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정착기 (12)
올해로 딱 40줄에 들어선, 이제는 아저씨 소리를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흉부외과의 김두성은 아직도 그날 일을 떠올릴 때마다 속이 메스껍고 전신이 움츠러들었다.
중증 외상 센터를 제외하면 사실상 인간의 체내를 가장 많이 보게 되는 외과 소속이다 보니, 레지던트 시절부터는 인간의 피나 살점을 봐도 무덤덤했던 그였다. 혼란스러운 응급실에서도 근무했었으니까.
오히려 의사로서의 경력이 늘수록 환자의 상태를 볼 때마다 어떻게 하면 더 빠르고 완벽하게 처치할 수 있을지, 어떻게 수술해야 환자의 생존율을 더 높일 수 있을지 기계처럼 고민하게 되었다.
그랬던 그가 여느 때처럼 혼란스러운 응급실로 실려 들어온 어떤 ‘환자’를 수술실에서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공포라는 것을 느꼈다.
당시 그 환자는 맹수에게 마구잡이로 물어뜯긴 것처럼 상반신이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교통사고나 공사 현장의 안전사고 때문에 끔찍한 몰골이 된 사람들은 수도 없이 봤던 그였지만, 인간이 다른 생물에게 습격을 당해 심하게 상처 입는 경우는 대한민국에서 정말 드물었다.
조폭 양아치들이 서로 조직 항쟁 중에 칼침을 놓는다든가, 통제되지 않은 대형견이 사람을 문다든가 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무언가가 인간의 상반신을 물어뜯고, 파내고, 갈기갈기 찢은 흔적을 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함과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 흉부외과의, 심지어 그는 어리숙한 인턴이나 레지도 아닌 베테랑 집도의였다.
특히나 응급실에서도 상태가 몹시 안 좋아 보이니 응급 수술부터 진행해 달라고 넘겨받은 환자가 아니었던가.
환부의 확인, 이물질 제거, 출혈 잡기, 손상된 장기를 일부 절제하거나 복구 시도, 수혈하면서 혈압 유지, 기타 등등 집도의가 뭘 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머릿속에서 떠올랐지만 선뜻 실행할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수술방에 들어와 있던 의사와 보조 간호사의 눈앞에서 상반신이 걸레짝이 된 환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으니까.
분명 미약하게 맥이 잡힐 정도로 목숨이 위태로웠던 의식불명 환자가 갑자기 수술대 위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은 꽤나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그것은 기적이나 우연 같은 게 아니었다. 그 상태의 인간은 물리적으로 절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환자는 언제 테이블 데스(Table Death)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죽음과 가까웠으니까.
그런데 대뜸 만신창이가 된 환자가 벌떡 일어나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김두성은 자신이 집도의라는 사실도 망각한 채 놀라서 자빠질 정도였다.
간호사가 본능적으로 환자를 눕히기 위해 팔을 내뻗은 순간, 그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을 사건이 발생했다.
피 칠갑이 된 환자는 자신에게 팔을 내뻗은 간호사를 확 잡아당기더니 사납게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굶주린 짐승처럼, 분노한 괴물처럼.
간호사의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 퍼지고, 수술실에서 항상 익숙하게 흘러내리는 인간의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의사들이 환자의 어깨와 팔을 잡고 떼어 내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목덜미를 절반가량 물어뜯긴 간호사는 바닥에 엎어져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다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그러자 환자는 다음 타깃으로 자신을 붙든 의사들을 노렸다.
이를 딱딱 부딪치면서 물어뜯거나, 피 묻은 손톱으로 그들을 할퀴기 위해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자, 잡아!
-환자분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지금 굉장히 위험하신 상태…… 악!!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 뒤였다.
성인 남성 둘이 달려들어도 제지하지 못한 ‘환자’는 재차 사람을 습격했고, 자신이 무언가에게 당했던 것처럼 게걸스럽게 물어뜯거나 할퀴고, 찢었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저런 짓을 서슴없이 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건 뒷전이었다. 김두성은 본능적으로 그들에게서 멀어져 수술실 입구로 달려 나가야 했다.
남아 있던 다른 의사 역시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바닥에 엎어져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간호사에게 발목을 붙잡히기 전까지는.
-악?! 기, 김 간! 갑자기 왜 그래!!
수술실을 떠나기 전에 김두성이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죽음에서 돌아온 간호사가 동료 의사의 종아리를 탐욕스럽게 물어뜯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흉부외과의였지만 그래도 명색이 의사였기에 눈앞의 이상 현상에 대해 짧은 추측을 할 수 있었다. 바로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였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괴이한 전염병이 퍼지고 있다는 추측도 아주 망상은 아니었던 셈이다.
당연하게도 그 뒤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바깥에서 들려오는 총성, 폭음, 사이렌 소리,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혼란스러운 응급실을 들이박은 구급차.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난장판 속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아직 ‘환자’가 아닌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일이었다.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영웅 심리보다는, ‘환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자신을 포함한 정상인들이 끔찍하게 죽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선 결과였다.
세상천지에 ‘환자’들이 늘어나고 원인 불명의 전염병이 창궐한 시점에서 흉부외과의에 불과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런 건 방역과 역학 조사, 그리고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는 사람들의 역할이다.
어떻게든 생존자를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가 늘어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서 그는 사람들을 지하로 안내했다.
병원 지하는 보통 보안과 관련된 구역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튼튼한 철문과 방화 셔터까지 있었다.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 시신을 임시로 안치하는 영안실과 염습실, 기타 중요 설비 보관 창고 등이 자리 잡고 있는 그 장소가 맞다.
그곳에서 최대한 버티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구조가 올 것이라고, 혹은 ‘환자’들이 또 다른 정상인들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일주일을 넘게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환자’가 아닌 정상인이 찾아왔다.
방화 셔터를 쾅쾅 두들긴 인물은 자신을 다른 병원의 간호사이자 생존자라고 소개한 여성이었다.
채성아라는 이름의 여성은 셔터 너머로 이곳의 내부 사정이 어떤지, 위독한 환자가 있는지, 식량이나 식수 등은 충분한지를 꼼꼼하게 캐물었다.
처음에는 혼자인 그녀까지 내부에 받아 주면 안 그래도 부족한 공간과 식수를 나눠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그녀는 오히려 역으로 식량과 식수, 구급 의약품 등을 나눠 주겠다고 말해 왔다.
실제로 그녀는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마술사처럼 깔끔하게 포장된 전투 식량이나 통조림, 생수 묶음을 꺼내 보였다.
그는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서 헛것을 보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으셔도 상관은 없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식량과 식수를 나눠 주세요. 제 동료가 이 병원을 확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무사하길 바라거든요.”
“잠깐, 동료가 있습니까? 그리고 이 병원을 확보한다니, 그건 또 무슨…….”
“실력 있는 전직 군인과 함께 다니고 있어요. 능력이 워낙 출중해서 이 병원에 자리 잡고 있는 좀비들도 어찌어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죠. 제가 여러분들과 합류하는 사이 그 사람이 좀비들을 처리하고 이 병원을 안전지대로 만들 계획이에요.”
“미, 믿기지가 않는데…….”
그래도 당신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물자를 꺼낸 걸 보니 뭔가 있는 사람 같기는 했다.
바로 그때, 지하임에도 무심코 귀를 막아야 할 만큼 위층에서 엄청난 총성이 울려 퍼졌다. 마치 믹서기로 야채든 고기든 잘게 다져 버리는 듯한 무시무시한 소음 공해였다.
군필인 김두성도 귀를 막고 엎드릴 정도였는데, 정작 채성아는 살짝 놀란 기색을 내비칠 뿐 “시작된 모양이네요.” 하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게 전부였다.
총성이 저렇게나 요란하게 울려 퍼질 정도라면 확실히 엄청난 무력 집단이 이 병원에 도착했다는 뜻. 김두성은 더 따질 것도 없이 수동으로 셔터를 열어서 그녀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그녀가 나눠 준 식량과 식수는 즉시 안쪽에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 배급되었다. 의료인이나 피난민들은 아직 괜찮았지만,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병원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아서 슬슬 위험하겠다 싶었는데 잘된 일이었다.
채성아는 생각보다 생존자가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금 전 그랬던 것처럼 또 빈 공간에서 식량과 식수를 꺼내 주었다.
마침내 모든 사람에게 넉넉히 돌아갈 만큼 충분한 물자가 지급되자, 김두성은 위에서 엄청난 난리가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허겁지겁 과일 통조림을 따서 내용물을 입 안에 쑤셔 넣었다.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복숭아와 파인애플 과육이 입안 가득 채워졌다. 공복 상태에서 갑자기 과도한 당분을 섭취하는 건 건강에 매우 좋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모두가 미리 받아 두었던 수돗물을 조금씩 나눠 마시면서, 얼마 없는 식량을 손가락 크기로 쪼개며 나눠 먹던 나날이었다.
인간은 공기 없이 3분, 물 없이 3일, 음식 없이 3주를 버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정말 건강한 사람 기준이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며칠만 더 늦었어도 사달이 났을 것이다.
“후르르릅, 쩝쩝. 쿨럭쿨럭!”
“천천히 드세요. 양은 충분하니까요. 또 이곳을 확보하기만 하면 식량이나 의약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쿨럭! 흐읍! 감사합니다! 다 같이 여기서 숨어 지낸 지 벌써 일주일도 넘어서…… 진짜 누가 구하러 와 주지 않으면 위험했습니다.”
사실 지난 며칠 사이 종종 몰래 빠져나가서 병원 내 카페나 편의점을 털어 보려고 했는데 여전히 ‘환자’들이 병원 내부에 득시글거려서 실패했다. 게다가 병원식은 다른 건물에 위치한 식당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식자재를 구할 방법도 없었다.
“전기도 끊어져서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이 지하에 틀어박혀 있다 보니 멀쩡한 사람도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 같더군요. 당신들이 와 줘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해해요. 저도 제가 살던 곳이 엉망이 되면서 미친 사람처럼 산이나 들을 헤집으면서 겨우 도망쳐 나왔거든요. 지금 김해뿐만이 아니라 전국, 어쩌면 전 세계가 이곳과 같은 상황일 거예요.”
“혹시 뭐 좀 알아낸 거 있습니까? 어떤 미친 국가가 이 이상한 바이러스를 만들어서 살포했다든가…….”
“판데믹이 워낙 급격하고 광범위하게 진행된 탓에 역학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일단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진 건 맞다고 생각해요. 조금 이상한 현상의 개입도 있었고요.”
“이상한 현상의 개입이라면……?”
“지금 위에서 좀비들을 상대하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일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야…… 최소 수십 명은 되지 않겠습니까?”
“한 명이에요.”
“!”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이곳까지 무사히 당도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이상 현상 덕분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녀는 다른 환자들을 살피러 이동했다.
김두성은 그녀가 말한 의미를 한참 뒤에나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