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정착기 (3)
다음 날. 날이 밝고 해가 중천에 뜨기 전까지 우리는 어두컴컴한 건물 지하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른 저녁부터 시작된 좀비 떼의 습격, 간밤에 이루어진 포식, 그 과정이 모두 끝난 후에야 비로소 목표를 상실한 좀비들이 하나둘씩 건물을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목표물 없이 배회 상태로 돌아다니는 좀비들은, 복잡한 건물을 빠져나갈 만큼 지능이 높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머무르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가 1층으로 나와 몰래 빠져나가는 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끔찍하군…….”
강대현 교수는 코를 감싸 쥔 채 채 난장판이 된 1층 복도를 둘러보았다.
1층의 바리게이트가 뚫리자마자 가장 먼저 희생당한 건 한발 늦게 빠진, 혹은 다른 동료들이 자신을 도와줄 거라고 호구처럼 믿고 있었던 멍청이들이었다.
그들의 육편과 혈흔이 사방팔방에 널린 1층 풍경은 어떤 의미에선 전위예술처럼 보였다. 붉은색 페인트를 미친 듯이 흩뿌려도 이보다 생동감은 떨어지리라.
“자넨 이렇게 될 거라 예상했나?”
“그 대학생들이 이렇게 머저리같이 전멸당할 거라는 사실요? 아니면 좀비들이 감염체도 만들어지지 않을 만큼 사람을 뼈까지 낭낭하게 발라먹을 거라는 사실요?”
“…….”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해요. 이런 광경을 보고 나니 자기가 마치 전쟁 범죄라도 저지른 대역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겠죠. 비록 어젯밤까지는 자신들을 핍박하고 부려 먹던 괘씸한 놈들이었지만, 그래도 한때는 자기 밑에서 배움받고 청춘을 즐기던 학생들이었으니까요.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테니 빠르게 잊으라는 말은 않겠지만, 최소한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는 게 좋아요. 이것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전쟁이나 다름없거든요.”
“전쟁…… 이라고?”
“좀비와 생존자가 서로의 영역을 걸고 싸우고, 생존자와 생존자가 서로의 이권을 걸고 싸우는 세상이 됐잖아요. 국가라는 거대한 사회적 집단이 사라졌을 뿐, 사람들의 행동 양식 자체는 조금도 바뀐 게 없어요.”
전쟁, 전쟁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개인의 이익과 사상, 가치를 고집하는 한 절대로 자신과 다른 누군가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까지는 국가라는 거대한 사회적 집단이 권력과 군사력, 경제력으로 인간들의 다툼을 최대한 봉합하고 있었을 뿐. 그마저도 안전장치가 사라진 지금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세기말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어딘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대현 교수에게 턱짓으로 따라오게 한 뒤, 먼저 박살 난 뒷문으로 나섰다.
여긴 더 이상 볼일이 없다.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여길 거점으로 삼아서 이 일대의 영향력을 내가 가져가는 것은 어떨까 싶었는데, 고작 영향력 하나를 얻기 위해서 희생하고 감내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
우선 인제대를 거점으로 삼을 경우 거점 내에 존재하는 적대 세력 모두와 거점 전쟁을 벌여야 하는 데다, 막상 피똥 싸며 이곳을 거점으로 삼는다고 해도 큰 이득은 없었다.
대학교는 기본적으로 생존 거점과는 맞지 않는다. 부지가 쓸데없이 넓은 데다 물자가 풍부한 것도 아니고, 생산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이 유일한 장점인데, 인제대 주변 특성상 얻을 것도 없는 거점에 사람만 많이 수용해 봤자 하등 쓸모가 없다. 오히려 좀비들의 어그로만 과하게 끌어서 위험에 빠질 뿐.
계륵의 ‘ㄱ’ 자도 되지 못하는 쓰레기 거점에 투자하느니 차라리 호텔 하나를 통으로 먹는 게 더 낫겠다. 최소한 숙박, 수용 시설로는 대학교보다 훨씬 더 좋을 테니까.
‘내 집, 활천초, 홈마트 다음으로 거점 후보를 고르자면 역시 엄청난 물자를 한 번에 얻을 수 있거나,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 이득이겠지.’
그 밖에는 군사시설이나 항만, 공항, 규모가 큰 지하상가역 정도가 있겠다. 다행히 김해와 주변 지역(부산, 창원)에는 해당 후보들이 모두 존재하니 언젠가는 내 거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강대현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 건물을 떠나기 전, 죽은 자들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아무래도 정년 퇴직을 앞둔 노년의 교수라서 그런지 감수성이 조금 풍부한 듯했다.
만약 내가 자신들을 돕지 않았다면, 저기서 뒹굴고 있는 육편이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걸까?
‘아니, 똑똑한 사람이니까 그 정도는 이해하고 있겠지.’
단지 세대 차이가 심하게 나는 탓에 그와 내가 바라보는 현실의 관점이 다를 뿐이다.
6년 전의 나는 저런 사람들을 위해서 죽음도 불사하고 희생하는 쪽, 6년 전의 저런 사람들은 내 희생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묵묵히 받아들이는 쪽이었을 테니까.
“해가 떠 있는 지금 이동해야 하니 최대한 대열로부터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 써 주세요. 그리고 뭔가 발견하면 소리를 지르거나 호들갑 떨지 마시고 저를 불러 주세요.”
현장 체험 학습에 나온 학생들을 인솔하는 선생님처럼 나는 수십 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을 데리고 인제대 부지를 빠져나왔다.
인제대 후문 삼거리를 통해 곧장 직진하면 삼안동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구태여 그쪽 루트를 고르지는 않았다. 그곳에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혼자 다닐 때는 짚라인 스킬로 건물과 건물 사이를 훌쩍훌쩍 날아다녔지만, 이렇게 대인원이 함께 움직일 때는 고층 건물 사이로 이동하는 건 최대한 피해야 한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치다가 그곳에서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는 좀비 떼에게 된통 당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벌집통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지나가기만 해도 아파트 안에서 눈깔을 부라리고 있던 좀비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무작정 뛰어내리는 벌집.
기껏 확보한 민간인 생존자들을 그렇게 희생시킬 순 없으니, 조금 귀찮더라도 좁은 빌라 단지 사이를 지나가는 게 나았다.
빌라 단지는 건물과 건물 간의 간격이 워낙 좁은 데다 높이도 대부분 6층을 넘기지 않는다. 그리고 신축 빌라 단지 1층은 보통 주차 공간으로 뻥 뚫어 놓기 때문에 그 아래로 이동한다면 좀비들의 눈에 띌 걱정은 없다.
인제대 인근에 좀비들이 제법 많다는 말이 있었지만, 놈들은 대부분 남쪽의 번화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대체 사태 당일에 그쪽 번화가에서 어떤 일이 있었기에 지금도 좀비 떼가 정체되어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가능하면 거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저쪽은 쳐다보지도 않을 예정이다.
“누군가가 홈마트를 통째로 확보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 그게 설마 자네였을 줄이야.”
“주식도 자본금이 있는 사람들이 크게 투자해서 크게 벌어먹는 구조인데, 이런 세상에서 사람을 구하려면 그에 걸맞는 물자가 있어야죠.”
나는 사람은 믿지 않지만 돈과 물자는 믿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돈과 물자만 있다면 평생 집에 처박혀서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넷플러스를 볼 수 있는 사회였으니까.
이제는 돈 대신 DNA 샘플을, 개인 물자 대신 공공 물자를 써야 하는 시대가 왔지만 여전히 생활 방식은 그대로라고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를 부려 먹고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선 마땅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 누군가가 내 보호와 지원을 얻고자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노동력이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통용될 것 아닌가.
‘자본주의는 세상이 망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르크스 선생.’
시답잖은 농담을 중얼거리며 마트 입구를 개방하자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채성아가 달려 나왔다.
“혹시 다치신 분이나 건강이 안 좋으신 분 계신가요? 저는 간호사니까 부담 없이 말해 주세요.”
채성아는 내가 데려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굳이 ‘이 사람들 믿을 만하냐’ 같은 질문은 던지지 않았다. 대신 기력이 쇠하고 초췌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혹시 병자가 있는지부터 파악했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당연히 없겠지만, 하필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감기나 폐렴 환자 정도는 있을 수 있다. 잘 먹고 푹 쉰다면 대부분 나을 수 있지만, 전염성이 있는 병이라면 거점 내에서도 따로 격리를 하는 게 의료인의 기본 방침이었다.
솔직히 강대현 교수라면 허리나 목이 아프다느니 같은 소리부터 할 줄 알았는데, 그는 청결한 마트 내부를 놀란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공기청정기와 난방이 풀가동되고 있는 공간, 횃불이나 양초로 만들어 낸 불빛이 아닌, 전등 불빛으로 밝힌 내부, 게다가 지금까지도 신선하게 보존되고 있는 각종 식료품들까지.
“어떻게 이런 곳이…… 혹시 이곳은 따로 전력을 공급받고 있는 건가?”
“글쎄요. 확실한 건 이곳을 비롯한 다른 생존자 거점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거점들은 모두 제가 관리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점만 잘 숙지하시고 협조해 주시면 편의를 봐드리죠.”
따뜻한 물을 펑펑 써도 좋고, 뜨끈한 난방기구 옆에서 숙면을 취해도 된다. 때 되면 밥도 나올 거다. 내가 그리 설명해 주니 강대현 교수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런 시대에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물이나 식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네. 그런데도 이 많은 사람에게 그런 편의를 제공해 준다고? 그렇게 해서 자네가 얻을 수 있는 건 끽해야…… 변변찮은 노동력 아닌가? 우리도 우리의 가치에 대해서 모르는 건 아닐세.”
차마 고기방패나 노예라는 천박한 단어를 쓸 수는 없었는지, 그는 교수답게 표현을 순화하려 노력했다.
물론 설령 그런 단어들을 언급했다고 한들 내 심경에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유용한 인적자원을 고기방패로 쓰는 건 아깝고, 이 인간들을 노예로 삼아 봤자 조금도 즐겁지 않을 테니까.
그나마 제정신이 박힌 생존자들을 거점 인원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내가 편하고자 하기 위함이지, 다 같이 망하자고 종말의 카운트다운을 더 앞당기는 게 목적이 아니다.
“순수한 선의나 의무 같은 건 당연히 아니에요. 한 번 망가진 사회에 ‘비교적’ 멀쩡한 사람들로 다시 채워 넣으면 그나마 제가 편할 것 같아서요. 어느 정도 틀만 잡아 주면 나머지는 그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해 주지 않겠어요?”
방해하는 놈들은 쓸어버리고, 도움 안 되는 놈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딱 이 사회가 용납할 수 있는 선의 인적자원들만 모아서 뒷일을 맡겨 둔다면 다시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배달 어플로 편하게 밥을 시켜 먹을 수 있는 그런 날.
나는 아연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강대현 교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었다. 아랫사람이 연장자에게 하면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지만, 내가 아랫사람이 아닌데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지친 몸의 피로를 풀고, 부족한 영양을 보충하고, 새롭게 조직될 생존자 그룹에 자신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세요. 그게 싫으면 떠나셔도 상관없고요.”
내가 베이비시터도 아니고 다 큰 어른 밥 먹여 주고 뒤까지 닦아 주는 취미는 없다.
나는 그대로 마트 안쪽에서 환자를 선별하고 있는 채성아에게 다가가 필요한 물자나 의약품 목록을 받아 적고, 내가 가진 것이 있으면 인벤토리에서 꺼내 주었다.
당분간 사람이 좀 많더라도 기본적인 생필품이나 식량 문제는 없겠지만, 전문의약품은 그걸 다룰 수 있는 사람과 충분한 수량이 필요했다.
당장 기본적인 해열제나 진통제만 해도 구급약품에서 꺼내 쓰는 것에 한계가 있으니까.
‘다음 정찰 루트는 병원 쪽으로 잡아야겠군.’
마트로 모인 생존자들이 어느 정도 기력을 되찾고 나면 활천초로 보낸 뒤, 채성아와 함께 인근 병원을 둘러볼 생각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거점으로 삼아서 대량의 전문의약품과 병상, 의료기기도 확보할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건 비단 좀비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니까.