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68)화 (69/227)

68화 정착기 (18)

대한민국 대통령은 참 어려운 자리다.

대통령직이 쉬운 국가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대한민국은 동아시아에서도 가장 대통령 해 먹기 힘든 나라로 손꼽힌다.

왜냐하면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선거로 뽑히는 국가 지도자이자,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이 매우 격렬하게 정치적 논쟁과 전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그뿐이라면 좀 낫겠지만 이놈의 빌어먹을 나라는 땅덩어리도 좁은 주제에 쓸데없이 최악의 지리 선정까지 갖추고 있었다.

종전 선언을 하는 것으로 지도상에서 완전히 북한을 지우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항상 전쟁과 핵 위협에 시달리는 국가였고,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중국과 러시아라는 위협적인 이웃을 두고 있었다.

태평양 쪽으로는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미국 때문에 마지못해 이웃사촌 노릇을 해야 하는 일본이 있었고, 저 아래쪽 동남아에선 제대로 협력하기 힘든 필리핀과 대만, 베트남 등이 있었다.

멀쩡한 이웃도, 깊은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국가도 없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허구한 날 정치와 혐오 논쟁이 끊이질 않고, 사상과 이념의 대립으로 저놈을 죽이네 살리네 하는 개 막장 집구석을 그나마 유지시키려면 누군가가 총대를 메야 했다.

당연하지만 그 역할은 대부분 대통령의 몫이었다.

독도함의 VIP실에 홀로 앉아 줄담배를 뻑뻑 피워 대고 있는 노년의 남성은 이제 일국의 지도자라고 할 수도 없는, 망국의 대통령 이세호였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선거를 이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결국 제2차 남북 전쟁이 터지고 대한민국에서도 꽤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몹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가는 단계에서 예정된 선거 유세를 펼치며 정부를 압박, 반전 여론을 부추기면서 자신은 평화 대통령이 되겠노라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권력의 독점을 끔찍이도 혐오하는 국민 정서 때문에 전쟁 중이라는 특수성을 등에 업었음에도 전 대통령은 군말 없이 물러나야 했다.

전쟁이 거의 끝나 가고 있다는 걸 모르는 국민이 없었고, 종전 선언이 가까워진 마당에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보류하겠다는 건 자칫 독재자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권력을 더 가지고 있겠다는 제스처라도 취했다간 반전 여론과 함께 대통령 탄핵이니 하야니 아주 난리가 벌어졌을 거다. 그걸 모르지 않았던 전 대통령은 미련 없이 권력을 이양했다.

그렇게 이세호가 당당하게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까지는 좋았다.

실제로 그가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 전선은 완전히 정리되었고, 한반도 북부 복구 작업과 각종 개발 사업이 동시에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분위기도 좋았다. 종전 선언을 하는 건 누워서 떡 먹기였다.

대통령이 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종전 선언을 하면서 평화 대통령 공약을 이행한 덕분일까, 지지율은 그야말로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무섭게 치솟았다.

뉴스에선 연일 한반도에 드디어 영구적이고 불가역적인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종전 선언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고, 국민들 역시 머지않아 경제가 활성화될 거라는 사실에 부푼 꿈을 품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그런 얘기가 있지 않았던가.

북한과 통일하고 나면 대륙 철도를 깔아서 중국과 러시아 여행을 가겠다느니, 러시아 가스관을 설치해서 대한민국의 가스 비용이 훨씬 더 절감될 거라느니, 다양한 직업과 기회가 생길 거라느니 등등.

아이러니하게도 이세호 대통령 역시 국민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 정권이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 대다수를 넘겨받은 것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계획대로 진행하기만 하면 절대로 손해를 볼 수 없는 구조였다.

개발 사업으로 해외 투자도 받고,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국제 정세 속에서 좀 더 많은 외교적 카드를 선택하고, 겸사겸사 세금도 팍팍 걷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일도 좀 벌이고.

대체 그 상황에서 자신이 꽃길이 아니라 지옥불꽃길을 걷게 될 거라고 그 누가 예상이나 한단 말인가.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벌어지고 만 것이다.

“최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 좀비라니!!”

까앙!

홧김에 내던진 유리 재떨이가 VIP실 벽에 부딪치며 튕겨 나왔다. 워낙 두꺼운 재떨이라 그런지 깨지지도 않았다.

“그런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냐고……!”

전쟁 중에도 중국발 유행성 호흡기 질환이 한창 전 세계를 돌고 있었기 때문에 ‘환자’에 대해서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워낙 변이가 자주 일어나서 치료제는커녕 기껏 만든 백신도 무용지물이 됐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기는 했지만, 원래 바이러스란 변이하면 할수록 치사율은 떨어지고 감염성만 높아지는 법이었다. 그래야 숙주를 더 오래 살려서 더 많이 증식할 수 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일반 감기보다 훨씬 더 약해지거나 대충 그와 비슷한 종으로 자리 잡고 인류와 공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평소처럼 국민들에게 마스크 잘 쓰기, 손 잘 씻기, 거리두기 유지하기 같은 지침만 내리면 되는 줄 알았단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서울에서 갑자기 빠른 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괴질(전문가들은 그렇게 불렀다)은 순식간에 정상인들을 환자로 만들었다.

기존의 유행병과는 궤를 달리하는 이상 증세와 미친 전염성, 그리고 숙주를 보존시켜서 증식이 목적인 바이러스에 어울리지 않는 높은 치사율까지.

전국적으로 빗발치는 이상 사태에 대한 보고와 물밀듯이 밀려드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그쪽 방면에서 문외한인 이세호의 머리통을 터뜨릴 기세였다.

일단 질병 본부에서 제시한 안대로 환자들을 격리하고 정확한 역학 조사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펑’ 하고 터져 버렸지만.

“인구 천만을 자랑하는 대도시가 그렇게나 쉽게 무너질 줄이야…….”

VIP 전용 헬기를 타고 가까스로 탈출하던 그날, 대한민국 최대의 대도시가 한순간에 지옥으로 전락하는 광경을 목도했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죽었던 인간이 되살아나며 거리를 활보했다. 급하게 나선 군대와 경찰이 어떻게든 그들을 제압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문자 그대로 수십만에 달하는 거대한 인파가 그들을 쓸어버렸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괴물들이 한 줌도 아니고 수십만 단위로 몰려다니면서 도시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광경이 어땠을 것 같은가? 단테의 신곡에서 묘사된 지옥은 소꿉장난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가까스로 서울을 탈출한 자신은 얼마 남지 않은 비서와 보좌관을 데리고 독도함에서 더부살이 신세를 지고 있다. 권력을 상실한 정치인은 사실상 뒷방 늙은이나 다름없었기에, 지금의 실세는 독도함 함장인 박명식 대령에게 있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어째서 일개 대령 따위에게 파워 싸움에서 밀릴 수 있는가 묻는다면 답은 간단했다.

지지해 줄 국민도, 지도할 국가도, 지휘할 군인도 없는 대통령은 동네 바둑이만도 못하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군인들 역시 힘없는 대통령 나부랭이에게 충성하고 목숨을 맡기느니, 차라리 오래전부터 모셔 왔던 상관을 모시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라가 망한 판국에 손바닥 뒤집듯 충성의 대상을 바꾸는 건 일도 아니겠지. 그들을 통제할 자신이 없었던 이세호에게는 차라리 다행이기도 했다. 최소한 뒷방 늙은이로 있으면 곤경에 처할 일은 없을 테니까.

똑똑똑.

“……들어오게.”

고급 원목 테이블에 신경질적으로 담배 꽁초를 비벼 끄며 말하자 곧 정장 차림의 남성이 들어왔다. 그와 함께 헬기를 타고 탈출했던 비서실장이었다.

“김 실장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 자네가 처리해야 할 실무는 더 이상 여기에 없는데.”

“……그런 말씀 마십시오, 각하. 대한민국 헌법이 존재하는 한 여전히 각하께서는 임기가 남은 대한민국 대통령이십니다.”

“하! 대한민국 헌법은 고사하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송두리째 망해 버렸는데 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자네도 귀가 있다면 이미 전해 들었을 텐데? 전 세계가 한국이랑 같은 꼴을 당했다고.”

놀랍게도 그 소식을 전해 온 건 북한에서 급히 탈출해 독도함과 합류한 미 해군 소속 군함이었다.

대한민국과는 달리 미국은 전 세계를 감시, 감청할 수 있는 인공위성이 넘쳐 났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도 꾸준히 본국으로부터 양질의 정보를 받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건 그 미국조차도 국내에서 터진 좀비 사태를 이겨 내지 못하고 최후의 항전이 가능한 몇 개의 도시만 남긴 채 전멸해 버렸다는 것이지만, 어쨌든 전 세계가 좀비 사태로 신음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래도 아직 움직일 수 있는 미군은 제법 됩니다. 북부 지역에 고립된 자국 군대도 제법 있으니 그들을 다시 규합한다면 사회를 재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미군들조차 북한에서 급하게 도망쳐 나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설령 군대를 규합한다고 해도 이런 시국에 대체 어떤 군인이 힘없는 대통령의 명령을 들으려고 하겠나? 오히려 대가리 굵은 장성들이 군벌로 돌변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하지만 언제까지고 배 위에서 머무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사람은 육지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겨울이 머지않았습니다. 물자의 소모도 훨씬 빨라질 텐데…… 독도함에서 버틸 수 있는 기한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3개월이 안 된다고 합니다.”

그야 그렇겠지. 자신을 포함해서 서울에서 탈출한 고위 관료와 정치인 대부분이 독도함으로 피신했고, 배를 타고 탈출한 소규모 군부대나 민간인들도 독도함으로 몰려들었다.

애초에 독도함은 미 해군이 자랑하는 초대형 항공 모함(10만 톤급)과 달리 장기 작전 수행 능력이 몹시 부족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먹는 입은 늘고, 제때 보급받지 못한 물자는 빠르게 줄고 있으니, 군인들까지 총동원해서 때아닌 고기잡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안 그래도 최근 낚시를 하거나 그물을 던지는 배가 늘고 있다고 들었다.

“다행히 미군 측에서 우리와 협력할 의사가 있음을 표명했습니다. 자리를 마련해서 함께 앞으로에 대해 의논을 해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우선 저쪽에서 정한 옵션은 크게 세 가지라고 밝혔습니다.”

“얘기나 들어 보지.”

“옵션 A는 이대로 함께 북상해서 블라디보스토크로 들어가는 겁니다. 러시아라면 겨울에 대비가 잘되어 있을 테니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이용하면서 재정비를 하는 것도 괜찮을 거라더군요. 그다음으로는 비슷한 조건을 가진 일본의 홋카이도가 옵션 B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시사철 추운 지역이라 겨울철 방한 대비가 잘되어 있다는 점, 넓은 지역에 비해 인구가 적어서 좀비 사태로부터 어느 정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축산업과 낙농업이 발달해서 식량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마지막 옵션 C는 안 들어 봐도 알겠군. 제주도겠지?”

“예, 제주도의 지리적 특성상 좀비의 외부 유입이 발생하기 어렵다는 점, 남부 지역이라 한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하다는 점, 그리고 식량과 군수 물자의 안정적인 보급이 가능하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되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엄연히 러시아 땅인 데다, 한국이 북한과 전면전을 벌이면서 러시아 극동군이 집결된 지역이기도 했다. 당연히 러시아 입장에선 선뜻 미군과 한국군을 받아 줄 가능성이 낮다.

그다음으로는 홋카이도인데, 일본이 한국보다 먼저 좀비 사태로 쫄딱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굉장히 불안한 위험 지대였다. 오죽하면 일본에서 건너온 크루즈 선이 부산항을 뚫고 들어와 난장판이 벌어졌다고 할 정도니까.

마지막으로 제주도. 이건 꽤 걸어 볼 만하다. 제주 해군 기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군함의 정박 및 수리가 가능하고, 군수 물자와 식량 보급도 용이했다. 특히 한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하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던 이세호였지만, 그도 결국 사람이었기에 허무하게 죽기는 싫었다.

“회담에 응하겠다고 전하게.”

답은 제주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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