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58)화 (59/227)

58화 정착기 (8)

우리가 특정 구역에 들어섰을 때부터 갑자기 확 풍겨 오기 시작한 악취는 굉장히 독특한 느낌이었다.

단순히 인간의 몸뚱이가 썩어 가는 특유의 시취와는 다르게 와사비처럼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강렬함이 있었다.

시취는 좀 더 묵직하게 치고 들어오는 정석적인 스트레이트 펀치라면, 지금 나와 채성아가 맡은 이 악취는 턱밑에서부터 갑자기 날아드는 기습적인 어퍼컷이었다.

“무슨 냄새가……!”

다급히 코를 감싸쥔 채성아는 인상을 찡그린 채 녹색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김해나 창원에 널려 있는 공단들 중 관리가 되지 않은 화학 공장이 폭발이라도 한 건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향은 번화가 한복판이었다.

본능적으로 낌새가 좋지 않음을 느낀 우리는 서둘러 물에 적신 수건으로 입가를 가리고 걸음을 옮겼다.

하필 이 시기는 바람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불어닥칠 때라 넓은 거리에 멍하니 있을 수는 없었다.

“딱 봐도 화재나 폭발에 의해 발생한 연기는 아닌 것 같아요. 공단 방향이라면 모를까 도심 깊숙한 곳이라면 주택 밀집 구역일 텐데 화학 공장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죠. 저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어요!”

채성아는 바람에 흩날리는 연기치고 비교적 낮게 거리로 퍼져 나가는 연기를 바라보며 외쳤다.

코끝을 톡 쏘는 듯한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와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색채, 그리고 폭발이나 화재의 징후가 일절 없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굉장히 이상한 현상이었다.

문득 나는 전쟁을 통해 배운 인간의 잔혹함과 비정함에 대해 떠올렸다.

인간은…… 상대가 죽여도 상관없는 적이라고 판명될 경우 굉장히 잔인한 짓도 서슴치 않고 행하는 습성이 있다. 그런 사례가 대두되는 곳이 바로 전장인데, 서로 참 못 볼 꼴을 많이 봤다.

전장에선 그런 수많은 사례가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례 하나를 꼽자면 바로 생화학 공격이다.

북한은 태생이 빨갱이 국가 아니랄까 봐 러시아의 전신이었던 소련, 그리고 팽창주의로 군사력을 급격히 증강시킨 중국에게 안 좋은 것들을 많이 배웠다.

한반도의 좁고 높낮이가 험한 산악지형, 그리고 과도할 정도로 높은 인구 밀도를 이용하고자 가성비 좋은 살상력을 자랑하는 생화학무기를 많이 만들어 냈다.

그 쥐방울만 한 나라가 무려 핵탄두만 50개를 넘게 보유하고 있으며, 생화학무기만 5천톤을 넘게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 믿겠는가?

놀랍게도 세계 꼴찌 수준의 경제력을 자랑하던 북한은 세계 3위에 해당하는 생화학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생화학무기는 크게 세 가지 조건 중 둘 이상이 성립하면 사용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다.’

1. 생화학무기를 사용하기에 적절한 기상 상황(날씨).

2. 적은 양으로 많은 적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을 만큼 적의 높은 인구 밀집도가 확인되었을 때.

3. 대전략, 혹은 전술적으로 우위를 점해야 하는 상황에서 반드시 적에게 치명상을 입혀야 할 때.

생화학무기라고 무턱대고 최루탄처럼 뻥뻥 터뜨려 댄다고 만사형통이 아니고, 핵 미사일처럼 광범위한 지역을 한 번에 싹 쓸어버릴 수 있을 만큼 효율이 대단하지도 않다.

다만 북한군이 우리를 상대로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지역은 거의 고정적이었다.

주로 우리 군의 접근 차단이나 집결 방해가 목적이었고 사용 장소는 대부분 땅굴 아니면 시가지였다.

“좀비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의해서 멀쩡한 사람이 좀비처럼 변한 것이라면, 이론상 그런 바이러스도 변이하지 않을까요?”

“확실히 바이러스는 복제 과정에서 더 높은 감염성이나 백신, 치료제에 대항하기 위해 급격하면서도 다양한 변이를 일으키곤 해요. 당장 지난 몇 년간 전 세계를 괴롭혔던 유행병도 변이가 워낙 빠르고 종류가 많았으니까요. 그러니까…… 이론상 좀비 바이러스도 그런 변이가 가능해요!”

자신이 알고 있는 의학적 지식에 따른 바이러스와 좀비 바이러스가 같은 성질이라는 전제하에, 라는 말을 덧붙인 채성아는 저 앞에 보이는 한국전력공사 건물을 가리켰다.

“저곳이라면 재난 사태에 따른 대비가 되어 있을 거예요!”

김해시청과 한 블럭을 사이에 두고 쌍둥이처럼 붙어 있는 한국전력공사 건물은, 딱 봐도 사람들이 손을 써서 바리게이트를 설치한 흔적이 보였다.

나는 건물 입구 앞에 테트리스를 하듯이 깔끔하게 박아 놓은 차량 바리게이트를 타고 뛰어올라 4층 높이에 있는 여닫이 창문에 짚라인 후크를 걸었다.

두꺼운 유리창에 콱 틀어박힌 후크를 힘껏 잡아당기자 유리창이 통째로 으드득 하고 뜯겨 나왔다.

각성을 했기 때문에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해서 그런지 유리창을 뽑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잡아요.”

“네!”

유리창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틈새에 다시 한번 후크를 걸고, 이번에는 채성아와 함께 튼튼한 로프를 잡고 벽을 기어올랐다.

바리게이트로 쌓여있는 차량 덕분에 실제로 올라가야 할 높이는 기껏해야 5m 정도였고, 무엇보다 우리 둘 다 각성자였기 때문에 로프를 잡고 벽을 오르는 건 딱히 어렵지 않었다.

오히려 점점 더 빠르게 퍼지고 있는 녹색 연기가 우리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나보다 먼저 유리창 틈새로 기어들어간 채성아는 컴파운드 보우를 들고 사주 경계를 했다.

그사이에 나는 마트에서 챙겨왔던 방수포와 박스 테이프로 유리창을 확실하게 틀어막았다.

“창문이 다 닫혀 있던 걸 보니 이 건물에 숨어 있던 사람들도 외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대충 알고 있었던 것 같네요. 좀비들의 침입보다 그 이상한 녹색 연기에 노출되는 걸 더 무서워했던 것 같아요.”

채성아는 창문의 틈새마다 발라져 있는 테이프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유리창을 뜯어낼 때도 본드로 붙인 것처럼 묘한 접착력이 느껴졌는데, 이게 원인인 듯했다.

“아까도 봤겠지만 그 녹색 연기가 생각보다 하늘 높이 올라가지 않았어요. 딱 건물 사이, 거리나 지하로 퍼져 나가기 좋은 높이였죠.”

마치 생화학 공격처럼.

그렇게 덧붙이니 채성아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었다. 그녀도 간호사니까 내가 어떤 말을 하는지 대충은 알아 들은 것이다.

딱 봐도 인간에게 해로워 보이는 저 녹색 연기가 정말 좀비의 소행이라면, 숨어든 생존자와 정처 없이 배회하는 좀비들 때문에 정체된 판데믹의 구도가 또 한 번 급변할 수 있겠다고 느낀 것이겠지. 어느 쪽이든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그때, 저 아래에서 계단을 타고 다급히 올라오는 발소리에, 나는 권총을 뽑아 들고 채성아도 컴파운드 보우를 겨눴다.

코너를 돌아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행히 이곳을 점거한 좀비가 아니라 조금 추레한 몰골의 생존자들이었다.

“어, 어어?! 잠깐! 잠깐!!”

다섯 명으로 구성된 생존자 무리 중 가장 앞에 서 있는 제복 차림의 남자가 정지 신호를 내리자 다른 사람들도 우르르 멈춰 섰다.

나는 이제 막 30줄을 넘겼을 것 같은 젊은 경찰이 권총을 겨눴다가 다급히 총구를 돌린 것을 보고 일단 안도했다.

무작정 상대에게 총구를 들이밀고 윽박지르거나 생각 없이 총알을 낭비하는 양반은 아니라는 뜻이었으니까.

“당신들 누굽니까? 대체 어디로 들어온…….”

“삼안동에서 건너온 생존자입니다. 입구 앞에 쌓여 있던 바리게이트를 밟고 창문으로 기어올라왔습니다.”

내가 부서진 유리창을 임시로 보수한 걸 보여 주며 말하자 경찰이 인상을 찡그렸다.

“차라리 1층에서 저희를 호출했으면 됐을 텐데 굳이 유리창을 타고 들어오다니…… 무슨 의도가 있었던 거 아닙니까?”

“의도라기보단 단순히 급했을 뿐입니다. 지금 바깥에 저 정체 모를 녹색 연기가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거든요.”

녹색 연기라는 말에 흠칫 놀란 경찰과 그를 따르는 생존자들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넓게 퍼진 탓에 처음과는 달리 색이 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희끄무레한 연기 같은 것이 안개처럼 낮게 퍼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젠장, 오늘은 꼭 나가서 주변을 탐색할 예정이었는데…….”

“규칙성도 없고, 저 연기가 어디까지 퍼지는지 추측할 수 없으니 나갔다간 자살행위요. 텄네 텄어!”

“염병. 지금 저 밑에서 사람이 죽어 가고 있는데…….”

“빌어먹을!”

생존자들은 저 녹색 연기에 억하심정이 있는지 저마다 욕설을 퍼부어 댔다.

이 타이밍에 외부인인 우리가 멋대로 저들의 거점에 들어왔으니, 당연히 곱게 보일 리가 없다. 모르는 게 병신이지.

“혹시 저 녹색 연기에 노출된 사람이 있습니까? 상태가 안 좋다면 제 동료가 봐줄 수도 있는데요.”

“그쪽이 뭐라고 사람을 보느니 마느니 합니까? 당장 쫓아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쇼.”

“제 동료가 간호사입니다.”

비록 의사는 아니지만 환자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그들도 솔깃한 듯 눈빛을 바꿨다.

잠시 저들끼리 속닥거리며 무어라 대화를 나누는 듯하더니, 곧 그들의 리더로 추정되는 경찰이 우리에게 따라오라며 손짓을 했다.

이래서 인재가 중요한 거다.

“그쪽도 알겠지만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사람들이 좀 많이 예민합니다. 저도 경찰인지라 민간인은 구분 없이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 사태가 일주일도 넘게 이어지다 보니…… 못 볼 꼴을 참 많이도 봤습니다.”

“이해합니다.”

국가적 재난 사태가 발발할 시 가장 더러운 꼴을 많이 보는 직업군은 거의 고정적이다.

경찰, 군인, 소방관.

셋 모두 자신보다 공공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희생이 강요되는 직업군이다 보니 더럽고 힘든 상황과 자주 직면하게 되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면서 빠르게 무너지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어쩌겠는가. 그들도 결국 사람인 것을. 딱히 특정 직업군에 소속된다고 해서 갑자기 슈퍼 솔져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에 나는 앞서 가는 경찰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지옥 같은 날, 몇몇 동료들과 함께 사람들을 규합해서 이 건물로 도망쳐 들어왔고, 여기에 숨어 있던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쳐 건물을 봉쇄했습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같이 도망쳐 들어온 민간인 중 감염자가 있었고, 사고가 터졌습니다.”

도망치다가 좀비에게 가볍게 긁히거나 물린 사람이었겠지.

문제는 사태 당일에 가볍게 물리거나 할퀴어진 것만으로도,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좀비가 된다는 이상 현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을 것이다.

그건 상처를 입은 사람 본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결국 기본적인 검역조차 하지 않고 감염자를 거점 내부에 들인 덕분에 2차 감염이 터졌고, 내부 사정이 더욱 안 좋게 변했다는 얘기였다.

“그 뒤에는 뭐, 그쪽이 예상하고 있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안 그래도 좁은 건물 내부에서 사람이 또 죽고, 감염당하고, 다시 죽고. 심지어 바깥에는 그 괴물놈들이 득시글거려서 식량이나 식수를 구해 올 수도 없었습니다. 100명이 넘던 생존자가 지금은 스무 명만 남게 된 겁니다.”

스무 명 중 팔팔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 다섯이라. 다섯이 나머지 열다섯을 지탱하는 것은 확실히 힘들 것이다. 특히 이런 시국이라면 더더욱.

“원래 스무 명 모두 어느 정도 움직일 힘이 있었습니다. 사흘 전에 물자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가 녹색 연기에 노출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역시 인간에게 해로웠던 겁니까?”

“또 다른 감염자를 만들어 내는 악질적인 연기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연기에 노출된 인간을 급속도로 약화시키더군요. 멀쩡한 사람을 중환자 신세로 만들 정도라 바깥에서 쓰러진 사람을 데려오느라 큰일이었습니다.”

우리를 건물 지하로 안내한 그가 넓은 창고의 문을 열자 그곳에서 악취와 함께 사람들이 신음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입가를 가리는 천 마스크를 착용한 채 힘들게 간호하고 있는 3명을 제외하면 누워 있는 환자는 모두 12명. 즉, 이 거점의 생존자 절반 이상이 움직일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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