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정착기 (31)
저녁이 되자 생활 공간에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식사를 준비하느라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생각해 보니 내 자택(별장)을 제외하면 큼지막한 거점을 3개나 확보했음에도 이렇게나 사람들이 부대끼는 광경은 좀처럼 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은 항상 어딘가를 정찰하거나, 누군가와 싸우거나, 새로운 물자와 거점을 확보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사실 스스로 여유를 좀 가지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이런 광경을 구경하거나, 자연스럽게 이들 사이에 섞여 들었겠지만,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 바깥으로만 나돌았다.
사람이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무리를 이루고, 수많은 단체가 생겨 사회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하다.
하지만 무리를 이루는 짐승과 달리 사람은 그 무리에 통일되는 성향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사회생활을 이어 나갈수록 주변인들과 마찰을 빚게 된다.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사회생활’이라는 명목하에 억지로 붙여 두는 게 얼마나 안 좋은 행동인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다들 ‘이게 사회생활이니까’ 하면서 참고 지내는 거지.
“오늘 저녁은 경상도식 소고기 무국이네? 추운 날에 이만한 게 또 없지!”
“저 바깥에서 고생할 때는 하루에 한 끼 먹는 것도 힘들었는데, 여기선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주는구만. 역시 한국 사람은 밥심이라니까.”
“빈둥빈둥 놀다가 먹는 밥보단 땀 흘려 일하고 먹는 밥이 훨씬 더 맛있는 법이지. 우리 아들놈도 여기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거 밥 먹는 자리에서 울적한 얘기 하지 맙시다. 다들 든든하게 먹고 내일도 힘내야 할 것 아닙니까. 안 그래요들?”
“그렇지, 그렇지. 어서들 식사하자고!”
학교 급식실에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이 식판을 들고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서 식사를 받아 간다.
통제되지 않는 피난민 수용소였다면 음식이 부족할까 봐 너도나도 새치기를 하며 필사적으로 달려들었을 텐데, 오히려 안정된 거점이었기 때문에 통제가 없어도 괜찮은 것 같다.
나도 조용히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이렇게 학교 급식실에서 식판을 들고 있으려니 10년 전쯤 한창 학교를 다니고 있던 잼민이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내가 군인이 되기 전에 대한민국이 통일될 줄 알았고, 그때는 내가 서울대 문짝 박살 내며 들어갈 줄 알았고, 그때는 내가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줄 알았다.
첫사랑은 보통 이어지지 않는 게 국룰이라던데, 어린 시절의 망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고민이 많은 얼굴이군. 젊은 나이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책임지게 돼서 어깨가 무거운가?”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싶더니만, 대뜸 말을 걸어온 것은 인제대에서 구출해 낸 생존자들 중 한 명인 강대현 교수였다.
“그런 책임감을 질려서 진즉에 털어 냈죠. 그냥 이런 광경이 오랜만이라 그래요.”
“긴가민가했는데 역시 전직 군인이었군. 한창 대학에서 청춘을 보내야 할 나이에 전쟁을 겪고 돌아왔으니 그 심경, 모르는 바는 아닐세. 그놈의 전쟁이 사람 여럿 힘들게 했어…… 쯧쯧.”
“뭐, 언젠가는 일어날 전쟁이었고 또 필요한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단지 우리 세대가 타이밍이 안 좋았던 것뿐이죠.”
“그런 말 말게. 이 세상에 필요한 전쟁 같은 건 없어. 불필요한 전쟁이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바람에 항상 역사에 기록되어 당연시 여겨지고 있을 뿐이지. 그렇기 때문에 자네 같은 젊은 세대가 언제나 희생당하고 있네. 나도 젊었을 적에 그랬고, 나보다 훨씬 더 선배였던 분들 역시 그랬어.”
“당시에만 해도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한 전쟁이었다는데, 일개 병사였던 제가 어떻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중에 현충원의 양지바른 자리 하나라도 받으려면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밖에 없었죠.”
“…….”
북한이 먼저 한국을 때리고, 한국보다 미국이 먼저 북한을 때리면서 발발한 전쟁이었으니 전쟁이 일어난 것 자체는 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그 자체였으니까. 군인들이 나가서 싸우는 건 필연적이었다.
다만 내가 지긋지긋한 5년 동안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일개 군인이 모두 감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전후 트라우마 센터에서 만난 상담사에게 죽빵을 날려 버린 거다.
어느덧 앞줄이 줄어들고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나는 밥과 반찬, 국을 퍼 주는 취사 담당자들 앞에 서서 식판을 내밀었다.
여행 동아리 회원이자 요리 담당인 최연희가 정성 들여 끓인 소고기 무국과 단출하지만 먹음직스러운 반찬, 그리고 흰 쌀밥을 고봉으로 받으니 가벼웠던 식판이 금세 묵직해졌다.
내 국그릇에 유독 소고기가 많이 들어 있는 건 기분 탓이겠지. 위생모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최연희가 안쪽에서 슬쩍 손을 흔들고 있었다. 풋풋해서 귀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네라는 사람이 있기에 이 거점도 유지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그 점에 대해선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그 얘기, 아직까지 하는 겁니까?”
내 맞은편에 자리 잡은 강대현 교수가 태연하게 말을 이어 나가는 모습에, 역시 교수들은 세상이 망해도 바뀌지 않는구나 싶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거점의 안위, 생존자들의 생활에 대해 가장 많이 신경 써 주고 있지 않나? 아까 낮에 자네가 이곳저곳을 돌면서 거점의 문젯거리를 찾는 걸 봤거든. 밤에 사람들을 모이라고 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겠지?”
“사기꾼보다 눈치 빠른 인간은 없다던데 이제 보니 더 강적이 있었네요.”
“사기꾼보다 더 똑똑하고 더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 바로 교수니까. 눈치 없으면 이 짓도 못 해먹었지.”
오랜 사회생활이 순수했던 사람을 이렇게 바꾸는 법이라고, 그렇게 덧붙인 강대현 교수는 소고기 무국에 밥을 말아서 국밥처럼 시원하게 퍼먹었다.
“그래서 역시 저 바깥의 괴물들이 문제가 될 것 같나?”
“알고 계셨습니까?”
“알고 있었다기보단, 현시점에서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건 같은 인간이 아니라 저 괴물들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콩나물무침을 입에 한가득 밀어 넣으며 으적으적 씹어 댄 그는 냉수 한 모금으로 입 안을 정리했다.
“이건 단순히 내 추측이지만, 일단 들어 보게. 내가 인제대에 갇혀 지낼 당시에 몸소 느꼈던 바에 의하면…… 저 괴물 놈들은 물리적으로 접근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을 본능적으로 알고 찾아오는 것 같아.”
“확실히 인제대는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과 그 양아치 놈들까지 다 합치면 제법 많은 수가 모여 있었죠.”
능력을 각성한 몇몇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 제 세상이라도 찾아온 양 날뛰던 놈들이 떠올랐다.
“자네가 우리를 구출하러 오기 전에 인제대의 생존자가 얼마나 있었을 것 같은가? 200명? 300명? 아니야. 적어도 1천명 가까이 있었네.”
“……그렇게나 많았단 말입니까?”
“내가 사태 초기에 대충 확인한 인원만 그 정도이고, 실제로는 훨씬 더 많았겠지. 처음에는 그 못돼 먹은 양아치 놈들도 일단 살아남으려고 사람들을 동원해서 바리케이드를 쌓거나, 조잡한 무기 같은 걸 만들어서 대응반을 꾸렸네. 사람들을 쫓아온 좀비 몇 마리 따윈 이쪽에서 머릿수로 찍어 눌러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상황이 급반전했네.”
나는 소고기 무국이 식는 것도 잊은 채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내가 없었던 장소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의 전말을 듣는 것은 곧 중요한 정보가 되고, 그 정보야말로 힘의 원천이었기에.
“어느 날 갑자기 치고 들어온 수백 마리의 괴물들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지. 그 어떤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몰려든 놈들은 엉성한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사람들을 마구 학살했어. 난 가장 안전한 본관에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지만, 나중에 꽤 많은 사람들이 죽고 그 괴물들처럼 변했다는 걸 알았지.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는 거야. 그다음은 부지 내에서 고립된 기숙사가 당했으니까.”
“좀비들이 몰려왔다는 걸 알았으면 서로 뭉쳐서 맞서 싸우는 게 보통 아닙니까? 사람이 많았다면서요?”
아니면 다 같이 후일을 도모하며 도망가든가.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총이나 폭탄처럼 대단한 무기도 없고, 이곳처럼 튼튼한 방벽도 없는데 사람들 사기가 어땠겠나? 본관은 더 많은 바리케이드를 지어서 기숙사 측과 접점을 완전히 차단해 버렸고, 기숙사 측은 그대로 갇혀서 고사하느냐, 뚫고 나가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어.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더 많은 힘과 물량에 짓눌려서 전멸했지.”
“그래서 대학교 부지 내부에 좀비들이 그렇게 많았군요.”
나는 처음 좀비 사태가 발발하자마자 대학교 내부에서 팬데믹이 터지는 바람에 그렇게 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외부에서 대량으로 유입된 좀비들이 생존자 수백 명을 집어삼키면서 수가 불어났을 줄이야.
그러니 최정수 그놈도 결국 위치를 사수하는 게 아니라 내가 확보한 홈마트를 강탈해서 새롭게 자리 잡으려 했던 것이겠지.
“그런데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고 해서 좀비들이 그걸 어떻게 알고 우르르 몰려들겠습니까? 다수의 사람들이 발생시키는 소음이 작지는 않으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소음이 원인일 가능성도 있지만 난 좀 다르게 보네. 자네는 저 위험한 바깥을 누구보다 많이 돌아다녀 봤으니 알 것 아닌가? 놈들은 사람을 사냥하고 있어. 그리고 숙련된 사냥꾼은 본능적으로 사냥감이 많은 포인트를 본능적으로 찾아다니는 법이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영운 학교를 장악하고 있던 놈들은 철저하게 같은 사람을 약탈하는 놈들이었음에도 거점의 구조를 보면 좀비들의 습격을 방어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 많은 바리케이드 하며, 운동장으로 대놓고 들어오는 적들을 요격하기 위해 설치한 벽돌 투사기나 대인 살상용 새총, 그리고 외부 침입에 대비해 학교 내부까지도 요새화했었다.
이미 근방에서 자신들과 대적할 인간 세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그토록 방어에 전념하고 있었다는 건, 놈들 역시 좀비들에게 노려지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리라.
‘심지어 놈들은 꾸준히 자전거 동호회 놈들을 동원해서 좀비들을 외부로 흘려보내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외부의 침입을 우려했다는 건 좀비들의 대규모 공세를 사전에 파악했다는 거겠지.’
아마 그걸 파악하는 역할은 시내 곳곳을 도는 자전거 동호회 놈들이 맡았을 거다.
나만큼이나 바깥을 자주 쏘다니는 놈들이었으니 좀비들의 움직임이나 규모, 혹은 새로운 좀비의 등장을 눈치채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을 터.
그렇다는 건 본래 그쪽으로 나뉘어서 움직여야 할 좀비들이 지금은 우리 쪽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것 아닌가?
“아직 김해 전역을 둘러본 건 아니지만, 일단 김해 시내에서 규모가 큰 생존자 거점은 몇 없을 테니, 확실히 위험하긴 하군요.”
“듣자 하니 사태 초기에 김해 공항에도 엄청난 수의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지? 하지만 거긴 군대가 지키고 있는 데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큰 강이 있어서 안전해. 반면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은 우리는 영락없이 독박을 쓰게 된 상황이지.”
방벽이 있고 자시고 활천초 거점이 좀비들에게 있어서 ‘물리적으로’ 가장 접근하기 쉬운 거점이니까 집중 공략당한다니. 솔직히 말해서 좆같다.
“돌겠네.”
나는 식은 밥과 국을 후루룩 마시듯이 먹어 치우고, 서둘러 움직였다.
내 예상이 맞다면 좀비들의 대규모 공세가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