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101)화 (102/227)

101화 투쟁기 (1)

누구도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것도 아니고, 색안경을 낀 차별주의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그런 환경들이 사람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건 아니라지만, 수박밭에 홀로 자라난 호박의 심정을 이해해 본 적 있는가? 그런 호박들은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환경에 순응하는 법을 배운다.

자신이 호박이라고 굳게 믿으면서도 수박 행세를 할 수밖에 없는 참담함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만큼 좆같다.

무심하게 방아쇠를 당기는 내가 괴물인지, 아니면 총구 너머에서 이를 바득바득 갈며 내게 달려드는 적군이 괴물인지 구분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때 그곳에선 모두가 호박이면서 수박이었고, 인간이면서 괴물이었다.

“화망 제대로 형성해!”

드다다다다다다!

달그락달그락!

빗발치는 총탄 세례를 뚫기 위해 아득바득 달려드는 좀비 떼의 광기는 생존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비등비등했다.

매캐한 총연이 피어오르고, 뜨거운 열기가 우리의 피부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주변에 아무렇게나 떨어지는 무수한 탄피는 천천히 식어 가면서 쓸모없는 쇳조각으로 전락한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많은 좀비들을 죽였을까?

세 자릿수는 가볍게 넘었을 것이고, 네 자릿수에 진입한 지도 꽤 됐을 거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밀려드는 좀비들의 수는 좀처럼 줄어들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산처럼 쌓인 좀비 시체가 회색빛으로 변해 천천히 사라지고 나면, 다시 그 자리를 또 다른 좀비가 채우는 실정이었다.

이게 부산역 초입의 저항이라고 하면 믿기는가? 거점 전쟁이 시작된 지는 아직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살아 움직이는 고깃덩어리가 아무것도 아닌 고깃덩어리로 전락하기까지 길어 봤자 수초라는 얘기다. 생명의 덧없음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현장 실습형 교과서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나는 좀비 떼의 진군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팀원들의 표정이 점점 악에 받치기 시작한 것을 포착했다. 좋은 얼굴이다. 저런 얼굴이 되지 않으면 싸울 자격도 없지.

인간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다 보면 어느 순간 이성을 잃고, 눈앞의 모든 것을 쳐 죽여 버리기까지 멈추지 않는 폭주 기관차가 된다.

높으신 분들은 젊은 군인들을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이 전장에서 받는 압도적인 스트레스와 분노를 모조리 적들에게 퍼붓도록 유도했다.

바로 지금처럼.

-내가 왜 여기 있지?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지?

-왜 저놈들은 순순히 항복하지 않는 거지?

-대체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지?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이건 다 저놈들 때문이다.’라는 터무니없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상대에게 어떤 대의명분이 있든, 상대가 우리와 같은 사정이든 그건 중요치 않다. 순순히 항복하지 않는 놈들, 아득바득 싸우려 드는 놈들, 테러하는 놈들이 무조건 나쁜 거라고 이미 자기 암시가 걸려 버렸으니까.

“1번 기관총 탄약 오링!”

“볼트 꺼내! 저 새끼들 단 한 마리도 접근하게 두지 마!”

“이 씨발 역겨운 좀비 새끼들! 이거나 처먹어라!!”

기관총의 탄약이 하나둘씩 떨어지고, 기관총의 화망이 약해지는 순간까지 대기하고 있던 팀원들이 화염병과 볼트를 꺼내 들었다.

개조한 새총으로 날카로운 볼트를 쏴서 머리통에 박아 버리고, 좀비들의 진입로에 화염병을 던져서 제 놈들끼리 허우적대다 불을 옮겨붙게 만들었다.

이미 진득한 죽음의 악취를 맡은 팀원들에게 망설임이나 두려움 같은 건 없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상황이 다 저놈들 때문이라는 결론을 성공적으로 도출해 냈으니까.

김진경 경장이 자신의 권총을 빠르게 뽑아서 숙련된 카우보이처럼 빵빵 쏴 대고, 채성아는 능숙하게 컴파운드 보우의 시위를 당겨서 화살을 퍼부었다.

기관총의 시끄러운 총성은 잦아들었지만 우리의 기세는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한 표정으로 화염 방사기나 기관총을 잡고 있을 때보다 더 독한 마음을 품고, 각오를 다진 상태였다.

시스템에 의해 좀비의 시체가 사라지고, 다시 그 자리를 새로운 좀비가 채우고, 또 사라지고, 채우기를 반복한다.

손가락에서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볼트와 화살을 쏴 대던 팀원들의 이마에선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한겨울의 맹추위도 강력한 생존 본능을 불사르는 인간의 열기에 밀린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않지만, 이들이 가슴속에 품은 생존 본능(욕구)은 믿는다.

그것은 가장 순수하면서도 원초적인 감정이니까.

생명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하는 단 하나의 길이니까.

“허억…… 허억!”

“이제 됐어요.”

“승권 씨……?”

“여기서부턴 제가 할게요.”

각성했다고는 하나, 이 강렬한 전투는 채성아의 체력을 크게 깎아 먹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아 누르며 앞으로 나섰다.

그녀뿐만 아니라 각성하지 못한 일반 팀원들도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단내 섞인 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그나마 버티고 서 있는 것은 김진경 경장뿐. 수천 마리의 좀비 떼와 불과 몇 m 거리를 두고 사투를 벌인 것치곤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애초에 우린 목숨 건 사투나 전쟁과는 거리가 먼 문명인이자 현대인이다. 이 혹독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짧은 기간 동안 노력했다고 한들, 한계는 명확했다.

ATX 지붕에서 뛰어내린 나는 소총을 꺼내 들고 앞장섰다. 원거리 공격조가 진땀 뺐으니 이제 힘깨나 쓰는 호위조가 나설 차례다.

ATX의 객실 문이 치이이익, 소리와 함께 개방되자마자 안쪽에서 오함마, 소방 도끼 등으로 무장한 호위조 팀원들이 걸어 나왔다.

당초 계획은 원거리 공격조가 생각보다 좀비들을 잘 막아 내지 못하면 ATX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튀어나와서 나와 함께 방어선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을 잘해 준 덕분에 방어를 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역공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그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제대로 싸우지 않았던 건 이것을 위함이었다.

“원거리 공격조는 사주경계 하면서 휴식을 취한 후에 따로 합류하세요. 우리는 먼저 역 내부에 진입해서 본진을 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원거리 원호는 제가 할 수 있습니다.”

내가 K-2C 소총을 들어 보이자 김진경 경장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기관총은 따로 없었지만 유사 기관총 사수 역할을 할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M16 소총과 K-2C 소총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람보처럼 쏴 갈기는 방법이었다.

재장전이 너무 빡세지는 않겠냐고? 안 그래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저런 실험을 해 봤다. 그리고 놀랍게도 인벤토리에 재빨리 무기를 수납한 다음 인벤토리 내부에서 탄창을 재장전하면 손으로 직접 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붕붕, 후웅!

남들이 싸우는 동안 연료가 다 떨어진 화염 방사기 앞에서 잔뜩 긴장한 채 대기하고 있던 호위조가 무기를 붕붕 휘둘러 댔다.

굳은 근육을 풀기 위해, 또 긴장감을 덜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걷는 그들도 이미 충분히 분노에 잠식되어 있었다.

바로 코앞에서 좀비 떼가 ATX로 달려드는 꼴을 지켜봐야 했으니 손이 근질근질하겠지.

“전방에 좀비 무리 확인.”

수제 발리스틱 마스크를 착용한 팀원이 오함마를 들고 있는 팔 근육을 팽팽하게 조였다.

원거리 공격조와 달리 호위조는 철저하게 근거리에서 좀비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선발 기준이 꽤 까다로웠다.

힘이 좋고, 겁이 없어야 하며, 무기로 인간 형태를 한 무언가를 다짐육으로 만드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야 했다.

김진경 경장이 심사숙고해서 뽑은 사람들답게 그 부분에서 딱히 걱정은 없었다. 실전 경험이 살짝 부족해서 그렇지.

‘여기서 실전 경험이 부족한 건 누구나 똑같다. 결국 목숨 걸고 치고받으면서 경험을 쌓을 수밖에 없어.’

이 세상에 좀비를 때려잡는 게 익숙한 경력직 좀비 헌터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도, 너도, 우리 모두 공평하게 0에서부터 시작했다.

“포지션 잡으시고, 처음 충돌할 때는 타격이 아니라 ‘일단 막은 다음 밀어내기’인 거 알죠?”

“기억하고 있습니다.”

“좋아요.”

일렬로 나란히 선 팀원들이 통로 하나를 막아서자 좀비 무리가 잘 걸렸다 하고 곧장 달려왔다.

부산역 내부에 자리 잡고 있던 놈들은 바깥에서 인간을 사냥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일까, 대부분 단순무식한 돌격 패턴만을 보여 주었다. 놈들에겐 불행이지만 우리에겐 잘된 일이다.

저렇게 달려드는 놈들을 무턱대고 타격하려고 하면 안 된다. 체중을 싣고 미친 듯이 달려들기 때문에 설령 머리통을 내려친다고 해도 돌진하는 힘이 줄어들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첫 충돌이 일어날 때는 항상 맞받아치는 게 아니라, 일단 힘으로 버티듯이 받아 낸 다음 밀어내는 게 정석이다.

경찰이 폭력도 불사하는 강성 시위대를 제압할 때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들도 무턱대고 시위대를 향해 폭력을 써서 무력화하기보단, 일단 진압 방패로 공격을 받아 낸 다음 그대로 밀쳐서 힘을 빼는 전술을 구사하니까.

물론 나는 좀비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정정당당한’ 힘 싸움 같은 걸 해 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팀원들에게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다.

개떼처럼 달려오던 좀비들의 숫자가 확 줄어들자 팀원들은 소수였음에도 충분히 전방에 서서 놈들의 가열찬 돌진을 받아 낼 수 있었다.

“저리 꺼져!”

“어딜 더럽게 침이나 질질 흘려! 이 새끼가!”

“뚝배기! 뚝배기! 쌀국수 뚝배기!!”

밀어내고, 내려치고, 다시 밀어내고, 후려치고.

좀비들의 자랑이자 특기인 돌진을 막아 내고 한 놈씩 차례대로 머리통을 깨부수는 각개격파 작업은 순조로웠다.

나는 팀원들이 받아 낼 수 없을 만큼 좀비 떼의 숫자가 늘어나면 다시 총을 쏴서 부담을 덜어 주고, 동시에 그들에게 신호를 주면서 조금씩 앞으로 전진시켰다.

시체를 발로 짓밟으며 피로 얼룩진 국경선을 넘어서고, 제 영역을 지키기 위해 몰려드는 놈들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다.

팀원들은 묵묵히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했다.

“쯧! 여기 도끼날이 손상되었습니다!”

“잠시 뒤로 빠지고 장비 교체하세요.”

팀원 한 명이 장비 교체를 위해 뒤로 빠지고, 내가 빠르게 빈자리를 메웠다.

부산역에 자리 잡은 좀비는 무려 1만 마리 이상. 좀비 썩은 내로 코가 마비될 만큼 놈들을 때려잡았음에도 여전히 역 곳곳에서 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ATX를 이용해서 미리 수를 엄청나게 줄여 놨기에 망정이지, 고작 수십 명으로 이곳을 공략하려 했다면 택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게 이번 거점 전쟁의 난이도를 잘 알려 주고 있었다.

호위조 팀원들은 좀비에게 물리거나 할퀴어지지 않도록 두꺼운 장비를 걸치고 있는지라 움직임이 상당히 제한적이었는데, 때문에 나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언제 어디서 좀비들이 불시에 튀어나올지 경계하느라 정신없었다.

좀비는 인간을 공격하기 위해서라면 제 몸도 아끼지 않기 때문에 갑자기 머리 위에서 자유 낙하할 수도 있다. 아파트 근처를 지나가다가 좀비들이 우박처럼 퍽퍽 떨어져 내렸던 그 광경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저기 2층 카페테리아!”

한 팀원의 경고를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총구를 돌렸다.

와장창!

카페테리아의 거대한 유리창을 깨부수고 좀비 몇 마리가 바닥으로 철퍽철퍽 떨어졌다. 그놈들은 대부분 팔다리가 부러져서 꿈틀댈 뿐이었지만, 진짜는 그 뒤를 따라 나오는 놈들이었다.

닭장 문이 열린 걸 눈치채자마자 우르르 뛰쳐나오는 닭 떼인 양, 좀비들도 허공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대체 저 많은 놈들이 어떻게 저기에 다 처박혀 있었는지, 진흙으로 꽉 막혀 있던 배수관이 쿠르르르르 하는 굉음과 함께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포지션 다시 잡아요!”

팀원들이 제 위치를 찾아가는 사이, 나는 양손에 든 소총을 동시에 갈겼다.

총을 하나만 쓰는 남자는 그냥 그렇지만, 총을 두 개나 쓰는 이승권은 최고로 섹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난 섹시해.’

대한민국 일등신랑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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