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정착기 (16)
나도 내가 왜 갑자기 분노했는지 이유는 모른다.
지난날 동안 쌓여 있기만 하고 제대로 해소한 적 없었던 스트레스가 ‘놈’을 보자마자 갑자기 폭발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금 여기서 저 괴이한 것을 끝장내지 않으면 후환이 생길까 우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나는 이미 액셀을 밟았고, 15톤이 넘는 초중량 공격을 감행했다. 일개 살덩어리에게 행하기엔 너무나도 잔혹하고 무자비한 공격이었으나, 인간 이승권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꽈아아아아앙!
살덩어리와 충돌한 것치곤 어마어마한 소음과 진동이 느껴졌다. 동시에 차량 전면의 비스듬한 유리창에 진녹색의 점액질이 확 튀어 오르면서 시야 일부를 가렸다.
어지간한 장애물도 가볍게 치고 다니는 장갑 구급차라서 살덩어리를 문자 그대로 분해시켜 버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결과라서 당황했다.
사람을 차로 힘껏 쳐도 쾅! 하는 정도의 소음으로 그치는데, 조금 전에는 무슨 폭격이라도 떨어진 줄 알았다. 실제로 그만한 충격량이 느껴지기도 했고.
일단 녹색 연기 근처에서 잔뜩 흥분한 상태로 돌아다니고 있던 좀비들의 어그로까지 끌린 관계로, 나는 거침없이 방향을 돌려 대로에서 벗어났다.
넓은 대로는 내가 다니기 편한 만큼 좀비들도 움직이기 편한 공간이다. 당연히 더 많은 좀비를 수용할 수 있고, 어그로가 끌린 상황에선 빠져나갈 확률은 크게 줄어들기 마련이다.
퍽! 퍽! 꽈앙!
다행히 녹색 연기에 자극받아 도심 곳곳으로 퍼져 나간 좀비들의 밀집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오히려 건물 사이로 들어오면서 수가 적은 좀비들 정도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짓뭉개는 것이 가능했다.
‘아무리 튼튼한 장갑 구급차라고 해도 내구도에 영향을 끼칠 만한 일은 자제하는 게 좋지.’
작은 데미지도 쌓이고 쌓이다 보면 부품 하나하나의 마모와 손상을 유발하는 법. 특히 일반 차량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섬세한 군용 장비이니만큼 신경 써야 했다. 혹시라도 야전에서 차량이 퍼지기라도 하면 정비 전문가가 아닌 이상 고치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그걸 잘 알고 있는 놈이 왜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놈을 냅다 들이박았느냐면…… 적을 들이박는 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박고 싶으면 박는 거지.
좀비들의 어그로를 조금이라도 풀어 두기 위해 조금 먼 길을 돌아서 김해 한전 건물 앞에 도달하니, 하필 재수 없게도 나와는 관련 없는 좀비들이 이미 건물을 공격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힘들게 배치해 둔 차량 바리케이드를 넘기 위해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덕지덕지 들러붙어서 철판을 뜯어내거나, 유리창을 박살 내는 중이었다.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뭔가 했나?’
우리가 병원을 확보할 때까지 김진경 일행이 충분히 버틸 수 있도록 식량과 식수도 나눠 주고, 환자들을 위해 경구 수액 요법 처치까지 해 주고 나왔다. 그런 마당에 굳이 그들이 위험을 감수했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후각이 없는 좀비들이 인간의 체취를 맡았을 리는 없으니 어떤 자극을 받기는 받았다는 건데…….
탕! 타앙!
“캬아아아아아아!”
“우아아아아아! 아아아악! 아아악!”
“쓰읍…….”
갑자기 건물 안쪽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총성에, 건물 앞에 몰려 있던 좀비들은 더욱 사납게 반응했다. 안 그래도 녹색 연기에 자극받아 도심 곳곳을 헤집으며 생존자를 찾아나서던 놈들인데, 대놓고 ‘나 여기 있소.’ 하는 꼴이었으니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차량은 대부분 바리케이드로 쓰고 있으니 건물 앞 주차장 공간은 비교적 널널해.’
이 정도면 얼추 진입 각과 드리프트 각이 맞아떨어지겠다고 판단한 순간, 순간적으로 속력을 높여서 바리케이드에 정신이 팔린 놈들의 옆구리로 치고 들어갔다.
콰가가가가각!
이제 막 뽑은 신차 옆구리에 스크래치가 나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화끈하게 긁어 버리는 나, 이 시대의 진정한 사나이였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노라.
정면이 아니라 측면으로 비스듬하게 들어가면서 갈아 버리자 바리케이드에 들러붙어 있던 놈들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문자 그대로 반갈죽돼 버렸다. 어찌어찌 살아남은 놈들도 상반신으로만 어기적어기적 기어 다니며 의미 없이 울부짖을 뿐이었다.
“오라이, 오라이!”
빠지라고 신호를 줘도 죽어라 차량에 달려드는 놈들 때문에 나는 하는 수 없이 후진으로 냅다 들이박았다. 지금까지 어찌어찌 바리케이드 역할을 해 주고 있던 차량과 함께 좀비들이 통째로 밀려 들어가면서 건물 입구를 박살 냈다.
딱 장갑 구급차 한 대가 들어갈 만큼만 공간을 확보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좀비들이 측면으로 비집고 들어올 여유는 없었다. 나는 그대로 후면 화물칸을 개방해서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산산이 부서진 유리 조각과 좀비의 것으로 추정되는 진득한 살점이 즈걱즈걱 소리를 내면서 밟혔다.
인벤토리에서 꺼낸 M16 소총에, 내가 직접 도구 제작으로 생성한 특수 탄창을 끼워 넣었다. DNA 샘플이 없었다면 총알을 만들기는커녕 경찰서나 군부대를 돌아다니며 힘들게 총알을 줍고 다녔을 텐데, 원자재까지 구입할 수 있는 상점창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한테 죽어 줄 좀비들한테도 감사해야지.’
밥 먹기 전에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내 뱃속으로 들어오기 위해 죽어 준 동식물에 대한 감사 표현이 아니던가.
조정간을 단발에서 점사로 바꾸고 안전 장치를 풀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이 20세기도 아니고 21세기인데 M16 소총을 쓰고 있는 내 신세가 조금 처량하게 느껴졌다.
AK만큼이나 전 세계에 널리 보급되었고 또 수많은 군인과 용병들에게 사랑받아 왔던 총기계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이놈이 가진 투박한 디자인과 묵직한 총성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다못해 군부대 총기함에 있는 구식 K-2라도 사용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경찰서 무기고에서 건진 이 구닥다리 소총은 좀처럼 내 손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상점창 무기 코너에도 슬슬 총기류가 등장하고는 있지만, 기본 가격이 최소 수천 DNA 샘플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가성비가 몹시 안 좋았다. 막말로 나처럼 DNA 샘플을 대량으로 수급할 수 없다면 총기 구입은 꿈도 꾸지 말라는 시스템의 농간처럼 보였다.
총기에 대한 불만도 잠시, 곧 지하로 통하는 계단 아래에서 희미하지만 확실하게 느껴지는 비릿한 냄새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인간의 몸에서 갓 흘러나온 혈향과 총구에서 터져 나온 화약 냄새는 꽤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사주 경계를 하며 계단을 내려가던 그때, 저 아래에서 또 한번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걸음걸이를 조금 더 빠르게 해서 다다다 내려가니 복도 정중앙에 익숙한 남자가 서 있었다.
“김진경 경장님?”
“누구…… 이승권 씨?”
“대체 무슨 일입니까? 바깥에서부터 총성이 울려 퍼지고 좀비들이 잔뜩 흥분해서 몰려들었던데.”
“설명하면 좀 복잡한데…… 후우…….”
그는 손전등 불빛으로 복도에 누군가가 흘린 혈흔을 내게 보여 주며 말끝을 흐렸다.
“두 분이 여길 떠나고 나서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환자들 중 일부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경구 수액 요법이 효과가 있었구나 싶었죠. 그런데 정신을 차린 몇몇 환자들이 갑자기 ‘자신을 부른다.’며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겁니다.”
“발작을 일으켰다는 겁니까?”
“겉보기엔 멀쩡해 보였습니다. 물을 주는 대로 잘 마셨고, 우리가 누군지도 알아보더군요. 그런데도 자꾸만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더니, 주변 사람들을 뿌리치고 건물 밖으로 나간 겁니다.”
“아, 그래서…….”
어쩐지 잘 숨어 있을 사람들에게 어째서 좀비들이 어그로가 끌렸나 싶었는데, 몇몇 환자들이 밖으로 뛰쳐나오면서 문제가 됐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어둡고 갑갑한 지하에서 깨어났으니까 너무 갑갑해서 그런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마치 자길 잡아먹어 달라는 듯이 좀비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더니 결국…….”
“그럼 방금 전 총성은 뭡니까?”
“저희가 필사적으로 붙들어 둔 환자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느라…… 몸져누웠던 환자치고 어찌나 힘이 센지 장정 서넛이 달려들었는데도 휙휙 뿌리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김진경 경장의 말을 요약하자면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정도가 되겠다. 웬 정신 나간 양반들 때문에 남아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위험해질 수는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조치이기도 했다.
실제로 저 위에서 어그로가 끌린 좀비들이 건물 내부로 침투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들었던 것을 내가 치워 내지 않았던가. 내가 김진경 경장이었어도 똑같이 대응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일단 임시방편으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사지를 묶어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처 손쓰기도 전에 빠져나간 환자 때문에 저만 이렇게 나와 있는 겁니다.”
“도와드리죠.”
권총보다는 그래도 소총이 낫지 않겠냐며 슬쩍 총구를 들어 보이자 그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이 시대에 몇 남지 않은 양심적인 민중의 지팡이가 어찌 좋아서 민간인을 죽이고 싶을까. 보호하고 살려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질서를 확립하고 규칙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총을 든 것에 불과하다.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진 않았지만 조금 전 제가 쏜 총을 어깨에 맞고 기계실 방향으로 뛰어갔습니다. 핏자국만 따라 가면 될 것 같은데, 아까도 말했지만 몸져누워 있던 환자치곤 이상할 정도로 힘이 넘칩니다. 그 점 유의하시고 따라와 주십쇼.”
“익숙합니다.”
좁은 통로, 어두운 공간,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적.
나는 북한 전역에 개미굴처럼 깔려 있던 수많은 지하 땅굴 중 하나로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앞서 걷는 김진경 경장의 측후방에 따라붙었다.
어딘가 음산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지하층 복도를 조용히 걷고 있으려니 괜스레 호흡이 빨라지는 것 같았다. 딱히 폐소 공포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러’ 긴장을 시켜 둬야 머리보다 육체가 먼저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성적인 판단보다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상황에선 자칫 시야가 좁아지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호흡을 짧게 끊으면서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는 것이다.
달그락.
저 안쪽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나는 김진경 경장의 오른쪽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그리고 기계실 안쪽으로 이어진 핏자국이 아닌, 기계실 옆에 세워져 있는 청소 용구함을 가리켰다.
내 의도를 알아차린 김진경 경장이 자연스럽게 청소 용구함을 지나쳐서 기계실 안쪽으로 진입한 순간, 반대편 화장실에서 검은 인영이 튀어나왔다.
“머리는 잘 썼네.”
타타타!
“그아아아아아!”
상반신이 아니라 하반신을 노린 점사에 반라의 남성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달려오던 자세 그대로 엎어졌다.
재빨리 뒤돌아선 김진경 경장이 바닥에 엎어진 놈에게 손전등 불빛을 비추며 총구를 들이밀었다. 청소 용구함에 있던 마른 대걸레로 바닥에 흘린 핏자국을 지워 내고 화장실에 숨어 있던 인간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게 무슨…….”
“…….”
고통스럽게 숨을 헐떡이고 있는 인간의 몸에는 보기 흉한 녹색 고름 같은 것이 두드러기처럼 잔뜩 올라와 있었다.
이제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아까 장갑 구급차로 그 녹색 좀비를 들이박으면서 이미 인정하고 있었다.
인간이 적응하고 변화하듯, 좀비 바이러스도 진화하고 변이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