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67)화 (68/227)

67화 정착기 (17)

“처,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상태가 좀 안 좋아 보이긴 했지만 몸에 이런 이상한 고름 같은 건……!”

“우리 같은 비전문가가 섣불리 단정 지을 수는 없죠. 확실한 건 그 녹색 연기에 무방비하게 노출됐던 사람이 이렇게 변한다는 건데, 그럼 다른 환자들도 위험하지 않을까요?”

내 추측에 김진경 경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 저 안쪽에서 사지를 묶어 두고 상태를 지켜보고 있는 다른 환자들도 ‘처리’해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아직 좀비로 변하지 않은 사람, 혹은 얼마나 오염이 진행되었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을 무턱대고 처리하는 건 굉장히 꺼려지는 일이었다.

나라면 거점의 안전과 다수의 안위를 위해서 망설임 없이 처리하겠지만, 이곳의 책임자는 일단 김진경 경장이었으니까.

이렇게 명확한 증거가 있다면 모를까,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환자들에게 총구를 겨눌 만큼 김진경 경장이 냉혹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딜레마군.’

기본적으로 질서와 규칙, 선의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자칫 악행으로 보일 수 있는 일에 섣불리 나서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 만큼 독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시간을 질질 끌게 된다.

그러니 적당한 선에서 끊어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경장님도 아시겠지만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법은 없습니다. 그런 게 있었다면 이런 사태도 진즉에 해결됐겠죠.”

“…….”

“멀쩡했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했다는 건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반증입니다. 우리 같은 비전문가들이 뭘 얼마나 알겠느냐마는, 집중 치료실에 넣고 항바이러스제니 뭐니 다 때려 박아도 아마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겠죠.”

좀비 바이러스가 그렇게 약하다고 생각되지도 않을뿐더러, 이미 좀비화가 진행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인력과 물자는 굉장히 비효율적일 것이다.

“대신 이렇게까지 상태가 심각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상태를 호전시키거나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말이에요.”

“…….”

전부 죽일 거냐, 아니면 이렇게 상태가 심각한 사람만 처리할 거냐. 그렇게 묻는 내 말에 김진경 경장은 입술을 짓씹었다.

우리 앞에 널브러져 있는 남성은 딱 봐도 이미 글렀다. 신체 곳곳에 따개비처럼 돋아난 흉한 녹색 고름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고, 골격도 뚜두둑, 우득 소리를 내면서 조금씩 뒤틀리고 있었다.

아마 체외가 아니라 체내에서도 크기를 키우고 있는 고름 덩어리 때문에 골격 구조까지 뒤틀리고 있는 모양인데, 이대로 계속 내버려 두면 뭐가 됐든 끝이 안 좋을 거다.

“상태가 이렇게 심하지 않은 환자들이라면…… 도와주시겠습니까?”

“사람 한 명 한 명이 아까운 시대인데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려야죠.”

“그럼…… 알겠습니다.”

결정을 내린 김진경 경장은 기계실에 있던 포대 자루 같은 것을 가져오더니, 좀비화가 진행된 남성의 몸 위에 덮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통에 대고 정확히 권총을 두 발 쐈다.

포대 자루를 덮어 둔 덕분에 수상쩍은 녹색 고름이 튀어 오르지는 않았지만, 달걀 썩는 냄새보다 훨씬 지독한 악취가 퍼지기 시작했다. 역시 거리 중에 퍼지고 있는 녹색 연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어째서 내 거점에 공기 청정 설비가 추가되었는지 알겠군. 이런 오염성 독가스가 거점을 통째로 무력화시키는 걸 막아 주는 수단이었던 거야.’

만약 공기 청정 설비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생화학 공격에 노출되었다면 나를 포함해서 생존자 대다수가 곤경에 빠졌을 것이다.

이 지역에 유독 생존자 비율이 적고 좀비들이 많은 이유도 납득이 간다. 인제대 학생들이 어째서 민간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급하게 자신들만 빠져나가려 했는지도 알 것 같고.

서둘러 기계실 문을 닫고 빠져나온 우리는 환자들이 있는 창고로 돌아왔다.

다행히 그곳에 포박되어 있는 환자들 중 정신을 차린 이들에 한해서 녹색 고름이 생기거나 괴력을 발휘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이송하기 전에 그들의 옷을 들춰 보며 꼼꼼하게 좀비화 진행 유무를 파악했다. 지금부터 병원으로 이송할 예정인데 뒤늦게 좀비화가 진행 중이었다는 게 밝혀지면 우리 모두 곤란해지니까.

“1층에 구급차를 대기시켜 뒀으니 환자들부터 이송하죠. 낡고 오래된 장비들은 부피만 차지하니까 차라리 버리세요. 병원으로 가면 새로운 장비를 지급해 줄 거예요.”

“아까 위에서 큰소리가 났던 게 구급차였습니까?”

“구급차치곤 좀 큰데, 아무튼 구급차는 맞아요.”

분류상 군용 장비일 뿐 용도는 틀림없이 응급 환자 구출 및 이송이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간이 들것을 만들어서 환자들부터 옮겼다. 다행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환자들은 쉽게 옮길 수 있었지만, 의식이 있는 환자들이 중간중간 발작을 일으켜서 조금 난감했다.

지상(바깥)과 가까워질수록 발작의 빈도나 강도가 눈에 띄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도 그들이 심각한 환각 증세를 겪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 세뇌를 당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저런 증세를 보인다는 건 뇌의 문제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전쟁이나 흉악 범죄의 참상을 겪은 사람들도 중증 PTSD가 도질 때마다 매우 리얼한 환각에 시달리니 아주 틀린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겪어 봤으니까 알지.

저 잠재적 위험 요소를 가진 환자들을 무심코 포로로 잡혔던 북한군과 겹쳐 보면서 ‘다 쏴 죽여 버려야 하는데.’라고 생각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말을 꺼내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전부 탑승했습니다!”

“좌석에 앉은 분들은 안전벨트 매시고, 환자분들이 발버둥 치지 못하도록 제대로 지켜봐 주세요.”

나는 운전석에, 김진경 경장이 신기한 얼굴로 조수석에 탑승했다.

“저도 국산 장갑차를 본 적은 있는데, 이렇게 생긴 구급차는 생전 처음 봅니다. 대체 어디서 이런 물건을 가져오신 겁니까?”

“경장님처럼 저도 신비한 능력이 있거든요.”

“!”

내가 지나가는 어조로 담백하게 말하자 김진경 경장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게 무슨……?”

“에이, 이제 와서 서로 숨기고 그러지 말죠.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일반인은 그런 상황에서 신체 능력이 극도로 향상된 좀비를 당해 내지 못해요. 당황하거나, 어둠 속에서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다른 건 다 제쳐 두더라도 총알이 부족하거든요.”

경찰 한 명이 소지할 수 있는 실탄은 10발도 되지 않는다. 하물며 김진경 경장은 방탄복도 입지 않은 단촐한 제복 차림이었기에, 좀비 사태가 벌어진 당일에 ‘완전 무장’을 하지 않고 도망쳤을 가능성이 높았다. 정확히는 완전 무장을 할 시간도 부족했겠지.

그런 사람이 권총 한 정과 실탄 몇 발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거의 기적에 가깝다.

습격해 오는 좀비들을 처리하고, 온갖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데 들어가는 최소 비용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실탄 수십 발 이상일 테니까.

나는 운전석이 뒤 칸과 분리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재차 물었다.

“각성하셨죠? 아마 좀비를 죽인 그 순간 ‘생존할 자격이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거예요.”

“……맞습니다. 그렇게 말하시는 걸 보니 승권 씨도 각성하신 모양이군요.”

“저도 살아남으려고 부단히 노력했거든요.”

굳이 위험한 바깥으로 기어 나가서 경찰서를 털고, 좀비가 들끓는 거리를 헤쳐 나왔다.

아마 각성의 중요한 요인은 위험으로부터 도망치고 숨으려는 사람들과, 그에 맞서고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채성아도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여성의 몸으로 온갖 위험을 무릅쓰면서 개고생을 했으니 각성한 것이고, 처음부터 성격이 비뚤어진 양아치 놈들이 좀비 몇 마리 운 좋게 잡아서 각성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생존이란 곧 경쟁, 경쟁이란 곧 먹고 먹히는 싸움을 의미한다. 그럴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선인이든 악인이든 가리지 않고 능력을 주는 게 바로 ‘시스템’이 아닐까 싶다.

‘즉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최소한의 자격이라면, 좀비를 자기 손으로 직접 죽여야 한다는 게 각성의 트리거라고 할 수 있겠군.’

어쩔 줄 몰라서 그냥 도망치고 숨어 지내기만 했던 사람들이 어째서 각성을 못 했는지 알 것 같다. 설령 그들이 뒤늦게 좀비를 때려잡는다고 한들, 확고하게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되지 않았으니 각성도 못 한 것이리라.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승권 씨 말대로 처음 그 좀비…… 라고 하는 괴물을 죽였을 때 각성한 게 맞습니다. 당연히 경찰관이라는 직업을 얻었고, 민중의 지팡이라는 스킬과 사격 스킬, 그리고 거점 사수 스킬을 얻었습니다.”

딱 예상했던 대로의 내용이었지만, 나는 일단 잠자코 운전하면서 그의 얘기를 경청했다. 사실 조금 전부터 이쪽에 어그로가 끌려서 꽤 많은 좀비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에 운전에 집중해야 했다.

“민중의 지팡이 스킬은 민간인, 중립과 선 성향의 아군을 보호할 때 발동하는 패시브 스킬인데, 적이나 악 성향 상대를 대상으로 추가 피해를 입힐 수 있고, 원거리 무기의 명중률이 크게 늘어난다고 합니다. 실제로 실험해 보니 꽤 효과가 있었습니다. 사격 스킬은 그냥 원거리 무기를 다룰 때 보정 효과를 받는 정도입니다.”

사격 스킬은 나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안다. 총만 있다면 신병도 베테랑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가성비 스킬이었다.

“마지막으로 거점 사수 스킬 말인데, 이게 승권 씨가 추측한 대로의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정 거점을 사수하고 있을 때는 일정 시간마다 소지 중인 원거리 무기의 소비재(탄약, 화살, 쇠구슬)를 보급받습니다. 이 스킬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겁니다.”

내가 퇴역병이라서 거점 지정(C-), 거점 경계 강화(E), 거점 방어 강화(E) 스킬을 가지고 있는데, 정작 거점 사수 스킬이 없다는 게 참 아쉬웠다.

아, 혹시 퇴역병은 특정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군수품 보급을 받을 수 없다는 설정이라 그런가? 그렇다면 경찰관 직업이나 군인 직업을 가진 각성자들 중 일부는 김진경 경장처럼 거점 사수 스킬을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최후의 보루 스킬이 있어서 다행이야. 이거 없었으면 그냥 게임 던지고 GG 쳤다.’

“솔직하게 말해 줘서 미리 고맙다고 말해 두죠. 경장님은 앞으로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지키게 될 거예요.”

부아아아앙!

본격적으로 속도를 높인 나는 대로 한복판으로 쏟아져 나온 좀비들을 마구 치면서 길을 열었다. 뒤 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쿵쿵 부딪치는 소리에 불안해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우직하게 액셀만 밟았다.

건물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예의 녹색 좀비가 몸을 크게 부풀리더니 폭탄처럼 펑 터졌다. 차로 쳤을 때와 다르게 스스로 폭발한 놈이 내뿜은 녹색 액체는 좀 더 형광색에 가까웠다.

딱 봐도 기분 나쁜 체액을 뒤집어쓴 차량의 겉면이 미약하게 타들어 가는 것 같았지만 운전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반대로 앞길을 가로막고 있던 주변의 좀비들은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흐물흐물 녹여 버렸다. 같은 좀비도 예외 없이 녹여 버리는 지독한 강산성에 혀를 찼다.

녹색 연기도 골치 아픈데, 저렇게 작정하고 자폭해 버리면 맨몸의 인간은 버틸 방법이 없다. 자폭하기 전에 죽이든가, 최대한 폭발 범위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덜컹거리는 차량 안에서 안전봉을 붙잡고 있는 김진경 경장이 그 광경을 지켜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런 놈들이 버젓이 바깥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이 근방에 생존자가 없을 만합니다. 어떻게 여기서 지금까지 버텨 왔는지…….”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진 않을걸요.”

화약과 광기의 시대가 이미 이 나라를 한번 휩쓸었듯이, 피와 공포의 시대가 도래했을 뿐이다.

거기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살아남든가, 죽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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