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정착기 (29)
박지찬은 두돈반 트럭을 몰고 김해 공항으로 복귀하면서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느라 여념이 없었다. 고작 한나절 만에 일어난 것치고는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다양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적막과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도로를 조용히 가로지르면서 조수석 창가에 멍하니 머리를 대고 있으려니, 대뜸 운전대를 잡고 있던 그의 후임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져 왔다.
“박 병장님, 그 사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가?”
“아니, 그게……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혼자서 그 많던 좀비 떼를 싹 쓸어버리는 능력하며, 거대한 병원이나 홈마트를 자기 집인 양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딜 어떻게 봐도 평범하지는 않잖습니까?”
“확실히 평범하지는 않지. 그러니까 김 대위 그 새끼도 강제 징집해서 병사로 묶어 두려고 했던 거고.”
‘중대장’으로 전직한 김 대위는 자신을 이승권이라고 소개한 남성에게 살해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병사들을 꽉 잡고 있었다.
비유가 아니라 김 대위는 각성하면서 얻은 직업 스킬을 이용해, 자신의 휘하에 군인 직업으로 각성한 사람들을 두고 반강제적인 지휘권을 가졌던 것이다.
당연히 처음 지휘를 받아들이기 전에는 거부권이 있었지만, 원래 병사들은 멋모르고 장교들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또한 당연히 군인으로서 당연히 따라야 하는 의무인 줄 알고, 반강제적인 지휘권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덜컥 수락해 버렸다. 때문에 최근까지 노예처럼 굴려지고 있었던 게 바로 박지찬을 포함한 각성자 병사들이었다.
그가 죽은 지금은 중대장의 직업 스킬이었던 ‘지휘권’도 사라지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은 김해 공항에 묶인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김해 공항에 있는 무수히 많은 민간인과 상관들은 또 다른 김 대위나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나도 그 사람을 두려워해야 할지 고마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그런 인간 군상을 본 적이 있었어야지. 확실한 건 그런 인간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거야.”
“그건 맞는 말입니다. 설마 그 김 대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맨손으로 제압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김 대위는 비단 지휘권 하나로 각성자 병사들을 휘어잡은 건 아니었다. 특유의 노련한 정치질과 일반인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는 체술의 소유자였다. 군 장교로 임관하기 전에는 사회에서 격투기를 배웠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그런 사람을 고작 맨손으로 반 죽여 버린 것도 모자라, 서슴없이 권총을 빼앗아서 흉부에 두발, 머리에 한 발을 박는 치밀함까지 보여 주었다.
만약 이승권이라는 남자가 군복만 입고 있었다면 무심코 특수 부대 소속이라고 착각해 버릴 만큼 깔끔한 솜씨였다.
‘마치 살인 기계 같았지.’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며 물자를 구하던 자신들조차 아직 인간의 형상을 한 것들에게 총을 쏘는 데 주저함이 있건만, 그의 눈빛과 표정에는 그 어떤 동요나 망설임도 없었다.
홧김에 우발적으로 상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니까 당연히 죽인다는 것처럼.
“내 추측이 맞다면 아마 그 사람 북진군 소속이었을 거다.”
“6년 전에 전쟁 발발하자마자 7기동 군단이랑 같이 치고 올라갔다는 최전방 부대 말하는 겁니까?”
“그때 전쟁 발발하자마자 즉각 피해 복구하고 재편해서 치고 올라간 부대는 소속 같은 거 안 따지고 전부 북진군이라고 부른다더라. 남쪽 최전방에서 북쪽 최전방까지 치고 올라갔다고.”
6년 전, 지금 자신들이 군에 입대하기는커녕 아직 신검조차 받지 못한 애송이들이었을 때다.
당시 갑작스럽게 전쟁이 발발하면서 고등학생이나 이제 막 성인이 된 20대 초 남성들이 자신들도 전장 한복판에 끌려가는 것 아닌가 하고 두려워할 때, 그들은 이미 북한 땅을 누비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 북한 땅으로 간 건 당시 현역 최전방 군인들과 동원령이 떨어진 예비군들이었지. 우리가 군에 입대했을 무렵에는 전쟁이 반쯤 끝나 가고 있던 분위기라 인원 교체는 없었고.”
전쟁이 지속된 지 대략 4년이 조금 넘었을 무렵에는 굳이 신병들을 북한으로 보내지 않았다. 이미 수십만이 넘는 현역병과 예비군들이 북한을 죄다 점령하고 영토 복구 사업 및 대민 지원을 하고 있었으니까.
굳이 그런 곳에 새파란 신병들 보내서 부모뻘 유권자들에게 미움받고 싶은 대통령과 정치인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종전 선언 이후 북한에서 복귀한 ‘북진군’ 소속 군인들에 대한 시선은 영 곱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로 전해져 오는 내용은 어디서 누가 죽거나 다치고, 어느 지역이 파괴됐다는 내용뿐이었으니까.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전쟁 영웅이 아니라, 사람 죽이는 법만 배워 온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어떻게 나라가 군인을 그딴 식으로 대우할 수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6.25 전쟁 참전 용사들에게도 그런 취급을 했는데 또 못 하리란 법은 없었다.
그리고 이제 박지찬을 포함한 물자 수색 팀은 한때 북진군이 받아야 했던 부조리를 자신들이 받아야 할 차례라는 걸 느꼈다.
김해 공항과 김해를 이어 주는 유일한 대교를 통과하자 커다란 방벽 너머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군인들이 그들을 반겨 주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는가는 잠시 제쳐 두고, 어쨌든 두돈반의 화물칸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화물이 적재되어 있었으니까. 그게 곧 자신들이 먹고 입고 쓸 것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후, 춥다 추워! 너희도 고생 많았다! 인원 보고부터 하고 얼른 들어가서 물자 채워 넣어. 지금 안쪽에서 사람들이나 배급 언제 해 주냐고 난리다 아주.”
임시 초소 안쪽에서 병사들과 함께 입김을 불며 걸어 나온 쏘가리가 기뻐하는 내색을 비쳤다. 비각성자인 그는 바깥에서 좀비들과 사투를 벌일 필요가 없었기에.
“총원 서른 명에 작전 중 사망 열셋, 낙오 하나, 부상자 둘, 복귀자 열여섯입니다.”
“……김 대위님은?”
“유감스럽게도 김 대위님께서 가장 먼저 사망하셨습니다. 작전 중에 돌연변이 좀비 무리의 기습을 받아서 그만…….”
“야, 이 새끼야, 그걸 말이라고!”
말이 아닐 건 또 뭔가?
주제도 모르고 자신보다 더 강한 각성자, 거의 확실하게 북진군 출신임이 틀림없는 사람을 상대로 까불다가 골로 가 버렸는데.
하지만 무턱대고 ‘그 사람이 김 대위님을 죽였습니다.’라고 말했다간 정말로 그를 적으로 돌리게 될 판이라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그가 어떤 직업으로 각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선보인 스킬은 중무장한 군인 수십 명과 필적하는 화력을 투사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개인의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절대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저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지금 두돈반 상태 한번 보십쇼. 이거 솔직히 중간에 도로에서 퍼지지 않은 게 기적입니다.”
“하, 씨……. 돌겠네, 진짜.”
박지찬의 말대로 정말 두돈반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당장 정비에 들어가야 할 만큼 차체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거나 찌그러진 것은 물론, 누가 흘렸을지 짐작되는 핏자국이 진득하게 눌어붙어 있었다.
사실 보병 수송 장갑차나 무장이 탑재된 험비를 내줬다면 이보다 피해는 훨씬 적었겠지만, 상층부에서는 그 또한 군의 중요한 전략 자산이라며 내주지 않았다.
생각보다 사망자 수가 많자 쏘가리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지만, 곧 그는 자신의 책임 소재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깨닫고 차량을 통과시켰다.
어차피 상층부의 불호령을 받는 건 자신이 아니라 물자 수색 팀이라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다른 병사들이 똥 씹은 표정을 지었지만 박지찬은 후임을 다그쳐서 얼른 두돈반을 몰았다.
사태가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김해 공항의 화물 창고에 한가득 쌓여 있던 각종 상품이나 물자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먹을 입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 입들은 화물 창고에 우르르 몰려와 군인들을 상대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아니, 언제까지 우리더러 기다리라고만 할 겁니까! 당신들이 배급을 약속했잖아!”
“우리 애가 벌써 하루 종일 물 한 모금밖에 못 마셨어요! 언제는 우리의 안전을 책임진다더니!”
“사실 우리 몰래 당신들끼리만 뭐 먹고 있는 거 아냐?! 책임자 나오라고 해!”
“바깥 소식을 알려 주지 않는 것도 수상쩍어! 이거 사실 가짜 뉴스 아냐? 가짜 뉴스가 아니면 왜 정보를 통제하냐고오오!”
박지찬은 저도 모르게 쌍소리가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정작 그의 심기가 뒤틀린 것과는 반대로, 화물 창고로 천천히 들어오는 두돈반 행렬을 보고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그때 한 남성이 두돈반을 가리키며 외쳤다.
“배급이다!!”
그 외침이 신호탄이 된 것일까.
곧 수많은 사람들이 군인들의 통제와 만류도 뿌리치고 두돈반 주위로 몰려들었다. 자칫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기에 일단 정차시키고, 박지찬이 무전을 넣었다.
“물자 수색 팀 방금 막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시민들이 몰려들어서 물자 하역을 못 하겠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무턱대고 물자 나눠 주지 말고 일단 최대한 사람들 진정시켜! 그거 함부로 나눠 주면 큰일 난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쉽냐고 쏘아붙이려던 박지찬은 일단 화물칸으로 올라가서 우르르 몰려든 시민들을 진정시켰다.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물자는 충분히 있습니다! 먼저 창고에 하역을 한 다음 배급할 예정입니다! 여기서 이러시면 물자 하역을 하기가 힘드니 우선 진정들 하시고…….”
“야, 이 군바리 새끼야!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당장 거기서 비켜!”
“그래! 사실 너희들끼리만 뭐 처먹고 있는 거 모를 것 같아?! 우린 쫄쫄 굶고 있는데 어딜 집 지키는 개들이……!”
박지찬은 순간적으로 허공에 소총을 마구 쏴 버릴까 고민했다.
북한에서 직접 북한군과 맞서 싸운 북진군에 비하면 후방 부대에서 꿀이나 빨던 자신들이 ‘군바리’ 취급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건 맞다. 희생한 사람과 희생하지 않은 사람의 대우는 차등이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자신들은 뒤늦게 각성하면서 일반인보다 좀 더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바깥에 나가서 물자를 구해 와야 했다. 딱히 괜찮은 보수나 대접을 받지도 못하는데.
당장 이번 원정에만 해도 열넷이라는 결원이 발생하지 않았던가. 서른 명 중에 열넷이면 절반이고, 실제 전쟁에서 군 병력의 절반가량을 잃었다는 건 사실상 전멸을 의미한다.
그런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꾸역꾸역 물자를 구해 왔더니만 듣는 소리가 군바리에 집 지키는 개라니.
박지찬은 곧 안쪽에서 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군인들이 우르르 달려 나오기 전까지 필사적으로 화를 참아야 했다.
왜 이승권이 강제 징집에 대해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단순히 싫고 귀찮고를 떠나서, 굳이 먹을 필요도 없는 욕을 바가지로 먹어 가며 이런 혐오스러운 일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박지찬은 딱히 유명한 예언자가 아니었지만, 이 김해 공항의 최후가 어떨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