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투쟁기 (3)
어둡고, 축축하고, 공기도 안 좋은 폐쇄적인 공간에서 사람을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불안감’이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멋모르고 밟은 함정에 발목부터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호흡하지 못해 쓰러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
깊은 어둠은 수많은 불안감을 내포하고 있으며, 본능적으로 빛을 가까이하고 어둠을 멀리하는 인간에겐 최악의 환경이나 다름없다.
인류의 먼 조상인 고대 원시인들이 어째서 불 하나에 그토록 열광했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기분 나쁜 색, 구린 냄새, 역겨운 맛,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을 멀리할수록 생존율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인간의 DNA에 새겨진 가르침이었다.
‘뭐가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저 어둠 속으로 직접 걸어 내려가는 건 미친 짓이지.’
내가 몇 번인가 실험을 해 보면서 알게 된 건데, 좀비들은 기본적으로 어둠도 꿰뚫어 볼 수 있는 미친 시각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소리만 듣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인간과 좀비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 정도는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인간은 각성자가 아니고서야 대부분 평범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평범하게 어둠을 꿰뚫어 보지 못하며, 평범하게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는다. 아무리 감각을 곤두세워 봤자 한낱 짐승만도 못한 어설픈 탐지 능력을 자랑하는 게 고작이다.
“남아 있는 기름통과 화염병을 모두 가져왔습니다.”
“고마워요.”
김진경 경장이 가져온 기름통과 화염병 박스를 받아 든 나는 거점창을 열어서 지하철역 내부 구조를 살폈다.
안타깝게도 내 거점 지정 스킬의 등급이 낮은 탓에 부산역을 완전히 내 통제하에 두지 못했다.
거점 지정 스킬이 적어도 B- 등급은 되어야 부산역을 완전히 손에 넣고 거점을 리뉴얼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아직 거점 리뉴얼이 되지 않은 부산역은 그냥 임시 거점일 뿐 방위 무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충분한 준비 없이 나 혼자 여길 찾아왔다면 좆될 뻔했겠어.’
다른 팀원들은 모두 지하철역으로 이어지는 입구 앞에 대기시켜 두고, 나 홀로 계단을 내려갔다.
채성아와 김진경 경장이 나를 만류했지만 나는 그렇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내가 미쳤다고 지하철역의 가장 깊은 곳까지 기어 들어가겠는가. 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어도 그 정도로 멍청한 짓을 벌일 생각은 없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계층만 내려온 나는 일부러 화염병 심지에 불을 붙이지 않고 이곳저곳에 미친 듯이 투척했다.
신나와 기름, 그리고 불길을 더욱 오래 지속해 주는 몇 가지 첨가물이 뒤섞인 유리병이 지하철역 벽이나 바닥을 마구 때렸다.
쨍그랑! 와장창!
깊은 지하에 있다 보면 지상의 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게 당연하지만, 같은 지하 공간 내에서 큰 소음이 벽과 천장을 때리며 반향하면(메아리치면)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다.
얍삽하게 지하철 내부의 벽과 천장을 파괴하며 임시 거점의 내구도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던 놈들도, 결국 어그로가 끌려서 나를 조지러 와야 한다. 거점 전쟁은 그런 ‘시스템’으로 강제되고 있다.
우다다다다!
저 아래에서부터 바퀴벌레 수천 마리가 일제히 움직이는 듯한 기기괴괴한 소리는 지금 좀비 떼가 기어 올라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허공에 총까지 쏘며 노골적으로 소음을 더 흩뿌렸다. ‘나 여기 있다, 제발 와서 한 입만 잡솨 봐~, 이런 기회 두 번 다시 안 온다니까?!’ 대충 이런 느낌으로.
저 아래에서 좀비들이 듣기 싫은 비명을 내지르며 달음박질에 박차를 가하는 게 진동으로 느껴진다.
‘인기 스타가 따로 없군.’
혼신의 힘을 다해서 좀비들을 쳐 죽였는데도 아직 저만큼이나 남아 있다.
완전히 녹초가 된 팀원들과 함께 정면에서 당당히 승부하면, 당연히 화력이 크게 떨어진 우리가 무척이나 불리한 상황.
서로 ‘니가 와’를 시전해 봤자 이 싸움이 끝날 리가 없으니, 결국 나는 이 한 방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한 층, 두 층, 대충 그 정도 남았을까. 곧 놈들이 여기까지 모습을 드러내면 순수한 인간의 힘으로는 이겨 내기 힘든 무수한 좀비 떼가 덤벼들 것이다.
“기름을 기름기름 뿌려 주고, 신나를 신나신나 뿌려 주고.”
남아 있는 모든 인화 물질을 주변에 미친 듯이 흩뿌렸다. 이렇게까지 해도 솔직히 천 마리가 넘는 좀비들을 모두 불태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막말로 저놈들이 불붙은 동료의 시체를 발판 삼아 무지성으로 뛰어 넘어오면, 아무리 크게 불을 질러도 우리의 힘으로는 놈들의 물량 웨이브를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언제나 이야기 속 최종 흑막에게는 필살기가, 사천왕에게는 숨겨진 유대가 있듯이, 나 이승권에게도 역전의 히든카드가 있었다.
지독한 기름과 신나 냄새에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그때, 마침내 좀비 떼가 서로를 마구 짓밟고 뒤엉킨 상태로 이 층까지 밀고 올라왔다.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기관총 하나둘로는 몇 초 버티지도 못하고 집어삼켜질 것 같았다. 지금의 우리에게 그만한 화력이 없기도 하고.
“바람처럼 등장해서 바람처럼 사라지는 남자, 나 이승권의 사생팬을 자처하는 놈들이라면 죽을 각오로 따라와 보도록!”
그리고 이어지는 각개 빤쓰런. 전문 용어로 역돌격.
기름과 신나, 각종 인화 물질 첨가제 범벅이 된 지하층 한복판에 불붙인 지포 라이터를 내던지고 미친 듯이 도망쳤다.
좀비들이 달려드는 속도보다 화염이 덩치를 키우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먼저 도망친 내 등 뒤에서 후끈한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로 부족하다는 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나 이승권이 알고 있었다.
놈들의 신체 베이스가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고는 하나, 결정적으로 우리와 차이점이 있다면 놈들은 공포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제 몸이 실시간으로 바싹 웰던으로 익어 가든, 살점이 녹아내리든 그건 중요치 않았다. 뇌까지 녹아내려서 신체 활동이 완전히 정지되지 않고서야 놈들이 멈추는 일은 결코 없었다.
화르르르르르르륵!
무엇보다 ATX에 배치한 화염 방사기로 초고열 화염 세례를 퍼부었던 것보다 화력이 부족한 것도 한몫했다.
놈들의 뼈와 살이 녹아내리며 몸이 뻣뻣하게 굳어 가다 이윽고 문드러질지언정, 저 죽음의 군대는 반드시 포착한 인간의 생살을 씹어 먹고야 말겠다는 미친 일념 하나로 거리를 좁혀 왔다.
뭐, 좀비든 사람이든 꿈 정도는 꿀 수 있는 법이지. 안 그런가?
“지금입니다!”
내가 계단 위로 도망쳐 올라오기가 무섭게 김진경 경장이 신호를 보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팀원들이 여기저기서 긁어 온 의자나 테이블 따위를 넓은 계단 아래로 마구 내던졌다.
카페테라스에 방치되어 있던 목재 계단부터, 넓은 대합실에 뒤집어져 있던 커다란 철제 의자,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한 테이블 따위가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기어 올라오는 좀비들의 앞길을 철저하게 가로막았다.
우리가 집어던진 가구들의 무게도 무게지만, 의자나 테이블 다리가 서로 퍼즐처럼 엉켜 버리면 아무리 힘을 줘도 쉽게 뚫리지 않는다. 즉 모래 포대 못지않은 천연 바리케이드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 목재 가구는 불이 붙는다. 화력이 부족하면 땔감을 더 넣으면 된다는 옛 선조들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쉴 새 없이 장작을 밀어 넣었다.
“지금 화났쥬? 개킹받쥬? 근데 아무것도 못 하쥬? 죽이고 싶쥬? 어차피 내가 있는 곳까지 못 올라오쥬? 응, 못 죽이쥬? 어? 또 빡치쥬?”
내가 현란한 허리 놀림과 함께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며 조롱을 퍼붓자 주변인들의 시선이 싸늘하게 식어 들어갔지만, 아무렴 어떤가. 역사는 원래 승자가 쓰는 법이고, 티배깅은 이긴 놈이 하는 거다.
“캬아아아아아아!”
그때, 저 아래에서 갑자기 시체의 불꽃을 헤치며 걸어 나온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일반적인 좀비와는 크기부터 달랐다.
깜짝 놀란 팀원들이 무심코 뒷걸음질 칠 만큼, 인간을 압도하는 무형의 기운을 가진 놈이었다.
나도 계단을 기어올라 오려다 결국 불타 죽은 놈들을 놀리다 말고, 저 곰처럼 거대한 좀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놈은 자신의 몸에 붙은 불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오히려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좀비들을 거대한 주먹과 발로 마구 치워 내며 길을 개척하고 있었다.
몸에 붙은 불길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놈이 거대한 몸체에 두르고 있는 것은 평범한(?) 좀비의 피부가 아니라 뭔가 거무죽죽한 느낌의 살가죽 갑옷이었다.
살가죽 갑옷이라는 표현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는데, 정말로 놈이 전신에 두른 것은 갑옷 그 자체였다. 거무죽죽한 살가죽은 불이 붙은 상태로 검게 그슬리기만 할 뿐, 녹아내리지는 않았으니까.
인간으로 치면 거대한 전신 방호복을 껴입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게 다 네가 좀비들을 놀려서 그런 것 아니냐는 팀원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나는 소총을 꺼내 들어 얼마 남지 않은 탄환을 모조리 퍼부었다.
타타타타타타! 타타타타!
“그으으으으……!”
워낙 거구라서 총탄이 제대로 박힐까 의문이긴 했지만, 그래도 급소로 추정되는 머리나 목덜미를 정확히 쏴 갈겼음에도 놈은 잠시 비틀거리며 움직임이 멎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곧 충격에서 빠져나온 놈이 머리를 휙휙 털더니, 다시 앞길을 막고 있는 장애물을 불도저처럼 치워 내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을 포함해서 남아 있는 좀비 무리가 지상으로 올라오게 될 터.
솔직히 이런 충격적인 광경을 마주한 뒤라 자신이 없다.
‘내가 질 자신이 없다!’
이것만으로 사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미안하오, 할멈!
결국 불세출의 천재 이승권 감독도 마지막까지 아껴 두었다고 알려진 히든카드 SMAW(Shoulder-launched Multipurpose Assault Weapon)가 내 인벤토리에서 뽑혀 나왔다.
크고 우람한 열 압력탄두가 장착된 미사일 발사기는 순간적으로 주변인들을 경악에 찬 표정으로 만들 만큼 위용이 남달랐다.
팀원들이 모두 폭발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앞다투어 후퇴한 순간, 내 검지손가락은 이미 SMAW의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과 저 거대 좀비가 본 광경은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 죠르노 죠승권에게는 꿈이 있다.”
부산역을 먹고 개꿀을 빨겠다는 꿈이!
꽈아아아아아아앙!
열 압력탄두가 좁아터진 실내에서 정확히 ‘로 랜드고릴라티라노사우르스아무튼큰건다때려박은 좀비’의 발치에서 폭발했다.
일순간 강렬한 섬광과 화염 기둥, 열 압력이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나, 너, 우리를 덮쳐 위 아더 월드를 기록했다.
로켓을 발사하자마자 재빨리 회피 자세를 취하긴 했지만, 인간의 몸이 순간적으로 발산된 열에너지보다 빠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내 몸은 크게 밀려 나갔다.
하필 맞은편의 돌기둥과 진한 딥 키스를 한 나는 아득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 ‘거점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라는 시스템 문구를 간신히 읽을 수 있었다.
보고 계십니까, 마더, 파더. 당신들의 자랑스러운 아들 이승권이…… [부산역]의 왕이 됐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