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정착기 (47)
“정말로 격추시키지 않아도 괜찮나요?”
채성아가 가늘게 뜬 눈으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컴파운드 보우를 쏴서 반쯤 무너지다 만 빌딩 사이를 조용히 날고 있는 드론을 처리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저게 일반인이 사용하는 평범한 드론이었다면 나도 즉각 처리할 생각이었으나, 빌딩 사이를 조용히 날아다니며 이쪽을 감시하고 있는 저것은 군용 드론이었다.
2020년대부터 도입된, 그리고 북한과의 전쟁에서도 곧잘 사용된 적이 있는 정찰 드론이라 나도 몇 번 본 적 있다.
멀티콥터 방식이라 특정 위치에서 정지한 상태로 해당 지역을 감시할 수도 있고, 아예 건물 사이나 숲 위를 헤집고 다니며 지역 정보를 취득하는 용도로도 쓰였다.
한반도 북부에서 저것만을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부대가 따로 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감시하기 위해 꾸준히 후방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고 들었던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아무도 없는 빈 땅에 들어와서 작업하고 있는 외부인이에요. 당연히 저쪽은 자신들의 존재가 들키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있겠죠. 괜히 저걸 건드렸다간 경계심만 더 올리는 꼴이니, 눈에 거슬려도 당분간 내버려 두는 게 좋아요.”
“멀쩡한 군대가 있으면서도 도시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다는 게 믿기지가 않네요. 거기에 추잡하게 드론으로 몰래 감시까지 하다니…….”
특히나 사람의 생명을 중요히 여기는 의료인이라서 그런 걸까, 채성아는 도시를 이 꼴로 만든 금수 집단이 강 너머 섬에서 자신들을 몰래 관음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불쾌한 듯했다.
하긴 나 같아도 저런 놈들에게 몰래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하루 종일 기분이 더러울 것 같다.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할 뿐이지.
“웃차, 이 나라는 위아래를 막론하고, 어느 집단이든 쓰레기 같은 놈들이 많아요. 사회의 통념, 법과 질서가 그런 놈들의 목줄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세상이 이 꼴이 돼 버렸으니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어진 거죠.”
나는 채성아에게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면서, 역 안에서 가져온 넓은 테이블과 취사도구를 입구 근처 정원에 배치했다.
뉴 밀양역이 인정하는 거점의 범위가 상당히 넓었기 때문에 이 넓은 정원과 출입로 역시 거점 내부에 해당했다. 그리고 나는 그 점을 이용해 한 가지 계책을 세운 참이었다.
“저는 그래도 모두가 어려운 시기니까, 서로 협력은 못 할지언정 타인에게 피해는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세상에서 같은 사람이 줄어든다는 건 결국 같은 편이 줄어든다는 걸 의미하잖아요.”
“제 잇속만 챙기기 바쁜 놈들 입장에선 같은 편이 아니라 잠재적인 적으로 보였던 거죠. 내 식량, 내 안전, 더 나아가서 자신의 알량한 권력을 침해할 위험이 있는 적.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타인의 안위나 권리보다 자신의 불안한 심리를 안정시키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이 도시에서 일어난 끔찍한 참사가 뭐 대단한 계획을 바탕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저 금수 놈들은 외부에서 유입된 피난민들과 자신의 식량, 안전, 권력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자신의 것을 지켜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역겹다 못해 구토가 나오는 이야기다.
“그리고 저렇게 이기적인 놈들일수록 욕심도 많은 법이거든요. 직접 접근할 자신은 없고, 대신 저렇게 드론을 풀어서 이쪽을 몰래 감시하는 것으로 우리의 수준을 재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절대 자신들이 손해 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부산으로 떠나기 전, 우리는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몰래 이쪽을 감시하고 있는 드론이, 그 드론 너머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놈들이 부러워하도록.
“그러니까 일부러 저들에게 우리의 풍족한 모습을 보여 줘서 밖으로 끌어내자는 계획인가요?”
“정확히는 끌어낸 다음 조져야죠. 저런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 우리의 첫 번째 전초 기지이자 중개역인 뉴 밀양역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게 둘 수 없으니까요. 슬슬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사람들을 불러와 줄래요? 안쪽에 미리 준비해 둔 식료품도 전부 가지고 나와 주세요.”
“예.”
야외 파티 준비가 끝나자 채성아는 곧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쉬고 있던 사람들을 불렀다.
당연하게도 채성아를 제외하면 일행에게는 딱히 내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이만철 일행은 파티 이후에 이곳을 떠나서 다시 밀양 바로 아래인 김해 한림역으로 복귀할 예정이고, 우리는 ATX를 타고 양산을 거쳐서 부산으로 향할 생각이었으니까.
도저히 좀비 아포칼립스가 도래한 세상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화려한 파티를 선보인 다음, 우리는 공식적으로 뉴 밀양역을 빈집으로 만들 것이다.
곧 안쪽에서 미리 준비해 둔 대량의 식료품과 술 궤짝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야외에 준비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숯불로 고기 좀 구워 봤다는 양반들은 자연스럽게 그릴 앞에 서서 숯과 고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 도시에서 결코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밀양역에 무혈 입성한 것으로 우리의 1차 목표는 달성했으니 기념으로 실컷 먹고 마신 다음 기분 좋게 헤어지기로 했다.
좀비 한 마리 없는 안전한 곳에서 즐기는 야외 파티. 거절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지금쯤 이 광경을 본 놈들은 눈이 돌아갔겠군.’
나는 그릴 앞에 서서 고기를 구우며, 매의 눈으로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군용 드론의 숫자가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
직업 숙련 레벨이 굉장히 높은 나는 망원경을 사용하지 않아도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이질적인 드론의 형태를 쉽게 포착할 수 있었다.
‘불에 타서 폐허나 다름없었던 도심 한복판의 밀양역이 갑자기 거대한 방공호 같은 역으로 탈바꿈한 것도 모자라, 그 안쪽에서 식료품을 잔뜩 들고 나온 우리가 대놓고 파티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군침이 뚝뚝 흐르겠지.’
이런 상황에서 실컷 먹고 마신 이만철 세력이 다시 중장비와 차량을 이끌고 밀양을 빠져나가 버린다면?
아마 소수인 우리만 남아 있다고 판단한 저쪽에서 군인이든 각성자든 동원해 빈집을 털려고 할 것이다.
물론 그마저도 ATX를 출발시키는 것으로 ‘밀양역에 쥐꼬리만 한 경비 병력을 남겼다’ 라는 더블 페이크를 칠 생각이었다.
기껏해야 보초 서넛만 처리하면 밀양역의 물자를 통째로 차지할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 주면 끝. 그럼 저들은 가능한 많은 물자를 가져가기 위해 어마어마한 인력을 동원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 시점에서 게임은 끝나는 거다.’
노련한 퇴역병은 자신의 거점을 단순히 지키고 방어해야 할 장소가 아닌, 적을 끌어들여서 처리하는 함정으로도 사용하는 법이다.
나는 소금과 후추를 뿌려서 먹음직스럽게 구운 고기를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연기를 이어 나갔다.
안전 불감증에 걸린 멍청한 외부인처럼 보이게끔.
“크! 오랜만에 배에 기름칠 제대로 하는구만! 술이 쭉쭉 들어간다 쭉쭉 들어가!”
“거,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십쇼, 형님. 나중에 운전도 해야 하는데.”
“야, 우리가 이거 마시고 취할 깜냥이냐? 한 사람당 한 궤짝은 줘야 취하는 티라도 내지!”
“하긴, 밤새 술 마시고 아침 일찍 공장 나와서 일도 했는데 이 정도야, 뭐…….”
음주 운전한다고 해서 딱지 끊을 경찰도 없고. 누가 그런 말을 덧붙이자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차피 뉴 밀양역에서 한림역으로 내려가는 길에 특별한 위험은 없고, 길도 다 뚫어 놨기 때문에 이동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 술보다는 음료수를 더 많이 나눠 줬기 때문에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거나하게 취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오랜만에 맛보는 육즙 가득한 고기와 쌈 채소, 밥에 더 열광했다.
우리는 해가 빨리 지는 겨울의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따뜻한 고기와 밥으로 속을 달래면서 오후를 보냈다.
저녁이 다가오고, 해가 완전히 떨어지는 밤이 되면 뉴 밀양역은 사람 한 명 없는 무인역이 될 것이다.
* * *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아마도 저들 중에 각성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중장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력이 포함된 외부인 무리인 만큼, 망가진 건물을 복구하는 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있다고 해도 아주 이상한 건 아닙니다.”
“그래,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 이거지…… 그래도 우리가 알고 있는 각성자와는 궤를 달리하는 능력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결과만 놓고 보면 저들보단 우리에게 이득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외지인 무리가 밀양역을 점거한 이유는 아마도 경상도 전체의 철도 교통로를 잇는 중간역으로 사용하기 위함인 것 같은데, 저들이 지금 저렇게 편히 먹고 마시는 이유는 이 도시에 위험 요소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럼 드론으로 계속 감시하고 있는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저놈들이 실컷 먹고 마신 다음 팔자 좋게 늘어져 있을 때, 우리가 어두컴컴한 밤에 몰래 침투해서 싹 처리하고 복구된 밀양역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겠군.”
“예, 저들이 방심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기회를 엿보면서 준비만 하면 됩니다. 일단 밀양역을 손에 넣기만 한다면 우리 부대가 가지는 위상이나 통제력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입니다.”
부관의 적극적인 의견 피력에 이성철 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각성자가 복구한 것으로 보이는 저 거대한 밀양역은 너무나도 먹음직스러운 파이였다.
심지어 밀양역을 복구한 놈들은 이미 폐허가 된 도시에서 사람도, 괴물도 없는 것을 파악하자마자 저렇게나 무방비하게 놀고먹고 있다. 아마 위험한 외부에서 괴물들에게 시달렸던 피로를 풀고 싶었던 것이리라.
‘가장 취약한 군대는 안전 불감증에 걸린 군대다.’
드론이 송출하고 있는 실시간 감시 영상 속의 저놈들 좀 보라지.
최소한의 보초를 세워 두기는커녕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서 먹고 마시고 있다. 만약 전시 상황이었다면 저곳에 중무장한 1개 소대만 난입해도 모조리 쏴 죽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성철 대령이 즉각 부하들을 동원하지 않는 이유는 혹시 모를 최소한의 피해도 입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쉽게 적을 공략할 방법이 있는데 굳이 리스크를 질 필요가 있을까?
무엇보다 아직 밀양 시장 측 세력과의 알력 다툼도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밤이 깊어지지 않으면 군대를 움직이는 건 더더욱 힘들었다.
“우선 놈들이 밤늦게까지 먹고 마시다가 축 늘어지면 그때 보트를 띄워서 애들 침투시키는 걸로…… 음?”
슬슬 오렌지빛 석양이 지고 저녁이 다가오고 있을 즈음, 갑자기 저들의 동태가 변했다.
충분히 먹고 마셨다고 판단했는지 밀양역을 점거한 외지인들은 빠르게 자리를 정리하더니, 곧 자신들의 장비와 차량을 챙겨서 떠날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미친놈들인가?”
기껏 밀양역을 점거해 놓고 핵심 전력이 떠날 준비를 한다고? 그것도 밝은 대낮이 아니라 저녁에?
이성철 휘하의 장교나 부사관들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멍한 표정으로 감시 드론이 보내오는 영상을 지켜보기만 했다.
“어, 그러니까…… 정말로 이 도시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 주공(주 전력)을 다른 지역으로 돌리는 게 아닌가 추측됩니다.”
자신이 그렇게 말하고도 어이가 없었는지, 한 장교는 입가를 가리고 실소를 머금었다.
물론 밀양의 전후 사정을 모르는 외지인 입장에서 완전히 폐허가 된 도심을 보고 나면 ‘여긴 적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주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나, 저렇게까지 멍청한 짓을 할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우리를 끌어들이려는 함정일 가능성은?”
“우리와 싸우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술까지 가져와서 먹고 마시지 않았을 겁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특히 구하기 힘들다는 술을 궤짝째로 들고 와서 서로 나눠 마시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모두가 공감하는 의견이었다.
“아무래도 하늘이 우릴 돕는 것 같군. 즉시 애들 무장시키고 밤중에 침투할 수 있게 해. 저쪽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포로 한두 명만 잡고 나머지는 전부 사살해도 좋다.”
“정기적으로 바깥에 나가서 물자를 구해 오는 화물 업체도 고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 안에 쌓여 있을 물자를 우리 애들이 전부 가져오는 건 힘들 겁니다.”
“그 부분은 중대장에게 일임하지. 단 시장 측 세력이 알지 못하게 진행하도록.”
“맡겨만 주십시오.”
그 어떤 도시보다도 조용했던 밀양이 다시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