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정착기 (7)
동이 트려면 아직 몇 분 남은 상황. 약간이지만 빛이 없어도 서로를 분간할 수 있었기에 근처를 지나치던 좀비와 눈이 딱 마주치는 게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하필 주변에서 발광하기 시작한 좀비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것.
만약 놈이 새로운 자극을 발견했다는 신호를 동료들에게 퍼뜨리기라도 하면 매우 위험해진다.
그래서 머리가 ‘위험하다’는 판단을 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다.
채성아가 반사적으로 컴파운드 보우를 발사하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었다. 덕분에 내가 먼저 놈에게 달려들어 천과 헝겊을 덧대어 감싼 왼손을 입에 물리고 목덜미에 대검을 박을 수 있었으니까.
“극…… 그르르르…….”
총으로 상대를 제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변에 들키지 않고 상대를 제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입을 틀어막고 목을 노리는 것이다.
둔기나 벽돌 같은 것으로 머리를 내려치는 건 악수이며, 대검으로 대뜸 머리통을 내려찍는 건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퍽치기는 소음이 심하게 발생하고, 대검으로 머리를 찍는다고 한들 두개골이 단단해서 제대로 뚫릴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음이 거의 새어 나오지 않게끔 간결하고 빠르게 목을 긋거나, 목덜미에 대검을 박아 넣는 게 가장 낫다.
나는 제대로 된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좀비의 목덜미를 꽉 잡은 채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리고 단숨에 대검 손잡이를 비틀어서 목을 지나는 척추 신경계를 확실하게 끊어 놓았다.
이러면 몸을 마구 뒤틀며 발버둥 쳐서 소음을 낼 수도 없을 터.
“……괜찮아요, 승권 씨?”
“쉿. 아직 놈들 다 안 갔어요.”
등 뒤에서 개미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묻는 채성아에게 주의를 주고 호흡을 최대한 가다듬었다.
그사이 후각이 없는 좀비들은 제 동료가 당한 것도 모른 채 소음이 발생했던 거리로 마구 뛰어갔다.
‘낮에는 정말 큰 소음이 아니면 반응하지 않던 놈들이, 어두운 시간대에는 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음에도 굉장히 예민해지는군. 조심해야겠어.’
주변이 조용해진 것을 확인한 나는 단숨에 좀비의 머리통을 짓밟았다. 신경이 끊어져서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던 좀비의 두개골이 으직, 하고 으스러지면서 절명했다.
“후아…… 진짜 아슬아슬했네요.”
채성아가 긴장으로 흘린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채성아가 섣불리 화살을 쐈거나, 내가 조금이라도 늦게 놈을 제압했으면 정말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어두운 시간대에는 좀비들을 더 쉽게 다른 장소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만큼 인간이 활동하기 어렵다는 것도 증명됐네요.”
나는 왼손에 감아 두었던 천 조각에 휴대용 알콜 소독제를 콸콸 들이부었다. 묻어 있던 좀비의 체액과 피는 흔적만 남긴 채 씻겨 나갔다.
출발하기 전에 채성아가 오염 예방 스킬을 사용해 준 덕분에 좀비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100% 면역은 아니니까 조심은 해야 했다.
“일단 주변에 다른 좀비는 없는 것 같네요. 지금 움직이는 게 좋겠어요.”
“마침 동이 트고 있네요. 햇빛 때문에 좀비들의 시선이 조금은 분산될 거예요.”
채성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해 바다 위로 힘차게 떠오른 태양이 푸른 새벽을 몰아내고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아침 해가 떠오르자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거리의 참상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망가지고, 혼잡하고, 누군가가 살해된 흔적이 역력한 난장판 속에서 우리는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김해대로를 타고 서쪽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좀비들이 본능적으로 햇빛이 많이 드는 대로에서 건물 속이나 볕이 적게 드는 골목길 틈새로 기어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놈들이 빛을 싫어해서 그러는 건가 싶었지만, 햇빛이 쨍쨍한 낮에도 길거리 한복판에서 좀비들과 마주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눈부신 햇빛이 먹잇감을 포착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대낮에는 위를 올려다보지만 않으면 햇빛이 시야를 가리진 않지만, 동이 막 틀 때는 햇빛이 시야 한쪽을 가득 채우기 때문에 먹잇감을 포착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눈을 감는다, 고개를 돌린다는 인간적인 사고방식보다는 ‘빛이 들지 않는 곳으로 이동한다’가 놈들에게 어울리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뱀파이어처럼 햇빛으로 놈들을 지져 버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꽤나 현실적인(?) 좀비라서 아쉬울 따름이다.
“저기 김해대입구역 방향에 유독 좀비들이 많이 몰려 있네요. 지하철역 내부는 햇빛이 들지 않아서 그러는 걸까요?”
“그렇겠죠. 게다가 지하철역 내부는 유사시 피난처나 방공호 역할도 겸하니까 어지간한 자연재해가 아니면 통로가 무너질 일도 없잖아요. 그 통로를 통해서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는 거죠.”
사태가 벌어진 날, 지하철 역에서 폭발적으로 밀려 나온 좀비 떼가 기억났다.
플랫폼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열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감염시켜서 거미줄처럼 도시 전역에 뻗어 있는 지하철 노선을 타고 이동했겠지.
그래서 사태가 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놈들이 사방팔방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우리는 좀비들이 지하철역으로 모두 기어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에야 한시름 덜었다.
어차피 시간이 좀 지나면 먹잇감을 찾아 다시 기어나오겠지만, 당장은 놈들의 습격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김해대로에 자리 잡고 있는 상권은 그 규모가 결코 작지 않았는데,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물자를 찾는 건 힘들어 보였다.
좀비들이 이 나라를 뒤덮기 전에 피난민들에게 가장 먼저 털린 곳이면서, 사태 이후 가장 많이 파괴된 곳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폭격이 날아와도 멀쩡할 것 같았던 커다란 상가 건물이 지금은 철골이 드러날 정도로 앙상한 몰골을 하고 있다.
유리창이 안 깨진 건물을 찾기가 힘들었고, 아예 폭삭 무너져 내린 건물도 듬성듬성 보였다.
아직도 공기 중에 남아 있는 피비린내와 시체 썩은 내, 그리고 화약 냄새는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다시금 실감하게 해주었다.
“겨우 종전 선언을 한 지 이제 1년이 넘었는데 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씁쓸하네요.”
간호사라 실제로 보고 듣고 느낀 게 많은지 채성아는 착잡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그러면서도 컴파운드 보우를 쥔 손의 힘을 풀지는 않았다.
고작 이런 광경을 보고 감상에 젖어 있기에는 당장 우리가 직면한 상황이 더 힘들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정처없이 거리를 떠도는 좀비들과 같은 꼴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어 수단을 더욱 믿고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전장에 피를 본 군인이 잠을 잘 때 항상 총을 껴안고 자는 것처럼.
“갑자기 이런 질문하면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승권 씨는 김해에 얼마나 많은 생존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알기로 김해 인구가 대략 60~70만에, 외지에서 김해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포함하면 얼추 100만 가까이 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주변에 부산과 창원이 있으니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죠.”
경상도는 수도권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그리고 그 인구 대부분이 경상남도에 몰려 있다.
같은 경상도지만 항상 인구난에 허덕이는 경상북도가 앓는 소리를 내는 이유도, 경상남도에 위치한 도시들의 인프라가 워낙 대단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경상남도 전체 인구 중 생존자는 1할이 채 되지 않을 거예요. 일부 지역에서만 발생한 사태도 아니고 서울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퍼져 나간 대규모 사태였으니까요.”
“아…….”
전체 인구 중 생존자는 1할이 채 되지 않을 거라는 내 추측에 그녀는 짧게 탄식했다.
인간적으로 안타까워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현실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남부지역은 최후방에 해당하고, 오랜 전쟁을 겪은 탓에 군수물자와 정예군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수십만 명 이상을 한꺼번에 수용하고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의식주를 챙겨 줄 여력이 어디 있겠어요?”
“그건…… 그렇죠.”
거점에 한해 전기나 가스, 수도 같은 생활 필수 인프라를 반영구적으로 무한하게 쓸 수 있는 나조차도, 준비 없이 그만한 인구를 수용했다간 일주일을 채 버티지 못할 거다.
그런데 좀비 사태가 터진 지역에서 대체 어떻게 인구 수십만을 수용하고 보호하며 먹여 살린단 말인가?
그나마 김해공항에서 생존자들을 최대한 규합한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들도 기껏해야 수만 명을 수용하는 선에서 그쳤을 것이다.
좀비 떼로부터 수많은 사람을 확실하게 보호해 줄 수 있는 안전지대, 그들 모두를 보호하고도 남을 만한 막강한 화력, 그리고 오랜 기간 버틸 수 있는 식량까지.
이 모든 조건을 기가 막히게 맞출 수 있는 거점과 세력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힘들 것이다.
“그래도 승권 씨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최소한 생존자들을 수용하고 보호할 능력과 그럴 의지를 가지고 있잖아요. 무책임한 사람들처럼 계획 없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요.”
“넷플러스만 멀쩡했으면 그럴 일은 없었을 걸요.”
“농담이죠?”
“진짠데요.”
남들이 죽든 말든 평생 집구석에 처박혀서 넷플러스만 보려던 내 노후 계획이 박살 난 덕분에 지금 이러고 있는 거다.
상태창의 신은 날 선택했건만, 가장 중요한 넷플러스의 신은 날 버린 것이다.
채성아와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면서 삼안동과 어방동을 나누는 경계인 강을 건너니, 주변 풍경이 또 한 번 바뀌었다.
우리가 지나쳐 온 곳이 상가건물 위주였다면, 이제 막 발을 들인 곳은 렌트카 업체, 중고차매매단지, 주유소, 차량 정비소가 유독 많은 삭막한 단지였다.
안 그래도 대로에 널린 게 차량인데, 이쪽을 보나 저쪽을 보나 죄다 차량 관련 건물들뿐이라 공기 중에 피 냄새보다 타이어의 고무와 기름 냄새가 더 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차량이나 정비 부품이 부족할 일은 없겠네.’
손재주가 좋은 사람들을 모은다면 이곳에서 긁어모은 대량의 차량 부품을 이용해 세기말 전용 장갑차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그럴 여력이 없으니 일단 보류해 두고, 여기서부터는 삼안동과 다르게 확인되지 않은 위험 요소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라 신경을 더욱 곤두세웠다.
특히 내가 처리했던 인제대 학생들조차 두려워했던 좀비 떼가 이 지역 일대를 뒤덮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알기로 어방동은 특이하게도 각 구역마다 크고 작은 공원들이 있었다.
구역 하나만 넘어가도 또 다른 공원이 있으며, 특히 서쪽으로 더 가면 어마어마한 부지를 자랑하는 남산공원이 있다.
도심 한복판임에도 불구하고 공원이 10개가 넘는다는 건 그만큼 뛰어다닐 수 있는 넓직한 공터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건물들이 빽빽하게 자리 잡은 다른 지역과 달리 이곳은 좀비들의 자유로운 사냥터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경희대 교육협력 중앙병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아침 조깅을 하듯이 달렸다.
고무 타이어 냄새가 아닌, 매우 쓰고 역한 냄새를 뿜는 녹색 연기와 마주치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