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정착기 (44)
한림면에서 밀양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구체적으로는 강폭이 꽤 넓고 주변 경관이 굉장히 아름다워서 봄철만 되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낙동강만 넘으면 밀양이다.
문제는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고 환경을 최대한 보존한다는 명목상 교각이 그리 많이 이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공식적으로 김해와 밀양을 이어 주는 교각은 4개인데, 좀비 사태가 터진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 인간이 관리하고 있는 교각은 과연 몇 개나 될까?
처음부터 인구가 적고 규모도 작은 한림면 수준의 외진 마을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고작 교각 하나를 건널 때도 좀비들의 습격을 경계해야 할 판이다.
지치지 않는 체력, 추운 날씨 정도로는 손상되지 않는 육체, 딱히 오랫동안 먹거나 마시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기묘한 생체 구조까지. 놈들은 그야말로 끝없는 매복과 순찰에 특화된 사냥꾼들이니까.
아침 일찍 베이스캠프에서 눈을 뜬 우리는 서둘러 채비를 갖추고 한림역을 벗어났다.
그렇게 금곡로를 타고 쭉 북상하기 시작한 우리는 아름다운 겨울철 낙동강 구경은 꿈도 꾸지 못한 채, 뜬금없이 건물이나 들판에서 튀어나올 좀비들을 경계하며 움직여야 했다.
딱 이맘때 낙동강이면 겨울철 철새들이 떼로 날아와서 쉬는 광경을 돈 안 내고 구경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의 우리에겐 너무나도 큰 사치였다.
사람이 직접 움직여서 정찰하는 것도 한계가 있기에, 나는 활천초 거점에서 UCAV의 배터리 충전이 끝날 때마다 원격 제어로 낙동강 인근을 공중 정찰했다.
UCAV는 다 좋은데 실질적인 활동 반경은 50km(최대 항속 거리 100km)라는 점, 그리고 한 번 발진시키고 나면 꼭 배터리 충전을 오랫동안 해 줘야 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퇴역병의 거점 스킬이 아무리 사기라고 한들,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답은 무장 열차다. 나는 무장 열차가 필요해……!’
크고, 아름답고, 튼튼하고, 아무튼 큰 거.
잡생각으로 시간을 때우던 것도 잠시, 저 앞에 보이는 교각에 우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 교각만 넘어서면 김해에서 밀양으로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밀양은 경상도의 주요 대도시들로 오가는 기차가 ‘반드시’ 한 번은 거치게 되는 중간역 같은 도시였다.
오죽하면 밀양은 기차가 대중교통을 지배하는 도시이며, 타 도시와 달리 버스가 힘을 쓰지 못하는 ‘버스의 무덤’이라고 불리겠는가.
인구는 기껏해야 10만 명대로 간신히 시 행정 구역 단위를 지키고 있는 주제에, 기차 하나로 도시 전체가 떡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인구 자체는 적을지언정, 위치가 기가 막히게 좋아서 대구, 창원, 김해, 울산, 부산을 완벽하게 잇고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바로 교두보 쪽이다.
“경상남도 아래쪽에서 위로 대피한 사람들, 경상남도 위쪽에서 아래로 대피한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요?”
“비교적 안전한 대구로 모이지 않았을까요?”
“그 대구라고 해도 너무 많은 피난민을 받아 줄 수는 없었겠죠. 아무리 대도시라고 해도 수용 인원에 한계가 있어요.”
내 말에 채성아가 다시 골똘히 생각해 보다가, 대구 주변에 존재하는 천혜의 요새를 떠올렸다.
바로 산맥과 낙동강에 둘러싸여 있는 밀양이다.
“확실히 대구에서 수용하지 못한 인구는 밀양으로 넘어갔거나, 차라리 좀 더 북상해서 강원도 쪽으로 대피했을 가능성이 높겠네요.”
경상북도 북부부터 강원도까지는 태백산맥이 쭉 자리 잡고 있어서 인구도 적고 산세가 험해서 세상의 환란을 피해 잠시 숨어 지내기 딱 좋다.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현대인 입장에선 겨울철 산만큼 무서운 것도 없겠지만, 좀비를 피할 수 있다면 차라리 그쪽이 더 낫다고 생각했을 사람도 분명 있을 터.
다만 거기까지 고생할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구 아니면 밀양에 몸을 의탁했을 것이다.
대구는 대한민국에서도 알아주는 대규모 분지라서 여름철에는 미친 듯이 더운 불지옥을 보여 주지만, 겨울철에는 내륙 도시들 중에선 가장 사정이 나은 편에 속한다.
그 춥다는 서울의 겨울보다 2~4도 정도 더 따뜻하고, 웬만하면 영하 1도 아래로는 잘 내려가지 않는다고 하니까.
저 앞에서 이만철 일행이 다리를 막고 있는 폐차량들을 마구 밀어내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전진하면서 강 너머의 밀양을 살폈다.
툭 까놓고 말해서 밀양 남부는 죄다 논밭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허허벌판이었다.
그나마 관광객들이 좀 몰려드는 낙동강 주변에만 상권이 조금 보였고, 그 외의 모든 도시의 정수는 밀양의 최중심부에 몰빵되어 있는 구조였다.
피난민들도 이 풍경에 숨이 얼마나 턱 막혔으면, 좁은 교각과 도로를 벗어나자마자 냅다 논밭으로 차를 몰아서 간 흔적이 보일 정도였다.
살짝 지루하다면 지루하다고 할 수 있는 중장비의 폐차량 걷어 내기 작업을 기다리는 동안, 채성아는 망원경으로 먼 곳을 살피며 물었다.
“김해나 부산은 사실상 전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인데, 밀양은 어떨까요?”
“글쎄요. 알아서들 잘 먹고 잘살고 있지 않을까요. 최소한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엔 김해보다 형편이 나았을 텐데.”
“…….”
채성아가 황당한 표정을 짓든 말든, 운전대에 턱을 괸 나는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좀비들이 넘쳐 나게 된 이 끔찍한 세상에서 보내는 짧은 여유였지만, 그와 동시에 인류가 그토록 자랑했던 문명사회의 덧없음을 여실히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밀양시가 어떻게 됐는지는 나도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UCAV의 활동 범위를 고려하면서 어렵사리 외곽만 훑듯이 정찰했기 때문에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정보는 얻지 못했으니까.
확실한 건 밀양의 최중심부까지 가 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생존자들이 아주 없을 것 같지는 않다.
본능적인 감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사람이 자리 잡고 살았던 터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아주 잘 파악하게 되었다.
북한군이 숨죽인 채 숨어 있는 마을인지, 그냥 북한 주민들이 전쟁을 피해서 죄다 도망친 탓에 텅 빈 마을인지 구분하지 못하면 죽는 건 우리였기 때문이다.
눈앞의 도시, 마을이 죽어 있는지 살아 있는지 구분하는 건 매우 쉽다.
시각적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곳은 죽었으며, 동시에 위험한 곳이다. 그 반대는 활기로 가득 차고 무기 없이 돌아다녀도 안전한 곳이다.
내가 UCAV로 부산을 정찰하자마자 ‘이곳은 죽은 도시구나’라고 직감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김해처럼 생존자 그룹이 있기는 하겠지. 오히려 밀양처럼 천혜의 요새 같은 환경을 두고 한 달도 생존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 있는 것 아니겠나.
핵심은 김해와 사정이 딴판이었을 밀양이 ‘왜’ 그렇게 됐느냐다.
‘분명 밀양에 들어섰는데 어째서 시각적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걸까?’
-요 앞부턴 그냥 도로 위를 치울 것도 없이 그냥 팍팍 밀고 나가도 되겠어. 차량으로 이동할 수 없게 된 피난민들도 요 앞부턴 대부분 걸어서 이동한 것 같으니까.
그때, 무전기를 통해 들려온 이만철의 보고에 우리는 속도를 높였다.
걸리적거리는 차량들은 논두렁에 대충 처박아 버리고, 이제는 거의 뻥 뚫려 있다고 해도 좋은 도로를 거침없이 내달렸다.
드넓은 평야와 논밭이 눈에 들어오고, 우리보다 앞서서 이 길을 걸었던 피난민들이 남긴 흔적을 뇌리에 새겼다.
‘피난민들이 밀양으로 들어온 흔적은 있지만 나간 흔적은 없다.’
마침내 정오가 다 되어 갈 무렵, 우리는 밀양 가곡동에 진입할 수 있었다.
아래쪽으로는 산책하기 딱 좋은 가곡강변로가 강물을 따라 쭉 이어져 있고, 위쪽에는 떡하니 밀양의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밀양역이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바로 그곳.
경상도 전체를 아우르는 철도 교통의 중심지가 우리 눈앞에 있었다.
“우웁……!”
차에서 내린 채성아는 간호사 생활로 단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위가 상하는 걸 참지 못하고 저 멀리 뛰쳐 나갔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는 혼이 나간 듯한 얼굴로 번화가의 도로를 꽉 채우다시피 한 ‘그것’을 바라보았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채성아처럼 입가를 가리고 구석으로 뛰어갔다.
주먹을 꽉 쥔 채, 입에서 핏물이 배어 나올 정도로 이를 악물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개또라이 같은 새끼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이딴 짓을……!”
“개새끼들! 우리 같은 국민들 등골 뽑아 먹으며 꺼드럭거릴 때는 언제고, 그 난리통을 피해서 온 사람들을 어떻게… 씨발!!”
허공에 대고 욕설을 퍼붓는 사람, 말없이 눈물만 훔치는 사람, 눈앞의 참극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끝내 눈을 돌리는 사람.
그들 앞에, 우리 앞에 쌓인 것은 화재와 폭발에 휩쓸린 무수한 시체의 산이었다.
“밀려드는 피난민과 좀비를 모두 막기엔 군대와 경찰 모두 부족하니, 피난민과 좀비들을 한꺼번에 처리해 버린 거야.”
그럼 어떻게 피난민들은 좀비들과 함께 나란히 폭발과 화재 속에서 ‘생매장’당할 수 있었을까?
답은 쓸데없이 질서를 잘 지키는 국민성을 이용한 검역 절차였다.
부족한 군인과 경찰들만으로는 밀양 전체를 방위하기 어려우니, 밀양 옆 코앞에 위치한 넓은 대로에 피난민들을 모아 두고 검역을 시행한 것이다.
실제로 임시로 설치한 검역소와 피난민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설치된 펜스, 바리게이트 등이 보였다. 시체들이 그 앞에 산처럼 쌓여 있었으니 모를 수가 없다.
아마 처음 이곳에 당도한 피난민들은 마음이 급할지언정 행정 절차는 따라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당연히 검역 절차에 응했을 것이고, 수많은 피난민들이 이곳에서 발목이 묶이는 결과를 낳았다.
기회를 엿본 좀비들이 피난민 행렬의 배후에서부터 들이닥치는 건 필연적이었다.
그다음은?
‘가장 먼저 저 빌딩이 ’폭발‘에 의해서 무너졌고, 저 길을 따라서 화재가 시작됐군.’
나는 주변이 파괴의 흔적들을 눈으로 훑고, 손으로 더듬으며 추측을 이어 나갔다.
자연재해에 의한 지형 파괴와 인위적인 지형 파괴를 구분하는 건 매우 쉬웠다.
5년간 진득하게 그런 광경만 보고 살았으니까.
누군가가 좀비들의 미끼가 되어 줄 수십만 피난민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가두리 양식을 하듯 빌딩과 주변 건물을 일시에 폭파시켰다.
나는 당시 참사가 벌어졌던 장소의 기억을 더듬으며, 그 많은 피난민들이 혼란 속에서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지 상상했다.
앞으로는 무너지는 건물들, 뒤로는 몰려오는 좀비들, 그리고 시작된 화재. 거대한 가두리 양식장에서 폭발이나 불 따위는 겁내지 않는 좀비들이 피난민들과 함께 뒤섞이고, 그렇게 다 함께 불타 죽었다.
이 거대한 번화가에서 희생된 인구가 무려 수십만이다. 정확히는 이 도심 안에서 희생된 것이다.
‘밀양으로 들어올 수 있는 다른 교각은 모두 파괴되어 있었다. 즉 이 번화가까지 들어온 사람들은 강물에 뛰어들지 않는 한 이 도심에 갇힌 상태였던 거야.’
불을 꺼 줄 소방관도 없고, 때마침 날씨가 건조한 초겨울이었으니 인위적인 화재는 걷잡을 수 없이 도심을 집어삼켰을 터.
어딜 가든 도로와 건물 내부에는 불타 죽은 시체들로 즐비할 것이다. 안 봐도 뻔하다.
왜 밀양 바깥은 조용하고 아무것도 없었는지 이해가 간다.
밀양에는 공교롭게도 사면이 강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섬이 2개나 있다.
연결된 교각만 끊어 버리면 외부의 침투는 능히 막을 수 있으며, 작은 보트나 뗏목을 이용하면 왕래도 할 수 있는 구조였다.
정말로, 정말로 공교롭게도 밀양 도심에선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데, 하필 그 2개의 섬에선 온기가 느껴진다.
나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수많은 외부 피난민들을 좀비 밥으로 던져 주고 강으로 둘러싸인 안전한 섬에서 저들끼리만 살아남은 것들이 있다.
그 말인즉슨 강 건너 불구경한 금수 새끼들이 발에 차일 정도로 많다는 뜻이다.
“…….”
나는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에 깔린, 불타 죽는 그 순간까지 함께 손을 잡고 있던 어느 가족의 시신 앞에서 돌아섰다.
이미 이런 참극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서, 끝내 무뎌진 내 머리통을 으깨 버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