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역병의 아포칼립스 (56)화 (57/227)

56화 정착기 (6)

어디 김해만 그렇겠느냐마는, 지금 한반도에서 멀쩡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을 것이다.

인구 천만이 넘는 대도시 서울이 한 방에 뻥 터져 버렸고, 이미 전쟁으로 지쳐 있던 대한민국 군대는 그걸 막아 낼 여력이 없었다.

무엇보다 군대가 이북 지역의 안정화 및 복구 작업을 위해 뿔뿔이 흩어진 참이라 전체적인 군사력은 더욱 약한 상태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군을 떠난 건 벌써 1년도 더 된 일이지만, 한국군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가 그 짧은 시간에 획기적으로 바뀌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군은 문제가 커지고 커져서, 고름덩어리가 암덩어리로 변한 후에야 간신히 칼을 대서 절개하는 최악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6.25 전쟁 당시에 쓰던 구식 수통을 70년도 더 지난 군대가 여전히 쓰고 있었던 것처럼.

게다가 UN에서 나온 평화유지군과 인권조사관들에게 협조하랴, 민간 기업과 협동해서 최대한 빨리 이북 지역을 복구하라는 정부의 명령에 따르랴, 그들은 요 1년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것이다.

갑자기 등 뒤에서 B급 영화 속 주인공들인 좀비 군단이 자신들을 덮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당연히 후방에서 원인 불명의 전염병이 창궐해 인간이 괴물처럼 변했다는 보고는 받았을 것이고, 그에 대한 대비도 해 두라는 상층부의 비상 명령 역시 받들었겠지만…… 까놓고 말해서 그럴 여력이 없었을 거다.

한국은 단기간에 걸친 전면전과 약 5년에 달한 전후 처리 때문에 소모한 재정이 어마어마했다. 옛날처럼 미친 듯이 국방비를 증액하며 군대의 힘을 키워 줄 방법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당장 사회 전역에 뻗친 불만을 가라앉혀야 했고, 망가진 도시의 복구 작업과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민간인들에 대한 보상, 그리고 전쟁통에 빠져나간 해외 기업들의 재유치를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을 터.

만약 미군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한국군은 진즉에 총알 없는 빈 총으로 싸워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김해를 비롯해서 다른 대도시들이 순식간에 함락당한 이유도 거기에 있겠지. 왜냐하면 지난 5년간 이북 지역에서 소모된 막대한 군수 물자 때문에 후방의 군수 물자가 턱없이 부족하니까.’

나는 어슴푸레한 새벽에 잠에서 깨자마자 채비를 갖추고 활천초의 옥상으로 올라왔다.

동이 트기 전에 채성아와 함께 위험천만한 김해의 중심지로 출발해야 하는데, 그 전에 잠시 바람이라도 쐴 겸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군용 망원경을 든 나는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을 주의 깊게 살폈다. 김해 중심지에 비하면 외곽에 가까운 이곳은 수십 마리 단위로 몰려다니는 좀비들이 없었다.

사태 초기에는 그런 놈들이 많았지만, 북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자전거 동호회가 지속적으로 좀비들을 유인해 다른 곳으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그것 자체는 정말 잘된 일이다. 최소한 우리가 마음 편히 지내야 하는 지역에서만큼은 몰려다니는 좀비들과 맞닥뜨릴 일이 거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가 점차 활동 반경을 넓혀갈수록 나중으로 미뤄 두었던 부채가 언젠가는 우리의 목을 옥죌 것이 분명했다.

좀비들을 일시적으로 다른 지역에 밀어냈다고 한들 놈들이 죽어 나자빠진 것도 아니고, 심지어 놈들은 계속되는 추위와 허기 속에서도 무리 없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말인즉슨 항상 무언가를 먹고, 안전한 잠자리와 따스한 온기를 필요로 하는 인간과 달리, 극한의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심지어 놈들은 먹잇감을 발견하면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무식하게 달려들기까지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완전히 따돌리거나 확실하게 제압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지치고 쓰러지게 되는 인간에 비해 생존 경쟁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강력한 현대 화기로 중무장한 군대가 놈들을 제압하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을 거다.’

좀비란 결국 원인 불명의 현상, 혹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인간을 베이스로 탄생한 괴물이다.

머리 같은 약점을 파괴하면 즉사하거나 팔다리가 부러지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동일했다.

그런데도 군대가 제압하지 못했다는 건, 그런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 어긋나는 놈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예를 들어, 머리를 파괴해도 죽지 않는다면? 팔다리가 부러져도 다시 재생해 버린다면? 아예 총탄 자체가 먹히지 않는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지성으로 돌격하는 군대는 무섭지. 인간을 한 번 물어뜯거나 할퀴기만 해도 동족으로 바꿀 수 있는 특성도 무섭고. 하지만 그게 빗발치는 총탄과 사방팔방에서 터지는 폭탄으로부터 좀비를 보호해 주지는 못 한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가끔은 제정신이 아니게 될 정도로 전장에서 구르고 총을 쏘고 대검을 휘둘러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는 알고 있다.

현대군의 진짜 무서운 점은 병사 개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그저 압도적인 화력이라는 것을.

저격수가 산속에 숨어 있다면 그곳에 폭격을 퍼부을 수 있을 정도로 화력의 역치가 높은 것이 바로 현대군이다.

이를 역설적으로 따져 보면 그런 화력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존재, 혹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군대와 경찰이 맥없이 패배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내가 시내에서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좀비 떼였다. 놈들은 피난을 가기 위해 거리에 나온 민간인들을 인정사정없이 덮쳤고, 민간인들을 통제하고 있던 군대와 경찰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제압에 나섰겠지.’

그래서 밤새도록 총성이 울려 퍼지고 폭음이 천지를 진동시켰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거리를 돌아다니는 건 인간이 아니라 좀비들뿐이라는 게 문제지.

굉장히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굳이 대형 병원을 찾아 김해의 중심지로 나가는 이유는 거점과 의약품을 얻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직접 발로 뛰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정보를 누구보다 먼저 선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 적으면서 집단 전체의 향방을 논할 수 있는 정보의 가치는 평시와 전시를 막론하고 매우 희소하고 중요하다.

물자나 사람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정보와 지식이 없으면 그것들을 다룰 자격도 없는 거다.

“여기 있었네요.”

옥상 문을 열고 나온 채성아가 조심스럽게 내 옆으로 다가왔다.

고된 간호사 생활로 다져진 체력, 밤을 새도 끄떡없는 정신력 덕분에 그녀는 새벽 일찍 일어나 움직이는 걸 조금도 힘들어 하지 않았다.

그녀는 컴파운드 보우와 촉을 날카롭게 갈아서 살상력을 높인 화살을 통에 담에 어깨에 메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간호사가 아니라 여전사처럼 보였다.

이미 죽음의 위기를 한 번 겪고 살아남은 바 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좀비들에게 죽기 싫다는 마음가짐이 전신 깊숙이 밴 듯했다.

“뭘 보고 있는 거예요?”

“어두울 때의 좀비들 움직임요.”

“밝을 때와 큰 차이가 있나요? 시각이나 청각적 자극이 없으면 기본적으로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잖아요.”

“이틀 전엔 아니더라고요.”

내가 단독으로 인제대 캠퍼스에 침투했을 때의 이야기를 꺼내자 채성아가 표정을 살짝 굳혔다. 생존자는 기본적으로 아는 게 많아야 한다. 특히 이런 시국이라면 더더욱.

“놈들이 분명 밝은 빛이나 큰 소음, 살아 있는 인간의 움직임 같은 것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사실이지만 밝은 낮에 비해 밤에 좀 더 흉폭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주기의 영향을 받는 걸까요?”

“그렇다기보다는 단순히 활동하기 편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밝은 대낮에는 햇빛 때문에 시각의 자극이 매우 심하지만, 어두운 밤에는 기본적으로 빛에 대한 자극이 없다시피 하잖아요? 그러니 ‘집중’할 수 있는 거죠.”

기본적으로 어두컴컴하고 조용한 밤이 되면 그만큼 시각과 청각이 더 예민해지는 법이다.

인구가 밀집된 주택가도 낮에는 조용하지만 밤만 되면 이상하게 이웃집 소리가 잘 들리는 것처럼.

아파트에서 가장 흔하다는 층간 소음 문제도 주로 낮보다는 밤에 항의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그만큼 밤 시간대에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놈들은 자극이 없으면 기본적으로 새로운 자극이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기 전까지 주변을 의미 없이 서성이거나, 집단으로 몰려다니는 패거리에 자연스럽게 합류해서 거리를 배회하잖아요. 어두울 때와 밝을 때의 그 차이가 어느 정도로 심한지 알아둬야 바깥에서 움직이기 편할 것 같아서요.”

“일리가 있네요.”

최신식 군용 야투경이라도 있는 게 아닌 이상 인간이 어두컴컴한 시간대에 움직이려면 기본적으로 손전등이나 야광봉이 필요한데, 그게 하필 좀비들의 이목을 끌기 딱 좋다.

그래서 나도 인제대에서 민간인들을 구출하고자 할 때 무리해서 밤에 움직이려 하지 않았던 거다. 사람이 많이 움직일수록 광원도 많이 필요한데, 그건 곧 좀비들한테 나 잡아 줍쇼 하는 꼴이었으니까.

“혹시 동이 트기 전에 움직이자고 한 건…….”

“어둠에 익숙해진 놈들이 갑자기 동쪽 해안가에서 빨리 떠오르는 햇빛에 노출되면 일시적으로 헷갈리지 않겠어요?”

인간은 1초라도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눈이 따가워서 다급히 고개를 돌리지만, 좀비들은 애초에 그럴 필요를 못 느끼는 놈들이다. 햇빛 좀 본다고 눈이 망가진다면 모든 좀비가 진즉에 심봉사가 됐겠지.

하지만 갑작스러운 광원(햇빛)이 시각을 자극하고 있을 때 우리가 움직인다면, 잠깐이지만 놈들의 눈을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충 살펴보니 큰길보다는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이나 바깥에선 잘 보이지 않는 주차장을 조심하면 되겠네요.”

좁고 후미진 곳일수록 야음에 익숙해진 놈들이 쉽게 자극받고 튀어나올 수 있으니 기습에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고 대놓고 큰길로 다니면 그건 그것대로 위험하니 건물이나 버려진 차량에 바짝 붙어서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이제 움직이죠.”

망원경을 갈무리한 나는 그녀와 함께 활천초를 나섰다.

나는 가능하면 총을 쓰지 않을 생각이기 때문에 한 손에는 군용 대검을, 다른 한 손에는 헝겊을 조금 두껍게 말아서 벙어리 장갑처럼 착용했다.

채성아는 컴파운드 보우에 싸구려 레이저 포인터를 달고서 화살을 재두었다.

홈마트에서 사무용품으로 팔고 있던 레이저 포인터를 가져와 부착한 것인데, 어둠 속에서도 명중률을 높이고자 한 의도였다.

그래 봤자 작은 레이저 포인터로 분별할 수 있는 거리는 기껏해야 십수 미터 안팎일 텐데, 아마 예상치 못한 난전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난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아군의 오인 사격이니 나름 합리적인 생각은 맞다.

이번에는 단독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짚라인도, 바이크나 자전거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좀비 떼가 득실거리는 거리를 족히 수 킬로미터나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바짝 긴장시켰다.

활천초에서 벗어난 지 대략 20분쯤 지났을까. 우리는 자전거 동호회가 필사적으로 밀어낸 좀비 떼가 곳곳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발견했다.

당장은 이렇다 할 만한 자극이 없어 거친 숨소리나 기형적인 울음소리를 토해 내며 돌아다니는 게 전부였지만, 일단 한 번이라도 자극을 받는 순간 벌떼처럼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나는 사전에 상의해 둔 대로 채성아에게 조용히 지나가자는 수신호를 전달하고, 도로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차량 사이로 파고들었다.

사태가 벌어진 당일, 대다수의 민간인들이 급히 피난을 떠나기 위해 몰려든 탓에 큰길에는 유독 버려진 차량들이 많았다.

동이 트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우리는 차량과 차량 사이의 좁은 틈을 이용해 자세를 바짝 낮추고 움직였다.

바로 그때였다.

저 멀리서 희미하지만 다수의 차량이 내뱉는 거친 배기음이 울려 퍼진 것은. 자연스럽게 소음을 감지한 주변의 좀비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곧 사나운 원숭이처럼 발광하기 시작한 놈들이 미친 듯이 차를 뛰어넘고, 저들끼리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소음이 울려 퍼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운 나쁘게도 차량 사이에 숨어 있던 우리와 마주친 놈이 덜컥 움직임을 멈췄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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