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102)화 (103/227)

102화 투쟁기 (2)

“부산 쪽에서 기차가 움직이는 걸 봤다고? 확실해?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화, 확실합니다!”

김학렬 소장이 큰 소리로 되묻자 지레 겁먹은 병사가 경례 자세 그대로 얼어붙으며 대답했다.

혹시 병사가 헛것이라도 본 게 아닌가 싶어 당시 현장에서 먼저 보고를 받았다던 당직 사관까지 호출해 보니, 정말로 기차가 선로를 따라 느릿느릿 움직이며 부산역 방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고 한다.

양산에서 강줄기를 따라 내려온 기차가 이윽고 도심 속, 부산역 방면으로 모습을 감췄다는 소식에 부대가 잠시 떠들썩해졌지만, 김학렬 소장은 보고를 받고도 영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현장에서 고생하고 있는 자네들을 딱히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지금 여기서 부산 꼬라지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말대로, 부산은 지금 서울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제2의 불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타 지역에 비해 군대가 매우 발 빠르게 대응했음에도 불구하고 좀비들의 진격을 막지 못했으며, 한술 더 떠서 민간인들이 피난을 가기도 전에 도시 전체가 감염에 집어삼켜졌다.

군인과 경찰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피난민 수가 극도로 적었을 지경이니, 김해 공항과 고작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저 도시에는 못해도 백만 단위의 좀비들이 우글댄다고 봐야 했다.

만약 제때 교각을 파괴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좀비가 밀고 들어왔을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애당초 지금 이런 상황에서 누가 기차 같은 걸 움직일 수 있단 말이야!”

좀비들에게 집어삼켜진 도시가 한둘이 아니요, 도시마다 있는 역이 멀쩡할 거라는 보장도 없다.

하물며 모든 인프라가 끊긴 지금, 대체 누가 기차 같은 걸 움직일 수 있겠는가. 기차는커녕 차량이나 굴러가면 다행인 시대가 돼 버렸다. 당장 자신들조차 기름이 부족해서 차량을 못 굴리고 있는 마당이었으니 말 다 했다.

“하지만 목격한 병사가 한둘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인간을 포착해야만 큰 움직임을 보이는 그 좀…… 괴물들이 기차를 따라 움직였다는 게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흐음…….”

부관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산 사람을 발견하면 미친 듯이 달려드는 습성이 있었고, 주위에 산 사람이 없을 때는 느릿느릿 주변을 배회하거나 휴면 상태에 빠져든다고 들었다.

특이하게도 김해 시내에선 그보다 더 적극적인 놈들이 물자 수색 팀을 사사건건 방해한다고 듣긴 했지만, 적어도 부산에 있는 놈들은 다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좋아, 그게 사실이라고 치자고. 그럼 자네들이 보기에 그 기차는 어떤 목적을 품고서 부산역 방면으로 향했을 것 같은가? 저 괴물들이 득시글거리는 지옥으로 말이야.”

“아무래도 부산은 그…… 워낙 빨리 망해 버리지 않았습니까? 워낙 급작스럽게 발발한 재난 사태 때문에 민간인 대다수가 미처 피난 갈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 말인즉슨…….”

“그 말인즉슨?”

“다른 지역은 이미 도시 방어를 위해 군부대와 주민들이 똘똘 뭉쳤을 것이고, 또 다수의 피난민까지 합류하면서 남겨진 물자가 거의 없겠습니다만, 생존자가 존재하지 않는 부산에는 상당수의 물자가 대부분 그냥 방치되어 있을 겁니다.”

물자.

김해에서도 찾기 힘들다는 그 물자가 부산에는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을 거라는 말에 김학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그 괴물들은 산 사람의 피륙을 탐했지 영화관의 팝콘이나 마트의 시식 코너 군만두를 탐하지는 않았으니까.

물론 유통 기한이 길지 않은 신선 식품들은 대부분 썩어 문드러졌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물자는 많이 있다.

의외로 유통 기한이 짧아서 재난 대비 물자로는 부적합하다던 라면조차 유통 기한이 6개월은 된다.

통조림, 식수, 곡식, 술. 당장 유통 기한이 최소 반년 이상 가는 것들만 골라도 그 정도다.

주인 없이 대부분 그냥 방치되어 있을 그 귀중한 물자들이 목적이라면 이 판국에 기차까지 동원한 것도 이해가 된다. 굶어 죽느니 차라리 위험을 감수하고 물자라도 챙겨 보자는 심산이었겠지.

“그리고 부산에는 대량의 군수물자가 보관된 군사 시설이 있습니다. 군대가 워낙 빨리 밀린 탓에 치장 물자 대부분을 그대로 남겨 두고 후퇴했는지라…….”

‘이런 빌어먹을!”

콰앙!

김학렬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치자 병사부터 부사관, 장교까지 죄다 움찔했다.

“대체 정신머리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왜 그걸 지금까지 말 안 하고 있었어?!”

“사, 사태가 워낙 급박하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현재 우리 군의 전력만으로는 부산에 재진입하여 물자와 안전지대를 확보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사료되어…….”

“지금은 전시야! 군대에서 그딴 변명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나!!”

김학렬이 버럭 호통 치며 어렵사리 말을 꺼낸 한 장교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튼튼한 군홧발에 걷어차인 정강이에 벼락같은 통증이 뇌를 고통스럽게 했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표정 관리를 하며 버텼다.

지금 여기서 고통 섞인 신음을 흘리며 바닥을 뒹구르기라도 했다간 안 그래도 예민해진 상관의 히스테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으며, 또한 날을 세운 고슴도치처럼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야 몇 날 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쉬지도 못했으니 사소한 일에도 화가 치솟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인간은 호르몬 불균형이 오면 그 호르몬 때문에 정신 상태가 휙휙 바뀌는 동물이었으니까.

“장교라는 새끼가! 그 모양이니까! 아랫것들도! 이 모양인 거 아냐!”

퍽! 퍽! 퍽!

몇 번이고 부조리한 구타를 행한 후에야 김학렬은 씩씩대며 고개를 돌렸다.

“보고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 괴물 놈들이 기차를 따라 도심 안쪽으로 들어갔다지? 그럼 당장 물자 수색 팀을 보트 태워서 강 건너로 보내. 최근 김해 시내가 위험하다 뭐다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그놈들을 부산으로 보내란 말이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느냐니, 그건 좀 힘들겠다느니, 너무 위험하다느니 같은 말은 누구도 꺼내지 않았다.

원래 군대란 상급자가 까라면 까는 곳이고, 분위기가 험악해진 상황에선 특히나 더 열정적으로 까야 했다.

부조리하다, 불합리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나와도 결코 입 밖으로 내뱉어선 안 된다. 막말로 정부도, 군 인권 센터도 사라진 지금 이 상황에서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간 즉결 처분을 당해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

설령 진짜 전시 상황이라고 해도 즉결 처분은 엄연히 헌법으로 규정된 불법 행위라지만, 이젠 헌법조차 없는 마당에 누가 그딴 걸 신경 쓰겠는가?

그나마 군대라는 조직이 아직 존재하고 있는 이상, 모두가 각자의 생존을 위해 부조리를 감내하고 불합리함에 맞서지 않는 것이 제일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광경이지만, 문명인들 사이에서 ‘힘의 논리’란 대개 권력자들에게만 통용되는 말이었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아랫것들을 희생시키는 건 군인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었기에, 누구의 제지도 없이 일사천리로 계획이 진행되었다.

* * *

“나도 예전에는 한 사람의 문화인으로서 우아하게 라지 사이즈 팝콘과 콜라를 품에 안아 들고 영화관을 갔었는데.”

2020년대에 새로 개장된 것으로 보이는 부산역 내 영화관에서 숨어 있던 좀비 떼를 처리한 나는 총구가 뜨겁게 달아오른 소총의 열기를 잠시 식혔다.

영화관은 안정적인 영화 관람을 위해 외부의 소음이나 빛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덕분에 출입구가 매우 적고 좁아서 잘 숨어 있기만 하면 충분히 농성할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대학 조별 과제가 성공하는 것은 이 우주에서 절대로 일어날 수 없었기에, 당연히 생판 모르는 타인과 함께 영화관에서 숨어 지내는 계획도 성공할 수 없었다.

영화관에 숨어 있던 생존자들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는지, 내부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안 그래도 폐쇄적인 공간에서 좀비들에게 발각된 그들은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까? 막다른 길이나 벽 한쪽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핏빛 손자국이 그들의 최후를 대신 설명해 주었다.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좀비들에게 얌전히 뜯어먹혀야 했던 그들은, 이제 영화관을 방문한 다음 손님들에게 머리통이 박살 나는 것으로 완벽한 최후를 맞이했다.

나는 기계 안에서 말라비틀어진 나쵸 칩에서 고개를 돌렸다.

매장 창고 안쪽에서 찾아낸 미지근한 미개봉 콜라로 다 함께 당분 보충을 한 뒤, 마지막 구역을 향해 움직였다.

“부산역에 사람이 많이 몰리긴 했던 모양입니다. 어딜 가도 좀비들뿐이니…….”

“재난 사태가 벌어지면 사람은 보통 멀리 도망치는 것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안전한’ 피난처에 몸을 숨기고 싶어 하니까요. 실제로 그렇게 교육을 받기도 했고.”

재난 사태가 발생하면 즉시 가까운 지하철이나 방공호로 피신하세요, 같은 말은 다들 한 번씩 들어 봤을 것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군대나 경찰, 소방관이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믿기 때문에 잠시 불편해지더라도 피난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택한다.

물론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일찌감치 필요한 것들만 챙겨 그 지역을 벗어나려 하지만, 힘든 피난보단 편한 피신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부산역에서 우리와 거점 전쟁을 하는 좀비들은 대략 1만 마리 정도지만, 실제로 부산역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그중 상당수가 좀비들의 뱃속으로 사라지거나, 역으로 좀비화되어서 문제지.

아예 외부에서 적들이 침입할 수 없는 군사용 벙커에 숨어야 했는데, 두 번째 남북 전쟁을 겪은 후에도 이 나라 국민들은 대부분 벙커의 위치조차 모르는 게 현실이었다.

그때그때 상황만 면피하면 된다는 정부도, 군대도, 국민도, 모두 크고 작은 문제를 품고 있었다.

부산역에서 마지막으로 처리해야 할 구역은 바로 지하철 플랫폼이었다. 지상층을 비롯해서 지상 열차가 다니는 플랫폼 주변은 모두 정리했지만, 지하철 구역만큼은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우리는 방화 셔터가 반쯤 내려오다 말고 박살 난 지하철 플랫폼 입구를 바라보았다.

무언가에 의해 박살 난 방화 셔터는 핏자국이 선명하게 묻어 있었으며, 그 주변은 계단의 타일이 죄다 깨지고 에스컬레이터는 완전히 무너져 내려 있었다. 엘리베이터?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가 온갖 수단을 총동원해서 학살하다시피 처리한 좀비가 수천 마리가 넘는다. 진행도로 따지면 얼추 8~90%는 넘긴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천 마리 단위의 좀비들이 저 아래,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긴 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영화관에 숨어 있던 놈들이야 소음을 듣지 못했다고 쳐도, 저 아래에 있는 놈들은 소음을 들었을 법도 한데 올라오지 않았다는 건……

‘우릴 상대로 존버 메타를 하겠다는 건가?’

가소롭군.

마치 벙커 안에서 ‘니가 와’를 시전하던 북한군을 보는 듯하다.

놈들은 그래도 각종 함정이나 거치형 기관총을 준비해서 벙커에 진입하려는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라도 했지, 좀비 놈들이 건방지게 인간을 상대로 존버 메타를 한다?

‘좀비 새끼들 꿀밤 마렵네.’

나는 무전기로 채성아와 김진경 경장을 호출했다.

“기름통이랑 화염병 남은 거 싹 다 가져오세요.”

그렇게 나오기 싫어? 그럼 제 발로 기어 나오게 해 주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