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82)화 (83/227)

82화 정착기 (32)

저녁 식사를 서둘러 끝낸 나는 곧장 활천초(ver.3)에 새롭게 배치된 거점 방위 무기들을 살폈다.

경희대 중앙 병원도 대학 병원급으로 확 커지면서 듣도 보도 못한 신박한 방위 무기가 생겼고, 홈마트도 그 넓은 규모의 건물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자동 포탑과 머신 피스톨 터렛, 그리고 동작 감지기 등이 추가되었다.

활천초가 리뉴얼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방위 무기는 옥상에 배치된 2개의 방공용 발칸포와 내 마음대로 배치할 수 있는 머신 피스톨 터렛, 그리고 부비 트랩이 전부였다.

그랬던 방위 무기가 지금은?

“이건 또 뭐야?”

발칸포의 상태가 어떤지 점검이라도 할 겸 힘들게 옥상으로 뛰어 올라왔더니만, 발칸포 옆에 못 보던 물체 하나가 추가되어 있었다. 언뜻 보기엔 무언가를 발사하는 용도로 보였다.

내가 이 정체불명의 물건을 ‘발사기’라고 생각한 이유는 총이나 대포도 아니면서 뭔가를 쏘아 내는 형태의 긴 레일과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 그리고 제어판 등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발칸포만큼이나 거대했다.

사람이 직접 운용해야 하는 구식 발칸포와 달리 뭔가 복잡하면서 세련된 느낌이라 기존의 무기 체계와는 많이 달라 보였다.

이런 것과 유사한 물건을 전에 본 적이 있는지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살피다가, 발사기에 손이 닿은 순간 자동적으로 상태창이 나타났다.

-UCAV(Unmanned Combat Aerial Vehicle) 발사기 [Lv.1]

-내구도 : 500/500 [Lv.1]

-작동 방식 : [수동]

-발사 가능한 UCAV : 1개(48시간마다 1개씩 재생산) [Lv.1]

-보유 가능한 UCAV : 최대 5개 [Lv.1]

-UCAV 항속 거리 : 최대 100km[Lv.1]

-UCAV 자폭 살상 반경 : 20m [Lv.1]

-UCAV 회수 가능 여부 : O

“이거……!”

이제야 기억난다.

미군이 가끔 대규모 폭격 때리기 애매할 때, 그렇다고 순항 미사일을 쓰자니 뭔가 아까울 때, 하나씩 툭툭 날려서 간단한 정찰 겸 자폭용으로 사용하곤 했던 드론 발사기였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UCAV 또한 무인기이기는 하나, 대중적으로 알려진 무인기(UAV)에 비해 크기가 매우 작고 항속 거리도 짧아서 ‘방구석 미사일’ 같은 느낌으로 현대전에서 사용되고 있다.

대전차 미사일처럼 보병이 위험하게 전선에서 직접 적 장갑 차량을 조준할 필요도 없이, 그냥 준비된 발사기에서 날려 보낸 다음 컨트롤러로 조작 좀 해 주면 적에게 간단하게 때려 박을 수 있기 때문에 ‘방구석 미사일’ 취급을 받는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는 자폭 드론 특성상 전차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포탑 상부 공격(탑 어택)이 가능하고, 미사일보다 작아서 탐지가 어렵다는 장점도 있다.

가격도 미사일에 비하면 굉장히 저렴하고, 작전 중 운용도 편리하다, 또한 적당한 위력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를 모두 챙겼다고 할 수 있겠다.

UCAV가 유명해진 건 한반도에서 2차 남북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발발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덕분이기도 하다. 그때 사용된 UCAV들이 기갑 차량과 수송 차량을 케이크 떠먹듯이 처리해 버린 것이다.

“항속 거리가 100km라는 건 거점 외부로 드론을 날려 보낼 수 있다는 건가?”

지금까지 내가 가진 모든 방위 무기들은 기본적으로 거점 내부에서만 작동하고, 또 거점 내부에 침입한 적들에게만 반응했다.

하지만 이 드론 발사기는 다르다. 거점 방위 무기 중 최초로 자동 요격 기능이 없는 대신 수동으로 드론을 조작해서 외부에 날려 보낼 수 있게 된 거다.

‘이론상 이틀마다 한 번씩, 최대 100km 범위 내에 있는 적이나 건물을 정찰, 타격할 수 있는 항공 자산을 손에 넣은 것과 다름없다. 여차하면 발사한 드론을 다시 회수할 수도 있고.’

이것도 레벨 표시가 있는 만큼 숙련 포인트를 투자한다면 성능이 더 향상될 여지가 있다.

마침 밤에만 활동하며 이 주변을 어슬렁거린다는 좀비들의 동태를 파악할 수단이 필요했는데 잘 됐다. 또 항속 거리가 100km라면 김해 시내를 가볍게 둘러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너무 상황에 맞는 편의주의적인 방위 무기가 아닌가 싶다가도, 학교 옥상에 이미 발칸포까지 설치된 마당에 드론 발사기가 추가된 게 뭐 대수일까 싶다.

나 사나이 이승권, 지난 1년간 넷플러스 드라마를 두루 섭렵하면서 이보다 훨씬 더 편의주의적인 전개의 혜택을 본 주인공들을 참 많이도 봤다. 그런 내가 넷플러스 드라마 주인공들보다 못하란 법은 없잖아?

‘이것 외에 새롭게 추가된 건 설치형 전기 철조망이 전부. 나머지는 기존의 방위 무기 수가 조금 더 늘어난 것뿐이야.’

처음부터 열어 보지 않은 것을 후회한 거점창으로 방위 무기 목록을 확인해 보니, 한 번에 배치할 수 있는 머신 피스톨 터렛의 수가 10개까지 증가했고, 부비 트랩도 30개나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 부지가 넓어지긴 했지만 대신 튼튼한 방벽이 추가되었으니,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자동 포탑을 따로 추가해 주지는 않은 모양이다. 홈마트에 있는 자동 포탑을 이쪽으로 옮겨 올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만약 좀비들이 학교 내부로 침입하려 한다면 괜히 입구를 공격하기보단, 다른 건물을 이용해 타 넘기 쉬운 방벽 쪽을 공략할 것이다.

해서 좀비들이 타 넘어올 가능성이 높은 방벽 근처에 부비 트랩을 집중적으로 설치해 두고, 머신 피스톨 터렛은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운동장과 생활 구역 근처에 배치했다.

거점이 리뉴얼되면서 자동 배치되어 있던 방위 무기들의 위치가 휙휙 바뀌자 놀라는 사람들이 조금 있었지만, 내 능력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안심한 눈치였다.

‘방위 무기 배치는 이쯤 하면 됐고, 남은 건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을 무장시키는 거다.’

박성호를 위시한 여행 동아리 회원들에게는 별도의 총기와 탄약을 지급해 주긴 했지만, 대다수의 거점 일원들은 변변찮은 무기 하나 없었다.

굳이 무기를 들어야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이 거점이 안전하기도 했지만, 애초에 총이 아니면 성인 남성조차 대부분 무기를 사용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몽둥이나 칼을 쥐여 주면 휘두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좀비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일반인들에게 어떤 무기를 쥐여 줄지 고민하며 교직원 회의실에 들어서자, 미리 내 호출을 받고 모여 있던 십여 명의 사람들이 나를 반겨 주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피곤하거나 귀찮아하는 기색 하나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해야 할 일이 있을 텐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 불러 모아서 미안합니다.”

“형님이 이 거점의 리더인데 왜 미안해요?”

“맞아요. 오빠 아니었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지금쯤 밖에서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데.”

“저, 저도 최근에 우리 동아리 회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도 교류할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하고 있어요. 오빠 덕분인 거 모르는 사람은 없을걸요……?”

“역시 사람이 북적거려야 일할 맛도 나고 밥도 더 맛있죠. 안 그렇슴까?”

여행 동아리 회원인 박성호와 최연희 그리고 정선혜와 전현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추켜세우는 걸 보니, 역시 먹여 주고 재워 준 값은 하는구나 싶었다.

“흠흠, 그렇게 비행기 태워 준다고 해서 뭐 나오는 건 없으니까 그쯤 하고. 다들 대충 사정은 전해 들었으니 내가 왜 불러 모았는지는 알 겁니다. 최근 이 근방에서 우리를 감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좀비들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어요.”

“가끔 방벽 위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사람들이 몇 번 봤다는 그거로군. 이성이 없는 것처럼 흐느적흐느적 돌아다니는 괴물들과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고 들었지.”

강대현 교수가 한마디 덧붙이자 나는 회의실에 있는 화이트보드를 끌어와서 간단하게 그림을 그렸다.

“이게 학교이고, 이게 동쪽과 남쪽 방벽에 가까이 붙어 있는 주변 건물들입니다. 기존의 활천초 정문은 남쪽이었지만 이번에 거점이 리뉴얼되면서 서쪽 게이트로 바뀌었죠. 아마 부지가 확장되면서 남쪽 건물과 물리적으로 가까워져서 그런 것 같은데, 일단 그건 넘어가고. 거점 방벽이 높기는 하지만 주변 건물을 압도할 정도는 아닙니다. 특히 남쪽과 동쪽 방벽은 주변 건물과 거리도 가까워서…… 잘만 하면 좀비가 타 넘을 수도 있겠더군요.”

평범한 인간은 죽어라 점프해도 결코 닿지 못하겠지만,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근력과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진 좀비라면 어떨까?

아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득바득 방벽을 타 넘으려 할 텐데, 주변 건물을 문자 그대로 초토화시키지 않는 한 막을 방법은 없었다.

한술 더 떠서 지금 내겐 당장 건물을 철거할 수 있는 중장비나 건물 폭파용 폭탄이 없다는 거다. 게다가 현대 건물은 강화 철근과 콘크리트를 사용한 덕분에 철거하기가 더욱 힘들다.

실제로 6년 전에 북한의 선제 타격을 받았던 서울도 적지 않은 사상자와 재산 피해를 기록했으나,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불굴의 부동산(건물)은 대부분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K-아파트는 포탄을 막아 냅니다!

“지금 당장은 방벽과 가까운 건물을 치울 방법이 없으니, 우선 군필자 위주로 힘이 좀 있고 건강한 사람들에게 무기를 지급하고 경계 태세를 강화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린 그 뭐냐, 각성자같이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누군가를 죽이거나 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인데…… 그게 가능하겠나?”

농부 아저씨가 현실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이 거점에 받아들인 사람 대부분이 ‘그런’ 사람들이었으니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무라는 것은 하기 싫어도, 자신의 적성과는 맞지 않아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무다.

지금의 나는 의무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는 입장이지만, 이들에게는 서로 협력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저버리는 순간 이 각박한 세상에서 누구도 홀로 살아남을 수 없으며, 또한 나 역시 그런 사람들까지 지원해 줄 여력은 없었다.

“가능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가 신경을 많이 쓸 겁니다. 거점 방위 무기를 적절하게 배치할 것이며, 여러분들께는 필요한 훈련과 지원을 총동원할 예정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하기 싫다’고 하는 사람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점에서 추방할 겁니다.”

특수한 경우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져서 전투가 불가능한 사람, 혹은 육체적으로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보통 전자는 좀비에게 강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이며, 후자는 전투에서 도움보단 방해가 되는 약자들을 의미한다.

“거점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해당 역할이 우선시되니 거점 방위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일은 적겠지만, 없다고 단언하지는 않겠습니다. 국가 간의 전쟁도 국민이 어떤 역할을 가지고 있든 징집되면 다 똑같은 군인으로 취급하니까요.”

“동의하네. 우린 이미 자네 덕분에 충분히 호사를 누리고 있어. 이런 시국에 대체 어떤 사람들이 삼시 세끼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먹으며, 안전한 곳에서 편히 잠들 수 있겠나? 여긴 넓게 보면 하나의 국가나 다름없어.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의무를 나눠 져야만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이지. 그걸 부정한다는 건 이곳에 있을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지.”

강대현 교수의 말에 주변인들이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은 이미 시작됐다.

대한민국 겨울은 저 북쪽의 러시아만큼은 아니지만 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상당히 혹독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바, 위험천만한 바깥에서 개인의 힘으로 살아남기는 무척이나 힘들어졌다.

그런 마당에 딱히 세금이나 어떤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내 거점에서 쫓겨나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 내가 이 사회에 원하는 게 참 많은 사람이었다면 남자들은 노예로, 여자들은 노리개 취급하는 악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사회에 원하는 게 없다.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것도 없고.

그냥 넷플러스 하나만 있으면 평생 늙어 죽을 때까지 방구석에 처박혀서 배달 음식이나 시켜 먹으며 푹 썩어 갈 생각이다.

고작 그것 때문에 사회를 재건하고 사람들을 가능한 많이 살려야 한다는 게 참 모순적이지만.

“그럼 결정됐군요. 이 방침은 내일 아침 모든 거점 일원에게 공지하기로 하고, 현재 구성된 경비 인력을 확충하면서 일반인도 사용하기 쉬운 무기를 제 쪽에서 지급하겠습니다. 물론 좀비들과 위험하게 사투를 벌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주로 건물 내부에서 농성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 위주로요.”

저 위쪽 지역을 먹고 있던 양아치 놈들처럼 쇠구슬이나 금속 파편을 날려 대는 새총도 좋고, 건물 안쪽에서 바깥으로 내지를 수 있는 창도 좋겠지.

모두 재료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고 총기처럼 빡세게 훈련받을 필요도 없다. 그밖에도 좀비나 인간 모두에게 효과적인 화염병을 제작할 수도 있겠다.

내가 일일이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려 가며 어떤 무기를 지급하고 운용할지 설명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시야를 가리는 거점창 경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방벽 내구도 손상 경보!

-방벽 내구도 : 4990/5000

놈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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