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정착기 (21)
나는 병원 부지의 초입을 넘지 못하고 그대로 몰살당한 좀비들의 산더미 같은 시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워낙 경황이 없어서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좀비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특이한 신체 구조를 가진 놈들을 포착해 냈다.
좀비들이 떼지어 몰려올 때는 이족 보행이든 사족 보행이든 가리지 않고 인간을 향해 무질서하게 달려든다. 그래서 짐승처럼 네발로 뛰어드는 놈을 보고 그러려니 했는데, 어깨에 뚫린 기이한 구멍에서 무언가를 쏘아 내는 것 아닌가.
내 눈썰미가 워낙 좋았기에 망정이지, 방심하고 멀뚱멀뚱 서 있었더라면 나도 주사기 덫에 당한 좀비 놈들처럼 고슴도치 신세가 될 뻔했다.
다행히 어깨에 뚫린 구멍에서 이상한 가시를 쏘아 대는 사족 보행형 좀비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일반 좀비보다 맷집은 더 약한지, 머신 피스톨 터렛을 살짝 조정해서 집중포화를 갈겨 주는 것만으로도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나는 발치에 떨어진 녹색의 뾰족한 가시를 발끝으로 툭툭 쳤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한 그것은 틀림없는 얼음송곳이었다.
‘좀비가 자신의 체액을 얼려서 특수한 신체 기관을 이용해 발포한다? 이건 또 처음 보는 타입이군.’
녹색 연기를 뿜어 대는 폭탄 좀비도, 그런 좀비의 녹색 연기에 감염되어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강화 좀비도 봤다. 이제 와서 또 다른 타입의 좀비가 나타났다고 한들 당혹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주변에는 없던 타입을 굳이 여기까지 끌고 온 저 머저리 새끼들에게 빡쳤을 뿐이다.
내가 처리한 좀비들은 곧 알아서 사라지고 DNA 샘플과 경험치로 들어올 터. 저 바깥에서 또 다른 좀비 무리가 습격해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나는 천천히 뒤돌아섰다.
지금 와서야 알게 된 건데, 거점 방위 무기는 거점 바깥의 존재를 공격하지 못하는 대신, 거점 내에서 발생하는 소음도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는 것 같았다.
발칸포나 자동 포탑, 머신 피스톨, C4 RC카 등 하나같이 소음이 심한 무기들뿐인데 지금까지 그 소음에 어그로가 끌린 좀비들은 없었기 때문이다. 장점이 명확하면 단점도 명확하다, 시스템은 이런 부분에서 철저했다.
“이야, 이런 곳에 아직 징집이 안 된 인재가 있었네?”
허가도 없이 내 거점에 발을 들인 머저리들 낯짝이나 보려고 했더니만, 가장 먼저 치고 들어온 두돈반에서 건들거리는 인상의 남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삐딱하게 눌러쓴 베레모, 대충 걸친 탄창 조끼, 군장도 차지 않고 무전기와 장교용 권총을 가지고 있는 게 전부였다. 연령은 대략 30대 초중반 정도로 추정되었으며 계급은 대위, 김지석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그보다 방금 뭐라고 했지?
“어느 부대 소속입니까?”
“그건 알아서 뭐 하게? 징집도 거부한 민간인이 그런 거 물어볼 짬은 있나?”
나는 거점 방위 무기의 외부인 요격 설정을 ON으로 바꿀지 말지 꽤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당장 버튼 하나만 누르면 눈앞의 머저리를 다짐육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3주 전에 큰 소동이 벌어지고 나서부터 군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봤으니 문제없지? 그리고 이런 곳에서 머무르고 있다면 라디오 방송 정도는 들어 봤을 거야. 김해 공항에서 집결한 병력이 재편되었고 피난민 수용소 역할을 하고 있다고.”
“듣긴 했습니다.”
“그럼 답 나왔네. 지금은 국가적 재난 상황, 즉 전시 체제이고 병역 의무가 있는 대한민국 모든 남성들은 군에 징집돼야 한다는 거. 거부하면 병역법 위반인 건 알지?”
“그래서 저도 징집하겠다 이겁니까?”
내가 그리 되묻자 김지석 대위는 잠시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더니 씨익 웃었다.
“보아하니 사지도 멀쩡해 보이는 데다 아직 젊고, 무엇보다 능력이 출중해 보이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지금 수많은 피난민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는데, 설마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저버리겠다고 하지는 않겠지?”
김지석 대위가 허리춤의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은근한 어조로 물었기에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혹시 뒤에 계신 분들도 대위님이랑 같은 생각입니까? 제가 군에 징집되어 신성한 병역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쟤들은 끽해야 병들인데 왜 물어봐? 현장 지휘관이자 징집 권한이 있는 나한테 물어봐야지.”
“민주주의 국가잖습니까. 다수의 의견이 존중돼야죠.”
“허! 이 친구 재밌네. 그래서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우리가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가는 거랑, 이런 인재를 데리고 돌아가는 거랑 어느 쪽이 더 나은 것 같아?”
김지석 대위의 말에 두돈반 트럭 주변에 가만히 서 있던 병사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들 이런 상황에서 민간인을 강제 징집하는 게 영 내키지 않아 하는 눈치였으나, 그렇다고 김지석 대위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다.
내 능력을 알아봤다는 건 저들 역시 각성한 능력자들이라는 뜻이고, 개중에서도 각성한 병사보다는 각성한 장교의 능력이 어쩌면 더 대단할 수도 있다.
저들 사이에서 은연중에 깔린 김지석 대위에 대한 공포를 느낀 순간, 어떤 답이 나올지는 안 들어도 뻔했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법대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결국 어떤 병사가 대표로 총대를 메자 김지석 대위가 한층 더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사실 병사가 동의하지 않아도 내게 총구를 들이밀며 강제로 동행을 요구(?)했을 것 같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렇다고 하네? 여기 있는 사람들이랑 물자 챙겨서 우리랑 같이 김해 공항으로 가 줘야겠…… 억?!”
빠직! 으드득!
김지석 대위가 내 앞에서 건방지게도 등을 돌린 틈을 타 나는 놈의 무릎 안쪽을 힘껏 발로 내려찍고, 강제로 무릎이 꿇려진 놈의 안면에 주먹을 때려 박았다.
권총에 손을 가져다 대려던 놈의 시도는 손목을 발로 짓밟아서 저지했다. 그것도 모자라 발끝을 힘껏 비틀어서 손목을 아주 아작 내 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이 미친 새끼가!!”
“아가리.”
빠악!
엉거주춤한 자세로 엎어진 놈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기에, 그대로 놈의 턱주가리를 돌려 버렸다.
강냉이 몇 개가 핏물과 함께 후두둑 떨어져 나오자 놈은 가벼운 뇌진탕으로 혼란스러워했다.
그때 전방에서 반사적으로 내게 총구를 겨누는 군인들이 양손 들고 제자리에 무릎 꿇으라느니 같은 상투적인 대사를 내뱉었다.
물론 나는 눈앞의 버러지를 계속 두들겨 패면서, 머신 피스톨의 총구를 저들에게 겨누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좀비들을 무자비한 화력으로 쓸어버리던 머신 피스톨의 총구가 자신들에게 향하자 총구를 들어 올린 몇몇 군인들이 기겁했다. 지금 불리한 건 내가 아니라 자신들이란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어억, 크흡! 너, 너 이 새끼…… 군인 상대로…… 이딴 짓을 하고도……!”
“좀비들이 득시글거리는 바깥에 제 발로 기어 나온 놈 하나 죽인다고 해서 의심받을 것 같진 않아.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이번에는 내가 김지석 대위의 입장이 되어 묻자 병사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 입장에서 충분히 공포스러웠을 김지석 대위가 지금은 내 손에 뭉개지고 있으니 겁먹을 만했다.
“너도 꼴에 각성자랍시고 기세등등했던 모양인데, 날 네 밑으로 들이고 싶었으면 하다못해 나보다 강하다는 걸 증명해 보였어야지.”
“크흡! 그게, 무슨……?”
“아마도 ‘중대장’이나 ‘현장 지휘관’으로 각성했을 네 직업 숙련 레벨은 얼마나 될까? 3? 5? 장담컨대 10은 안 될 거야. 약골 냄새가 물씬 풍기거든.”
지금 내 직업 숙련 레벨은 21이다. RPG 게임처럼 근력, 지구력, 민첩 같은 가장 기본적인 스테이터스는 표기가 되지 않지만, 아마 직업 숙련 레벨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내가 느끼기에 이놈은 좀비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실전으로 다져진 내 체술에 반응할 수 있을 만큼 신체 능력이 대단하지도 않고, 즉시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스킬도 없었다.
아마 자신에게 소속된 군인(병)을 지휘하고 운용하는 데 특화된 직업이겠지. 왜 능글맞게 억지를 부리면서 나를 자신의 휘하인 병사로 징집하려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날 징집해서 네 수족으로 부려 먹을 생각이었겠지. 안 봐도 뻔해. 너 같은 인간 군상을 전장에서 질리도록 봐 왔거든.”
“크으으으…….”
“그리고 신성한 병역 의무? 좆까라 그래. 신성하지도 않고 의무 운운할 자격도 없는 그딴 책임, 난 떠안을 생각 없어.”
내 5년은 국가가 억지로 지운 책임 속에서 피와 화약으로 절여졌고 내 인생을 더러운 하수구 밑으로 내려보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웃대가리들의 작전에 밤이고 낮이고 시달린 것도 모자라, 언제나 총성과 비명이 난무하는 전선에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같은 병사들이었다.
“김해 공항에서 너흴 어떤 목적으로 내보냈는지도 대충 알겠어. 각성했으니 남들보다 조금 더 뛰어나다는 이유만으로 바깥에서 물자를 구해 오라고 내보낸 거겠지? 당장 너희부터 웃대가리들의 말도 안 되는 명령에 농락당하고 있으면서, 그 부조리를 타인에게 떠넘길 생각까지 하고 있었던 거야. 너희나 그놈들이나 역겨운 건 똑같아.”
그리고 나는 사회 재건에 방해되는 불순물들, 특히 내 앞에서 얼쩡대는 버러지들을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핏물을 토해 내며 컥컥대고 있는 김지석 대위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들고 놈에게 들이밀었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도 ‘어어?’ 하면서 우려를 표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이런 화근을 굳이 남겨 두는 건 고구마 잔뜩 먹은 놈들이나 하는 짓 아닌가? 난 고구마보다 사이다가 더 좋은 대한민국 최고의 섹시남 이승권이다.
탕탕! 탕!
가슴에 두 발, 미간에 한 발,
모잠비크 드릴(Mozambique Drill)을 확실하게 박아 넣어 놈을 침묵시키자 좀비 떼를 처리했던 것보다 조금 더 많은 경험치가 들어왔다. 같은 각성자를 죽인 것으로 나름 쏠쏠한 경험치가 들어온 것이다.
축 늘어진 시체와 상호 작용을 해 보니 의외로 DNA 샘플은 100개도 채 되지 않았다. 즉 이놈은 자신의 손으로 죽인 좀비가 100마리도 채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레벨이 낮을 만했다.
“약골인 데다 무능하기까지 한 새끼였군.”
놈의 인벤토리에 들어 있던 잡다한 아이템과 DNA 샘플까지 모두 회수하고 나니 놈의 시체는 좀비와 하등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어 산처럼 쌓여 있는 좀비들의 시체 사이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놈에게 해 주려다 잊었던 마지막 말을 해 주었다.
“난 병역 면제야, 씨발 놈아.”
너희 같은 종자들을 대신해서 희생한 덕분에 부모도, 명예도, 인생도 잃고 여기까지 내려온 인생 낙오자라는 뜻이지.
퉤, 하고 침을 뱉어 준 나는 벙찐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군인의 ‘군’자만 들어도 전신에 두드러기가 일어날 만큼 혐오스럽지만, 김지석 대위와 달리 이들에게 악의가 없었다는 사실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저만한 수의 좀비들에게 쫓기다가 김지석 대위의 명령에 따라 이곳으로 잠시 몸을 피했을 뿐인 사람들 아닌가. 정말로 악의가 있었다면 내가 좀비들을 처리하자마자 뒤통수에 총알부터 박고 이곳을 약탈했겠지.
‘최소한의 양심을 지켜 줬으니, 그에 걸맞는 대접은 해 드려야지.’
인벤토리에서 물티슈를 꺼내 피 묻은 손을 박박 문질러 닦은 뒤, 얼어붙어 있는 그들의 최고 선임을 찾았다. 곧 자신을 박지찬이라고 소개한 병장이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보아하니 좀비들의 습격에 피해가 극심한 것 같군요. 특히 운 나쁘게도 현장 지휘관을 잃은 것에 대해 심심한 유감을 표합니다.”
“아, 아닙니다.”
“그래도 이렇게 빈손으로 돌려보내자니 제 마음이 편치 않고, 또 여러분이 제게 악감정을 품을 수도 있으니…… 최소한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적당히 챙겨 드리겠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아니, 감사합니다!”
그래, 병장쯤 되면 눈치가 있어야지.
너희도 여기서 ‘불운하게’ 작전 중 사망하고 싶지는 않잖아?
“의약품이랑 생필품, 식료품을 좀 넉넉하게 챙겨 드릴 테니, 대신 저랑 일 하나만 합시다.”
최근 다른 거점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 홈마트 위쪽 지역에 자리 잡고 있을 또 다른 양아치 패거리들이 자꾸 거슬리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들을 이용해서 처리한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도 잡을 수 있으리라.
“듣자 하니 김해 공항은 물자도 부족하고 인재도 부족하다면서요? 일 하나 같이 해 주면 둘 다 챙겨 드리겠습니다.”
나 같은 선량한 시민을 강제 징집할 게 아니라 근본이 썩어 빠진 양아치 같은 놈들을 데려다 써먹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