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정착기 (48)
일반인들은 폭탄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모른다.
기껏해야 뻥! 하고 크게 터지면서 주변에 파편과 흙먼지를 좀 흩뿌린다고 생각하겠지. 애초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영상 매체(주로 영화)에서 대부분 그렇게 표현하니까 아주 이상한 건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폭탄이 터지는 광경을 목격했다면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군인으로 입대해서 가장 처음 하게 되는 사격 훈련에서 대다수의 군인들이 깜짝 놀라게 되는데, 그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총성이 엄청나게 크고 총의 반동도 꽤 세기 때문이다.
폭탄도 마찬가지다. 고작 시끄러운 폭죽이 터지는 것 정도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생애 처음 듣는 폭발음은 귀가 먹먹하게 만들고 갓 태어난 아기사슴처럼 다리를 떨게 하는 재주가 있다.
기껏해야 훈련용 수류탄이나 몇 번 던져 보고 병과에 따라 60mm 박격포나 몇 번 쏴 봤을 알보병들이 처음 접한 진짜 폭발은 그랬다.
조금 전까지 멀쩡했던 지형을 파괴하고, 사람을 육편으로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주변의 모든 인간들의 멘탈을 깎아 먹는 데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폭탄 하나면 충분했던 것이다.
심지어 폭탄은 종류도 다양하다. 그말인즉슨 우리의 멘탈도 참 다양한 방식으로 깎여 나갔다는 뜻이다.
밟았다 발을 떼면 터지는 지뢰, 손으로 직접 던지는 수류탄, 시체의 품속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부비 트랩, 방호 처리도 제대로 안 된 차량을 밑에서부터 박살 내는 IED(급조 폭발물), 기습적으로 날아드는 RPG, 건물이나 벙커 안쪽에 숨겨져 있는 구식 견인포 등등…….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냐면,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빈집을 노리는 금수 새끼들에게 날려 줄 105mm 포탄이 준비되었다는 거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노골적인 연기였는데, 오히려 우리가 진짜 멍청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군.”
일부러 이만철 세력을 먼저 밀양에서 내보낸 이유는 놈들의 감시망을 그쪽에 집중시키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전투력 대부분은 이만철 세력이 책임지고 있었고, 규모도 어마어마했던 만큼 감시망이 그쪽에 붙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만철 세력이 밀양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뉴 밀양역을 노려 봄 직하다고 판단했을 터. 당연하게도 우리는 감시망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ATX를 도심 외부로 빼냈다.
열차를 보호하기 위해 도시 외곽 선로까지 콘크리트 터널이 이어져 있었는지라 열차가 빠져나가는 모습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밀양에서 충분히 멀어졌다고 판단한 나는 뉴 밀양역 곳곳에 설치해 둔 CCTV로 상황을 살폈다.
중장비와 백명 단위의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이만철 세력이 빠지고, 역 안으로 들어간 우리마저 잠잠하니, 곧 그 틈을 노리고 접근하는 무리가 있었다.
“저들이 승권 씨가 경계했던 밀양의 생존자들인가요?”
“정확히는 다른 인간들을 미끼 삼아서 목숨을 연명한 쓰레기들이죠.”
“저런 놈들이 군인이라니…… 쯧.”
나와 함께 CCTV 화면을 보고 있던 채성아와 김진경 경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파괴된 도시의 잔해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군인 무리는 대략 2개 소대 정도로 추정되었는데, 모두 중무장을 한 상태였다.
최전방에서도 물량이 부족해서 특수 부대가 아니면 제대로 쓰지도 못했던 군용 야간 투시경이나 신형 헬멧과 방탄복, 그리고 조준경이 부착된 K-2C 소총까지.
아마 후방의 군수업체에서 생산된 신형 군수 물자가 1년 전에 종전 선언이 되면서 잠시 이 지역에 묶여 있었던 것 같은데, 놈들은 드론을 운용하는 부대답게 신형 장비를 먼저 쓸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원래 저런 물자는 생산되는 족족 전방으로 올라가서 이런 후방에는 줘도 안 쓰는 구형밖에 없을 텐데, 저놈들에겐 여러모로 타이밍과 여건이 좋았던 것이리라.
뭐, 그것도 이제 와선 별 의미 없겠지만.
“뉴 밀양역 현관을 그냥 열어 두고 온 이유가 혹시……?”
“예, 방범 셔터도 안 내렸죠. 그래야 저들이 대놓고 넓은 출입로를 이용할 테니까요.”
전술 전략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병력을 분산해서 뒷문이나 열려 있는 창문, 혹은 옥상의 출입구를 통해 다양한 경로로 침투했을 거다.
그러나 저들의 움직임은 최전방에서 실전을 거친 부대가 아니었다. 겉보기엔 나름 훈련을 받은 티가 났지만 특유의 당당함과 자신감이 엿보였다.
실전을 거친 인간은 제 발로 사지에 걸어 들어갈 때 절대로 자신감을 가지지 않는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장소에서 자신감을 가져 봐야 뭘 한단 말인가. 편집증 환자처럼 의심하고 경계해도 모자랄 판에.
저들은 비싼 드론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될 때까지 후방에서 훈련한 다음 최전방의 국경 지대로 보내질 예정이었을 테니, 이 지역에 자리 잡은 지는 대략 몇 개월, 길어도 반년을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너희들에게 내가 진짜 폭탄이 터지고 갑자기 사람이 죽어 나가는 전장을 조금 알려 주고자 한다.
UCAV처럼 패드형 컨트롤러로 좌표를 입력하자 원격 제어가 가능한 105mm 곡사포가 우웅 하고 자동적으로 포구를 움직였다.
현재 우리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한 터널을 통과해, 야트막한 산 하나를 넘어서 도착한 평원 한복판에서 잠시 정차한 상태였다.
정차한 ATX에서 발포하는 곡사포란…… 로망 그 자체 아닌가? 아마 한국과 북한의 철로가 완벽하게 이어져 있었다면 진짜 국산 무장 열차 한 대쯤은 등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컨트롤러를 만지작거릴 때마다 알아서 움직이는 곡사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김진경 경장이 한마디 툭 내뱉었다.
“보통 이런 곡사포는 좌표를 넘겨받고 포병들이 직접 부앙각과 포구 방향까지 조절해야 하는데, 시스템은 굉장히 편리하군요. 전문가의 도움 없이 이런 열차와 곡사포까지 운용할 수 있다니…….”
“숙련 포인트를 죄다 스킬에만 투자한 덕을 좀 봤죠. 그보다 슬슬 쏠 건데, 발포음이 꽤 커서 귀가 아플 수도 있어요. 아니면 열차 안으로 잠시 들어가 있어도 돼요.”
“대한민국의 경찰로서 법적 처벌이 불가능한 쓰레기들이 벌 받는 모습은 꼭 봐야겠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절대로 이런 말을 하지 않았겠지만, 시대가 변했어요. 이제는 살려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간호사인 채성아도 얼굴도 굳히며 나와 함께 뉴 밀양역을 상황을 계속 살피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 세상은 더 이상 우리에게 상냥하지 않다. 최소한의 법과 질서조차 무너져 버린 마당에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찾기 힘들고, 자기 목숨은 자기가 직접 챙겨야 하는 냉혹한 시대가 도래했다.
과거에는 인권이라는 같잖은 사회적 합의로 보호받고 있던 인간쓰레기 범죄자들도 이제는 눈치를 봐야 한다.
그들을 위해 인권을 부르짖는 인권 변호사나 인권 단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초범이다,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같은 사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 주는 판사도 없다.
이제는 철저하게 이해관계로만 돌아가는 새로운 사회 질서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기껏 구해 줬더니 내 목에 칼을 들이밀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나 말고도 숱한 피해자를 만든 범죄자라면 차라리 내가 당하기 전에 먼저 처리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새로운 질서를 만든 건 다름 아닌 인간쓰레기 범죄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럼 이제 쏠 건데, 귀 막고 계세요. 105mm 라서 155mm처럼 무지막지한 건 아닌데 곡사포 포격음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다들 깜짝 놀라거든요.”
나중에 두 사람에게도 본격적인 개인 화기인 소총이나 경기관총을 지급할 일이 생길 텐데, 그때에 대비해서 귀 보호용 헤드셋이라도 구해 놔야겠다.
시스템이 자동으로 계산해서 도출해 낸 좌푯값을 컨트롤러에 입력하자 105mm HE(고폭탄)가 장전된 곡사포가 묵직한 포격음과 함께 불을 뿜었다.
ATX에 탑재된 105mm 곡사포의 최대 사정거리는 15km. 이것도 숙련 포인트를 투자해서 업그레이드하면 사거리와 위력, 장전 속도, 내구도가 더 증가하는 특징이 있었다.
꽈앙 하는 포격음과 함께 짙은 어둠이 내리깔린 밤하늘을 뚫고 올라간 고폭탄은 작은 산을 훌쩍 넘어 뉴 밀양역으로 날아갔다.
파편탄이 아니라 단순 고폭탄은 대량 살상보단 지형 파괴에 특화되어 있으나,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저 어리숙한 머저리들의 혼을 쏙 빼 놓는 것이니까.
곧 CCTV 화면에 잡힌 군인 무리의 한복판으로 고폭탄이 내리꽂혔다.
완벽한 홀인원이었다.
“휘익! 사장님, 나이스샷~”
* * *
“쿨럭! 커흑! 우으으읍……!”
같은 대대의 드론 운용반과 함께 세트처럼 붙어 다니는 즉각 대응반 소속 김용하는 가슴 안쪽에서부터 울컥울컥 치솟는 구역감을 참을 수 없었다.
마치 격투기 선수의 묵직한 펀치를 샌드백처럼 미친 듯이 얻어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두터운 신형 방탄복을 뚫고 들어오는 충격에 내장이 곤죽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혼란과 충격, 고통 때문에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생각해 봐도 도통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번에도 그랬던 것처럼 명령을 받고 나온 즉각 대응반 소속 대원들과 함께 보트를 타고 야간 침투를 한 것까지는 기억난다.
드론 운용반에선 그 어떤 위험 요소도 없으며, 상대의 병력 상당수가 저녁 늦게 밀양을 완전히 벗어났으므로 무혈입성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사주 경계만 하면서 거대한 밀양역 앞에 당도했다. 딱히 출입구를 막아 두지도 않고, 야심한 시각이라 모두가 잠들었는지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대로 들어가서 본보기로 몇 놈 쏴 죽인 다음 구속하면 끝인 간단한 작전이었을 텐데…….
‘폭발이 있었지.’
김용하는 자신의 앞에서 걷고 있던 멀쩡한 장정 서넛이 순식간에 폭발에 휩쓸려 공중분해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지 세열 수류탄이나 크레모아 계열은 아니었는지 파편으로 주변이 싹 쓸려 나가는 일은 없었다.
김용하보다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받은 한 동기가 달려와 그의 어깨를 잡고 역 안으로 질질 끌었다.
“야, 괜찮냐?! 정신 차려!”
“쿨럭! 쿨럭! 흐윽…… 흐윽.”
“씨발, 씨발, 씨발. 대체 왜 갑자기 폭발이 일어난 거지?! 무혈입성할 수 있다며 드론 운용반 개새끼들아!”
무전기로 상대에게 걸쭉한 욕설을 퍼부은 동기는 김용하를 끌고 들어온 것을 끝으로 역의 출입문을 닫았다.
이러는 와중에도 간간이 바깥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흙먼지 기둥이 치솟고, 폭염이 눈을 아프게 해서 결국 야간 투시경을 벗게 만들었다.
처음 폭발에 휘말린 불운한 동기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역 안으로 도망쳐 들어올 수 있었다. 처음 출발한 대원 중 절반 가까이 환자 신세를 면하지 못했지만.
“야, 일단 움직일 수 있는 애들만 먼저 안으로 들어가서 여기 있는 새끼들 싹 다 조져! 지금쯤 폭음 듣고 잠에서 깼을 거야. 놈들이 대비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죽여야 돼!”
“1분대, 2분대 먼저 들어가자.”
“애들 잘 챙겨 줘라. 총도 없는 외부인 따위 금방 처리할 수 있으니까.”
갑작스러운 폭발에 동료 몇을 잃고 기세가 크게 꺾였음에도 1분대와 2분대가 먼저 안쪽으로 진입했다.
김용하는 저들의 자신감이 자칫 잘못된 결과로 이어질까 두려웠으나, 전신을 무겁게 짓누르는 고통 때문에 신음만 내뱉는 게 고작이었다.
부상자들과 그들을 돌볼 동료 몇 명이 넓은 대합실에 남아 있는 사이, 다른 대원들이 진입한 역 안쪽에서 시끄러운 총성이 울려 퍼졌다.
자신들이 기습을 당하긴 했지만 기껏해야 몽둥이나 칼 따위를 들고 다니는 외지인이 상대라면 결국 총을 지닌 자신들이 더 유리할 터. 잠깐 눈 감고 있다가 뜨면 모든 게 해결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용하는 끝내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김용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살아서 아침 해를 보는 일은 없었다.
역 안쪽에서 들려온 총성은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내는 것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