가 다른 것 같더라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무장 괴한은 일장 연설을 하듯이 양팔을 벌리며 여유로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또 나한테 총구 들이밀다 뒈질 놈 있나? 있으면 지금 바로 나오는 게 좋을 거야.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잖아.”
김학렬 소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눈!
저 탁하게 죽은 눈!
자신은 저 눈을 본 적이 있다!
북한으로 진군한 수십만 장병들 중 5년 내내 전장을 단 한 번도 떠나지 않았던 일부 군인들에게서만 보였다던 그 눈이었다!
‘저놈, 북진군 출신이다!’
북진군.
6년 전에 북한의 기습적인 선제타격에 의해 발발한 2차 남북 전쟁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딱히 그들이 특수 부대나 첩보 요원처럼 특출난 점이 있어서 상징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작전의 난이도나 성과, 작전 능력은 모두 일반 병사가 후달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진군이 2차 남북 전쟁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지극히 단순했다.
전장에서 5년 내내 먹고 자고 사람 죽이는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고생하는 장병들이 트라우마 센터에서 어떤 난동을 부렸는지, 또 그들이 어째서 5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전장을 돌아다녀야 했는지 장성 계급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저놈은 여기서 죽어야 한다! 살려 두면 안 돼!’
김학렬 소장은 이미 피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민간인들이 보는 앞에 권총을 들고 외쳤다.
“저 새끼 죽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