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정착기 (25)
‘총성?!’
대한민국의 사지 멀쩡한 남성 중에 실제 총성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상두를 비롯한 측근과 부하들은 척수 반사로 자세를 바짝 낮추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고요한 오밤중이라 그런지 총성은 매우 컸다.
타타타! 타타타!
심지어 단발로 그친 것도 아니었다. 연사에 가깝게 울려 퍼진 총성은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듯 학교 전체를 공포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참다못한 최상두의 측근 중 한 명이 악을 썼지만 상황 파악이 될 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총 같은 정말 귀한 무기는 일개 부하들이 가질 수 없었으니까.
지금껏 이 근방에서 총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좀비 사태 이후 몇몇 낙오된 경찰이나 군인들이 총을 가지고 있었고, 세력 다툼이나 좀비와의 사투 중에 종종 사용하기도 했으니까.
최종적으로 세력 다툼에서 승리한 최상두와 그의 측근들이 총기를 탈취하기는 했다. 38구경 리볼버 세 정과 K-2 소총 한 정이 전부였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총을 사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상두가 순간적으로 오한을 느낀 이유는 총성이 들려오는 간격과 횟수 때문이었다.
‘대체 얼마나 많이 쏠 셈이지?’
번쩍이는 총성과 고함, 비명 때문에 영운초 옥상에서 무차별 사격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눈치챘다.
하지만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총성은 좀처럼 잦아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체불명의 상대는 백화점에 방문한 VIP 고객처럼 한도 따위 존재하지 않는 카드로 팍팍 긁어 대듯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보통 현대 소총이란 건 풀 오토로 갈겨 버리면 30발들이 탄창을 다 비우는 데 3초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지금 상대는 콸콸 흘러내리는 수돗물처럼 탄약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각성자다!’
최상두의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채업자인 그는 자신에게 엮인 수많은 ‘빚쟁이’들 덕분에 정기적으로 대량의 DNA 샘플이 들어온다. 그가 괜히 무리해서 세력 다툼을 해 가며 최대한 많은 인구를 확보한 게 아니었다.
그에게 얽힌 빚쟁이들이 많아져야 더 강해지는 구조였기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수백 명 단위의 생존자 그룹 리더가 될 수 있지 않았던가.
그런 최상두였기 때문에 DNA 샘플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가장 먼저 눈치챘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DNA 샘플만 손에 넣으면 상점창에서 온갖 사치품이나 생필품, 각종 장비나 도구를 사들일 수 있다는 것을.
굳이 저 바깥에서 좀비들에게 물어뜯길까 봐 가슴을 졸이지 않아도, 그저 숨 쉬고 있기만 해도 DNA 샘플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그에게 이 시스템은 최고의 혜택이었다.
그러나 자신조차도 탄약을 저렇게 물 쓰듯이 사용할 수는 없다. 그에게는 도구 제작 스킬도 없었고, DNA 샘플로 탄약을 구입하는 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당장 그가 사용할 담배와 술, 그리고 부하들에게 뿌릴 몫을 구입하는 것만으로도 DNA 샘플이 쪼들리는데, 대체 어떻게 탄약 같은 걸 구입하겠나.
‘그래도 혹시 몰라 예비분은 사 뒀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지 모르겠군.’
정체도, 목적도, 심지어 규모조차 알 수 없는 상대가 먼저 기습적인 학살을 벌였다. 맞서 싸우는 건 필연적이지만 그 뒤가 예상되지 않는다.
“혀, 형님. 총성이 멎었습니다.”
“나도 알아, 새끼야.”
총성이 멎었고, 비명도 멎었다.
총을 쏘던 놈이 죽었는지 총에 맞아야 할 놈들이 다 죽었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옥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십 명의 부하들이 삽시간에 몰살당한 것이다.
이 틈을 노리고 부하들과 함께 치고 올라가, 옥상에서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어 있을 놈을 덮쳐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그때.
정적에 내려앉은 옥상 난간을 타고 무언가가 굴러떨어졌다.
쿠웅!
단단한 지면을 뒤흔들며 요란하게 추락한 것은 머리통이 박살 난 시체였다. 정확히는 최상두가 새총과 투석기를 만들게 해서 사수로 직접 임명했던 부하였다.
차갑고 먼지로 가득한 지면 위에 널브러진 시신은 뜨끈한 피와 살점을 주변에 흩뿌렸다. 박살 난 머리통에서 흘러내린 안구가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최상두와 그 부하들을 노려보는 듯했다.
“우욱!”
“새끼가 눈치 없게!”
“좀비 머리통도 터뜨려 본 새끼가 이제 와서 지랄은……!”
몇몇 부하들이 호들갑을 떠는 다른 부하들을 타박했지만, 정작 최상두는 그런 부하들의 거슬리는 언행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아직 상대의 정체도, 규모도 모르지만 지금 눈앞에서 떨어져 박살 난 시체를 보고 확신이 들었다.
상대의 목적은 자신들의 확실한 죽음이라는 것을.
범죄자 생활을 시작한 그에게 전쟁은 좋은 돈벌이 수단이었다.
당장 전장으로 끌려가는 건 젊고 건강한 청년들뿐이었고, 음지에 숨어서 남의 등골을 뽑아 먹는 자신들은 편하게 본업에 충실할 수 있었다.
전쟁이 격화되면서 이래저래 재산상 피해를 본 사람들이 제법 많았고, 그런 사람들에게 돈을 꿔 주면서 높은 이자를 받아먹는 사채업자의 삶은…… 확실히 과거보다 윤택했다.
미국의 도움을 받는 한국이 북한에게 질 리가 만무했고, 전 국민이 가장 우려했던 핵무기도 전쟁 초기에 우선적으로 제압했다고 들었으니까.
그래서 전쟁 따윈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사채를 굴리던 그도 ‘소문’은 들은 적이 있다.
1년 전에 종전 선언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기 전까지, 약 5년 동안 한반도 북부에서 벌어진 온갖 다양한 참상과 괴담 같은 이야기들을.
공공연하게 핵무기까지 개발하고, 갑자기 한국에 선제 타격을 할 정도로 미쳐 있던 유사 국가 북한은 전 세계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끔찍한 곳이었다고 한다.
마치 내전과 테러로 일그러진 아프리카와 중동을 보는 듯한 잔혹함이 그곳에 있었고, 그 잔혹함은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파괴했다는 모양이다.
그중 대표적인 일화가 바로 ‘시체 보여 주기’였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극소수의 군인들이 공공연하게 자행했다는 그 전쟁 범죄.
잔혹하게 사살하거나 고문한 상대측 군인의 시체를 대놓고 적지 한복판에 내던지거나, 그들의 시야가 닿는 곳에 허수아비처럼 배치해 두고 정신적 공포를 심어 주었다던 기만전술.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최상두는 눈앞에서 박살 난 시체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종전 선언 후에 북한에서 복귀한 참전 군인들 중…… 김해로 내려온 서울 출신 퇴역병이 한 명 있지 않았던가?’
사채를 굴리던 최상두가 전쟁 때문에 급전이 필요했던 어느 부호의 별장을 담보로 받았던 기억이 있다.
최종적으로 그 별장은 공인중개사를 통해서 처리했었는데, 그때 공인중개사가 말하길 굉장히 젊은 청년이 현찰 박치기로 그 비싼 별장을 구입했다고 했다.
전후에 경제 사정이 꽤나 어려웠을 텐데도 무식하게 현찰 박치기를 한 사람이 누구인가 싶어 조금 알아봤더니, 서울에서 내려온 퇴역병이었다.
5년간 전장에서 굴렀으니 국가에서 받은 보상금이 많았겠구나 싶어서 넘어갔는데…….
‘설마 진짜 그놈인가? 총탄이 빗발치는 북한에서도 사람 갈아먹는 기계로 유명했다던 그 악마들 중 하나였다고?!’
아니, 무엇 하나 확실한 건 없다. 이 또한 어쩌다 들어맞은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 그래야만 한다.
잠시 호흡을 고르던 최상두는 곧 마음을 다잡고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어! 그 새끼가 건물 옥상에 있다면 지금쯤 내려오고 있을 거 아냐! 다 같이 올라가서 조져!!”
“하지만 상대는 총이 있지 않습니까, 형님.”
“이 새끼야! 우린 총 없냐?! 그리고 방금 그 새끼가 낭비한 탄약은 못해도 수십 발이었어! 지금쯤 빈털터리거나 탄약이 얼마 안 남았을 거다! 그냥 다 같이 가서 포위하고 조져 버리면 돼!!”
최상두가 나름 논리정연하게 윽박지르자 부하들도 마지못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총 맞아 죽는 건 누구보다 싫었지만, 그렇다고 이곳에서 절대 권력이나 다름없는 최상두에게 보복당하는 건 더 싫었으니까.
무엇보다 이만한 쪽수가 나름대로 무장을 갖추고 있는 상태다. 한술 더 떠서 믿음직한 각성자들도 여럿 있었으니 믿는 구석도 있었다.
‘상대가 혼자라면 차라리 땡큐다. 그놈 모가지 따 버리고, 그놈이 가진 걸 내가 흡수하면 그만이야.’
최상두는 각성자가 다른 각성자를 죽이면 경험치 일부와 DNA 샘플, 그리고 소지한 아이템까지 모두 흡수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상대가 강하면 강한 대로 잡아먹는 맛이 있고, 반대로 충분히 강하지 않다면 결국 자신이 이기는 것이니 걱정을 덜게 되는 셈이다. 어느 쪽이든 리스크보다 리턴이 컸다.
‘전쟁이 끝난 지 벌써 1년도 넘었다. 실제로 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든 건 2~3년 전후라고 했으니 퇴역병이래 봤자 그리 대단할 것도 없겠지.’
오히려 상대가 허세를 부리기 위해서 자신들 앞에 시체를 내던진 것이라면? 자신이 불리한 걸 아니까 최대한 이쪽을 겁먹게 할 생각이었다면?
최상두는 다수가 가진 폭력의 힘을 믿는다. 소수는 절대로 다수의 폭력을 이길 수도, 버틸 수도 없다. 지금껏 수많은 빚쟁이들이 그래 왔다.
“빨리빨리 움직여! 우리 거점에서 본 적 없는 새끼가 침입자다! 처음 보는 새끼는 이유 불문하고 무작정 조져 버려!!”
사람들 사이에 숨으려고 해도 소용없다. 이미 배신을 염두에 두고 서로 얼굴과 이름까지 다 외워 뒀는데 제깟 놈이 어쩌려고?
자신감을 되찾은 최상두는 직접 품에서 38구경 리볼버를 뽑아 들고 허공에 공포탄을 발포했다. 부하들의 기세를 드높이는 것과 동시에, 건물 어딘가에서 이 총성을 듣고 겁먹을 상대를 조롱하기 위함이었다.
“만호, 우리 중에서 사격 스킬을 가진 건 너뿐이니까, 여차하면 네가 놈을 잡아라.”
“맡겨만 주십쇼, 형님. 제가 언제 실망시켜 드린 적 있습니까?”
군대 소속이었다가 각성자가 되면서 넘어온 김만호가 자신의 소총을 내보이며 씨익 웃었다. 김만호는 무려 사격 스킬이 무려 B등급에 달하는 인재 중 하나였다.
아까 군인들이 갑자기 들이닥쳤을 때도 무턱대고 저들과 접촉하면 안 된다고 조언해 주었던 만큼, 최상두는 그의 능력과 머리를 믿었다.
곧 기세를 등에 업은 부하들이 일제히 건물 내부를 수색하기 시작하자 최상두와 김만호도 움직였다.
예상대로 상대는 건물 안에서 아직 빠져나가지 못했는지, 저 위에서 총성과 고함이 울려 퍼졌다.
다만 옥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차별적인 난사는 더 이상 없었다. 상대가 탄약을 아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럼 그렇지!’
민첩한 몸놀림으로 최상두보다 먼저 움직인 김만호는 K-2 소총을 들고 부하들과 함께 섞여 올라갔다.
상대는 자신이 포위당할 것을 우려했는지 그야말로 학교 내부를 종횡무진 하며 누비고 있었다.
4층에서 총성이 들리는가 하면 갑자기 3층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5층 유리창이 깨지면서 또 다른 누군가가 지면으로 추락했다.
김만호는 부하들을 먼저 4층으로 올려보내고, 조금 전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 3층 복도에 멈춰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무작정 우다다다 움직이는 최상두의 부하들과 달리 상대는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 소란 속에서도 발걸음이나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타탕!
‘방금 총성이 외부에서 울려 퍼졌다?’
설마 창밖에서 배관과 벽을 타고 재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다.
김만호는 즉시 총을 꼬나쥔 채 3층의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침 이쪽이 동쪽 끝이니 창밖을 내다본다면 상대의 움직임이 훤히 보일 것이다.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창문을 조심히 열고 바깥으로 몸을 내민 그때.
김만호의 뒤통수에 ‘뜨겁게’ 달아오른 금속이 닿았다. 그것은 틀림없는 총구였다.
“어떻게……!”
“지금이 밤이라는 걸 잊었나?”
“……!”
“그리고 건물 내부에 있던 횃불이나 촛불이 모두 꺼져 있다는 걸 눈치채지도 못했군. 전쟁이 끝난 후 편하게 후방에서 굴러먹느라 기본적인 것도 못 배운 모양이지?”
최상두의 부하들은 숫자가 많다. 모두 합치면 가볍게 100명이 넘을 정도로.
그리고 지금은 어두컴컴한 밤이다. 전등은 켜지지 않고 손전등도 별로 없어서 원시적인 촛불과 횃불에만 의지해야 하는 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겠으며, 자신이 무작정 후려친 사람이 동료였는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것도 힘들 터.
자신의 뒤통수에 총구를 갖다 댄 남자는 다람쥐처럼 건물 내외부를 돌아다니면서 총을 쏘고, 고함을 지르고, 무차별적인 폭력을 유발해서 ‘혼란’을 가중시켰다.
최상두가 부하들을 무작정 밀어 넣은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그래도 내가 외벽을 타고 돌아다닐 거라는 발상은 좋았어. 10점 주지.”
100점 만점에, 라는 말을 덧붙인 그는 김만호가 움직이기 전에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